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열람실
김연재
119호
201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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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노트북 열람실, 두 명의 여자. 여자1 아.여자2, 여자1을 한번 돌아보았다가 다시 자기 할 일을 한다. 여자1 너무 시끄럽잖아.여자2 저요?여자1 아니에요.여자2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여자1 아니요.여자2 여기 저밖에 없는데요?여자1 아닙니다. 죄송합니다.여자2 시...
텅 빈 노트북 열람실, 두 명의 여자.
- 여자1
- 아.
- 여자1
- 너무 시끄럽잖아.
- 여자2
- 저요?
- 여자1
- 아니에요.
- 여자2
-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 여자1
- 아니요.
- 여자2
- 여기 저밖에 없는데요?
- 여자1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여자2
- 시끄럽다고 하셨나요?
- 여자1
- (가로채듯) 네.
- 여자2
-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 여자1
- 알아요. 알아.
- 여자2
- 그런데 왜 그러세요?
- 여자1
- 아. 좀. 그만 합시다.
- 여자2
- 네? 뭘요? 뭘 그만해요?
- 여자1
- 볼 일 보세요, 좀. 제가 죄송하다고요.
- 여자2
- 뭐가 죄송하신데요?
- 여자1
- 시끄럽게 느낀 게 죄송해요. 너무.
- 여자2
- 제가 시끄러웠나요?
- 여자1
- 네. 너무.
- 여자2
- 대체 뭐가요? 저 아무 것도 안 했는데요.
- 여자1
- 마우스 소리가 시끄럽잖아.
- 여자2
- 여기 노트북열람실인데요.
- 여자1
- 알아요.
- 여자2
- 노트북 열람실에서 마우스 사용한 게 문제가 되나요?
- 여자1
- 그런데 그 마우스가 너무 딸깍딸깍딸깍딸깍!
- 여자2
- (놀라서) 그렇구나.......
- 여자1
- 몰랐어요?
- 여자2
- 이게 그렇게 시끄럽나요?
- 여자1
- 뇌를 파먹는 것 같았다고요. 이어폰을 껴도 그걸 비집고 들렸다고요.
- 여자2
- 여기 노트북열람실인데요?
- 여자1
- 노트북열람실에서는 시끄럽게 해도 돼요?
- 여자2
- 노트북열람실은 노트북 소리는 허용되는 곳 아닌가요?
- 여자1
- 열람실에서는 조용히 해야죠.
- 여자2
- 나는 조용히 했어요. 그쪽이 마우스 소리를 들은 거랍니다.
- 여자1
- 그쪽은 그 소리가 안 들려요?
- 여자2
- 나한테 이 소리는 당연한 건데. 바람소리나 초침소리처럼.
- 여자1
-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어요?
- 여자2
- 노트북열람실에서 노트북 소리 나는 게 당연한 거죠.
- 여자1
- 아. 그래. (긴 사이) 미안합니다.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 여자2
- 아니에요. 저도 종종 신경이 예민해지곤 하죠.
- 여자1
- 제가 좀 신경이 곤두섰었어요.
- 여자2
- 이해해요. 저도 좀 전에 그랬어요.
- 여자1
- 그러셨군요.
- 여자2
- 제가 포토샵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든요. 제 전공이 시각디자인인데. 음. 아무튼. 그러니까 저한테 넘기는 어떤 사람이 베이스를 엉망으로 해서 보낸 거예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 여자1
- 너무 화가 난 상태로 포토샵을 하셨군요.
- 여자2
- 네.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
- 여자1
- 그래서 마우스를 더 딸깍거렸을 거예요. 그랬을 거예요. 그쵸.
- 여자2
- 그랬을지도 모르죠.
- 여자1
- 그럼 내가 아주 틀린 건 아니었네요.
- 여자2
- 그럴지도 모르죠.
- 여자1
- 그런데 그쪽은 여기가 노트북열람실이라는 말만 운운하면서 그 마우스 소리에 대해 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은 거고요.
- 여자2
- 내 말이 틀렸나요?
- 여자1
- 아니요. 틀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하지만. 음. 그러니까. 너무 원칙만 내세웠죠. 이해라든가 공감이라든가 신경이나 마음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대개 그런 게 문제가 되죠.
- 여자2
- 원칙은 중요해요. 이제 그만 말 시켜줄래요? 마우스 소리가 듣기 싫으면 당신이 나 가셔야죠.
- 여자1
- 아니요. 들을 준비가 됐어요. 당신이 얼마나 딸깍거리든 들을 거예요.
- 여자2
- 아, 네.
- 여자1
- 생각해봤는데, 제가 실례가 많았던 것 같아요.
- 여자2
- 네. 알겠어요. 이쯤에서 그만 하세요.
- 여자1
- 생각해봤는데, 제가 당신에게 용서를 빌어야할 것 같아요.
- 여자2
- 괜찮아요.
- 여자1
- 죄송합니다.
