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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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죽음을 앞둔 노년의 남자
홈쇼핑 남자 쇼호스트와 여자 진행자(간호사와 1인 2역)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무대 위, 병상의 침대에는 숨 쉴 힘조차 없는 노인이 가쁘게 숨을 내쉬며 누워있다. 촛불의 불빛 같은 옅은 조명 빛만이 병상 위를 비추고 있다. 병상 위의 노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 노인
- 티비 리모컨이...당최 어디로 간 게야.
- 간호사
- (하품을 하며) 새벽까지 안주무시고 무슨 일이세요? 또 잠이 안 오세요?
- 노인
- 이 새벽에... 미안해요. 티비 리모컨을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 간호사
- 선생님, 자꾸 잠을 안주무시면 건강에 더 해로와요. 그리고 지금 시간에는 마땅히 보실 게 없으실 텐데.. 수면유도제라도 약하게 놓아드릴까요?
- 노인
- (강하게 거부하며) 아냐 아냐. (고개를 숙이며) 잠을 자면 깨어나지 못할까봐... (고객를 다시 들며) 아, 그리고 요즘엔 홈쇼핑도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은데. 요즘 새벽 홈쇼핑 방송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니깐.
- 간호사
- (의아한 듯) 홈쇼핑이요? 뭐, 마땅히 사실 것도 없으시잖아요?
- 노인
- 아니, 그 연기자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하는지...꼭 살 게 없어도 사고 싶더란 말이지. 허허
- 간호사
- 연기자요? 아... 쇼호스트요.
- 남자 쇼호스트
- 자, 오늘 소개해드릴 상품은요. 아주 특별한, 지금 단 1개 밖에 없는 상품입니다. 자, 궁금하신가요? 단 한 분에게만 드리는 찬스! 잊지 못할 평생 단 한 번의 기회! 지금 바로 예약 구매해 주시는 분에게만 소개해드립니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36분 45초를 지나가고 있는데요. 어떤 상품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시켜드릴 우리 해적 홈쇼핑이 아니지요. 반품율 제로! 단 한 분! 어서 빨리 지금 리모컨의 예약구매 빨간 버튼을 눌러주세요.
- 간호사
- 저, 선생님. 무슨 상품이신지도 모르시잖아요. 무턱대고 구매하시면...
- 노인
- 내겐 기다릴 시간이 없다구. 차, 찾았다. 빨간 버튼 (무엇에 홀린 듯이 버튼을 누른다)
- 간호사(진행자)
-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네, 해피요양병원 301호에 계신 홍정철 선생님께서 행운의 주인공이 되셨는대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 남자 쇼호스트
- 네 우리 선생님 모셔보고 모두가 기대하시는 이 상품의 비밀을 공개해보겠습니다.
- 노인
- 내가 방송에 나오는 건가요? 아, 이거 원... 쑥스러우면서도 설레기도 하고... 허허 근데 뭐에 당첨된 건가요?
- 간호사(진행자)
- 네 선생님의 소원 한 가지를 이뤄드리는 방송입니다.
- 노인
-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이 마당에 뭐 소원이랄 게 있나요. 찾아오는 피붙이도 없고... 그냥 쓸쓸히 눈 감지만 않는게 오랜 소원이지요. 병상에서 혼자 식어갈까 봐 서러워 요즘도 내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우.
- 남자 쇼호스트
- (숙연하게 들으며)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시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셨으니 오늘은 단 꿈을 꾸시며 주무실 겁니다. 자 방청객 분들도 선생님의 숙면을 모두 응원해 주실 거죠?
- 노인
- (울먹이며) 감사합니다. 외롭지 않네요. 오늘 같은 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 간호사(진행자)
- (노인에게 다가가며) 자, 그럼 선생님. 시간이 늦었으니 침상에 누우시죠.
- 쇼호스트
- 선생님, 행복한 꿈꾸십시오. 저희 모두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 쇼호스트
- (속삭이며 말하듯) 네. 오늘 선생님의 3년 전 유언 예약 상품을 여러분과 준비해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도 여러분들의 만족을 100퍼센트 충족시켜드리는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노인, 침상 위에 달린 호출 벨을 연신 누른다.
삐이익_삐이익_삐이익 여러 번 호출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간호사가 등장한다.
간호사는 자다가 일어난 듯 졸린 눈을 하고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간호사, 잠시 찾는 듯 하더니 노인의 베게 밑에서 리모컨을 찾아 건넨다.
노인이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누르자, 무대 밝아지며 쇼호스트가 침상 앞으로 등장한다. 마치 마술사처럼,
노인,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는지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찾는다.
노인 버튼을 누르자, 옆에 있던 간호사, 간호사복을 벗어던지자 검고 화려한 옷의 커리어우먼으로 탈바꿈한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노인을 아랑곳 않고 노인의 맞은 편 쇼호스트 쪽으로 당당히 걸어 나가는 여자. 이내 남자 쇼호스트와 진행을 한다.
(방청객 녹화음 박수소리 들린다)
남자 호스트가 병상에 누워있던 노인에게 다가가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다.
옆에 있던 간호사(진행자)는 노인이 천천히 나오는 동안 메이크업, 근사한 의상을 입히는 등 빠르게 단장을 해준다. 어리둥절해 하며 무대 앞으로 불려 나온 노인은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사실에 몸둘바를 몰라한다. 화려한 무대 조명이 노인을 마치 주인공처럼 비춘다.
(방청객 녹화음 환호소리, 휘슬소리 들린다)
(방청객 녹화음 환호소리, 박수소리 들린다)
간호사, 감격에 겨워하는 노인을 부축하며 침상에 눕힌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깔리고 간호사는 노인의 팔뚝에 천천히 주사를 놓는다.
(방청객 녹화음 박수소리 들린다)
노인, 고개를 방청객 쪽으로 향하여 행복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든다. 마치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쇼호스트가 방청객석으로 쉿! 제스처를 취하자, 방청객 녹화소리 잦아든다.
천천히 손이 떨구어지며 잠에 드는 노인. 행복한 표정이다.
고요히 잠에든 노인. 고개를 숙이며 애도하는 듯한 간호사.
- 막 -
- 호들갑 작가소개
- 연극, 무대, 배우, 때, 곳, 관객, 작가... 찬찬히 되짚어가며,
좋은 희곡을 찾아 모험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응원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