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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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남자 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
여자 20대. 취업 준비생.
무대
편의점 안. 관객석을 창밖으로 가정하고 인물들은 관객석을 마주 보고 앉는다. 푸른색의 가로로 긴 일자 테이블 위에는 나무젓가락이 들어있는 수저통과 휴지곽이 놓여 있다. 남자, 혼자 앉아있고 그 앞 테이블 위에는 짜파게티가 놓여 있다. 무대 오른편에서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맨 여자가 손에 컵라면을 들고 등장한다.
앞만 바라보던 남자,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자를 확인하고는 꾸벅 인사한다. 여자도 물이 든 컵라면을 손에 든 채 꾸벅 인사하고 남자의 옆자리에 앉는다. 여자는 앉자마자 책가방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두 사람,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린다.
- 여자
- (남자에게 사이다 하나를 건네며) 드세요.
- 남자
- (사이다를 받으며) 어, 괜찮은데….
- 여자
- 원 플러스 원 행사 하더라구요.
- 남자
- 아, 감사합니다.
- 여자
- 오늘도 짜파게티네요.
- 남자
- 네. 저 이것만 먹잖아요.
- 여자
- 전 오늘 좀 고민했는데, 그냥 새우탕 골랐어요.
- 남자
- 저번 주 화요일인가에도 새우탕 드시지 않았어요?
- 여자
- 네. 그때도 신라면이랑 고민하다가 새우탕 골랐었죠.
- 남자
- 왜요?
- 여자
- 해물이 땡겨서요.
- 남자
- 그럴 때가 있죠.
- 여자
- 새우탕이랑 신라면 둘 다 천오십 원이라서 해물라면 먹고 싶으면 새우탕 먹어요.
- 남자
- 짜파게티도 천오십 원인데.
- 여자
- 그리고 싼 거 먹고 싶을 때는 진라면 먹어요. 진라면이 오십 원 싸거든요.
- 남자
- 그건 또 몰랐네요. 매일 짜파게티만 먹어서.
- 여자
- 새우탕도 맛있어요. 한 젓가락 드릴까요?
- 남자
- 아니요. 저는 해물 별로 안 좋아해서.
- 여자
- 왜요?
- 남자
- 그냥 그런 해물같이 비싼 음식은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 여자
- 비싼 음식이니까 먹어야죠. 뭘 모르시네. 짜파게티랑 가격도 똑같은데.
- 남자
- 그래도 해물라면이잖아요. 해물 들어가면 고급음식이죠.
- 여자
- 나중에 새우탕 한 번 도전해보세요. 면 위에 새우 하나 올려서 씹고 국물까지 마시면… 진짜 맛있어요. 맛은 보장해요.
- 남자
- 나중에 도전해볼게요. 나중에요.
- 여자
- 나중에 언제요?
- 남자
- 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쯤엔 비싼 음식도 입에 맞겠죠.
- 여자
- (웃으며) 그땐 새우탕이 아니라 랍스타를 먹어야죠.
- 남자
- 그럼 랍스타 먹기 전에 새우탕 먼저 도전해볼게요.
- 여자
- 근데 왜 짜파게티만 드세요?
- 남자
- 저는 이 시간에 짜파게티 말고 다른 거 먹으면 배탈 나요.
- 여자
- 어머, 정말요?
- 남자
- 네.
- 여자
- 왜요?
- 남자
- 모르죠.
- 여자
- 신기하네. 짜파게티만 먹어서 몸이 다른 음식을 거부하나?
- 남자
- 근데 그쪽이야말로 다른 건 안 드세요? 뭐 김밥도 있고, 샌드위치도 있고, 도시락도 있잖아요. 여차하면 빵도 있고.
- 여자
- 컵라면 먹으면 라면 익는 3분 동안은 아무것도 안할 수 있잖아요.
- 남자
- 아.
- 여자
- 밥 먹을 때만큼은 단어 안 외우고 싶거든요.
- 남자
- 그렇죠.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데에 집중해야죠.
- 여자
-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학원 올 때, 집 갈 때, 화장실 갈 때, 자기 직전에, 심지어는 머리 말릴 때까지 단어 외우잖아요. 밥 먹을 때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그냥, 아무 것도 안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진짜 다른 시간을 빼서 아무 것도 안하면 마음만 불편하고. 그러니까 밥 먹는 시간 중에 라면 익는 3분간을 아무 것도 안하는 데에 쓰는 거죠. 지금처럼요.
- 남자
- 다니고 있는 학원 어때요? 괜찮아요?
- 여자
- 다 거기서 거기죠 뭐. 저 강남, 종로, 신촌에 있는 토익학원 죄다 다녀봤는데 진짜 다 거기서 거기에요. 가르쳐주는 스킬도 거의 다 똑같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다 똑같고. 그래서 지금은 그냥 여기서 다녀요. 여기 원어민 선생님이 잘생겼거든요. 눈이라도 즐거워야죠.
- 남자
- (고개를 끄덕이며) 아.
- 여자
- 휴학하고 요 앞에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신다고 하셨죠?
- 남자
- 네.
- 여자
- 학원에 친구는 따로 없어요?
- 남자
- 학원에서 그런 거 못 만들게 해요. 그래서 출석부를 때도 이름 안 부르고 번호로 불러요. 서로 이름도 알지 말라고.
- 여자
- 세상에. 너무 삭막하다.
