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물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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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녀 (15세)
유실물 센터 직원1 (32세, 여)
유실물 센터 직원2 (51세, 여)
무대
지하철 유실물 센터 안.
무대 뒤쪽으로는 물건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철제 수납장이 있고, 그 앞으로는 업무를 보는 카운터가 있다. 직원2, 수납장에 분실물들을 날짜별로 분류하고 있고, 직원1, 서류를 작성 중이다. 그때 교복을 입은 소녀가 들어온다. 가방을 메지 않은 소녀는 자연스럽게 간이 의자에 털썩 앉는다.
- 직원1
- 또 왔네.
- 직원2
- 자기야, 작성 다 했어?
- 직원1
- 아뇨, 아직. 조금만 더 하면 돼요.
- 직원2
- (소녀를 발견하곤) 얘, 뭐 잃어 버렸.....
- 직원1
- 책가방을 잃어 버렸대요. 일주일 째 출근 중이에요.
- 직원2
- 그래? 무슨 색인데? 어떻게 생겼는데?
- 직원1
- 기억이 안 난대요.
- 직원2
- 기억이 안 나? 지 책가방이? 저기 앉아 있으면 기억난대?
- 직원1
- 그러게요. 첫날 책가방 잃어버렸다는 말만 하고, 매일 와선 저렇게 앉아 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나가더라구요.
- 직원2
- 그래? 난 왜 한 번도 못 봤지?
- 직원1
- 저 있는 시간에만 왔는데, 오늘은 좀 늦게 왔네요.
- 직원2
- 책가방을 엿 바꿔 먹었나. 하여튼 요즘 애들 하고는. 쟤도 어지간히 지 엄마 속 썩이게 생겼다. (불현 듯 생각났다는 듯) 참, 그제 저녁에 책가방 하나 들어 왔는데? 빨간색.
- 직원1
- 그래요?
- 직원2
- 가져다 줄......(갑자기 배를 움켜잡는다) 아, 자기야, 나 신호 왔다. 큰 거.
- 직원1
- 얼른 다녀오세요. 제가 찾아볼게요.
- 직원2
- 후딱 해결하고 올게.
- 직원1
- 이거니?
- 직원1
- 산 지 얼마 안 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나.
- 소녀
- ......
- 직원1
- 네가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찾아줄 수가 없어. 여기 매일 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 소녀
- ......또 사왔어요.
- 직원1
- 뭐라구?
- 소녀
- 엄마가요. 책가방을 또 사왔어요.
- 직원1
- 가방을 잃어 버렸으니까. 다시 사야 하겠지? 새 가방 샀으면 여기 올 이유가 없는 거 아냐? 안에 들어 있는 것 때문에 그래?
- 소녀
- 아뇨. 새로 산 가방도 잃어버렸거든요.
- 직원1
- 가방이 한두 푼도 아니고. 그건 어떻게 생긴 가방인데? 언제 잃어 버렸니?
- 소녀
- ......기억이 안 나요.
- 직원1
- 뭐? 얘, 내가 너랑 말장난 할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 사람 신경 쓰이게. 너 이것도 엄연한 공무 집행 방해다? 공무집행방해가 뭔 지는 알지? 가방 들어오는 거 있음 연락 줄 테니까 번호 남기고 가.
- 소녀
- 엄마가요. 이번에도 잃어버리면 다신 집에 오지 말래요. (사이) 그래서 집에 안 갔어요.
- 직원1
- (소녀를 본다) 가출, 했어?
- 소녀
- (고개를 끄덕인다) 네.
- 직원1
- 그래도 그렇지. 집 나와서 어쩌려고. 혹시 집에 안 좋은 일 있니?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엄마한테 연락이라도 드리자.
- 소녀
- 있잖아요. 내가 엄마 딸이 아니라, 내 성적이 엄마 딸 같아요. 엄마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등수를 사랑해요.
- 직원1
- (소녀를 달래려)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딨겠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겠지.
- 소녀
- 날 위해서요? 아닐 걸요. 엄만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 직원1
- 그래, 네 마음 이해해.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중학교 2학년이랬지? 너 그거 병 걸린 거다? 중2병. 그 나이 때는 모든 게 다 맘에 안 들고 세상하고 싸우고 싶고 그래. 근데 그거 다 한 순간이야. 집만큼 편한데도 없어. 그러니까 집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뭐래냐. 나도 꼰대 다 됐네.
- 소녀
- ......잃어버리고 싶었어요.
- 직원1
- 가방, 일부러 잃어버렸구나?
- 소녀
- 잃어버릴 것들을 더 찾는 중이에요.
