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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장주은
118호 2017.06.22
Billie Holiday의 Blue Moon이 흐른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자, 인형 뽑기 기계 앞으로 다가온다. 유리문에 바짝 다가와, 덩그러니 홀로 있는 캐릭터인형을 바라본다. 인형, 일어나 앉아 한심한 듯 여자를 바라본다.

Billie Holiday의 Blue Moon이 흐른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자, 인형 뽑기 기계 앞으로 다가온다. 유리문에 바짝 다가와, 덩그러니 홀로 있는 캐릭터인형을 바라본다. 인형, 일어나 앉아 한심한 듯 여자를 바라본다.

인형
또 왔냐.
여자
그래. 널 데려가기 위해 또 왔지.
인형
어차피 넌 날 못 뽑아. 가서 잠이나 자.
여자
아니. 널 데려가야 잠이 올 거야. 기다려.

여자, 동전을 두 개 넣고 인형 뽑기를 시작한다. 진지한 자세로 열중한다. 인형, 귀찮다는 듯, 앞구르기, 옆 구르기를 하며 내려오는 집게를 여유롭게 피한다.

인형
너 내가 여기 짬밥이 얼만지나 알아?
여자
인간들 한심하긴. 천원에 두 번이나 기회를 주는데도 못 뽑냐.

여자, 혼자 깔깔대며 기계를 움직인다.

여자
그러니까 내가 뽑아주지. 이 건방진 놈.
인형
니가 날린 돈으로 몇 개를 샀겠다.

여자, 뽑기에 실패한다. 다시 도전하려 하지만 현금이 없다. 여자, 혼자 약이 올라 유리벽을 세게 한 번 두드린다.

여자
야, 잘 들어. 너는 내 가방에서 달랑거려야 하는 운명이야. 알아들어?
인형
웃기네. 니 지저분한 가방에서 달랑거리는 일은 없을 거야. 난 나만의 목표가 있어.
여자
(비웃으며) 인형 따위가 목표 좋아하네. 거기서 솜이나 안 터지게 조심해.
인형
어딜 가나 그 세계만의 법칙이 있거든. 여기도 룰이 있어.
여자
그래. 내가 들어나 준다. 절대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야. 겨울 새벽 공기 좋잖아. 이런 걸 마셔야 건강해.

여자,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춥지만 안 추운 척 하며 다리를 꼰다.

인형
그래봤자 감기만 걸리지.
여자
니가 뭘 알아.
인형
나도 너처럼 그랬었으니까. 이 유리창 밖에서 모든 잘될 거라고 새벽공기 마시며 입김을 뿜어 댔었으니까.
여자
(웃으며) 짜식 유머감각도 있네.
인형
뭐 믿거나 말거나. 여기서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여자
뭔데.
인형
너 같은 인간한테 뽑히는 거.
여자
솜뭉치들이 까불고 있다. 영광으로나 알아야지.
인형
안 봐도 뻔해. 일단 가방에 달랑거리다가 집구석에 쳐 박혀 지겠지. 그러다 곰팡이한테 질식해서 죽을 운명.
여자
쉿. 말이 많아. 너는 그냥 배 한번 누르면 사랑 고백하는 그런 정도가 어울려.
인형
또 자기가 쥐고 있는 걸 둘러 볼 여유도 없는 인간. 뭐 그런 타입이지. 너랑 어울려.
여자
야, 니가 날 알아?
인형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봐왔는지 넌 알아?
여자
나는 천원에 두 번. 너 따위한테 내 모든 운을 걸지 않아. 이건 내 취미생활일 뿐이라고. 취미에 돈 쓰는 사람이야 나. 즐거운 내 인생이란 말이야.
인형
말이 많아. 길어질수록 변명이라는 거 잘 알 텐데.

인형, 기지개를 편다. 자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인형.

여자
야. 너 지금 나 무시해? 나 아직 안 끝났어.
인형
가서 자. 조금 있으면 해 떠.
여자
상관없어. 너 내가 꺼내고 말거야. 난 항상 운이 좋으니까.

