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찾기
유승민
126호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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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영희: 35세 폭주족장우: 31세 백수 유실물 센터 담당자고통 어느 외딴 곳의 유실물 보관소. 블라인드 너머에 고통이 앉아있다. 언뜻 보면 앉아있는 사람 실루엣이다. 유실물 센터 담당자는 블라인드 앞에 앉아서 리스트를 확인하고 있다. 이상한 낌새를 챈 담당자가 전화기 앞으로 간다. 담당자 : 안녕하세요, ...
등장인물
영희: 35세 폭주족
장우: 31세 백수
유실물 센터 담당자
고통
어느 외딴 곳의 유실물 보관소. 블라인드 너머에 고통이 앉아있다. 언뜻 보면 앉아있는 사람 실루엣이다. 유실물 센터 담당자는 블라인드 앞에 앉아서 리스트를 확인하고 있다. 이상한 낌새를 챈 담당자가 전화기 앞으로 간다.
- 담당자
- 안녕하세요, 여기 유실물 센터입니다. 아, 네 선생님께서 신고하신 물품을 찾은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게… 확실하지는 않고요. 오셔서 확인을 하셔야 될 것 같아서. 워낙 비슷하게 생긴 물건들이 많이 들어와서요. 요즘 때가 때인 만큼 다들 정신이 다른 데로 팔려있나 봅니다. 아, 선생님이 정신없다는 소리가 아니고요. 네, 그럼 편하실 때 오세요.
- 영희
- 허, 또 괜한 발걸음 했네.
- 담당자
- 잃어버리신 물건이 아닌가요?
- 영희
- 전에 말했잖아요. 내가 찾는 건 좀 더 거칠고 멋있는 거라고.
- 담당자
- 선생님의 번쩍거리는 오토바이처럼?
- 영희
- 그렇지. 물론 번쩍거리기만 한 건 아니고. 참혹하기도 해요. 시속 150으로 달리던 오토바이가 화물차에 들이 받은 것처럼. 쿵! 모든 게 부서졌던 때가 있었어요. 진짜 처참했지. (블라인드를 바라본다.) 근데 저것 봐. 너무 멀쩡하잖아. 그냥 찌질 하게 울고 있을 뿐이라고. 저건 내가 아니… 아니, 저건 내가 찾고 있던 게 아니에요. 화물 트럭 뒷바퀴에 말려 들어가면 사지가 멀쩡할 리 없잖아.
- 담당자
- 아, 그렇군요. 혹시라도 뭉개지거나 조각난 물건이라도 발견한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담당자
- 다른 용무가 있으신가요?
- 담당자
- 좀 더 크게 말씀해주세요.
- 장우
- 그러니까… 감사해서 사례나 하고 싶은데… 마땅히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정말… 귀한 물건이었거든요. 취직을 하거나 돈을 벌려면 꼭 필요한 물건이라.
- 담당자
- 아, 사례는 안하셔도 됩니다. 소중한 물건 찾으셔서 다행이네요.
- 장우
- 소중하기보단 필요해서요.
- 영희
- 참 특이한 사람이네.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 처음 봐요. 난 지금까지 수십 번을 버렸거든. 근데 찾길 원하지 않았는데도 찾아져. 그 물건이 나를 찾아다닌 게 아닐까 싶다니까. 난 유실물 센터에 신고하지도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계속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신고하신 거 찾았다고. 그때마다 난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와 있어.
- 장우
- 개인차겠죠. 난 이게…… 살기 위해서 필요해요.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놈이라는 꼬리표는… 늘 내게 기회를 줬으니까요. 조금만 투정부리지 않으면… 힘들다는 내색 하지 않고 열심히 개처럼 일하면…… 사람들은 내게 동정과 칭찬을 보내줬어요. 그만 가봐야겠네요.
- 장우
- 왜 이러는 거지……. 나와… 나오라니까… 가야 돼, 시간이 없어! 이런 씨…….
- 담당자
- 저기요, 이 물건 당신 꺼 아니죠?
- 담당자
-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녜요. 뭐, 본인 물건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보실래요?
- 영희
- 아니에요. 아까 아닌 거 확인했잖아요. 내 꺼 아니에요.
- 담당자
- 언제까지 오셨다가 그냥 가실 겁니까?
- 영희
- 찾을 때 까지요.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거 내 꺼 아니라니까.
- 담당자
- 마음의 준비가 덜 됐어요?
- 영희
- 내 물건은 저렇게 조그맣고 멀쩡한 게 아니라니까요.
- 담당자
- 왜 아무도 내 업무는 생각 안 해주는 거지? 당신네들 때문에 자꾸 이 더러운 물건이랑 마주보면서 일해야 되잖아. 왜 아무도 나를 배려해주지 않느냔 말이야! 난 너무… 너무…….
- 영희
- 너무 흥분하셨어요. 제 꺼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다신 전화하지 마세요. 찾으러 오지 않을 거니까. 아마 내 물건은 이미 사고 났을 때 다 부서졌을 거예요.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아. 전 갈게요. 이 물건, 주인 없으면 그냥 버리세요. 가지고 있을 필요 없어요. 그렇게 바라보는 것도 힘드시다면야.
- 담당자
- 정말…… 끔찍해.
고통이 흐느끼며 신음한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정확히 분간할 수 없다. 고통은 어깨를 들썩거리거나 다리를 떨기도 한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영희가 들어온다.
영희,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고통은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이어 머리를 빡빡 밀은 장우가 등장한다. 장우, 블라인드를 더듬어보다가 담당자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하지만 담당자는 잘 듣지 못한다.
장우, 블라인드 안으로 들어가 고통을 끌고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고통은 힘껏 저항한다. 고통은 장우를 밀쳐내기도 하고, 악을 쓰기도 한다.
담당자, 장우에게로 다가간다.
뒷걸음치는 장우. 이내 밖으로 뛰쳐나간다. 영희는 놀란 마음에 오토바이 헬멧을 벗는다.
영희, 퇴장한다. 담당자는 앉아서 숨을 돌린다. 그가 뚫어져라 응시하는 블라인드 뒤에서 고통이 한 발자국씩 천천히 걸어 나온다.
- 호들갑 작가소개
- 새벽에 태어나 눈이 어둡습니다.
멀리 보고 밝은 곳을 따라가며 더 예민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