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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노인

배경령
115호 2017.05.11
등장인물시현동생엄마아빠 커다란 유리 상자에서 큰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시현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TV에서는 노인들이 모두 물고기로 변해버렸고, 정부는 차후 대책을 논의 중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동생은 유리 상자 앞에서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놀고 있다. 동생: 누나, 내 생각에는 이 물고기들...

등장인물
시현
동생
엄마
아빠

커다란 유리 상자에서 큰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시현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TV에서는 노인들이 모두 물고기로 변해버렸고, 정부는 차후 대책을 논의 중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동생은 유리 상자 앞에서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놀고 있다.

동생
누나, 내 생각에는 이 물고기들 엄청 맛있을 것 같아.
시현
몇 번을 말하냐. 그거 할아버지랑 할머니야. 꿈 깨.
동생
이건 물고기잖아, 누나 바보!

시현은 한숨을 쉬고 TV채널을 돌린다. 토크쇼 프로그램에서는 물고기로 변한 노인을 주제로 열 띈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때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구두를 벗는다.

엄마
딸. 수조 관리하기 지겹지 않니?
시현
어쩔 수 없잖아. 저건 할아버지랑 할머니니까.
엄마
넌 그 허무맹랑한 소리가 믿어져?
시현
응.

시현은 귀에 이어폰을 꼽는다. 엄마가 뭐라고 말하지만 전혀 들리지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시현을 보며 혀를 차고는 TV를 본다. 토크가 어느새 물고기 노인이 수험생에게 좋다느니, 성장기의 어린이에게 좋다느니, 발기 부전의 남성에게 좋다느니 하는 쪽으로 번져있다. 엄마는 TV에 집중하고, 아빠가 들어오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빠
흠, 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아빠는 멋쩍게 서성이다 물고기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빠
아버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그제야 엄마가 아빠를 본다.

엄마
당신 왔어? 얘기 좀 해. 아들, 넌 이제 방에 들어가서 자.
동생
싫어! 더 놀 거야!

엄마가 몇 번 발을 구르고 나서야 동생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라진다. 시현은 소파에 그대로 앉아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엄마
여보, 대체 언제까지 저 물고기들을 어머님아버님 취급하면서 지낼건데. 지겹지도 않아?
아빠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 부모님이 맞으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잖아. 그러니까 받아들이는 수밖엔...
엄마
정말 그렇다고 쳐도 그게 뭐? 이제는 어차피 물고기잖아. 내가 물고기한테까지 시집살이를 해야겠어? 솔직히 나도 이쯤 했으면 충분하잖아.
아빠
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어머니가 우리 자식 키워준 거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우리 어머니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모르는 거 아니잖아.
엄마
애들을 어머니 혼자 키웠어? 나랑 같이 키웠지. 직장 다니면서 애들 키우고, 두 분 늘그막 뒷바라지까지 한 나는 생각 안 해?
아빠
이런 이야기 그만 하자.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엄마
그만 팔아넘기자, 수족관 같은 데라도. 살아있는 건 꽤 비싼 값에 팔린데.
아빠
당신 제정신이야? 당신 부모님이었어도 이럴 수 있어?
엄마
솔직히 당신도 진심으로 저걸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고는 생각 안하잖아.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건가 본데, 여보. 우린 정말 할 만큼 했어. 어머님은 그렇다 쳐도 아버님까지 부양했잖아. 우리한테 도움은커녕 짐만 됐었는데 그래도 다 버텼잖아. 우리 정말 오래 고생했어. 그러니까 이제 그냥 털어버리자.
아빠
당신한텐 늘 미안해.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엄마
여보, 제발! 저건 그냥 물고기야. 봐, 저게 정말 어머님 아버님으로 보여? 당신이 당연히 책임져야하고 효도해야할 부모님으로 보여?

아빠는 유리 상자의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인다. 그러다 엄마를 보고 고개를 젓는다.

엄마
그럼 팔아넘길 곳 알아보자.
아빠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자.

