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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타임

조유정
123호 2017.09.07
장소서울의 어느 동네의 옥탑무대허름한 옥탑방 앞에는 평상이 놓여있고 그 주위로 빨래 줄이 쳐져있다.종호가 멀끔한 양복차림으로 서류가방을 들고 옥탑에 올라온다.종호 : (옥탑방 안을 향해) 저기요. 안에 계세요? 저기요?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종호는 두리번거리며 옥탑방에 들어간다.잠시 후 슬리퍼...

인물
남자 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
여자 20대. 취업 준비생.

무대
편의점 안. 관객석을 창밖으로 가정하고 인물들은 관객석을 마주 보고 앉는다. 푸른색의 가로로 긴 일자 테이블 위에는 나무젓가락이 들어있는 수저통과 휴지곽이 놓여 있다. 남자, 혼자 앉아있고 그 앞 테이블 위에는 짜파게티가 놓여 있다. 무대 오른편에서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맨 여자가 손에 컵라면을 들고 등장한다.
앞만 바라보던 남자,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자를 확인하고는 꾸벅 인사한다. 여자도 물이 든 컵라면을 손에 든 채 꾸벅 인사하고 남자의 옆자리에 앉는다. 여자는 앉자마자 책가방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두 사람,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린다.

여자
(남자에게 사이다 하나를 건네며) 드세요.
남자
(사이다를 받으며) 어, 괜찮은데….
여자
원 플러스 원 행사 하더라구요.
남자
아, 감사합니다.
여자
오늘도 짜파게티네요.
남자
네. 저 이것만 먹잖아요.
여자
전 오늘 좀 고민했는데, 그냥 새우탕 골랐어요.
남자
저번 주 화요일인가에도 새우탕 드시지 않았어요?
여자
네. 그때도 신라면이랑 고민하다가 새우탕 골랐었죠.
남자
왜요?
여자
해물이 땡겨서요.
남자
그럴 때가 있죠.
여자
새우탕이랑 신라면 둘 다 천오십 원이라서 해물라면 먹고 싶으면 새우탕 먹어요.
남자
짜파게티도 천오십 원인데.
여자
그리고 싼 거 먹고 싶을 때는 진라면 먹어요. 진라면이 오십 원 싸거든요.
남자
그건 또 몰랐네요. 매일 짜파게티만 먹어서.
여자
새우탕도 맛있어요. 한 젓가락 드릴까요?
남자
아니요. 저는 해물 별로 안 좋아해서.
여자
왜요?
남자
그냥 그런 해물같이 비싼 음식은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여자
비싼 음식이니까 먹어야죠. 뭘 모르시네. 짜파게티랑 가격도 똑같은데.
남자
그래도 해물라면이잖아요. 해물 들어가면 고급음식이죠.
여자
나중에 새우탕 한 번 도전해보세요. 면 위에 새우 하나 올려서 씹고 국물까지 마시면… 진짜 맛있어요. 맛은 보장해요.
남자
나중에 도전해볼게요. 나중에요.
여자
나중에 언제요?
남자
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쯤엔 비싼 음식도 입에 맞겠죠.
여자
(웃으며) 그땐 새우탕이 아니라 랍스타를 먹어야죠.
남자
그럼 랍스타 먹기 전에 새우탕 먼저 도전해볼게요.

사이.

여자
근데 왜 짜파게티만 드세요?
남자
저는 이 시간에 짜파게티 말고 다른 거 먹으면 배탈 나요.
여자
어머, 정말요?
남자
네.
여자
왜요?
남자
모르죠.
여자
신기하네. 짜파게티만 먹어서 몸이 다른 음식을 거부하나?
남자
근데 그쪽이야말로 다른 건 안 드세요? 뭐 김밥도 있고, 샌드위치도 있고, 도시락도 있잖아요. 여차하면 빵도 있고.
여자
컵라면 먹으면 라면 익는 3분 동안은 아무것도 안할 수 있잖아요.
남자
아.
여자
밥 먹을 때만큼은 단어 안 외우고 싶거든요.
남자
그렇죠.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데에 집중해야죠.
여자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학원 올 때, 집 갈 때, 화장실 갈 때, 자기 직전에, 심지어는 머리 말릴 때까지 단어 외우잖아요. 밥 먹을 때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그냥, 아무 것도 안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진짜 다른 시간을 빼서 아무 것도 안하면 마음만 불편하고. 그러니까 밥 먹는 시간 중에 라면 익는 3분간을 아무 것도 안하는 데에 쓰는 거죠. 지금처럼요.

남자,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이.

남자
다니고 있는 학원 어때요? 괜찮아요?
여자
다 거기서 거기죠 뭐. 저 강남, 종로, 신촌에 있는 토익학원 죄다 다녀봤는데 진짜 다 거기서 거기에요. 가르쳐주는 스킬도 거의 다 똑같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다 똑같고. 그래서 지금은 그냥 여기서 다녀요. 여기 원어민 선생님이 잘생겼거든요. 눈이라도 즐거워야죠.
남자
(고개를 끄덕이며) 아.
여자
휴학하고 요 앞에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신다고 하셨죠?
남자
네.
여자
학원에 친구는 따로 없어요?
남자
학원에서 그런 거 못 만들게 해요. 그래서 출석부를 때도 이름 안 부르고 번호로 불러요. 서로 이름도 알지 말라고.
여자
세상에. 너무 삭막하다.
남자
그래서 학원 사람들끼리 절대 안면 트고 못 지내죠.
여자
뭐 어쩌겠어요. 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붙어서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요.
남자
그렇죠.

