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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밀이의 미학

강은민
117호 2017.06.08
등장인물양민석 (45) 목욕탕 주인양주용 (19) 민석의 아들무대 배경 무대는 허름한 목욕탕이다. 중앙엔 거울 두 개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샤워기와 의자가 있다. 거울을 기준으로 우측엔 <한방 온탕>이라는 팻말이 달린 욕탕이 있다. 오른 쪽은 출입문. 민석, 욕탕에 들어가 있다. 주용,...

등장인물

양민석 (45) 목욕탕 주인
양주용 (19) 민석의 아들

무대 배경

무대는 허름한 목욕탕이다. 중앙엔 거울 두 개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샤워기와 의자가 있다. 거울을 기준으로 우측엔 <한방 온탕>이라는 팻말이 달린 욕탕이 있다. 오른 쪽은 출입문.

민석, 욕탕에 들어가 있다. 주용, 혼자서 자기 몸의 때를 민다.

민석
몸도 안 불리고 때가 밀어지나.
주용
내가 알아서 한다.
민석
들어온나. 뜨끈하이 좋다.
주용
드러버서 안 드간다.
민석
코찔찔이 때부터 여 들락거린 아가 뭔 소리 해샇노. 내가 여 얼마나 청결하게 관리 하는데.
주용
근데 손님도 하나 없나.
민석
니 오믄서 몬 봤나.
주용
뭐를?
민석
우리 동네 사거리에 큰 사우나 하나 생깄다 아이가. 거는 뭐 노천탕도 있고, 헬스도 있고, 별거 별거 다 생깄다 카데. 내도 가게나 키아보까.
주용
키울 돈은 있나.
민석
니 아빠 무시하지마라. 모아둔 돈 꽤 있다.
주용
(때 밀던 손 멈추고) 돈 많이 모았나.
민석
그래.
주용
얼마나 모았는데. 한 1억 되나.
민석
......그거는 아이고.. 한 오백?
주용
장난하나.
민석
돈이야 앞으로 더 벌면 된다.
주용
우째 사람이 이리 안 변하노.
민석
내가 뭐.
주용
아빠는 속도 없나? 돈도 안 되는 목욕탕 하믄서 아빠한테 남은 게 뭐고?
마누라는 딴 놈한테 뺏기고, 내는 짓지도 않은 죄값 치루 게 만들고.

민석, 탕에서 나와 주용 앞에 앉는다. 주용, 민석을 외면한다.
민석, 주용에게 때밀이 수건을 쥐여 준다.

민석
등 밀어라.
주용
싫다.
민석
쫌. 밀어라 짜슥아.
주용
아 싫다고.
민석
말 들어라.
주용
장 씨 아저씨한테 밀어 달라 캐라. 이 아저씨는 일 안하고 어데 갔는데.
민석
장 씨 관뒀다.
주용
...언제.
민석
니 소년원 수감되고 나서.. 바로.

사이. 주용, 때밀이 수건을 받아들어 민석의 등을 민다.

주용
양심은 있는 가베.
민석
그라지 마라. 그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다.
주용
내는, 내는 안 불쌍하나.
민석
용아. 고마 그일 잊아뿌라. 어차피 못 돌이킨다 아이가.
주용
(때밀이 수건 바닥에 던지며) 성인군자 행세좀 그만 해라! 나, 아빠 얼굴 두 번 다신 안 볼라캤다. 근데 내가 왜 내발로 여 왔는지 아나? 아빠한테 따져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다.
민석
뭔데.
주용
내 괴롭혔던 새끼들. 명문대 합격했다고 현수막 붙었더라.
민석
....
주용
그때, 내가 같은 반 애들 괴롭힌 거 아니라고.. 그 새끼들이 지들이 애들 괴롭혀놓고 나한테 누명 씌운 거라고,, 아빠한테 얘기했잖아. 왜 내말 안 믿어줬노.
민석
현수막 걸린 거.. 우째 봤노.
주용
길 가다가 우연히. 보고 있는데.. 참 기분 뭐 같았다.
민석
용아. 걔들 부럽나.
주용
말이라고.
민석
밉나.
주용
밉지.
민석
아빠는.
주용
.....
민석
아빠도 밉나.
주용
거짓말은 몬하겠다.
민석
니.. 어제 새벽에 집 들어왔다 나갔제.
주용
우째 알았노.
민석
찬장에, 라면 2개가 없어져 있드라. 니 라면 킬러 아이가. 이거라도 사놓으모..
혹시나 니가 집에 왔다가 배라도 채우고 나갈 거 같아가 사놨다. 내가 라면 입에 대는 사람이가.
주용
..예전엔 잘 먹었잖아.
민석
혼자 라면을 뭔 맛으로 먹노.
주용
배고프면 먹게 돼있다.
민석
또.. 나갈 거가.
주용
그게 걱정되는 사람이 면회 딱 한번 오고 안 왔나. 어제 출소날인 거 알면서 두부도 안 사오고.
민석
니가 와 두부를 묵노. 죄 지은 놈들 따로 있는데.
주용
빈말 필요 없다.
민석
뒤돌아 앉아라.

