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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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나
여자
아이(여자의)
무대
작은 카페. 오른쪽에 카운터가 있다. 테이블 2개, 의자가 2개씩 있다. 왼쪽에 출입문 있다.
나가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있다. 노트북을 보며 차를 마신다. 딸랑 소리와 함께 여자 들어온다. 잘 차려 입은 귀부인의 모습이다.
- 여자
- 어머, 오랜만이에요.
- 여자
- 여기서 작업하시나 봐요?
- 나
- 저요?
- 여자
- 기억 안 나세요? 앞집 살았잖아요. (의자에 앉아 밖을 보며) 이 동네는 그대로네요. 저기 건물 새로 올린 것 말고는.
- 나
- 착각하신 것 같네요. 주인집 부부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 여자
- 왜 없어요. 저기 편의점 아저씨도 계속 장사하시고, 세탁소는 (밖을 보다가) 이제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네요.
- 나
- 죄송한데 가주시겠어요? 작업이 밀려서.
- 여자
- 저 안 반가워요?
- 나
- 모르는 사람한테 이러시면 민폐예요.
- 여자
- 제가 민폐 끼칠 모습으로 보이세요?
- 나
- 제가 나갈까요?
- 여자
- 그때는 저 마주치면 안부도 잘 물으셨는데.
- 나
- 당신처럼 잘 차려 입은 사람은 제 인맥에 없어요.
- 여자
- 한 번씩 우리 애들 보면 웃으셨잖아요.
- 나
- 뭐하는 거예요?
- 여자
- 우리 애들 사진도 찍어줬잖아요.
- 나
- 남의 애 사진을 왜 찍어요. 이거 놔요.
- 여자
- 찍었다가 지웠죠. 마지 유령을 담은 사진 같아서,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지웠죠.
- 나
- 뭐야.
- 여자
- 당신 집 앞은 따뜻했어요. 겨울에도 햇빛이 한참 비췄어요.
- 나
- 놓으라구요!
- 여자
- 마주치면 눈키스 했잖아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 나
- 미치겠네 아주.
- 여자
- 당신 시선이 따뜻해서 마음이 갔어요. 애들도 마찬가지였죠. 당신한테 조금은 민폐였을지도 몰라요. 다들 장난꾸러기였잖아요. (밖을 보며) 얘! 들어오렴!
- 여자
- 오랜만에 이분한테 눈키스!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 아이
- (여자의 말에 따라 감았다 떴다 하며)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 여자
- 지금은 눈에 눈곱 없어요. 그렇지?
- 나
- 뭔가 맺힌 게 있나 본데, 저는 남한테 피해 끼치는 것도, 피해 받는 것도 싫어해요.
- 여자
- 하지만 눈치를 많이 봤죠. 그리고 둔했죠. 그런 주제에 죄책감도 있었죠.
- 나
- 사이비세요?
- 여자
- 가족들 반대에 밥 줄 생각 못한 거. 상관없었어요. 싫어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었어요. 당신은 어느 날 이상함을 느꼈어요. 아이의 눈에 낀 눈곱이, 탁해진 눈 색깔이 신경 쓰였어요.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 나
- (조금 떨리는 소리로) 전 모른다니까요?
- 여자
- 당신은 힘겨운 발걸음으로 대문을 들어섰어요. 계단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봤어요. 아이 위에는 파리 두 마리가 날아다녔어요. (파리 소리 들린다) 당신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집안으로 들어갔어요. 동생에게 말했어요. 계단에 웅크린 아이, 자는 걸까, 아픈 걸까. 동생은 말했어요.
- 나
- 자는 거겠지.
- 여자
- 당신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 나
- 아픈 건 아니겠지? (동생 말투로) 아 자는 거겠지.
- 여자
- 가족들은 당신한테 행여나 밥 주지 말라고, 그러면 자꾸 꼬인다고 당부했죠. 세 들어 살고 있으니까, 주인집이 싫어할 테니까.
- 나
- 그해 여름은 너무 더웠어. 불쾌하게, 우울하게.
- 여자
- 다음날 당신은 영화를 보러 집을 나섰어요. 계단을 내려가다가 놀랐어요. 화단 구석에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으니까요. (파리 소리 크게 들린다. 아이가 웅크린다.) 파리들이 너무 많았어요.
