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경비원을 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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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아줌마, 여학생, 아저씨, 경비원, 시바견, 푸들, 대형견, 주민1, 주민2
무대
분리수거장. 좌로는 아파트 입구가, 우로는 경비실 입구가 있다.
아저씨, 가져온 쓰레기를 분류해 버리고 있다.
아줌마, 양손 가득 분리수거 거리를 가지고 나온다. 아저씨 옆에 서서 분리수거를 시작한다. 유리병을 버리려다 말고 인상을 쓰며 분리수거대 안에 버려져 있는 소주병을 꺼낸다. 뚜껑이 껴 있고 안에 잔여물도 남아 있다.
아줌마 (질색하며) 이게 뭐야, 증말. 요즘 젊은 것들 하고는.
아줌마, 도로 소주병을 던지듯 넣는다. 이번에는 스티로폼 칸으로 자리를 옮긴다. 넘칠 듯 쌓여 있는 스티로폼에 비닐이 붙어 있다. 비닐 붙은 것을 더럽다는 듯 손끝으로 들어 올리자 쌓여 있던 쓰레기 두어 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교복을 입고 학교 가방을 멘 여학생이 분리수거거리를 들고 온다.
- 아줌마
- 비닐을 떼서 버려야지. (집어든 스티로폼을 도로 더미 위에 올려놓고는 옆에 서 있는 아저씨를 돌 아본다) 안 그래요?
- 아저씨
- ...
여학생, 아줌마 눈치를 보며 종이류에 버리려던 우유팩에서 빨대를 분리한다.
- 아줌마
- (무안한) (한숨) 경비는 대체 어딜 갔는지.
- 아저씨
- 다음 주에나 온댑니다.
- 아줌마
- 네?
- 아저씨
- (분리수거를 계속하며) 개에 물렸다나.
- 아줌마
- 개요? 어머머, 이게 무슨 일이래.
- 여학생
- (옆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깜짝 놀라는 여학생) 경비아저씨가 개에 물렸다고요?
- 아줌마
- 그렇대. (아저씨에게) 아니, 어쩌다 그랬대요?
- 아저씨
- 저도 옆 동 경비한테 전해들은 거라... 그런데 다들 친하셨나 봐요?
- 아줌마
- 뭐 그건 아니지만서도.
- 여학생
- 그래서, 누구 집 개래요?
- 아줌마
- (쓰레기를 버리려다 말고) 아, 그 집인가 보다. 왜, 큰 개 키우는 사람 있잖아.
- 여학생
- 그 크고 까만 개요?
- 아줌마
- 응. 생각해보니까 입마개도 안하고 다니잖아.
- 아저씨
- 그 개는 아닐 거요. 주인이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는데.
- 여학생
- 맞아요. 엘리베이터 탈 때도 먼저 가겠냐고 꼭 물어보시고, 굵은 목줄도 항상 채워 다니시잖아요. 거의 짖지도 않는 거 같던데.
- 아줌마
- 목줄이야 끊으면 그만이고. 그런 커다란 개들은 입마개를 씌워야 한다니까? 가끔 마주치면 무서 워서, 원. 그런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부터가 이상한 거지.
- 여학생
- 혹시, 푸들이 문 거 아닐까요?
- 아줌마
- 푸들? 그 쪼그만 애?
- 여학생
- 네. 옆집이 미니푸들을 키우는데, 보기보다 진짜 사나워요. 문만 열어도 컹컹 짖고. 아침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하루는 그 집이 문을 열어놨는데, 푸들이 목줄을 달고 그대로 튀어나오지 뭐예요. 맹렬하게 짖으면서 나오니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더라고요. 막 달려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유리문을 닫았는데, 글쎄 그 너머에서 침을 흘리면서 컹컹거리는 거예요.
- 아줌마
- 학생 큰일 날 뻔 했네. 그런 사람들은 지 개가 사나운 줄을 몰라. 시끄럽게 구는 거 알면 성대 수술이라도 시키던가. 맨날 민원 들어오게 만들고. 멀쩡한 다른 주인들만 욕을 먹는다니까?
- 아저씨
- 그러는 아줌마도 개 키우지 않아요?
- 아줌마
- 키우기야 키우죠. (사이) 지금 우리 개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 아저씨
- ...
- 아줌마
- (코웃음) 이봐요, 우리 아들이 시바견이야. 시바견 몰라요? 얼마나 귀엽고 온순한데.
- 여학생
- 하긴, 시바견이 누구 물 개는 아니죠. 요즘 인기 되게 많던데... 귀엽고 포동포동해서 애기랑 같이 키우는 집도 많대요.
- 아줌마
- 거 봐요. 그렇다니까.