남자,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는 라면 위에 올려둔 젓가락을 들고 뚜껑을 열어 라면을 휘휘 젓는다. 여자, 그런 남자를 보고는 자기도 슬쩍 뚜껑을 열어 안을 본다. 라면이 덜 익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뚜껑을 덮는다. 남자는 짜파게티 스프 포장을 뜯어 컵라면 용기 안에 내용물을 털어 넣는다. 조금이라도 남는 게 없도록 탈탈 털어 넣는다. 젓가락으로 짜파게티를 비빈다.

남자
라면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아무튼 어렸을 때요. 엄마가 늦게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주고 급하게 나가셨어요.
여자
네.
남자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뒤척이다가 고작 10분 더 자고, 학교는 가야하니까 일어났죠. 근데 라면이 다 불어터져 있는 거예요.
여자
(고개 끄덕이며) 그렇겠죠. 10분이나 그대로 있었으면.
남자
먹긴 먹어야 하니까 한두 젓가락 먹었는데 진짜 너무 먹기가 싫었어요. 남기면 엄마가 아침 안 먹고 갔다고 혼낼 게 분명 했고. 그래서 그냥 변기에 넣고 물 내려서 버려버렸어요.
여자
(여자, 뚜껑 안을 확인하며) 아까워라.
남자
저는 지금까지도 그게 가끔 생각나요. 서울에서 자취하고, 학원비에 생활비 손 벌리는 지금보다 그때 그 일이 제가 엄마한테 저지른 가장 큰 불효처럼 느껴져요.
여자
(라면이 익은 걸 확인하고 뚜껑을 아예 열어 젓가락으로 라면을 저으며) 에이. 이번에 시험 합격해서 효도하면 되죠.
남자
그렇겠죠? (라면 한입 먹고는) 취업준비 때문에 토익학원 다니는 거죠?
여자
(라면을 입에 넣다 말고 남자를 보며)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요? 여기에 취업 하려고 스펙 쌓는 거 말고 다른 거 때문에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남자
아. 역시 그렇죠. 그럼 지금 목표는 일단 취업하기?
여자
목표요? 전 지금 목표도, 미래의 목표도 정규직이에요.
남자
정규직이요? 어느 기업 생각하고 계신데요?
여자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무조건 정규직이요. 어디든 정규직이기만 하면 돼요.
남자
아.
여자
제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었어요.

남자, 할 말이 없는지 다시 짜파게티를 먹고, 여자도 계속 라면을 먹는다.

여자
혹시 불닭볶음면 먹어봤어요?
남자
네. 전 근데 그거 너무 매워서.
여자
저도 요즘은 매워서 속 다칠까봐 안 먹는데 저 고삼 때 제일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야자 끝 나고 야식으로 거의 매일 먹었거든요.
남자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요.
여자
아무래도 그랬나 봐요.
남자
전 그거 맵기도 하고 비싸서 안 먹어요.
여자
아, 비싼 편이죠. 천삼백 원이었나?
남자
천사백 원이요. 짜파게티 옆에 있어서 알아요.
여자
비싸네요. 저도 안 사먹은 지 꽤 돼서.

남자, 짜파게티를 먹고 여자도 새우탕을 먹는다. 무대에는 후루룩 하는 라면 먹는 소리만 들린다.

여자
역시 새우탕 맛있네요.
남자
그래요?
여자
짜파게티 안 질려요?
남자
질려도 어떡하겠어요. 배탈 안 나려면 이거 먹어야죠.
여자
가끔은 사치 부려서 짜파게티 말고 다른 짜장라면도 먹어봐요. 짜왕이나 그런 거.
남자
그거 좋네요. 짜왕이면 배탈 안 날수도 있고. 다음엔 짜왕 먹어봐야겠어요.
여자
근데 짜왕 천오백원이에요.
남자
아. 비싸긴 하네요.
여자
비싸니까 사치죠.

남자, 컵라면을 들고 코를 박고 남은 라면을 다 긁어 싹싹 비운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빈 컵라면 용기를 툭 올려놓곤 여자를 쳐다본다.

남자
저… 다 먹었는데.
여자
아. 먼저 가세요. 저는 국물이 조금 남아서. 버리기는 좀 아깝네요.
남자
아, 네.

남자, 먼저 일어나 책가방을 매고 포장지와 다 쓴 젓가락 등을 빈 컵라면 용기에 담아 들고는 여자에게 인사한다.

여자
그럼 전 이만.
남자
네, 내일도 이 시간에 뵐게요.

남자가 먼저 무대 밖으로 나가면 여자는 그런 남자를 잠깐 보다가 이내 다시 컵라면 국물을 마신다. 무대에 국물 마시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막.

호들갑 작가소개
아직 무서운 게 많은 스물 한 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쳐보고 싶어졌습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