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맹이의 마음
정영직
139호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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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맹이를 키우고 있는 남자의 집, 집 한가운데 100kg정도 무게의 커다란 돌맹이가 있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싸우고 있다. 여자는 남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장소
돌맹이를 키우고 있는 남자의 집, 집 한가운데 100kg정도 무게의 커다란 돌맹이가 있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싸우고 있다. 여자는 남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여
- 진짜, 얘 때문에 못 간다는 거야?
- 남
- 그래.
- 여
- 우리 어디 완전히 떠나자는 게 아니야. 처음으로 일주일정도 여행 가자는 거잖아. 겨우 일주일 이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야.
- 남
- 나도 정말 당신이랑 여행을 가고 싶어. 그렇지만 나한테는 보살펴야 되는 맹이가 있잖아. 어떻게 오래 집을 비울 수가 있겠어. 그동안 맹이를 누가 매일 씻기고 돌봐줘?
- 여
- 아니, 그러니깐 당신은 지금 저 돌덩이를 돌보는 것 때문에 일주일, 겨우 일주일의 여행을 못겠다는 거야? (여자, 기가 막힌다는 표정) 우리 사귄지 이제 곧 1주년이야. 1주년 기념으로 여행 한 번 같이 가자.
- 남
- 그래. 벌써 1주년이네. 당신은 정말 착하고 멋져. 우리가 사귄지 1주년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른 거 같아. 그런데 내가 맹이를 키운 지 10년이야. 1주년 여행으로 10년을 사귄 친구를 버려둘 수 는 없는 거 아니겠어. 그것도 나의 도움이 절실한 친구를 말이야. 나를 그렇게 냉혈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 여
- 아니, 어떤 당신의 도움이 저 돌한테 필요하다고 그래? 저 돌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무 문제 없다고. 그냥 저렇게 천년만년 잘 있을거야. 당신이 돌보지 않아도 괜찮아. 아마 당신이 죽고 나서도 훨씬 더 오래 저 모양 그대로 잘 있겠지.
- 남
- 아무 문제가 없다니... 작은 물방울도 돌을 뚫을 수 있어. 잘 알면서 왜 그래? 만약에 여행간 동안에 집에 물이 새서 맹이에게 구멍이 뚫리면 어떡해? 그것뿐 아니라 지진이 나면? 안 씻겨서 이끼가 끼면? 상처가 생기면? 맹이가 다칠 수도 있잖아.
- 여
- 그러면 준우씨한테 돌봐달라고 하자. 그러면 되잖아. 딱 일주일동안만 부탁하는거야. 준우씨가 돌봐주면 아무 문제 없을거야. 여행 갔다 오면 맹이가 건강한 모습으 로 당신을 반겨줄 거야.온 몸으로 안아줄 수도 있을걸. 그럼 해결된거지? 우리는 즐겁게 놀다가 오면 돼. 우리 둘만의시간을 갖자.
- 남
- (생각한다)아무래도 안 되겠어. 만약 준우가 잘 못 보살피면 어쩌지. 걔가 하루라도 제대로 안 씻겨주면 어딘가에 부딪혀서 맹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지금 저렇게 이쁜 모습인데. 난 맹이가 변하는 건 싫어. 아무리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을거야.
- 여
- 그럼 어쩌자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 남
- 같이 가는 건 어때?
- 여
- 같이?
- 남
- 그래. 그럼 되겠다. 같이 가는 거야. 함께 여행하면 맹이도 기분 좋아지겠지. 바다도 보고 온천물로 목욕도 하고 다같이 하는거야. 우리랑 일주일 동안 같이 여행을 하는 거야.
- 여
- (황당) 지금 저 100kg이나 되는 돌이랑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정신인거 맞아? 저거랑 어떻게 여행을 해. 우린 차도 없잖아. 버스타고 기차 타고 하는데 저 돌을 가 지고 간다고? 극기훈련 해? 아주 건강해지겠네. 난 당신이랑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오붓하게 말이야. 근데 당신은 돌덩이를 가지고 가겠다고. 여행 내내 저 돌만 가지고 죽고 못 살겠지. 나한테는 신경 일 도 안 쓰고. 맨날 나는 당신한테 저 돌만도 못한 존재인거 같아. 그럴꺼면 왜 나랑 여행 가겠다 는건데? 저 돌이랑 둘이서 가. 둘이서 아주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 남
-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난 당신이 맹이랑 친해졌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잖아. 맹이랑 떨어지면 내가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도 알고. 둘이 가까워지면 나도 좀 더 맘이 편해질 수 있을거 같아. 그래서 같이 가고 싶은거야. 내 맘을 이해해줘.
- 여
- 돌이랑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정신차려. 돌은 무생물이야. 아무 생각도 마음도 없다고. 그런 돌이랑 가까워진다니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돌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이정도 일줄은 상상도 못 했어. 돌의 마음을 들으라니.
- 남
- 돌에게도 마음이 있어. 가만히 귀 기울이면 맹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있다고.
- 여
- 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 이해라는 건 살아 숨 쉬는 생물이랑 하는거야. 당신은 돌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야 돼.
- 남
- 그래. 이해는 사람이랑 하는거지. 그게 얼마나 힘든건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걸. 난 한 번 실패했었어. 나락이 뭔 줄 알아? 세상이 점점 좁혀 오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해. 움직일 수도 없고 숨도 안 쉬어져. 그런 느낌 속에서 하루하루 살았어. 아,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지. 그러다가 만난게 바로 저 돌맹이야. 하루를 마치고 돌을 닦으면서 나는 마음의 안정을 얻어. 오늘 있었던 나를 절망스럽게 했던 순간들을 날려버릴 수 있어.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얻어. 그래, 남들이 보기엔 그냥 커다란 돌덩이에 불과하겠지. 내가 왜 매일 저 돌을 닦는지 모르겠고, 돌에 상처가 생기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 없는거 잘 알아. 하지만 난 아니야. 나는 저 돌에 상처가 생기면 내가 다친거 같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모습에 흠집이 생긴 기분이야. 저 돌이 사라지면 내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 같아. 그래서 무서워. 너무 불안해서 매일 닦고 또 닦는거야.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맹이가 없으면 나의 하루를 정리 못 할 거 같아. 일주일이나 버틸 자신이 없어.
- 여
- (침묵)
- 남
- (어색) 이런 이야기 남한테 하는거 처음인데. 이제 내가 싫어졌겠다. 미안해.
- 여
- (침묵)
- 남
- (안절부절 못 한다.)같이 여행 갈 수 있게 계속 노력해볼게.
- 여
- 아무것도 모르고 내 고집만 부렸네.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내가 너의 마음을 들으려고 생각했으면 돌 속에 있는 너의 마음을 알았을텐데 그러지 못 했던 거 같아. 미안해.너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시선 속의 너를 보고 있었던 거였네. 그래도 앞으로는 맹이도 좋지만 나한테도 이야기해줘. 나도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줄게. 우리 같이 이해해나가 자. 여행은 괜찮아. 준비되면 천천히 가자.
- 남
- 나의 이런 모습도 받아줄 수 있겠어?
- 여
- 당연하지. 얼마든지 받아줄게.(다가가서 안아준다.)
- 남
- 고마워. 정말 고마워. 사랑해.
- 여
- 나도 사랑해.
남자 생각에 잠긴다.
fin.
- 호들갑 작가소개
-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좁혀지는 세상을 바랍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