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소개팅
서동민
128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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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남자: 26, 낙천적이고 순박함. 여자: 27, 당차고 카리스마 있음.(조명 온. 늦은 오후, 소개팅을 위해 서로 마주보고 앉은 두 남녀.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있다. 나름대로 깔끔하게 입고 나온 두 남녀. 식탁엔 물이 담긴 와인 잔과 포크, 숟가락이 놓여 있다. 배경과 이외 소...
등장인물
남자: 26, 낙천적이고 순박함.
여자: 27, 당차고 카리스마 있음.
(조명 온. 늦은 오후, 소개팅을 위해 서로 마주보고 앉은 두 남녀.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있다. 나름대로 깔끔하게 입고 나온 두 남녀. 식탁엔 물이 담긴 와인 잔과 포크, 숟가락이 놓여 있다. 배경과 이외 소품은 생략. 조용히 극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에서 공연되어도 무방하다.)
(남자 비장하게 자신의 물과 여자의 물에 빨간 병에 담긴 액체를 던다. 둘은 건배를 하고 비장하게 약을 탄 물을 한 모금 마신다.)
- 여자
- 안녕하세요. 김진희입니다.
- 남자
- 안녕하세요. 박상구입니다.
- 여자
- 찐따같아. (놀라 입을 막는다.)
- 남자
- 뭐라고?
- 여자
-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사실, 찐따 같아. 그러니까 음, 이름이요! 그 솔직히 이름이 친숙하고 토속적이니까.. 그게 제가 찐따 같다고 생각해버렸네요. 오해하지 마세요.
- 남자
- 하, 하. 음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 뭐, 속마음이라는 게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저 그나저나 약효가 대단하네요. 10분 동안 나눠 마신 상대의 속마음을 말하듯 들을 수 있다니. 하하,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악담을 하시겠어요, 이런 미인께서.
- 여자
- 하하, 그러게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소개팅답게 과격한 시작이네요. 찐따 새끼. 삐졌네.
- 남자
- 응, 아닌데? (입을 때리며) 아니 왜 반말을!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도 별로 안 예뻐.
- 여자
- 네? 뭐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 남자
- 저도 죄송합니다. 본심은 아닌데, 그러니까 사실이게 본심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 여자
- 하하. 이해해요. 제가 막 김태희 같은 미인은 아니죠? 하하. 음. 저 다른 얘기 할까요? 아 집에 가고 싶다.
- 남자
- 네, 좋아요. 저도 집에 가고, 아 그게 아니라. 음, 진희씨는 그러면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태희보다 많이 못생긴 진희씨?
- 여자
- (이를 악물고) 한 번만 더 지껄여라. 물부터 뿌리고 시작한다.
- 여자
- 아, 하하하. 그러니까 음, 저는 상대방에게 예의 갖추고, 성격 서글서글한 분이요. 그리고 잘 생기고, 잘 버는 건 필요 없고 일단 좀생이처럼 김밥 한줄 살 때도 생색내는 놈은 별로고. 잘 하든, 크든, 둘 중에 하나는 해당돼야지.
- 남자
- 아, 네. 잘 버는 것보단, 네 크다고요? (거만하게) 촤, 이 여자가 또 내 얘기 하네.
- 여자
- 아, 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제 본심은, 네가 큰지 어떻게 알아?
- 남자
- 전, 전에 만난 여자들이 다 크댔어.
- 여자
- 그걸 믿냐?
- 남자
- 니, 니가 봤어? 나 작은 거, 아니 큰 거 봤어?
- 여자
- 얼마만한데?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이만해?
- 남자
- 아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음 이 본심이, 참. 이런 장난꾸러기 본심 같으니라고.
- 여자
- 아하하, 음 네. 생각보다 제가 참 원하는 게 확실했네요. 저도 몰랐어요. 아 그럼 그 빙구씨? 아니 상구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 남자
- 아 저는 솔직히 외모도 많이 보고요 네 그렇습니다. (정적)
- 여자
- 어우, 진심이신가 봐요.
- 남자
- 네, 뭐 그렇죠. 뭐 가슴 뭐 크고. 낮져밤이? 크흠 죄송합니다. 그리고 가볍게 볼 수 있고.
- 여자
- 그지, 결혼할 상대 만나기 전에.
- 남자
- 가볍게 연애도 해보고 싶으니까.
- 여자
- 그건 통하네. 그리고 난 낮이밤이야.
- 남자
- 하읏. 절 가지세요.
- 여자
- 형제는?
- 남자
- 위에 형 있고, 내가 둘째야.
- 여자
- 완벽하네.
- 남자
- 서울이 고향인 거?
- 여자
- 응. 누나 자취해. 룸메 없어.
- 남자
- 아싸.
