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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냄비

송재원
144호 2018.07.19
등장인물냄비덕구 개, 15살주방을 표현한 무대.그곳에서 의인화된 냄비가 울고 있다.

등장인물
냄비
덕구 개, 15살

주방을 표현한 무대.
그곳에서 의인화된 냄비가 울고 있다.

냄비
흐으흑, 흐윽.

냄비의 울음 소리에 이끌리듯 주방 안으로 덕구가 들어온다.

덕구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냄비가 우는 걸 다 보네.
냄비
어? 나한테 하는 말이야?
덕구
지금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울고 있는데.
냄비
그러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개하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덕구
왜 그렇게 우는 거야?
냄비
오늘 또 나 때문에 싸웠어. (다리를 가리키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음새가 고장 났거든. 얼마 전에 여자 주인이 남자 주인한테 그렇게 말했더니 버리라고 했어. 그 날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는데 (뒤꿈치를 가리키며) 오늘 고무 패킹이 타버렸어. 그랬더니 왜 안 버렸냐고, 화내고, 아직 쓸만한데 버리냐고 또 화내고, 우리가 거지냐고 그러고, 쓸만한 걸 버리는 게 미친놈이지라고 또 그러고, 너는 코가 막혔냐고 이 냄새로 날 죽이려고 하는 거냐고 하고. 어쨌든 막 그랬어.
덕구
아, 그래서 아까 그렇게 시끄러웠던 거구나. 요즘 들어서 자꾸 졸려. 아무리 시끄러워도 졸리면 그냥 계속 자. 탄 냄새도 잘 못 맡겠어. 그래서 좀 괜찮아?
냄비
모르겠어. 막 죽일 듯이 서로 싸우다가, 갑자기 눈 마주치더니, 너 화내면서 눈 크게 뜨니까 흰자만 보여서 괴물 같아. 그 얘기하고 갑자기 웃으면서 끝났어.
덕구
그거 말고. 너 고무 패킹 탔다며.
냄비
아, 좀 쓰라리긴 한데 괜찮아. 나 걱정해주는 거야?
덕구
걱정은 뭐.... 그래서 널 어떻게 할 거래?
냄비
글쎄. 이제 버리지 않을까? 쓸모가 없으니까.
덕구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는 게 당연한 건가?
냄비
아마 그렇겠지.
덕구
그러면 나도 버려지겠네.
냄비
그게 무슨 소리야.
덕구
나도 이제 이 집에서 쓸모가 별로 없으니까. 귀찮아서 그런지 요즘은 그냥 밥도 냄새나는 그릇에다 막 줘. 그릇 냄새랑 섞여서 맛이 이상해. 그런데 그거라도 안 먹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그냥 먹어.
냄비
그렇구나.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덕구
저기, 우리... 이 집 나갈래?
냄비
그게 무슨 소리야?
덕구
집 밖에 좋은 공원이 있거든. 예전엔 거기 산책 많이 했는데, 요즘은 거의 못했어. 뭐 더 좋은 곳으로 가면 좋지만, 힘이 들어서 거기까지가 한계일 것 같아. 버려질 거라면 우리가 먼저 버리자.
냄비
나는 너처럼 움직일 수가 없는데....
덕구
내가 데려갈게.
냄비
설마 나 때문에 나가려는 거야? 우리가 이 집에서 오랜 시간 같이 지내긴 했지만 이야기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이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덕구
오해하지 마, 꼭 너 때문인 건 아니야. 요즘 내가 왜 이 집에 있어야 하나 생각 많이 했거든. 주인놈들 마주치기 싫어서 이렇게 잘 시간에만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냄비
흐윽, 흐으으윽.
덕구
어, 어, 야! 너 또 왜 울어?
냄비
모르겠어. 나이 먹었더니 눈물만 많아지는 것 같아.
덕구
울 시간 없어. 곧 주인놈들 깰 시간이야. 이제 결정해야 해. 나랑 같이 갈 거야?
냄비
(사이) 응. 갈게.

덕구가 냄비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는다.

덕구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
냄비
알았어.

구 냄비를 데리고 주방을 빠져나간다.
잠시 후, 남자와 여자의 그림자가 주방에 나타난다.

여자(목소리)
야! 너 냄비 버렸어? 내가 그거 버리지 말라고 했잖아!
남자(목소리)
이게 또 생사람 잡네. 내가 그걸 왜 버려!
여자(목소리)
그런데 냄비가 없잖아! 냄비가 발이라도 달렸니!
남자(목소리)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나저나 덕구 이 녀석은 어디 있는 거야!
여자(목소리)
냄비가 없어졌다니까 덕구 얘기를 왜 해! 넌 정말 이게 문제야!
남자(목소리)
에이, 몰라! 여기다 논 거 아니야?
여자(목소리)
확인해 봤다니까. 정말 안 버렸어?
남자(목소리)
안 버렸다니까. 그나저나 진짜 덕구는 어디 간 거야.
덕구야! 덕구야!

덕구를 부르는 소리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암전. 막.

호들갑 작가소개
사람에겐 모두 각기 다른 기억 저장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진이나 영상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제게 허락된 모든 시간을 희곡을 통해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