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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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구면(남, 38)
감독(여자목소리)
조감독(남자목소리)
장소
영화 오디션 장.
출입문을 중심으로 밖은 대기실이다. 수많은 오디션 지원자들 틈에서 묵묵히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구면.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조연출의 호명에 따라 하나 둘씩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는 지원자들. 초조한 듯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구면.
- 조감독(목소리)
- 마지막 지원자, 들어오세요.
- 조감독(목소리)
- (날카롭게)거기, 정장 입은 분!
- 구면
- (다급하게)네, 네. 준비된 배우, 구면이라고 합니다.
- 조감독(목소리)
- (버럭)문에서 나오세요! 본인 이름이 아니잖아요.
- 구면
- 마지막이라고해서...
- 조감독(목소리)
- (한숨)좀 앉아계시라고요.
- 구면
- 들어가야 돼,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야 돼...
- 조감독(목소리)
- 오늘 오디션에 와주신 모든 배우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구면
- (당황해서)잠깐!
- 조감독(목소리)
- (무시하고)결과는 공정한 심사 후 개별통보 해드리겠습니다.
- 구면
- 저 아직 남았는데요?
- 조감독(목소리)
- ......
- 구면
- 확인이라도 해보세요!
- 조감독(목소리)
- (한숨)기다리세요. 성함이...
- 구면
- 구면입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본 듯한, 한 번 보면 잊혀 지지 않는 그런 배우
- 조감독(목소리)
- (단호하게)없네요.
- 구면
- 네? 그럴 리가요! 다시 한 번 확인을...
- 조감독(목소리)
- 돌아가 주십시오. 오디션은 여기까지입니다.
- 구면
- (총을 꺼내 정면을 겨누며)닥쳐!
- 조감독(목소리)
- 그런 식으로 들어가 봐야 무조건 실격입니다.
- 구면
- 상관없어. 그냥 한 번,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내가 준비한 걸 보여주기만 하면 돼!
- 조감독(목소리)
- 그러니까 그런 짓들이 다 무의미하다는 거 모르겠습니까? 구면씨, 당신은 문을 열기도 전에 열외입니다.
- 구면
- 왜지?
- 조감독(목소리)
- 명단에 없으니까요.
- 구면
- 명단에 없으면 기회도 없는 겁니까!
- 조감독(목소리)
- 그게 규칙입니다. 규칙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은 엉망이 되겠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겁니다.
- 구면
- 난 그런 규칙을 들은 적이 없어. 마감이 언제였는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 조감독(목소리)
- 그건 본인 사정이죠. 그리고 미리 알았다고 해도...
- 조감독(목소리)
- 나이, 경력, 비주얼, 어떤 것도 부합되는 게 없네요.
- 구면
- 그래도, 최소한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봐줄 수는 있잖아요!
- 조감독(목소리)
- 저희가 필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고집 그만 피우세요. 경찰 부르겠습니다.
- 구면
- 좀 열어주세요! 잠깐만 봐 주시면 됩니다. 딱 한 번이면...
- 구면
- 가까이 오지 마. 쏠 수도 있어!
- 조감독(목소리)
- 총 내려놓고 조용히 퇴장하세요. 안 그러면.
- 감독(목소리)
- 들어오라고 하세요.
- 조감독(목소리)
- 하지만...
- 감독(목소리)
- 괜찮아요.
- 구면
- (감격)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조감독(목소리)
- (한숨)운이 좋네요. 들어가세요.
- 구면
- 감사합니다! 처음 봐도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배우 구면입니다!
- 감독(목소리)
- 아닌 게 아니라 진짜 구면인 거 같은데... 우리 어디서 봤나?
- 구면
- 글쎄요... 전 감독님이 초면입니다만, (웃음)제가 워낙 친근한 인상이라...
- 감독(목소리)
- (말 자르며)됐고, 해 보세요 그럼. 꼭 보여줘야 할 연기.
- 감독(목소리)
- 잠깐, 잠깐! 아니, 진짜 진지한 사람이네 이 친구.
- 구면
- 네?
- 감독(목소리)
- 솔직해집시다. 본인이 배역을 따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 구면
- 그건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 하면...
- 감독(목소리)
- 이미 주연, 조연 모두 캐스팅 내정돼있습니다.
- 구면
- 그럴 수도 있겠지만...
- 감독(목소리)
- 좀 전까지 본 오디션에서 단역까지 다 마무리됐고.
- 구면
- ......