엄마와 아빠는 나란히 사라진다. 시현은 소파에서 일어나 귀에 꽂은 이어폰을 뽑는다. 그리고 유리 상자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시현
할머니.

물고기 중 한 마리가 시현의 곁으로 헤엄쳐 온다. 시현은 그 물고기를 한참 바라본다.

시현
분명 텅 빈 물고기 눈이지만 비어있지 않고 할머니로 가득 차 있어요. 근데 아빠는 왜 할머니를 못 볼까요, 자식이면서.

무대에 정적이 흐른다.

시현
엄마아빠가 할머니랑 할아버지 팔아 넘긴데요. 수족관 같은데서 비싸게 사주나 봐요. 근데 할머니는 정말로 부모님한테 짐이 될 뿐이었어요? 할머니는 혼자 힘들게 일해서 아빠를 키웠고, 우리도 키워줬잖아요. 할아버지는 매일 술만 마시면서도 큰소리치다가 어떤 여자한테 사기까지 당하고 우리 집에 빌붙었댔지만. 엄마아빠가 매일 시끄럽게 싸우는데 못들을 수가 없거든요.

무대에 또다시 정적이 흐른다. 시현은 물고기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물고기는 말을 할 수 없다.

시현
그런데 결국은 똑같은 취급이네요. 똑같은 물고기가 돼서 그런가.

시현은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소파에 눕는다.

시현
이제 와서 궁금해 해서 미안해요. 근데 지금 무슨 생각해요? 알고 싶어요.

무대에 정적이 흐르고, 시현은 잠이 든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그 사이 아빠와 엄마, 동생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조명이 서서히 다시 켜지고 시현은 소파에서 일어난다.

시현
무슨 일이에요?
아빠
죽었어. 두 마리 다.
엄마
어떻게 처리해야하지?
동생
엄마, 그럼 오늘은 물고기 구워 먹는 거야? 신난다!

시현은 동생의 뒤통수를 때리고 무대에서 내려가고, 동생은 화가 나서 시현을 쫓아간다. 엄마는 무언가 결심한 듯 아빠에게 속삭이고, 아빠는 고개를 젓다가 결국에는 수긍한다. 엄마는 앞치마를 둘러맨다. 아빠는 유리 상자를 옮기며 무대에서 사라진다. 요리를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족 모두가 무대를 왔다갔다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이따금 멈추어 서서 유리 상자가 놓여져 있던 곳을 멍하게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엄마 또는 아빠가 나를 재촉한다.
엄마는 식탁을 차리기 시작한다. 한가운데에 생선 요리가 있다.

엄마, 아빠, 동생
잘 먹겠습니다.
엄마
딸, 이것 좀 먹어봐. 이게 수험생한테 그렇게 좋다잖아. 당신도, 이게 비아그라만큼 효과가 좋데. 아들, 이거 먹으면 키 쑥쑥 큰다?
시현
(울먹이며) 엄마는 그걸 믿어?
엄마
그럼~ 사람들이 없는 소리 하겠니?
동생
맛있어, 엄마!

시현은 동생의 뒤통수를 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동생은 입 안에 밥을 가득 문 채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너 이리 안 와!
아빠
냅둬, 한창 저럴 나이지...

엄마는 동생을 달랜다. 식사는 계속 되고, 그들은 웃고 떠든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호들갑 작가소개
빠른 01년생이고, 고양예고 문예창작과에 진학 중이며, 시아준수의 노래만 듣는 그냥 여고생입니다. 이 여백에 채우는 글자 하나하나를 의식하게 되어버렸다는 게 고민이고 너무 쉽게 변하는 것들이 항상 불안하기만 한데, 어쨌든 글을 쓰고 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써서 제 극본으로 연극도 뮤지컬도 많이 올리는 게 꿈입니다. 사실 너무 부족하고 보여드리기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처음 쓴 희곡이니까 참고 읽어주세요... 아무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