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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의 척력

김도은
141호 2018.06.07
소란스러운 교실 안. 과학실에 둘 씩 짝지어 앉아 있는 학생들. 교사는 스크린을 통해 짧은 영상을 보여준다. 구름 모양의 스피커가 방 안을 떠다니는 모습, 작은 아이언맨이 비행하듯 뜨는 모습. 아이들 신기해하며 집중.

인물
남정 여, 고등학생, 17세
고나 여, 고등학생, 17세
교사 여, 고등학교 과학 교사, 30대 초반

무대
7월의 고등학교 과학실 안

소란스러운 교실 안. 과학실에 둘 씩 짝지어 앉아 있는 학생들. 교사는 스크린을 통해 짧은 영상을 보여준다. 구름 모양의 스피커가 방 안을 떠다니는 모습, 작은 아이언맨이 비행하듯 뜨는 모습. 아이들 신기해하며 집중.

교사
방금 본 영상은 공중 부양 기술이 도입된 스피커들이야. 어때. 신기하지?

아이들 웅성웅성. 대박, 그럼 집안에서 날아다녀요?, 얼마예요? 시끄러운 가운데 고나와 남정만 조용하다. 남정 옆에서 종이에 끄적이는 고나를 흘긋.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한 채 입술만 툭, 내밀며.

남정
너 또 애들 모으려고 그러지.
고나
(하던 일 멈추고 남정을 바라보다, 다시 적기 시작한다.) 넌 또 초치려고 이러지.
남정
(섭섭함과 동시에 울컥) 내가 언제 초를 쳤어.
고나
우리 남정이가 자기도 불편하다고 그랬으면서, 나만 또 이상한 사람 만드네.

짧은 사이. 남정 입을 달싹 거릴 뿐 아무런 말을 못한다. 교단에서 여전히 이어지는 교사의 설명.

교사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알라딘의 양탄자처럼 스피커가 마법이라도 부려서 하늘을 나는 걸까?

쌤 유치해요, 엄청 비싼 거죠?,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아이들 웅성웅성.

남정
솔직히 교칙을 위반한 건 맞잖아.
고나
그게 뭐? 이남정 팔 들어봐.
남정
.... 왜 또.
고나
들어보라고.
남정
아, 반밖에 안 들려!
고나
거봐! 야, 하복 와이셔츠 입으면 만세도 못해. 속바지 입고, 살스 (살색스타킹) 신으면 땀 때문에 치마는 더 불편해. 그래서 남자애들 바지 좀 입고, 셔츠 큰 거 입겠다는 게 잘못이냐?
남정
교칙이 남자애들은 남학생 교복, 여자애들은 여학생 교복 입으래잖아.
고나
그게 존나 이상하다고.
남정
그래서 교감쌤한테도 그렇게 말했어?
고나
교감이 하는 말도 존나 이상하니까.
남정
쌤, 존나 이상하다고 하는 학생 말을 어떤 쌤이 들어줘? 너 같으면 기분 좋겠어?
고나
난 좋을 듯. 얘가 나를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는 구나, 하고.

남정 어이없다. 교단 앞에 선 교사, 양 손에 자석을 들고 있다.

교사
너희들은 첨단 기술이 도입된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원리는 아주 간단해. 우리 며칠 전에 자석 가지고 실험했었지? 그때 배운 척력을 활용하여 저런 공중 부양 스피커를 만드는 거야. 척력이 뭔지 기억나는 사람?

일순간 아이들 조용. 남정과 고나의 목소리도 따라서 작아진다. 속닥 속닥 거리는 둘.

남정
정고나 진짜 이상해.
고나
이남정 존나 몸사려.
남정
(한숨 쉬다가) 이번엔 저번처럼 그러지 마.
고나
내가 뭘.
남정
알잖아. 교무실 가서 쌤들이랑 싸우기만 하고, 혼만 나고, 애들 사이에선 유난이라고 욕 만 먹고. 넌 이게 재밌어?
고나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들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다.
남정
뭔 소리야.
고나
나도 몰라, 우리 언니가 읽는 책 첫 장에 있는 말이야.

남정, 고나를 빤히 바라보다 웃음 터트린다. 고나도 따라 웃는다. 최대한 소리 죽여 키득거리는 둘. 이어지는 교사의 설명.

교사
(두 자석이 서로 같은 극을 보게 하며) 척력은 같은 자극끼리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야.
남정
난 네가 진짜 이해가 안돼.
고나
나도야.
남정
등급 올릴 생각은 안 하고 이런 일만 꾸민다는 게...
고나
(말을 가로채며) 멋지지.
남정
(말을 말자는 듯이) 이건 뭔데? 애들한테 보여줄 거야?
고나
응. 학교에 다 붙일 거야. 언니가 그러는데 대학교에선 이렇게들 많이 한대.
남정
이게 뭔데?
고나
대자보.
남정
이러면 교칙이 바뀐대?
고나
나도 몰라.

남정 고나 쪽으로 더 몸을 붙여 대자보를 본다.

남정
여기 허전해 보여.
고나
(볼펜 건네며) 할래?

남정 볼펜을 받아든다.

교사
흔히들 인력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척력의 원리를 활용한 기술들도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어. 자기부상 열차나 오늘 본 공중부양 스피커처럼. 같은 극끼리 만나 서로를 밀어내는 힘 덕분에 스피커는...

남정 마치 한참동안 물 속에서 숨을 참다 나온 사람이 숨을 뱉듯이, 한마디 툭.

남정
분홍색은 없어?
고나
예쁘게 안 만들어도 돼.
남정
뭐래. 내가 좋아하는 색이거든.
고나
그랬나?
남정
여기도 칠할까?
고나
그래.

속닥거리는 둘. 볼펜이 사각거리는 소리.

교사
공중으로 날 수 있는 거지.

교사의 목소리를 끝으로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지리멸렬한 삶과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다보면 싫은 것들만 늘어납니다.
그것들에게 매몰되지 않기 위해 글을 씁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