전화벨이 울린다. 아저씨가 손에 들고 있던 텅 빈 분리수거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받는다. 여학생, 마저 분리수거를 한다.
- 아저씨
- (전화기에 대고) 응. 응? 출근 안 하냐고? 해야지, 이제.
- 아줌마
- (분리수거하는 손이 점점 빨라진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천사 같은 앤데... 얜 경망스럽게 짖지도 않어.
- 아저씨
- (전화기에 대고) 지금 올라갈 거야.
아줌마, 아저씨를 흘끗 째려보고는 분리수거 바구니 안에 남은 쓰레기를 캔 통에 털어 넣는다. 작은 스티로폼과 비닐들이 딸려 들어간다. 아저씨,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집어넣고 분리수거바구니를 주섬주섬 주워든다.
아줌마 그래도 경비가 근무를 나와야지. (구시렁거리며 아파트로 돌아간다.)
여학생 어, 버스 시간 늦겠다. (손에 들고 있던 비닐을 통에 쑤셔 넣고 뛰어간다.)
혼자 남은 아저씨, 한숨을 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 아파트로 되돌아간다. 텅 빈 무대. 조명이 어두워진다. 컹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푸들, 대형견, 시바견이 등장한다. 무대 앞쪽만 조명 켜진다. 맑고 새침한 목소리로 종알거리는 푸들, 굵고 낮은 목소리의 대형견, 그리고 뭐라 말하는지 알 수 없게 그르릉거리는 시바견.
개들이 무대 앞쪽에서 대화하는 동안 주민1, 2가 나와 주위를 살피고는 분리수거거리와 쓰레기봉투를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 푸들
- 웃겨, 진짜. 지들이 뭔데 내 목소리를 뺏는대?
- 시바견
- (그르릉거린다)
- 푸들
- 뭐래니. 너도 성질 좀 죽이고 살어. 한 번 더 그랬다가는 사람들이 기다란 주삿바늘을 눈앞에 들이밀지도 몰라.
- 시바견
- (그르릉거린다)
- 푸들
- 아우, 답답해.
- 대형견
- (느릿한 말투로) 니들은 작아서 좋겠다.
- 푸들
- 너 지금 나 키 작다고 놀리니?
- 대형견
-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사이) 우리 아빠는 나 때문에 맨날 사람들한테 혼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거든.
서로와 무대 이곳저곳에 삿대질하며 잔뜩 열을 올린 채 소리 없이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주민 1과 2.
- 대형견
- 어쩌면 내 입에 철로 된 바구니를 끼우게 될 수도 있대.
- 푸들
- 나도. (시바견을 가리키며) 쟤처럼 목 속 어딘가를 잘라낼지도 모른댔어.
- 시바견
- (그르릉거린다) (답답해하며 목 주위를 잡아 뜯는다)
푸들, 대형견, 시바견 퇴장. 계속 싸우던 주민 1과 2, 싸움을 멈추고 퇴장하는 개들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퇴장.
조명이 완전히 켜진다.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경비원이 절뚝거리며 걸어 나온다. 난잡하게 어질러진 분리수거장. 경비원, 주머니에서 목장갑을 꺼내고는 분리수거장을 정리한다. 아저씨, 추리닝 차림으로 아파트에서 걸어 나온다.
- 아저씨
- 발은 좀 괜찮으세요?
- 경비원
- 허허. 살짝 삔 건데요, 뭐.
- 아저씨
- (고개를 갸웃하더니 옆에서 묵묵히 경비원을 돕는다) (사이) 경비원 일, 어때요?
- 경비원
- 왜, 하시려고?
- 아저씨
- 이 나이 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습니까.
- 경비원
- (허탈하게 웃는다) 아서요, 아서.
경비원, 계속 쓰레기를 치운다.
- 아저씨
- 요즘에는 개들이 사납게 안 굴어요?
- 경비원
- 개야 뭐……,
동 대표의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진다.
- 동대표
- 아아. 안녕하십니까, 주민 여러분. 백 일동 대표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경비실 내 에어컨 설치 안건은 주민 투표 결과 과반수로 무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 번 안내말씀 드립니다. 경비실…….
- 경비원
-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주우며) 어딜 가나 사람이 제일 무섭죠.
경비원, 느리게 몸을 일으킨다.
아줌마, 경비실 문 앞에 서서 다급하게 소리친다.
- 아줌마
- 저기요! 이백 이호 택배 안 왔어요?
- 경비원
- 잠시만요!
경비원, 아저씨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절뚝거리며 경비실로 향한다. 아저씨, 그 모습을 바라보다 아파트로 힘없이 돌아간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