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 구이
이지혜
145호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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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집 안. 나를 연기하는 나와 내 안의 나(독백)가 앞, 뒤로 위치해 있다. 다른 인물들은 한 명이 연기 한다.
백반집 안. 나를 연기하는 나와 내 안의 나(독백)가 앞, 뒤로 위치해 있다.
다른 인물들은 한 명이 연기 한다.
- 나
- (독백) 가자미. 그놈의 가자미가 날 미치게 만든다.
- 아주머니
- 두 분이세요?
- 나
- 네. 두 개 주세요.
- 실장님
- 올 설에 어디 가?
- 나
- 아뇨
- 나
- (독백)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이 백반 집에서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가자미 구이는 내가 이곳에 오는 150%의 이유이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가자미 차별을 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주머니 반찬과 국을 식탁에 놓으며
- 아주머니
- 맛있게 드세요.
- 나
- (독백) 또 ! 또 ! 또 !
- 실장님
- 너는 평창 안 가? 하 이 놈이 가자고 난리야. 차 밀린다니까 새벽에 가면 되지 않냐고 너 일어날 수 있어? 하니까 잠 안 자고 기다린다는 거야. 하이고 미쳐. 운전은 내가 하는데.
- 나
- 표는 사셨어요?
- 실장님
- 가서 사지 뭐.
- 나
- 인기 있는 건 이미 다 팔렸을 걸요. 가격이 어마어마할텐데.
- 실장님
- 스키 점프 이런 건 밖에서 해서 싸. 스케이트 보면 좋은데...
- 나
- (독백) 실장님 아들이 평창에 가고 싶든 말든 스케이트를 타고 스키 점프를 하든 상관없다. 내 눈과 온 정신은 매 번 큰 건 실장님, 작은 건 내게 할당되는 가자미의 크기 일 뿐이다. 대화 내내 실장님은 가자미에 젓가락 한 번 대지 않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내가 얼마나 가자미를 좋아하는지 보세요!’라는 싸인을 남기고 싶어 쉼 없이 가자미의 속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 실장님
- 차타면 엄청 밀리겠지?
- 나
- 기차 타세요.
- 실장님
- 기차역에서 경기장까지는?
- 나
- 셔틀 버스 있겠죠.
- 실장님
- 자주 다니나?
- 나
- 인터넷으로 찾아보세요.
- 나
- (독백)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실장님이 평창으로 걸어가든 전세기를 타고 가든 상관없다. 실장님의 젓가락이 가자미 쪽으로 가고 있지 않는 다는 것만 보일 뿐이다. 실장님은 귀찮은 걸 딱 싫어하신다. 식당에 줄 서서 먹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양반인데 가시를 발라야 하는 생선 구이는 오죽 하겠는가. 개개인의 성향을 무시한 채 남자는 많이 먹을 것이다, 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생선 마니아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는 행위는 더 이상 자행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 실장님
- 어디보자. 웹하드에 뭐가 올라왔나 볼까?
- 나
- (독백) 이럴 줄 알았다. 실장님은 이번에도 가자미 배 한 가운데 두 번 젓가락 질 한 게 전부이다. 나한테 왔으면 온전히 사랑받았을 텐데... 난 밥은 남겨도 가자미는 싹싹 다 발라 먹었다. ‘이것 좀 보세요! 동네 사람들! 제가 가자미를 이렇게 좋아해요. 실장님은 다 남겼대요~’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마음 눌러 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아주머니도 느끼는 바가 있으시겠지?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지? 그래. 의식 있는 식당 주인이라면 손님이 남긴 반찬을 보고 데이터를 수집해야지. 암 그래야지. 그게 맞는 거지. 오늘의 아픔은 결코 완전한 패배가 아닌 거야. 기죽을 필요 없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 하자.
- 아주머니
- 니 몇 번을 얘기해?
- 나
- 네?
- 아주머니
- 14,000원이요.
- 나
- (카드를 꺼내며) 여기요...
사이
- 나
- 저...
- 아주머니
- 자. 카드. 안녕히 가세요.
- 나
- 아... 네...
- 나
- (독백) 아 나는 왜 시원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걸까? 나는 가자미가 좋다고! 가자미가 맛있다고! 앞으로 큰 놈으로 달라고!! 왜 말을 하지 못 한 걸까? 이 머저리. 넌 큰 가자미를 먹을 자격이 없어. 그 마디 못 해 놓고 무슨! 누굴 탓하는 거야? 이 무서운 세상에 내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다니. 그러고도 남 여 평등 아니 인권을 논할 수 있는 거야? 아니지. 내 선에서 해결 할 수도 있었잖아. 실장님한테 바꿔 먹자고 그 한마디 못 해? 그러면 끝날 일 아니야? 이 가자미가 내 가자미다 왜 말을 못하냐고 왜!! 이래가지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니 정말.
나(독백)의 끊임없는 탄식과 쓸데없는 자기반성이 계속되자 나는 질린다는 듯이 나(독백)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휑 나가 버린다.
- 호들갑 작가소개
- 1,573,527명의 이지혜 중 한 사람.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