- 감독(목소리)
- 그럼 왜 문을 열어줬냐고? (사이)궁금해서. 분명 열리지 않을 문인데 무슨 생각으로 달려드는지... 불나방처럼.
- 구면
- 제 생각은 다릅니다. 준비된 자에겐 반드시 기회가...
- 감독(목소리)
- 그러니까 그 준비 말이야. 뭐가 준비인지 알고 있어요?
- 구면
- 그러니까 반복되는 연습, 피나는 노력...
- 감독(목소리)
- (피식)아니야. 진짜 노력은 정확한 계산이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승산이 있는 것인지. (점점 격앙되며)만약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묵묵히 한 결 같이 노력을 한다면, 그건 준비가 아니라 민폐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 감독(목소리)
- 그러니까... 우리 뻔한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 구면
- 뭐라고 해도 전 끝까지 제 길을 갈 겁니다...
- 감독(목소리)
- (버럭)당신 나이를 봐봐. 그렇다고 경력이 많기를 하나. 평범한 외모에. 도대체 왜 자꾸 당신을 뽑아야 한다고, 기회를 달라고 소리치는 거지?
- 구면
- 물론, 저는 나이도 많고 경력도 적고 평범한 외모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연기하는 걸 한 번 봐주시면 안 될까요?
- 감독(목소리)
- 나이도 적고, 경력도 많고, 빛나는 외모를 가진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는 배우들이 줄을 섰는데 왜 우리가 아까운 시간을 들여서 당신을 봐야하는 거냐고.
- 구면
- 당신 말이 다 맞아, 틀린 건 없어. 하지만 그거 알아? 지금까지 나한테 설교할 시간이었으면 내 연기를 보고도 남았을 거야. 기회를 주기가 그렇게 어려운거야?
- 감독(목소리)
- 역시 내 생각대로야.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까 바로 총을 꺼내잖아? 넌 그저 떼를 쓰고 있는 거야. 말로는 꿈, 노력, 공정한 기회를 운운하지만, 원하는 건 결국 결과 아니야? 그렇게 순수하게 연기가 좋으면 혼자 거울 앞에서 해도 되는 거잖아.
- 구면
- (떨리는 목소리)맞아... 하지만 달라. 내가 원하는 건, 결과가 아니야. 그저 누가 나를 봐주고, 내 행동에 반응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기만 하면 돼. 스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싶을 뿐이라고!
- 감독(목소리)
- 관심? 관심이라... 그럼 이렇게 합시다. 그 총으로 쏴요.
- 구면
- 네?
- 감독(목소리)
- 쏘라고. (웃음)물론 나 말고 당신. 진심으로 관심을 원하고 소통을 원한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한 무명배우가 오디션을 보다 권총으로, 탕! (사이)그럴 용기가 있다면 나도 당신의 진정성을 믿을 거 같은데.
- 조감독(목소리)
- 구면씨, 구면씨!
- 조감독(목소리)
- 들어가시면 됩니다.
- 구면
- 네? 아, 네.
조감독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애쓰는 구면. 하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다시 소파로 돌아가 힘없이 주저앉는 구면.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가는 순간 잠깐 열린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강렬한 빛.
홀린 듯 문 안을 바라보고 있는 구면.
사이
점점 어두워지는 조명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천천히 일어나는 구면,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총을 겨눈 채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다가가는 구면.
핀 조명이 요란하게 구면의 전신을 빠르게 훑는다.
그대로 달려가 문을 힘껏 당기는 구면,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점점 어두워지던 무대는 경찰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번쩍거린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구면.
여럿의 발소리가 들리자 당황하는 구면, 여기저기로 총구를 겨눈다.
순간 어두워지는 무대.
일제히 들리는 총 장전 소리.
붉은 색의 레이저 포인트가 구면의 이마에 집중된다.
그 때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밝은 빛
구면이 문을 열자 환하게 밝아지는 무대.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찡그리던 구면은 다시 옷매무새를 고친다.
자세를 잡고 목소리를 가다듬는 구면이 연기를 시작하려하자 웃음을 터뜨리는 감독
사이
갑자기 총을 치켜드는 구면
사이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는 구면.
감독과 조감독의 잡담과 웃음소리가 점차 커져가고.
‘탕!’ 소리와 함께 배경은 붉은 조명으로 빠르게 물들어간다.
조명이 밝아지면 구석 소파에서 잠들었던 구면, 손에 모형권총을 든 채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심호흡을 하는 구면.
모형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자마자 딱, 소리가 들리고.
비비탄 총알 하나가 문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 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