- 나
- 무섭게, 우울하게.
- 여자
- 저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웅크려서 우리 아이를 바라봤어요. 당신은 저도 봤어요. 그리고 대문을 나갔어요.
- 아이
- (파리들 소리에 귀를 막고 더욱 웅크리며) 무서웠어. 아팠어.
- 여자
- 당신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어요. 끝나자마자 기운이 빠졌어요.
- 나
- 심장이 뛰었어. 아까 죽어 있던 건가. 살아 있다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할까. 백수라 돈이 없는데, 언젠가 인터넷에 구조 후 수술비가 없으니 도와달란 글을 봤는데, 나도 글을 올려야 할까. 임시로 보호하면 가족들 반대가 심할 텐데, 이 모든 과정이 지칠 텐데, 요즘 기운 없는데, 너무 힘든데.
- 여자
- 당신은 대문으로 들어와 아이와 저를 봤어요. 아이의 숨은 끊어져 있었어요.
- 나
- 가족들이 난감해 했어. 여름이라 냄새가 진동할 거라고. 당황해하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얘기했어. 그렇게 신경 쓰였으면 진작 밥을 주든가 병원에 데려가지 그랬냐고. 나는 밥 주지 말라고, 꼬이면 골치 아프니까 눈길도 주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항변했어.
- 여자
- 돌아온 대답은
- 나
- 눈치를 보지 말았거나, 이제 와서 후회하지 마. 아무도 시체를 치우고 싶어 하지 않았어.
- 여자
- 아이의 시체는
- 나
- 엄마가 치웠어. 니가 하염없이 아이를 쳐다봐서, 아이 주위에 파리가 들끓어서, 섬뜩했대. 불쌍했대. 자식을 잃었으니 어미가 안 슬프겠냐며.
- 여자
- 당신은 직감했어요.
- 나
- 니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 여자
- 잡는 심정으로. 제발, 우리 애를 구해줘요. 제발, 살려주세요. 당신이 마지막 희망이에요.
- 나
- 계단에, 나 보라고, 데려다 놨다는 걸. 나는 그걸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걸. 아니, 온갖 이유를 붙여 희미하게 만들었다는 걸.
- 여자
- 당신은 우리 사진을 지웠어요. 인터넷에 복잡한 감정을 털어놨어요. 사람들은
- 나
- 반반이었어. 책임지지 못할 거면 관심 안 준 게 맞다. 죄책감 느낀다고 퉁 치지 마라.
- 여자
- 세련됐죠? 어디 가서 무시 안 받겠죠?
- 나
- 그게 한이 맺혔어?
- 여자
- 제대로 된 모습 아닌가요? 사람들이 원하는.
- 나
- 왜 나타났어. 반성하라고? 난 아직 정리가 안 됐어.
- 여자
- 알아요. 생각은 당신 몫이에요.
- 여자
- 그냥, 기억하라구요.
나가 여자를 보고 노트북을 본다. 여자가 나에게 다가간다.
나가 차를 마시고 노트북으로 작업한다.
여자가 일어나 몸을 한 바퀴 돌린다. 옷, 가방, 구두 등이 근사하다. 자리에 앉는다.
나가 한숨 쉰다. 짐을 챙겨 일어난다. 여자가 나의 팔목을 잡아 앉힌다.
나가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난다. 여자가 일어나서 나의 손목을 잡는다.
여자가 나의 손목을 놓는다.
아이 들어온다. 잘 차려 입은 모습이다. 아이가 여자의 품에 기대 나를 쳐다본다.
아들이 양손으로 양 눈을 크게 벌려 보인다. 카페 안을 돌아다닌다.
아이가 눈을 비빈다. 파리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손으로 파리를 좇아낸다.
여자가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다시 나를 본다.
아이가 혀를 내밀어 자신의 손등을 핥는다. 머리를 긁적인다. 여자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가 일어나 나간다. 나가 아이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여자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옷을 가리킨다. 가방을 들어 보인다.
여자가 혀를 내밀어 손등을 핥는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출입문으로 가다가 잠시 서서 나를 본다.
여자가 나간다. 나가 멍하니 출입문을 보며 서 있다. 무대 점점 어두워진다. 끝.
- 호들갑 작가소개
-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