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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 인생

박아영
130호 2017.12.21
등장인물김우빈(16)최영서(16)무대 운동장,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야구 구장이다. 무대 중앙에 야구공과 배트, 글러브를 정리하는 허름한 창고 하나가 있다. 야구 선수들 일제히 하나, 둘 소리에 맞춰 무대에 지나가면 창고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던 우빈이 있는 쪽을 향해 야구공들이 떨어진다. ...

등장인물
김우빈(16)
최영서(16)

무대
운동장,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야구 구장이다.
무대 중앙에 야구공과 배트, 글러브를 정리하는 허름한 창고 하나가 있다.

야구 선수들 일제히 하나, 둘 소리에 맞춰 무대에 지나가면
창고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던 우빈이 있는 쪽을 향해 야구공들이 떨어진다.

우빈
신의 한수를 찾았다!

우빈 관객을 향해 날카로운 못을 보여준다.

우빈
이것은 못이에요. 이곳처럼 허름한 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죠. 대충 뚝딱뚝딱 지은 곳이라서요. 이걸로 선배들처럼 사람을 긁거나 아프게 하지 않을거에요. 저는 저만의 방법이 있거든요.

우빈 못을 예리하게 바라보다가 큰 액션을 취한다. 그리고는 아주 세밀하게 바느질 하는 것처럼 골똘히 나무로 된 야구 배트에다가 무언가를 새긴다.

영서 등장

치마를 예쁘게 입은 영서 일기장을 펴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읽는다.

영서
7월 21일 일기. 오늘은 행복하다. 함께 급식도 먹고, 매점에도 가고. 수업 끝나고 같이 햄버거 가게도 가재. 그때가 되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우빈
뭔 소리야, 오늘 15일이야.
영서
미래 일기 쓴 거야, 일주일 단위로.
우빈
의미도 없는 방학 숙제 열심히 하네.
영서
숙제 아니거든? 일주일 뒤 행복할 나를 상상하며 썼던 거야.

영서 한 바퀴, 두 바퀴 돌며 꺄르르 웃는다. 무대에 바람이 불고 펄럭이는 영서의 치마 안으로
푸른 멍들이 가득 보인다. 우빈 야구 배트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을 그만둔다.

우빈
편안해 보인다.
영서
(치마를 예쁘게 들추며) 그렇게 보여?
우빈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보네.

우빈 다시 야구배트에 무언가를 새긴다.

영서
뭘 그렇게 파니?
우빈
방해하지마.
영서
주영, 현욱, 정재...
우빈
방해하지 말래도!
영서
이 딴 거 소용없어.
우빈
아니야.
영서
차라리 나처럼 일기를 써. 그 새끼들 엄마들 잠시라도 마음 아프게. 우리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야구배트에 이름을 새긴 우빈은 배트를 들고 자세를 잡고 스윙을 한다.
스윙을 할 때마다 바람이 휙휙 불어온다.

우빈
나는 죽더라도 자랑스럽게 뒈질테다. 이 방망이 들고!
영서
그 허세 여전하네. 그래, 허세가 널 여기까지 버티게 했지.
우빈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우리 엄마가 그랬어. 죽을만큼 열심히 하라고 엄마도 죽을 만큼 열심히 돈 벌고 있으니까 너도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나는 죽을 때도 방망이 휘두르면서 죽을거야. 그동안 죽을만큼 열심히 버텼으니까.
영서
열심히 버틸거면 더 버텨.
우빈
지겨워. 너 우리엄마랑 똑같은 소리하네.
영서
도망가 차라리. 죽어보니 아무 것도 없더라. 시발 천사라도 될 줄 알았지. 나 봐, 이게 무슨 꼴이니. 이 흝 묻은 치마. 끔찍해.
우빈
그러게 누가 그렇게 죽어래? 예쁘게 원피스 차려입고 죽어라니까. 나 봐, 간지나잖아.

우빈 무대 중앙에 선다. 라운드에 선 타자처럼 진지한 태도로 배트를 잡는다.

목소리
1번 타자, 김우빈 1번 타자 김우빈.

영서, 우빈을 향해 공을 던진다. 우빈 배트를 휘두르지만 공을 칠 수가 없다.

우빈
매일 잡는 이 배트. 지들 이름 새겨진 거 보면 아차할거야. 매일 땀 흘리면서 이 방망이 휘두를 때 마다 윙윙 바람이 불겠지. 그러면 내가 귓가에 가서 속삭여 줄테다. 너 이새끼 얼마나 훌륭한 선수되나 보자.
영서
스트라이크

우빈 다시 자세를 잡고 영서가 던지는 공을 기다린다.