인형, 비웃다가 차분히 집게 바로 밑에 얌전히 눕는다.

인형
뽑아보던가.

여자, 주머니를 뒤지다가 천원을 발견한다. 신나서 다시 도전하는 여자. 신중하게 방향을 맞춰 버튼을 누르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여자
곧 보자. 멍청한 인형아.

하지만, 집게가 내려가다가 멈추고 만다. 여자, 당황해서 기계를 두드려 보지만, 꼼짝도 않는다. 인형, 낄낄대고 웃는다. 여자, 화가 나서 유리벽을 사정없이 두드려댄다.

여자
왜 나한테만 그래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나 일주일 내내 여기 왔다. 그게 잘못이야?

인형, 옆으로 비스듬히 일어나 여자의 말을 듣는데.

여자
그래, 나 한 번도 이런 거 성공 해 본 적 없어! 그게 웃겨?

인형, 앞주머니에 들어 있던 과자를 꺼내 먹는다.

여자
그래, 사랑에 성공해 본 적도 없어! 애인도, 내 꿈도 날 사랑해주지 않아. 그게 웃기냐고! (보며) 야, 지금 과자가 넘어가? 내가 하는 말이 안주거리야?

인형, 어깨를 으쓱 해 보인다.

여자
너, 내가 꼭 뽑고 말 거야. 그래야 내 운이 터질 것 같거든. 너만 나오면 모든 게 잭팟 처럼 터질 거야. 분명해. 아니, 그래야만해.
인형
여기 들어올래?
여자
...뭐?
인형
생각보다 아늑해. 내가 잘 피하는 방법도 알려줄게. 고도의 심리전이거든.

여자, 유리창에 노크한다.

여자
니가 뭔데 날 가르쳐. 어디가 진짜인지 구별도 못하면서.

인형, 여자의 말에 자신의 상품 택을 떼어버린다.

인형
그러니까. 여긴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아. 너 가질래?
여자
그런 게 없으면 거기는 뭐 할게 있냐?
인형
여기 있으면 모든 걸 감상할 수 있거든. 니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야.
여자
됐어. 내가 인형 따위랑 있어봤자 뭐해. 너 오늘 웃긴다. 한잔 했어?
인형
여기 있으면 모두가 날 사랑해. 내 얼굴만 봐도 모두가 웃어. 날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 나쁘지 않은 인생이야.
여자
니가 무슨 인생을 논해. 꿈 깨. 인형아.
인형
뭐 인간이랑 이름도 비슷한데 나도 인생이지. 들어와. 새벽공기도 가끔 마셔야 상쾌하지. 매일 마시면 좀 지겹잖아.
여자
...

새벽 쓰레기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들려온다.
여자, 유리창에 다가가 인형을 바라본다. 노크한다.

인형
왜.
여자
넌 행복해?
인형
너보단.

여자,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다 다시 기계 앞으로 돌아온다. 노크한다.

여자
알려줘 봐.
인형
뭘?
여자
들어가는 방법.
인형
기계 뒤에 숨겨 논 망치가 있어.
여자
...그게 왜 거기 있어?
인형
너 말고도 많은 인간들이 들어왔었거든. 나도 그걸로 들어왔어.
여자
다 어디 갔는데?
인형
뽑아갔지. 걔들은 게을렀어. 앞구르기 연습을 열심히 안 했거든. 걱정 마.

여자, 기계 뒤에서 망치를 꺼내온다. 심호흡을 하는 여자.

여자
약속해.
인형
또 뭘.
여자
거기 들어가면... 다 괜찮은 거지?
인형
약속해. 자유로워 질 거야.
여자
나, 취한 건 아니겠지?
인형
멀쩡해.

여자, 웃는다. 망치를 잡고 머뭇거리다가, 기계 유리를 내려친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깜깜한 암흑이 된다. 요란한 기계음이 울리다가 인형의 목소리만 선명히 들려온다.

인형
반가워.
호들갑 작가소개
언제나 나를 소개하는 건 어렵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나와 친해지는 건 더 어렵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끝까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