- 여자
- 취미는?
- 남자
- 게임해.
- 여자
- 현질해?
- 남자
- 쪼.. 쪼금?
- 여자
- 분수에 맞는 정도만 해라.
- 남자
- 네, 알겠습니다. 누, 누난 쉴 때 뭐해?
- 여자
- 그냥 자.
- 남자
- 특별한 건?
- 여자
- 그냥 잔다고.
- 남자
- 베이킹이나, 독서나.
- 여자
- 잔다고!
- 남자
- 아, 네, 응. 잠이 최고지.
- 여자
- 특별히 잘하는 건?
- 남자
- 음. 착해.
- 여자
- 그게 끝?
- 남자
- 응.
- 여자
- 으휴 빙구.
- 남자
- 헤헤. 누나는 뭐 잘해?
- 여자
- 난 착하지도 않아. (웃음)
- 남자
- 안 착한 게 좋아.
- 여자
- 응?
- 남자
- 그러니까 막 거칠고, 막 명령하고,
- 여자
- 미친놈. (웃음)
- 남자
- 응 알아.
- 여자
- 헐, 10분 다 됐나봐? 아니, 다 된 것 같아요. (정적) 솔직히 서로 가볍게 만날 수 있다는 거 좋은 것 같아요. 무언가 너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긴 불안한 마음 있잖아요. 이제 매 순간 누군가의 본심을 의심하며 걱정하는 일에 지쳤어요. 아마 저 스스로도 불안해서였겠죠. 그렇게 스스로의 미래도 잘 모르겠고, 상대의 마음에 따라 내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도 전혀 다른 것으로 순간순간 바뀌고. 그렇게 반복되다보니, 어쩌면 저에게 필요한건 적당히 안정적인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마치 정답을 알고 푸는 시험지처럼 새로울 것 없이 안정적인 관계.
- 남자
- 저, 저도 좋아요. 약기운 때문에 하는 말 아니에요. 처음엔 반신반의하면서 나왔는데, 진희씨랑 있던 시간 내내 즐거웠어요. 약 때문이 아니에요. 진희씨처럼 당돌한 사람 좋아요. 그러니까 진희씨의 속마음도 결국 진희씨인 거잖아요. 그리고 티격태격 하긴 했지만, 우리 적어도 서로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 하진 않았잖아요. 우린 통해요. 적당히 속물적이고, 또 지쳤고, 그렇지만 여전히 새로운 관계를 원하는 거잖아요. 독특하지만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진심과 효율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가요? 우린 빠르게 속마음을 나눴고, 이제 앞으로의 일들이 남아 있을 뿐이에요.
- 여자
- 아니요. 진심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그 진심을 말하기로 선택했는가의 문제는 달라요. 적어도 시작이란 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속에 담겨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 상구씨와 함께한 시간 즐거웠습니다.
- 남자
- (큰 소리로) 꼭 약 때문만이 아니라니까! 진희씨 마음에 들어요! 저 밤에 이기는 여자 좋아해요! 저 솔직히 큰 건지 작은 건지 모르겠어요! 진희씨 김태희보다는 못생겼어요!
- 여자
- 제가 한 번만 더 못생겼다 운운하면 물 맞는다 그랬죠? 상구씨, 아니 빙구야. 앞으로 날 알아가려면 고생 좀 하거야. 난 약을 마시는 시늉만 했거든. 내가 그만큼 당돌하고 또 낭만을 따지는 여자잖니. 어서 짐 챙겨. 술 마시면서 진짜 얘기 좀 해보자. (쿨하게 퇴장)
- 남자
- (놀랐다가 이내 화색) 네, 네 누나!
(남자 조용히 물잔을 옆으로 치운다.)
(정적)
(남자 중지부터 손바닥 끝까지를 표시하며 들이밀다 정신 차리고 그만둔다. 민망한 분위기.)
(정적. 이내 두 남녀가 기분 좋게 웃는다.)
(이때부터 더 빠르게 툭툭 치고받는 대화)
(두 남녀 웃음. ‘삐’ 소리가 들린다. 둘은 정신을 차리고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여자 옷과 가방을 챙겨 나간다. 남자 벌떡 일어난다.)
(퇴장하려던 여자 돌아본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는다.)
(남자까지 황급히 여자가 퇴장한 방향으로 퇴장한다. 암전.)
- 호들갑 작가소개
- 91년생 서동민입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정말 많은 재미를 느꼈어요. 한 편으로는 젠더 이슈들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연극도 젠더에 관한 공부도 쭉 하고 싶고, 이 둘을 함께 다루는 작업들을 해보면 어떨까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서로의 고민을 함께 공유한다면 더 멋진 작업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저에게 내밀어 주시는 관심의 손길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힘찬 하루 보내세요.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