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 끝나고 난 뒤 각질제거제 흩날리는 하늘 아래 너와 나
이홍도
138호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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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희곡 페스티벌에 오신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등장인물
이홍이 (여, 만 26세) 뮤지컬 홍보담당자
김이박 (남, 만 45세) 문화부 차장 기자
무대
공연장 로비
(객석에서.)
- 홍이
- 10분 희곡 페스티벌에 오신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관객여러분은 이 연극에 있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아니, 다시 할게요. 이 연극은 관객여러분에게 있어, 또 여러분의 삶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허구니까요. 가짜. (공연 당일 신문 지면의 헤드라인을 소리 내어 읽고) 진실은 각질제거제와 같아서 아주, 아주 위험하죠. 숨겨진 것을 드러나게 하니까요. 그래서 둘 다 공연장 반입금지가 된 거에요. 때마침 공연이 끝나네요!
- 홍이
- 공연 어떻게 보셨어요?
- 홍이
- 김이박 차장님!
- 차장
- 누구시더라?
- 홍이
- 저, 아까 공연 전에 티켓 찾아드렸던.
- 차장
- 아아, 홍보.
- 홍이
- 아까 공연 전에 주셨어요. 차장님.
- 차장
- 응, 잘못 꺼냈어.
- 홍이
- 어떻게 잘, 보셨어요?
- 차장
- 응, 그래요.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네.
- 홍이
- 네, 잘 보셨어요?
- 차장
- 그래요, 관객들이 좋아하고.
- 홍이
- 아. 그러시군요. (사이) 네! 그러시군요. 그럼 리뷰 언제 쓰실 거세요?
- 차장
- 뭐요? 잠깐. (전화 받다.) 응, 최 기자. 이제 끝났어. 아니, 좀 길어야지. 뻔하잖아. 마지막 장면에 각질제거제 6kg 뿌린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마스크도 안 나눠줘. 이 나라 창작 뮤지컬 수준이 그래요. 난 유학할 때도 뮤지컬은 안 봤어. 응, 평론가는? 오긴 와? 안 오면 기자들이나 더 불러. 그래, 간다고 이제. (전화 끊다.)
- 홍이
- 차장님, 많이 바쁘시죠? 그럼 자료 필요하시면 나중에 말씀주세요. 요청주시면 바로 보내드릴게요.
- 차장
- 이봐요.
- 홍이
- 네?
- 차장
- 요청주시면? (벨소리.) 있어봐요. (받다.) 네. 제가 공연 보는 중이라. 전화 드릴게요. (전화 끊다.) 필요할 때마다 요청하라고요? 기자가?
- 홍이
- 아니에요. 제가 한 번에 보내드릴게요.
- 차장
- 아니, 그럼 홍보담당자가 하는 일이 뭔데요? (전화 걸다.) 최 기자.
- 목소리
- 네, 차장님.
- 차장
- 전화 온 거 없어?
- 목소리
- 없는데요. 차장님.
- 차장
- 나 찾으면 없다고 해.
- 목소리
- 예, 차장님.
- 차장
- (끊으며) 봤죠. 기자들이 이러고 살아요.
- 홍이
- 네, 너무 바쁘시죠.
- 차장
- 뭔지는 알고 말하세요?
- 홍이
- 아뇨, 제 말은.
- 차장
- 뭘 안다고 그러세요. 기자가 우습게 보여요?
- 홍이
- 그런 말이 아니고요. 저도 글을 쓰니까.
- 차장
- 보도자료? 아님 뭐, 등단이라도 하셨나?
- 홍이
- 아.
- 차장
- 등단이라도 하셨냐고.
- 홍이
- 네. (침묵) 했어요.
- 차장
- 잘 아시겠네.
- 홍이
- 그렇다기 보다는.
- 차장
- 전 사실 잘 몰라요.
- 홍이
- 아, 네.
- 차장
- 모르고 그냥 쓰는 거죠. 부서이동도 잦고.
- 홍이
- 알아야 쓰나요, 뭐.
- 차장
- 그렇죠. 원래 알지도 못하고 쓰는 거죠. (사이) 지금 일이 있어서. 저 갑니다.
- 홍이
- 무슨 일이요?
- 차장
- 그건 아실 거 없고. (휴대폰 울리다.) 여보세요? 제가 공연 보는 중이어서요. (휴대폰 다시 울리다.) 네, 평론가님, 전화 받았습니다. 어디쯤 오셨어요?
- 홍이
- 여기요. 이제 좀 가시죠.
- 차장
- 문자만 주고받으니 몰랐네요. 제가 명함 하나 드려도 될까요?
- 홍이
- 제 명함 다섯 개는 있으실 텐데.
- 차장
- 아, 예.
- 홍이
- 다 버리셨을 수도 있지만.
- 홍이
- 받으세요. 기자님.
- 차장
-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휴대폰 받다.) 응, 최 기자. 같이 있으셔. 평론가. 응, 지금 이동해. 우산 없는데? 그냥 맞고 가지, 뭐.
- 목소리
- 차장님, 평론가분 바빠서 못 오신다는데요. 차장님께서 아실 거라면서요. 차장님?
- 홍이
- 뮤지컬이 끝납니다. 우리들은 관객들입니다.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우리들은 손님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끝납니다. 그러면 세계에는 각질들이 남죠. 자 이제 그럼, 관객 여러분, 다음 공연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다음 공연이 있다면 말이죠.
(무대를 향해.)
(흘끗. 지나가다.)
(명함 꺼내다.)
(휴대폰 꺼내다. 들여다보며 대답하다.)
(이홍이, 먼저 휴대폰 끊다. 침묵. 명함 꺼내다. 공손하게.)
(명함 교환하다.)
(그때, 휴대폰 울리다. 김이박 차장, 눈치를 보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수화기 너머 소리 들려오다.)
(조명 밝아오다. 이홍이, 김이박 차장의 옷과 구두를 들고 서 있다.)
(옷과 구두를 털다. 각질제거제 떨어지다. 옷과 구두만 무대에 남겨놓고 퇴장하다.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네, 잠깐 통화되실까요? 네, 리뷰 기사 써주신 거 너무 잘 봤어요.
네, 너무 감사해요. 네, 그런데 하나만 좀. 네, 엔딩 때 떨어지는 게 눈이 아니고요. 네, 저 말씀이세요?
네, 저는. 여보세요? 저는, 기자님,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