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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

기나영
132호 2018.01.25
주인공: 면접 보러 가는 학생. 엉성하게 차려입은 모습.지하철 1, 2, 3: 동화 속 요정 같이 비현실적인 옷차림.스크린도어 1, 2: 까만 옷. 스크린도어 1, 2가 두 명 씩 양쪽 스크린 도어를 잡고 있다.주인공이 피곤한 듯 들어와 관객을 마주보고 스크린도어에 기댄다.스크린도어 1 : 기대지 마...

주인공: 면접 보러 가는 학생. 엉성하게 차려입은 모습.
지하철 1, 2, 3: 동화 속 요정 같이 비현실적인 옷차림.
스크린도어 1, 2: 까만 옷.

스크린도어 1, 2가 두 명 씩 양쪽 스크린 도어를 잡고 있다.
주인공이 피곤한 듯 들어와 관객을 마주보고 스크린도어에 기댄다.

스크린도어 1
기대지 마시오.
스크린도어 2
제자리에 서시오. 선에 맞춰서.
스크린도어 1
옷은 반듯하게.

성가신지 비틀거리는 주인공

스크인도어 2
제자리에 서시오!

주인공은 경직되어 빳빳하게 스크린도어 정중앙을 마주보고 서는데, 서서히 힘이 풀린다.

스크린도어 2
이샛ㄲ.....

스크린도어의 요설은 지하철이 들어오는 나레이션 소리에 묻힌다.

나레이션
지금, 서울대입구역 방향으로 가는 외선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하게 승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역은 승강장과 열차사이가 넓으므로 열차를 타고 내리실 때 조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

주인공
아 그냥 가지 말까.....

지하철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맞춰 행진하듯 들어온다.

스크린도어 2
(손짓하며) 이리와, 이젠 저런 무서운 애들이랑 상대하지 않아도 돼!
지하철 1
....로 서라고 씹새야!
지하철 2
쉬, 쉬. 안 그래도 면접 보러 가는 애한테 면박을 주면 어떻게 해.

궁시렁대는 스크린도어들, 스크린도어 창이 열린다.

지하철 3
괜찮아. 여태까지 준비하느라 힘들었지? 그래도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거야.
주인공
응. 근데 그동안 너무 시달려서 인상이 안좋으면 어떻게하지?
지하철 2
(주인공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며) 무슨 소리야.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이 또 어디 있다고. 면접관들이 반할걸.
지하철 1
맞아. 너에겐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 그러니까 너를 믿어. 앞으로도 잘할테니까.
주인공
(살짝 비틀거리며) 아 피곤해. 앉아서 눈 좀 붙여야지. 고마워. 덕분에 덜 불안하다.
지하철 2
(주인공을 똑바로 세우며) 그래? 아이고,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그동안 뭘 했길래.
주인공
아 그동안, (한숨) 정신이 없어서 여태까지 뭘한건지도 잘 모르겠다.
지하철 3
으응 어떡해. 너무 열심히해서 기억도 안날 정돈가봐.
지하철 1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데.... 건강은 지켜야 취직도 하고 사람구실을 하지.
주인공
.....어?
지하철 2
(지하철 1을 툭툭 치며)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래도 계속 버티면서 안 무너지려고 한다는게 얼마나 멋있어.
주인공
그래. 그러니까 나 좀 들어가서 잠깐 앉자.
지하철 1
아니, 왜? 그대로가 좋은데?
지하철 3
니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래도 서 있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야.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잘하려고 하잖아.
지하철 2
그래. 힘들다는 건 열심히 했기 때문인 거잖아. 넌 뭘 해도 될 거야.......(사이) 무언갈 하고 있으니까.
나레이션
출입문 닫겠습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정적.
주인공이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지하철들은 소름끼치게 속삭이기 시작한다.

지하철 2
왜, 이해가 안돼?
지하철 3
여태까지 학교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잘 해왔잖아. 최선을 다한거 맞지?
주인공
그, 그걸 내가 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하철 3
왜 그래.....그건 별로 잘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처럼 들려.
지하철 2
걱정하지 마. 넌 특별하고 좋은 사람이야.
지하철 1
그래. 뭐라도 되겠지. (주인공의 얼굴을 감싸쥐며) 잘하고 있으니까. 맞지?

주인공은 뒷걸음질 치며 무대 앞쪽으로 돌아서지만, 스크린도어는 굳게 닫혀 있다. 지하철은 묘한 미소를 띈 채 주인공만을 응시하고 있다. 주인공은 스크린도어 창을 두들기고, 스크린도어들은 잠시 힐끔 뒤를 돌아보곤, 이내 고개를 돌리고 지하철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지하철 출발하는 소리.

호들갑 작가소개
삶을 번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