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법
손명진
143호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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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잔디밭. 구석에 벤치 하나. 할아버지, 아빠, 엄마, 아들1, 2는 중앙에 돗자리 깔고 앉아 도시락 먹는 중. 그들 앞에 김밥, 샌드위치, 딸기, 물, 덜어먹는 접시, 컵 등이 놓여있다. 아빠, 엄마, 아들2는 즐거운 표정으로 잘 먹지만, 아들1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깨...
등장인물 할아버지 / 아빠 / 엄마 / 아들1 (13세 남) / 아들2 (7세 남) / 옆집노파
공원잔디밭. 구석에 벤치 하나. 할아버지, 아빠, 엄마, 아들1, 2는 중앙에 돗자리 깔고 앉아 도시락 먹는 중. 그들 앞에 김밥, 샌드위치, 딸기, 물, 덜어먹는 접시, 컵 등이 놓여있다. 아빠, 엄마, 아들2는 즐거운 표정으로 잘 먹지만, 아들1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깨지락거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할아버지는 물만 마시면서, 속이 불편한지 이따금씩 윗배를 쓸어내린다.
- 엄마:
- (아들들을 보며) 오랜만에 소풍 오니까 좋지? (아들1은 묵묵부답. 아들2는 바로 “네!” 아빠는 아들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 아들2:
- (김밥을 입에 물고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근데 할아버지는 왜 안 먹어?
- 할아버지:
- (옅은 웃음을 지으며 힘겹게) 할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물만 마셔도 배불러.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먹어. (윗배를 쓸어내린다.)
- 아빠:
- (핀잔주듯) 아버지도 참, 이제 서른이신데 더 젊어지셨다고 해야죠.
- 할아버지:
-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어, 그렇지 참. (나직이 한숨)
- 아들2:
- (아빠와 할아버지를 번갈아보다가) 서른이 뭔데?
- 엄마:
- (온화한 미소) 삼십이란 뜻이야.
- 아들2: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할아버지가 엄마아빠보다 더 어려?
- 아들1:
- (짜증 섞인 말투로 나직하게) 입 다물고 조용히 먹기나 해.
- 아들2:
- (울컥) 형은 왜 내가 할아버지 얘기만 하면 그래?
- 엄마:
- (아들1에게 곱게 눈을 흘기며) 그래, 아들. 전엔 동생 그렇게 예뻐하더니 요샌 왜 그래? (아들1, 불만스런 표정으로 뭐라 대꾸하려다 아빠의 엄한 표정 보고 다시 음식을 깨작거린다.)
- 아빠:
- (아들2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회춘법 때문에 그래.
- 아들2:
- 그게 뭔데?
- 아빠:
- 50세가 지나면 그때부터 나이가 거꾸로 가는 거야. 그러니까 아주 옛날식으로 51세면, 지금으로는 49세가 되는 거지. 옛날에 52세는 이제 48세, 예전에 53세는 이제 47...
- 아들2:
- 그럼 50살부턴 다시 한살씩 어려지는 거야?
- 아빠:
- 그런 셈이지. 똑똑하네, 우리 막내.
- 아들2:
- 우와, 신기하다! 왜 난 몰랐지?
- 엄마:
- 형 나이가 되면 학교에서 자세히 배울 거야.
- 아들2:
- (가만히 생각하다가) 근데 형하고 할아버지 나이가 같아지면? 그럼 나는 형이 둘이야? (아빠와 엄마,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다. 할아버지, 힘없이 희미한 웃음. 아들1은 성난 얼굴로 아들2를 째려보다 한숨만 푹푹 쉰다.)
- 아들2:
- (또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러다 할아버지가 아기나이가 되면 어떻게 해?
- 엄마:
- 그때까지 계신다면...(할아버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아기처럼 보살펴드려야 하나? (뜻 모를 미소. 할아버지, 마지못해 웃어 주다가 나직이 한숨)
- 아들2:
- 그럼 내가 할아버지 매일 업어줘야지. 할아버지도 나 어렸을 때 많이 업어줬으니까.
- 할아버지:
- (힘없이 웃으며) 그래. (웃음 끝이 쓸쓸하다. 그 사이 옆집노파가 지팡이 짚고 등장해서 조용히 벤치로 걸어가 앉는다. 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는다.)
- 아들2:
- (노파를 뒤늦게 발견하고) 어? 옆집할머니다. (다른 가족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눈길 주지 않고, 마치 아들2의 말이 안 들리는 사람들 마냥 대꾸조차 없다.)
- 엄마:
- (아들2의 접시에 김밥과 샌드위치를 올려주며) 어서 먹어. (부드러운 미소를 짓지만 아들2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 아들2:
- (다들 아무 말 없으니 조용히 눈치 보며 샌드위치를 먹다가 조심스럽게) 엄마...
- 엄마:
- (무심결에 아들2의 눈을 바라보며) 응?
- 아들2:
-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도 줄까?
- 엄마:
- (여전히 벤치 쪽을 보지 않지만 좀 전과는 달리 부자연스러운 미소.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며) 있긴 누가 있다고 그래. 아무도 없어.
- 아들2:
- (갸우뚱거리다 벤치 가리키며) 저기 의자에 앉아 있잖아. (엄마, 난감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 아빠:
- (잠깐 망설이다가) 작년까진 한 살이라서 있었는데, 올해부턴 소멸상태라서 없는 거야.
- 아들2:
- 소멸? 그게 뭔데?
- 아빠:
- 50세부터 다시 점점 어려지다가, 0세가 되면 어떻게 될까?
- 아들2:
- 음...(곰곰이 생각하다) 아직 안 태어난 거야?