우빈
내 팔뚝에 불에 달군 못으로 지졌을 때 그때도 넘어갔지. 감독님도 코치님도 잘못된 거지만 어쩔 수 없대, 조용히 넘어가야 한 대. 야구 하고 싶으면 그냥 참아래. 다들 그렇게 견뎌왔대. 내 두 팔은 못으로 그린 가시가 돋았는데 엄마는 마음속에 대못 박혔는데 모두 그냥 내가 잘못한 짓이 있으니까 당한거래. 그게 원래 그런 거래. 교과서에도 책에도 그렇게 나오지 않는데 왜 그런 게 맞는 건가요, 선생님?
영서
투 스트라이크.
우빈
엄마 미안해요. 글러브 일본꺼, 미국꺼 사달라고 졸라서 미안해요. 엄마는 짜식 겉멋 들었다고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며, 말했을 때 똥씹은 표정 지어서 미안해요. 나도 알고 있어요. 훌륭한 선수들은 연장 탓 하지 않는다는 거. 맞아요.. 난 훌륭한 아들이 아니에요.
영서
쓰리아웃.

배트를 미친 듯이 휘두르던 우빈은 탈진하듯 쓰러진다. 영서는 일기장을 펼쳐든다.

영서
3월의 일기. (일기장을 빠르게 넘기며) 그냥 그렇다. 4월의 일기. (일기장을 빠르게 넘기며) 그냥 그렇다. 5월의 일기. (일기장 빠르게 넘기며) 그냥 그렇다. 그냥 그런 하루들의 연속이었어요. 오늘은 가슴, 다음 날은 엉덩이. 그냥 그런 하루들의 연 속이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처음으로 내 마음을 게시판에다가 올렸어요. 익명으로.

우빈은 일어나서 야구모자를 벗고 배트를 회초리처럼 든다.

영서
선생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우빈
니가 잘못한 건 없다.
영서
왜 저만 따로 앉나요? 매번
우빈
니가 우리반에서 키가 크니까.
영서
저는 구석이 싫어요.
우빈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양보 할 줄도 알아야지. 이기적이구나.

영서 일기장을 다시 편다.

영서
나는 사실 살고 싶었다. 그냥 그럭저럭한 하루는 나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렇게라도 내 일기에 나의 하루를 적으면 좋은 날들이 꼭 이어질 것만 같아서. 하지만 운동장에서 배트에 공 맞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가슴은 얼마나 철컹했는지 그 아무도 모른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이기적이라고 한다.
우빈
이기적으로 결국 니가 하고 싶은 말을 다했잖아 안 그러니 영서야?
영서
말 할 것 같았으면 익명 게시판이 아닌 선생님에게 말했어야지, 어른들에게 알렸어야지, 그 나이 때는 서로 뽀뽀도 하고 껴안고 그러는거지. 친구잖아. 그래 그냥 친구잖아. 그러니까 선생님 말은 소체(소년체전) 앞두고 이게 무슨 일이니?
우빈
너는 이기적인 애가 아니야. 너는 용감한 애야.
영서
너는 훌륭한 애야. 어리석은 애가 아니야.
우빈
엄마도, 할아버지도, 이모도 어른들은 참 이상해. 매일 죽고 싶다고 말해. 잠와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입에 달고 살지. 나한테는 맨날 이래. 죽을 만큼 열심히 해라, 죽을만큼 힘든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라. 매일 매일 죽을만큼 힘들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더 편한 것 아닌 가요?
영서
너는 100점 만점에 90점짜리 인생이야. 일단은 죽을만큼 최선을 다한 거잖아. 적어도 우리 나이에서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 수 없는게 있대. 그게 인생이래. 너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어.
우빈
그래 맞아. 적어도 우리 나이에선 난 그랬어.

우빈 못으로 손목을 그으면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100점 인생>을 쓴 작가 본인은 빠른 1990년생으로 아홉수를 두해를 거쳐서 살아가려고 한다. 본인 스스로 누구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몰라 일단은 쓰면서 산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에 재학 중 이며 부모님에게는 반짝반짝 작은 딸로, 다른 이들에게는 별종인 작가 박아영으로 살고 싶다. 참, 맵고 얼큰하게 산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