- 여자2
- 네. 저도요.
- 여자1
- 그쪽은 뭐가 죄송하세요?
- 여자2
- 그냥, 뭐. 시끄럽게 해서요.
- 여자1
- 그게 죄송하세요?
- 여자2
- 아주 막 죄송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의례적으로 그렇게 말들 하잖아요.
- 여자1
- 오. 그러면 좀 절망적인데. 그쪽이 저한테 시끄럽게 한 게 죄송하다면 제가 지금 용 서를 빌 이유가 없잖아요.
- 여자2
- 괜찮다고요. 저 바쁜데.
- 여자1
- 생각해 보세요. 그렇잖아요. 그쪽은 여기가 노트북열람실이니까 마우스를 시끄럽게 딸깍거린 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죄송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예요?
- 여자2
- 생각해보니 말이 안 되네요.
- 여자1
- 그쵸?
- 여자2
- 네.
- 여자1
- 제가 용서를 비는 게 맞는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 여자2
- 명백히 그렇죠.
- 여자1
- ‘명백히’ 라는 말은 좀 슬픈데.
- 여자2
- 저한테 대체 왜 이러세요?
- 여자1
- 저는 지금 그쪽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이 일을 빨리 해치워야 하는데 제가 너무 걸 리적거리고 또 밖에 나가 카페에 가서 일을 하자니 돈도 아깝고 카페까지 꽤 오래 걸어야 하고....... 방금 보낸 카톡도 그런 내용이었죠? ‘아 좆됐다 열람실에 어떤 미 친년 있어.’ 이런 거. 그렇죠?
- 여자1
- (가방을 붙잡으며) 가지 마세요.
- 여자2
- 왜 이래요. 어머, 이상해. 좀 놔요.
- 여자1
- 생각해보니까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 여자2
- 알았다고요.
- 여자1
- 후회스러워요. 그러지 말걸. 누구나 그럴 때가 있잖아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고 그것 때문에 막 사람이 싫어지고.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하고. 저 아까 그쪽을 죽이 는 상상을 했거든요. 그 마우스 소리가 너무 딸깍거려가지고. 그래서 용서를 빌어야 해요. 죄송해요.
- 여자2
- 날 죽이는 상상을 했다고요?
- 여자1
-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정말로요. 저도 할 일이 있었는데 정신이 막 산만했 거든요. 그런데 그쪽은 마우스를 너무 딸깍거리면서 분주하게 집중해서 뭘 하기에. 부럽잖아요, 그런 거. 신경 쓰이고.
- 여자2
- 그렇다고 애꿎은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해요? 아, 기분 나빠. 끔찍해. 신고할 거야.
- 여자1
- 미안해요. 제발 들어봐요. 아! 이런 적은 없어요? 야자 할 때 가장 공부 열심히 하 고 성적도 좋은 애가 볼펜으로 문제집 채점하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휘릭휘릭 휘릭휘릭 볼펜이 종이를 동그란 모양으로 세게 찍고 지나가는 소리요. 나는 이 문 제를 풀어야 되는데 저 소리 때문에 못 풀겠고 그런데 쟤가 문제집 하나도 안 틀리 는 게 얄궂고 그런 거요.
- 여자2
-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이거 놔요!
- 여자1
- 날 용서해 주세요.
- 여자2
- 미쳤어요? 내가 왜?
- 여자1
- 내가 이렇게 진솔하게 다 털어놓았는데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어요?
- 여자2
- 내가 왜 그쪽을 용서해야 되나요?
- 여자1
- ‘용서해요. 다 괜찮아요.’ 라고 말 해줘요.
- 여자2
- 그렇게 말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어요?
- 여자1
- 그게 날 살게 해요.
- 여자2
- 싫어요. 내가 왜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죠?
- 여자1
-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오늘 저녁 내내 이 시간을 곱씹으면서 울 거예요.
- 여자2
- 그럼 그렇게 하세요.
- 여자1
- 이럴 때마다 나는 너무 죽고 싶어요.
- 여자2
- 죽으세요. 그러면.
- 여자1
-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그쪽이. 오늘은 꼭 용서받고 싶었는데. 오늘은 정말 진 솔하게 말했는데. 아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여자2, 여자1을 한번 돌아보았다가 다시 자기 할 일을 한다.
여자2, 여자1을 빤히 바라본다.
여자2, 여자1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가방을 챙긴다.
여자2, 여자1이 세게 붙잡고 있던 가방을 낚아챈다.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어느 여름날 보았던 커다란 벌레가 여전히 방 안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내가 너무 눈치 없이 잠자코 머무는 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저편에서 끊임없이 나를 욕하며 비웃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서 이 어색한 자리를 박차고
저편으로 용서를 빌러 가야 한다고,
나를 귀엽고 가엽게 여겨 주기를 청하러 가야 한다고,
엉덩이를 들썩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대개 밥을 잘 먹습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