- 아빠:
- 비슷하긴 한데, 존재자체가 그냥 없어지는 거야. 아예 없는 사람이 되는 거지.
- 아들2:
- (벤치를 가리키며) 저기 있는데?
- 아빠:
- (단호하게) 없는 거야.
- 아들2:
- (아빠와 벤치 쪽을 번갈아 바라보다) 있는데?
- 아빠:
- (아들2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엄하게) 없는 거야. (할아버지는 땅바닥만 보면서 침울한 표정. 아들1은 괴로운 표정)
- 아들2:
- (가족들 눈치 보다가)...왜 없어야 되는데?
- 아빠:
-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어조로 설명자체에만 몰입하면서) 인간의 생명은 오래되면 유지보수비용이 많이 들어. 가계경제에 타격이 심하고,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지. 그게 도무지 해결이 안 되다 보니까, 지금은 회춘법이라고 불리는 관습이 사회 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거야. 원래는 군데군데서 쉬쉬하며 행해지던 건데, 처음엔 국가에서도 금지시키다가 나중엔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지니까 어느 순간부터 묵인해주기 시작했어. 그러다보니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상식이 되었고, 법에 상응하는 지위까지 얻게 된 거야. (아들2, 전혀 이해 못한 표정으로 갸우뚱) 그러니까 회춘법은 쉽게 말해서, 수명이 다 되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주는 거야. 소멸환경을 조성해주고, 그래도 소멸되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소멸의지를 갖도록. 그러다 0세가 되면서 자동소멸상태가 되면, 그때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강도 높게 소멸을 강제...
- 엄마:
- (보다 못해 웃는 얼굴로 곱게 눈을 흘기며) 아유, 그렇게 어렵게 말하면 어린 애가 어떻게 알아들어요? (아들2를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0세가 되면 아무도 아는 척해주거나 말 걸어주거나 신경써주지 않아. 가족들조차. 가족들하고 같이 살게는 해주지만,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 아들2:
- 깜빡하고 말 걸면 어떻게 해?
- 엄마:
- (부드럽게) 어떻게 되진 않지만 다들 그러기로 했는데 한 사람만 어기면 어떻게 될까?
- 아들2:
- (엄마아빠눈치 보며 머뭇거리다) 나빠. (아빠가 “그럼.”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벤치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래도 샌드위치 하나만 주면 안 돼? 할머니는 나한테 과자도 주고 사탕도 주고 그랬었는데...
- 아빠:
- (엄한 표정으로 다그치듯)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곤란해지면 좋겠어?
- 아들2:
- (머뭇거리다) 아니...(풀죽은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번득) 그럼 힘든 일 있거나 아프면 어떻게 해? (아빠가 화난 표정으로 입을 열려하자 엄마가 팔을 잡고 저지한다.)
- 엄마:
- (아들2를 바라보며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그건 알아서 견뎌야지.
- 아들2:
- 그래도 못 참겠으면?
- 엄마:
- (온화한 미소로 아들2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도저히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사람은 저절로 숨을 멈추게 되어있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어떤 식으로건.
- 아들2:
- 가족이 조금만 도와주면 안 돼? 나는 가족들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 아들1:
- (중얼대는 투로) 웃기고 있네. (아빠가 눈을 부릅뜨며 경고의 눈빛을 보내자,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 아들2를 보며) 그런 허황된 꿈은 집어치우고 빨리 죽을 생각이나 해! 그래야 그나마 행복할 테니까! (아들2, 울음 터트린다.)
- 아빠:
- (버럭) 너!
- 아들1:
- 제 말이 틀렸어요? 어차피 사람취급도 못 받을 거...(할아버지가 심장이 아픈 듯 가슴부위를 움켜쥐는 걸 보고,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퇴장해 버린다.)
- 아들2:
- (울먹이며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할아버지 아파?
- 할아버지:
- (아들2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없이) 아냐. 괜찮아.
- 엄마:
- (아들1이 나간 쪽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갈수록 왜 저러지? 다른 애들은 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 쟤만 저렇게 유난스럽게 굴어.
- 아빠:
- 저러다 차차 익숙해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
- 엄마:
- (한숨) 이래서 딸이 있어야 되나 봐요. 이럴 때 눈치껏 살랑살랑 애교라도 떨어주면 위로도 되고 얼마나 좋겠어요. 더 늦기 전에 생겼으면 좋겠는데...
- 아빠:
- 노력하고 있으니까 곧 생기겠지. (딸기를 포크로 집어 엄마에게 건네주며, 분위기 전환하려고 밝은 목소리로) 아직은 없지만, 이렇게 예쁜 것만 골라서 먹고 좋은 말만 들으면 이제 곧 생길 거야. (엄마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사랑한다, 곧 생길 내 딸아. (엄마, 기분이 풀린 듯 까르르 웃으며 딸기를 받아먹는다. 아들2, 엄마와 아빠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딸기 몇 개를 골라 새 접시에 담는다.)
- 엄마:
- (감동한 표정으로) 아들도 엄마 주려고? 그래도 우리 막둥이가 아직은 딸 노릇까지 톡톡히 해주니까...(라고 말하면서 접시로 손을 뻗는데 아들2가 몸을 살짝 돌려 피하자 당황한다.)
- 아들2:
- 엄마는 아빠가 주잖아. 나는 할머니 가져다주려고.
- 아빠:
- (난처한 표정으로 나무라며) 아무도 없다니까.
- 아들2:
- 지금은 없지만, 예쁜 것만 먹이고 (방금 전 아빠가 엄마한테 해 준대로 흉내 내며) “사랑한다.” 해주면 다시 생길지도 몰라. (접시를 조심스레 들고 벤치로 걸어간다. 불이 꺼진다.)
- 호들갑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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