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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숙
131호 2018.01.11
등장인물 할머니(80세) 수연(여, 32세)무대 낡은 빌라 지하 방 안 양쪽에 방문이 하나씩 있고 거실 가운데 커튼이 쳐져 있다. 빗소리 들리고 커튼 오른쪽에 앉은 할머니, 긴 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왼쪽의 방문이 열리며 수연 나온다.

등장인물
할머니(80세)
수연(여, 32세)

무대
낡은 빌라 지하 방 안
양쪽에 방문이 하나씩 있고 거실 가운데 커튼이 쳐져 있다.
빗소리 들리고 커튼 오른쪽에 앉은 할머니, 긴 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왼쪽의 방문이 열리며 수연 나온다.

수연
할머니, 점심 안 먹어요?
할머니
뭐 하는 일이 있다고 하루에 세 끼씩 먹어.
수연
(커튼 젖히며, 버럭)지금 내 얘기하는 거예요?
할머니
(줄 내려놓으며)왜 나한테 성질이야? 애인이랑 정말 헤어진 거야? 밤새 울더만.
수연
차라리 잘 됐어요. 내 주제에 연애는 사치잖아요. (고개를 푹 숙인다)
할머니
시험 며칠 안 남았다며? 그런 정신으로 공부가 되겠어?
수연
다섯 번 떨어지나 여섯 번 떨어지나 절망하긴 마찬가지죠. (줄 보고)그 줄은 뭐예요? 설마?
할머니
아냐.
수연
맞잖아요.
할머니
아니라니까. (옆으로 치운다)
수연
절대 안 돼요, 거실에 빨랫줄 메는 거.
할머니
...?
수연
아무리 장마철이라도 방 안에 빨래 쭉 너는 거 질색이라고요. 그게 얼마나 구질구질한데요.
할머니
구질구질.... 구질구질...
수연
(밝게)할머니, 점심으로 스파게티 먹어요. 아껴둔 면 있거든요. 소스는 케첩 있으니까, 대충 야채랑 섞어 만들면 그럴싸할 거예요.
할머니
스파... 그게 뭔데?
수연
서양 비빔국수라고 생각하면 돼요. 좀 굵긴 하지만. 스파게티를 숟가락에 얹어 포크로 돌돌 말아 입 안에 쏙 넣으면... 마치 내가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꼿꼿이 세운다)
할머니
(웃는다)

수연, 방에서 면을 가져와 거실 뒤쪽 주방으로 가 요리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까지 춘다.

할머니
쯧쯧... 끓고 있는 냄비 뚜껑처럼 불안불안하네.

할머니, 다시 줄을 잡고 동그랗게 만들어 머리에 써 본다.
수연, 프라이팬을 들고 오자, 할머니, 얼른 줄을 내려놓는다.

수연
(프라이팬 내려놓으며)어때요? 맛있어 보이죠?
할머니
(환하게 웃으며)아이쿠 오랜만에 군침이 도네.
수연
우선 인증 샷부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눈물 글썽)내가 한 스파게티가 제일 맛있다더니... 개자식...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울지 않으려 애 쓴다)
할머니
(안쓰럽지만 모른척한다, 먹고)맛있네. 요리를 이렇게 잘하는데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해?
수연
안정되잖아요, 정년까지 쭉! 부모님도 어릴 적부터 그걸 원하셨고.
할머니
효녀네, 답답한 효녀!
수연
할머니 자식들처럼 자기들 맘대로 살면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보다는 낫죠.
할머니
(한숨)하고 싶은 거나 하면서 살면... 참 우리 막내는 달라. 가끔 오잖아.
수연
엄마, 아빠는 나한테 절대 안 기댄다고 했어요.
할머니
기댈 생각은 없은데 간섭은 하시는군.(피식 웃는다) 나도 기댈 생각 같은 건 없어. 그치만 가족이니까.... 무심할 수야 없지.

천둥 번개 치며 빗소리 더 굵어진다.

수연
한동안 마른장마라 푹푹 찌더니 이젠 비가 너무 오네요.
할머니
....다 떠내려갔으면 좋겠어.
수연
(멍하니)그러게요, 다 떠내려갔으면 좋겠네요.

두 사람, 말없이 젓가락으로 스파게티를 먹는다.
할머니, 빈 그릇을 들고 일어선다.

할머니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할게.
수연
그냥 놔두세요, 이따 저녁에 한꺼번에 하면 되니까.
할머니
아냐, 뒷정리를 깨끗하게 해야지. (주방으로 가 설거지를 하다, 돌아보며)이번 달 월세는 어제 냈어. 이틀 늦었다고 주인이 뭐라 하더라고. (설거지한다)
수연
죄송해요, 알바비가 열흘이나 밀려 입금되는 바람에 늦게 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저랑 이 방을 나눠 쓰고 있는 걸 주인이 알면....
할머니
걱정 마. 주인은 여기 안 와. 이 집 말고 돌봐야 할 집들이 많거든.
수연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요?
할머니
아버지가 부자겠지. 할아버지가 부자였거나.
수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는커녕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 같은 인생은.... (할머니의 줄을 만지작거린다)

설거지 끝내고 다가와 수연이 만지고 있는 줄을 기겁해 뺏는다.

할머니
(딴청)비가 이제 그쳤나 보네.
수연
저도 언젠가는 공무원이 될 수 있을까요?
할머니
요리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수연
결혼은요?
할머니
난 다시 결혼하기 싫어. 우리 영감이 징글징글한 술주정뱅이였거든.
수연
아이는 셋쯤 낳고 싶은데.
할머니
나도 셋 낳았는데. 어릴 때 죽은 딸까지 하면 넷이지만.
수연
그러게 왜 이렇게 무작정 늙으셨어요? 돈을 좀 모아놓든가 하시지.
할머니
(커튼 잡으며)그만 닫자고.
수연
(잡고, 강하게)오늘은 열고 지내요.
할머니
품위 있는 삶을 위해 개인생활을 존중하자며?
수연
혼자 있기 싫어서 그래요.
할머니
나한테도 품위 있게 마무리 할 권리가 있어.
수연
오늘이요?
할머니
......
수연
(줄 잡으며)이 줄... 나한테 파세요.
할머니
뭐?

두 사람, 말없이 서로를 보는데 초인종 길게 울린다.

호들갑 작가소개
꿈꾸는 것에 가까이 가 보고 싶어 오늘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다거나 혹은 부질없을지도 모른다는 망설임이 때론 지치게도 하지만 이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한여름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의 간절함을 담아 오늘도 꾹꾹 씁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