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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것

성재현
129호 2017.12.07
성재현_itiseasy@daum.net등장인물여자 (젊은 나이)무대조명이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의자를 비춘다. 그 불빛은 독백을 하는 배우가 으레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닮기도 했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취조실을 떠오르게도 만든다. 무대의 뒤편, 의자와 마찬가지로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물품보관함(코인락...

등장인물
여자 (젊은 나이)

무대
조명이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의자를 비춘다. 그 불빛은 독백을 하는 배우가 으레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닮기도 했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취조실을 떠오르게도 만든다. 무대의 뒤편, 의자와 마찬가지로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물품보관함(코인락커).

여자, 의자에 앉아있다.
여자는 무서운 침묵 속에 놓여 가만히 주변을 관찰한다.

여자
터졌어요?

다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누군가에게 재빨리 속삭이는 여자.

여자
터졌어요?

사이.

여자
(의아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폭탄이요. 폭탄. 내가 그곳에 두고 온.

여자, 이 상황이 답답하다.

여자
“2018년 1월 18일. 7호선 논현역 9번 출구 쪽에 놓여 있는 이십이 번 코인 락커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전화 받았잖아요. 왜이래요? 왜들 모른 척을 하고 그러지? …아 코인 락커라고 해서 그런가? 사물함이요. 물품보관함. 강남 구경하는 외국인들이 잠깐 짐 맡기는 거기. (가늠해보는) 사이즈는 이만하고 안은 꽤 깊어요. 관심 없는 사람들은 저게 원래 저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눈에 안 띄죠. 어느 날 문득 발견해선 속으로‘어, 저거 언젠가는 써봐야겠다’ 싶으면서도 막상 쓸 일은 자주 없어요. 한 번 사용하는데 4시간에 천오백 원이나 들지만. 철재로 만들었어요, 튼튼하죠. 작년에 싹 고쳤던가. 아니지. 재작년이던가.

여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면
또 다른 불빛 하나 락커를 비춘다.

여자
그렇지. 모르는 척 하는 거지.

곳곳에 CCTV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구석구석에 시선을 준다.

여자
…또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겠네. (정면의 누군가에게) 병신들처럼.

가만히 웃던 여자. 코인 락커로 다가간다.

사이.

침묵을 깨듯 문을 벌컥 열면, 그 안에 놓여있는 폴리스라인 테이프.
여자, 그것을 꺼내 락커에 두르기 시작한다.

여자
세상 일이 그래. 모든 일이 그렇다고. 왜? 미리 막는 것보다 나중에 수습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영화에서도 보면 폭탄 해체하는 건 10분씩, 15분씩 길게 나오는데 폭탄 터지는 건 막상 5초도 안 걸리거든. 폭발 때문에 개처럼 발겨진 시체들이 오히려 더 많이 나오지. 근데 관객들은 그거 좋아하잖아요. 더러운 거. 막 보기 싫은 거. 왜냐면 진짜가 아니니까. 진짜로 터졌을 리는 없으니까. 시체 역할 맡은 배우들은 얼마나 받아요? (으쓱하며) …경찰이라 그런 거 모르나.

테이프를 두른 락커를 가만히 응시하던 여자.
여자, 천천히 걸어와 다시 의자에 기대어 앉는다.

여자
설마 아직 안 열어봤어요? (실소하며) 설마. 아. 그렇구나. 전문가한테 맡기고 시간 끌기. 언제나 물만 멕이는 전문가. 나는 있지. 프로페셔널이란 말을 정말 싫어해요.‘사’자 들어간 모든 직업을 혐오해. 특히 의사. 의사 같은 새끼들. 잠깐, 폭발물 전문가는 가로 끝나네. (으쓱하는) …뭐. 똑같지. 잘 안다는 핑계 대면서 여기저기 들쑤시는 건 마찬가지잖아. 그렇죠? 멋대로 열고 또 멋대로 닫고. 열고 닫고, 열고 닫고…

생각에 과하게 몰입하는 여자, 흥분한다.

여자
왜 경찰들은 마음대로 락커 하나 못 열게 하면서 딴 사람은 그거를 지 마음대로 열게 해요? 열 받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그렇네. 오기 전에 터지면 뒤지는 건 그 주변 둘러싸서 시간 끌던 당신들이 제일 먼저잖아. 책임져준대? 왜 그 시발새끼들이 결정해? 배를 가르면 뒤지는 건 내가 먼저잖아.

전화 벨소리 울린다.

여자
…받아요. 전화.

전화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여자는 어딘가 들떠있다. 전화통화가 끝난다.

여자
뭐래요? …뭐라 그래?

경찰의 말을 따라하듯이

여자
제, 정신이, 아니다.

말을 뱉자마자 웃음이 터지는 여자.

여자
아. 드디어 터졌구나. 내 폭탄. 구경할 거면 지금 가서 구경해야 할 걸. (들뜬) 궁금하죠? 얼마 정도 크기인지. (주먹을 쥐며) 딱 요 정도. 요 정도 크기. 진짜 한주먹거리.

코인 락커 내부로부터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여자.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정면을 응시한다.

여자
이제 각종 뉴스화면에 엄청나게 크게 박히겠지? 그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거야. “논현역에 저런 게 있었어?” 아는 척도 졸라 하겠지? “나도 예전에 쓴 적 있어.”원래는 저런 게 있었던가? -좆도 관심 없었으면서. 일 년에 1120명, 자기가 맡겨놓은 짐을 까먹어버리는 사람의 숫자. 그 중 105명, 일부러 짐을 두고 가는 사람의 숫자.

사이.

여자
그 중 하나가 나야.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사이렌 비슷한 소리.
무대 어두워지고
사이렌 소리 귀 기울여 들어보면 그건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다.

호들갑 작가소개
‘작가가 되겠노라’ 이야기하지 말고 ‘작가로 살라’고 어떤 선생님이 말하셨어요.
그때부터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이젠 좋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많은 목소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
멀고 넓게 길고 깊게 걸어가는 사람.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