- 남자
- 그래서 학원 사람들끼리 절대 안면 트고 못 지내죠.
- 여자
- 뭐 어쩌겠어요. 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붙어서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요.
- 남자
- 그렇죠.
- 남자
- 라면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아무튼 어렸을 때요. 엄마가 늦게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주고 급하게 나가셨어요.
- 여자
- 네.
- 남자
-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뒤척이다가 고작 10분 더 자고, 학교는 가야하니까 일어났죠. 근데 라면이 다 불어터져 있는 거예요.
- 여자
- (고개 끄덕이며) 그렇겠죠. 10분이나 그대로 있었으면.
- 남자
- 먹긴 먹어야 하니까 한두 젓가락 먹었는데 진짜 너무 먹기가 싫었어요. 남기면 엄마가 아침 안 먹고 갔다고 혼낼 게 분명 했고. 그래서 그냥 변기에 넣고 물 내려서 버려버렸어요.
- 여자
- (여자, 뚜껑 안을 확인하며) 아까워라.
- 남자
- 저는 지금까지도 그게 가끔 생각나요. 서울에서 자취하고, 학원비에 생활비 손 벌리는 지금보다 그때 그 일이 제가 엄마한테 저지른 가장 큰 불효처럼 느껴져요.
- 여자
- (라면이 익은 걸 확인하고 뚜껑을 아예 열어 젓가락으로 라면을 저으며) 에이. 이번에 시험 합격해서 효도하면 되죠.
- 남자
- 그렇겠죠? (라면 한입 먹고는) 취업준비 때문에 토익학원 다니는 거죠?
- 여자
- (라면을 입에 넣다 말고 남자를 보며)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요? 여기에 취업 하려고 스펙 쌓는 거 말고 다른 거 때문에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 남자
- 아. 역시 그렇죠. 그럼 지금 목표는 일단 취업하기?
- 여자
- 목표요? 전 지금 목표도, 미래의 목표도 정규직이에요.
- 남자
- 정규직이요? 어느 기업 생각하고 계신데요?
- 여자
-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무조건 정규직이요. 어디든 정규직이기만 하면 돼요.
- 남자
- 아.
- 여자
- 제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었어요.
- 여자
- 혹시 불닭볶음면 먹어봤어요?
- 남자
- 네. 전 근데 그거 너무 매워서.
- 여자
- 저도 요즘은 매워서 속 다칠까봐 안 먹는데 저 고삼 때 제일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야자 끝 나고 야식으로 거의 매일 먹었거든요.
- 남자
-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요.
- 여자
- 아무래도 그랬나 봐요.
- 남자
- 전 그거 맵기도 하고 비싸서 안 먹어요.
- 여자
- 아, 비싼 편이죠. 천삼백 원이었나?
- 남자
- 천사백 원이요. 짜파게티 옆에 있어서 알아요.
- 여자
- 비싸네요. 저도 안 사먹은 지 꽤 돼서.
- 여자
- 역시 새우탕 맛있네요.
- 남자
- 그래요?
- 여자
- 짜파게티 안 질려요?
- 남자
- 질려도 어떡하겠어요. 배탈 안 나려면 이거 먹어야죠.
- 여자
- 가끔은 사치 부려서 짜파게티 말고 다른 짜장라면도 먹어봐요. 짜왕이나 그런 거.
- 남자
- 그거 좋네요. 짜왕이면 배탈 안 날수도 있고. 다음엔 짜왕 먹어봐야겠어요.
- 여자
- 근데 짜왕 천오백원이에요.
- 남자
- 아. 비싸긴 하네요.
- 여자
- 비싸니까 사치죠.
- 남자
- 저… 다 먹었는데.
- 여자
- 아. 먼저 가세요. 저는 국물이 조금 남아서. 버리기는 좀 아깝네요.
- 남자
- 아, 네.
- 여자
- 그럼 전 이만.
- 남자
- 네, 내일도 이 시간에 뵐게요.
사이.
남자,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이.
남자,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는 라면 위에 올려둔 젓가락을 들고 뚜껑을 열어 라면을 휘휘 젓는다. 여자, 그런 남자를 보고는 자기도 슬쩍 뚜껑을 열어 안을 본다. 라면이 덜 익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뚜껑을 덮는다. 남자는 짜파게티 스프 포장을 뜯어 컵라면 용기 안에 내용물을 털어 넣는다. 조금이라도 남는 게 없도록 탈탈 털어 넣는다. 젓가락으로 짜파게티를 비빈다.
남자, 할 말이 없는지 다시 짜파게티를 먹고, 여자도 계속 라면을 먹는다.
남자, 짜파게티를 먹고 여자도 새우탕을 먹는다. 무대에는 후루룩 하는 라면 먹는 소리만 들린다.
남자, 컵라면을 들고 코를 박고 남은 라면을 다 긁어 싹싹 비운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빈 컵라면 용기를 툭 올려놓곤 여자를 쳐다본다.
남자, 먼저 일어나 책가방을 매고 포장지와 다 쓴 젓가락 등을 빈 컵라면 용기에 담아 들고는 여자에게 인사한다.
남자가 먼저 무대 밖으로 나가면 여자는 그런 남자를 잠깐 보다가 이내 다시 컵라면 국물을 마신다. 무대에 국물 마시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아직 무서운 게 많은 스물 한 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쳐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