- 직원1
- 얼씨구? 너도 보통 애는 아니구나. 그래, 뭘 그렇게 잃어버리고 싶은데?
- 소녀
- 골룸이요.
- 직원1
- 골룸은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반지 찾아 헤매는 괴물 아냐?
- 소녀
- 우리 학교 학생주임 선생님 별명이 골룸이에요. 대머린데 머리카락이 몇 가닥밖에 없고 배가 불룩 튀어나왔거든요.
- 직원1
- (웃는다) 야, 그거 웃기다. 나 때 학주 별명이 뭐였드라? 상또였다! 상또라이! 상또!
- 소녀
- 저희 학교가 여중이거든요? 애들 지나갈 때마다 화장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화장했다고 볼 꼬집고, 치마 줄였다고 다리 뚫어지게 쳐다보고. 완전 변태에요.
- 직원1
- 세월이 지나도 학주들은 모든 학생들의 미움을 받는군. 오케이 접수. (서류에 글을 적는다) 분실물 1호. 골룸. 평생 찾아가는 사람 없겠다.
- 소녀
- 전 남자친구랑 사귀었던 기억을 잃고 싶어요.
- 직원1
- 야, 너 그거 몇 안 되는 추억이다? 나중에 나이 들면 그때가 좋았지 할 걸?
- 소녀
- 그 새끼 내 단짝이었던 애랑 바람났거든요. 단짝도 추가해주세요. 아, 이미 잃어버려서 상관없겠다.
- 직원1
- 어머나. 요즘 중딩들 장난 아니네. 아, 난 찾고 싶다. 내 미래의 남편을! 그래, 또?
- 소녀
- 이 땅에 있는 모든 수학책을 잃어버리고 싶어요. 영어 문법책도요.
- 직원1
- 인정. 진즉에 잃었어야 했어 걔네는. 아니,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날 너무 고통스럽게 했거든.
- 소녀
- 그리고......엄마 잔소리도 잃어버리고 싶어요. 아빠 술주정도요.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소리도 잃 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진짜 짜증나요. 나한테 말 좀 걸지 말지. 또, 나 재수 없다고 왕따 시키는 애들도 잃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다신 찾지 못하게. 그런 거 있잖아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거. 흔적 없이 사라지는.
- 직원1
- 그래, 까짓 거! 오늘은 다 잃어버리자. 다 갖고 있는 것보다 잃어 버려서 잊어버리는 게 마음 편할 때가 있으니.
- 소녀
- 가방, 뺏겼어요. 걔네한테. 뺏겼다고 하면 엄마한테 더 혼날까봐.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했어요.
- 소녀
- 어제는 피우던 담배를 제 입에 물리더라고요. 목구멍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사이) 아마 걔네 내 가방 태웠을 거예요. 집도 가기 싫고 학교도 가기 싫어요. 근데 그냥 여기 와서 잃어버릴 것들 생각하면 그래도 좀 괜찮아져서...... 그래서......
- 직원1
- 괜찮아. 맘껏 울어. 다 잃어버리자.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다시 찾지 못하게. 다 잃어버려, 잃어버리자. 좋은 것만 갖고 가자. 그렇게 하자.
- 직원2
- 자기야 미안해. 몇 년 만에 동창이 전화가 와서. 한창 수다 떠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여 퇴근해.
- 직원1
- 네. 이것만 정리하고 갈게요.
- 직원2
- 참, 아까 걔는? 찾았어?
- 직원1
- 아뇨. (사이) 잃어버리고 갔어요.
정리를 마친 직원2, 카운터 쪽으로 나온다.
직원1 , 직원 2의 팔을 잡는다.
직원2, 배를 잡고 빠른 걸음으로 퇴장한다. 직원1, 수납장에 가서 빨간색 가방을 찾아 가지고 나온다.
소녀, 고개를 들어 직원1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본다. 고개를 흔드는 소녀. 이내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직원1, 가방을 다시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작성 하던 서류를 마저 작성하기 시작한다.
직원1,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든다.
직원1, 소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휴대폰을 주머니에 도로 넣는다.
직원1, 다시 서류를 작성하면 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직원1, 소녀의 말을 계속 받아 적다가 멈춘다. 소녀, 울음을 참으려 허벅지를 꼬집으며 말한다.
직원1, 소녀에게 다가가 허벅지를 꼬집던 소녀의 손을 잡는다. 소녀, 직원1의 어깨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린다.
소녀의 울음소리 계속된다.
암전.
조명 켜지면, 소녀는 없고 직원1이 분실물들을 정리 중이다. 직원2, 유실물센터 안으로 온다.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