주용, 머뭇거린다.

민석
얼른.

주용, 뒤돌아 앉는다. 민석, 주용의 등을 쳐다본다. 등에 난 빼곡한 상처들.
민석,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묵묵히 주용의 등을 민다.

민석
움직이지 마라 짜슥아. 때 안 나온다.
주용
별 걱정을 다 한다. 때 밀어본지가 언젠데. 아, 아 아 아프다!!
민석
엄살 부리는 건 우째 느그 엄마랑 똑같노.
주용
엄마한텐 연락 오나.
민석
연락 끊긴 지 1년이 넘었다.
주용
잘한다. 다 늙어가 마누라 없이 혼자 우째 살래?
민석
내가 왜 혼자고.
주용
여자 생깄나?
민석
미친놈아. 말고, 니.
주용
내?
민석
그래 니. 니랑 같이 살아야지.
주용
면회 왔을 때 분명히 말했다. 싫다고.
민석
왜 싫은데.
주용
여서 우예 사노. 동네 사람들, 내 지나가니까 다 피하든데.
민석
이사 가면 되지.
주용
말이야 쉽지. 아 살살 좀 밀어라!
민석
와, 이게 우동 가락이지 사람 때가.
주용
에바다 진짜. 내랑 같이 살 생각 하지 말고 아빠도 재혼해라. 내가 애도 아니고, 내 몸 하난 내가 건사할 수 있다.
민석
..뭐 해묵고 살 건데.
주용
소년원에서 난 놀았을까봐? 이것저것 자격증 땄다. 일 알아봐야지.
민석
꼭 가야 되겠나.
주용
뒤돌아 앉아라. 때 밀어 달라매.
민석
(뒤돌아 앉으며) 야마리 없는 노무 자슥.
주용
(민석의 등 밀며) 누가 야마리가 없노. 같이 살았어도 독립했을 나이다.
민석
내랑 같이 안 살거믄, 니 여 왜 왔노?
주용
말했잖아. 아빠한테 따져 물을라꼬 왔다고.
민석
그게 다가.
주용
어. 미적거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라. 와 이리 질질 끄는데.
민석
니는 뭐가 그래 급하노. 내랑 안 살 거면, 목욕하고 밥 먹고, 하루정도는 같이 있어줘도 된다 아이가.
주용
내 오늘 바쁘다. 할 일 많다.
민석
...용아. 아빠가 그래 불편하나.
주용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 아빠가 편하겠나.
민석
다른 집도 좋고 편해서 같이 사는 거 아이다.
주용
아 진짜.. 이제 와서 와 이라는데? 내가 그래 소중하모, 그때 잘 했어야지!
내가 한 짓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왜 날 죄인 취급했냐고!
민석
부끄러워서 그랬다. 내가 능력이 없으니까!
주용
뭐라고?
민석
니, 내 아들이다. 괴롭힘 당하는 애들 구해줬음 구해줬지, 누구 괴롭힐 애 아니라는 거 내가 더 잘 안다. 근데 돈이 없어가, 변호사 살 능력이 안 되가 니 누명 못 벗겨준다고.. 그런 얘기를 니한테 어떻게 하노.
주용
......
민석
무능력하고 부끄러운 아빠보다, 차라리 아들한테 관심 없는 아빠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용
이거는.. 진짜 너무 불공평하다.
민석
.....
주용
아빠 혼자만 날 믿고 있음 뭐하노. 내가.. 내가 몰랐는데. 진작 알았으면..
민석
알았어도 달라지는 게 뭐가 있노. 상황은 바뀌는 게 없었을 거고, 니는 내를 더 미워 했을 거다.
주용
......
민석
용아. 아빠 넉넉하진 않아도 돈 좀 모았다. (목욕탕 둘러보며) 돈도 안 되는 여 고마 팔고, 니랑 같이 떡볶이를 팔든 치킨을 튀기든 하면 우리 둘이 묵고 사는 데는 문제 없지 않겄나. 옛일은 고마 다 잊아뿌자. 마음 아프지만 우짜겄노. 인력으로 되는 일 이 아이다 아이가.

주용, 말 없이 흐느낀다. 민석, 주용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민석
고생했다. 평생 치룰 죗값 미리 치뤘다고 생각하고.. 앞으론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
주용
..응.
민석
아이고매, 탕에 너무 오래 들어앉아 있었나. 슬슬 허기가 지네. 우리 짜장이나 한사발 때리까?
주용
낸 짬뽕.
민석
그래 좋다! 짜장이믄 어떻고 짬뽕이면 어떻노! 다 같은 족속들 아이가. 으흐흐.
얼렁 씻고 나가자.

민석과 주용, 일어서서 샤워기를 튼다. 두 사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구석구 석 몸을 씻는다. 조명,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항상 ‘반짝이는’ 글을 쓰는 이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늘 거칠고 투박하게만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남의 반짝임을 아무리 부러워해도, 제 글은 여전히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톡톡 튀고 반짝이지는 못하더라도,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진심을 다해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