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중에 둘은 확실히 사탄
이철용
146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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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중앙의 유리막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오른편에 수녀가, 왼편에 사형수가 앉아 있다. 유리막 중앙에는 막대사탕 손잡이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 몇 개가 뚫려 있다. 간수는 수녀 곁에 서 있고,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셋 중에 둘은 확실히 사탄이다.
등장인물
사형수: 젊은 여성으로, 왼쪽에는 <3상32> 명찰이, 오른쪽에 수감번호를 뜻하는 <666> 명찰이 붙어있다.
수녀: 오랫동안 수형자들의 회개를 맡은 늙은 수녀.
간수: 수녀를 존경하는 중년의 여성 교도관.
무대 중앙의 유리막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오른편에 수녀가, 왼편에 사형수가 앉아 있다. 유리막 중앙에는 막대사탕 손잡이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 몇 개가 뚫려 있다. 간수는 수녀 곁에 서 있고,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
셋 중에 둘은 확실히 사탄이다.
수녀, 사형수를 지켜보다가 자리를 뜨려고 한다.
- 사형수
- 가지 마세요 수녀님!
- 수녀
- 드디어 입을 여셨군요.
- 사형수
- 저를…. 버리지 마세요. 저를 어여삐 여기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수녀
- 그런데 살로메. 한 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오늘도 벌써 대면시간이 끝나갑니다.
- 사형수
- ….
- 수녀
- 말하는 입이 없으면 듣는 귀 또한 소용이 없지 않겠어요?
- 사형수
- 수녀님, 저는…. 아닙니다. (간수의 눈치를 본다) 차라리 제가 듣는 입장이면 좋겠어요.
- 수녀
- 살로메. 그분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데. 알면서도 굳이 듣겠다는데. 몇 번이고 기회를 주시겠다는데 무엇을 망설이지요?
- 사형수
- 수녀님.
- 수녀
- 세례를 받았지요?
- 사형수
- 받았어요, 받았습니다.
- 수녀
- 그래요. 내가 지켜보았지요. 수감된 상태로 세례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열하면서 새 사람이 되겠다고, 그분의 종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것 제가 똑똑히 보았어요.
- 사형수
- 다짐했지만. 그래도….
- 수녀
- 어서 말해봐요. 무엇을 걱정하는지.
- 사형수
-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 수녀
- 처음부터 차근차근.
- 사형수
- 아아.
- 수녀
- 괜찮아요. 잠시 길을 잃어버린 것뿐이에요. 제가 길잡이랍니다. 악마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들 하지요? 빛과 함께 돌아오면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사형수
- 수녀님. 수녀님 손을 꽉 잡고 전부 털어놓고 싶어요.
- 수녀
- 사랑의 손은 철창도 뚫어요. 내가 꽉 쥐고 있을게.
- 사형수
- 저…. 수녀님.
- 수녀
- 그래요. (다급하게) 어서, 어서 말해봐요.
- 사형수
- 수녀님을 믿어도 될까요?
- 수녀
- 다른 사람 다 밀어내도요. 저는 믿으세요.
- 사형수
- 그럼…. 담배 한 개비만 주세요.
- 간수
- (버럭) 안 됩니다, 수녀님!
- 수녀
- (타이르듯) 살로메.
- 사형수
- 저 정말 믿고 싶어요. 믿음의 증거를 주세요.
- 수녀
- 나를 믿지 못합니까?
- 사형수
- 담배 한 개비로 모든 것을 말하겠어요, 정말입니다.
- 수녀
- 어려운 부탁을 하는군요.
- 사형수
- 안 된다면, 차라리 입 다물고 지옥 가서 살래요.
- 수녀
- 살로메가 재밌는 말을 하는군요.
- 사형수
- (떨다가) 죄송해요. 본심이 아니었어요!
- 수녀
- (사이) 우리 이렇게 합시다. 살로메가 죄를 고백하고 또 진정으로 뉘우친다면은, 제가 담배 한 개비를 가져와서 (유리막을 톡 치며) 여기 구멍에 꽂아 넣지요. 불을 붙여서요.
- 간수
- 수녀님!
- 수녀
- 자, 루시아.
- 간수
- 말도 안 됩니다!
- 수녀
-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 간수
- 수녀님은 아무것도 모르세요!
- 수녀
- 규정이라면 나도 잘 압니다.
- 간수
- (애원하듯) 수녀님, 저한테도 사랑을 갈쳐주신 수녀님. 수녀님을 존경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아시지요. 제가 어떤 맹치로 살아왔는지요. 자식들 떠나보내고 죽지 못해 살다가, 그분을 딱 만나가지고서는 밤마다 치성 드리는 거, 수녀님 아시지요.
- 수녀
- 그럼요.
- 간수
-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어요.
- 수녀
- 왜 그렇게 몸을 떨지요?
- 간수
- 그건, 그건 이 여자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사이
- 간수
- 들어보세요, 수녀님.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녜요. 저 여자는 밤중에 히죽이죽 웃고요, 지몸을 막 쥐어박고요. 또, 또 그, 그분을 막 원망합니다! 저주도 해요, 마녀처럼요. 먹지도 않는데 팔팔하고, 뭣보다 수감번호를 보세요!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딨냐구요!
- 수녀
- 루시아.
- 간수
- 더 있습니다. 암만 해두 요상해서 신상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딱….
- 수녀
- 뱀띠라도 됩니까?
- 간수
- 맞아요! 뱀띠에요!
- 수녀
- 나도 사탄입니까?
- 간수
- 예?
- 수녀
- 나도 뱀띠인데, 나도 사탄이냐구요.
- 간수
- ….
- 수녀
- (분노를 억누르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방금 당신은 우리 모두를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 간수
- 그분... 그분 앞에서 백번 천번 맹세할 수 있는데요?
- 수녀
- 맹세는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맹세는 거짓입니다. 아무래도 좀 쉬는 편이 좋겠군요. 내가 말씀을 드리지요. (사이) 살로메, 한 달 동안 찾아왔지만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부족한 탓일까요? 혹 이것도 시련의 일부일까요?
- 사형수
- ….
- 수녀
- 어쩔 수 없지요.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 사형수
- 고백하겠습니다.
- 수녀
- 예에?
- 사형수
- 전부 고백하겠습니다! 수녀님을 믿겠습니다.
- 수녀
- 아, 정말요? 그래요, 살로메. 전부, 전부 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 사형수
-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억누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수녀
- 왜?
- 사형수
- (손가락으로 간수를 가리킨다) ….
- 간수
- (꿈쩍도 않는다) ….
- 사형수
- 몸도 영혼도 흙투성이입니다, 수녀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저도 사람입니다! 저 악마가 제게 협박을 했습니다. 수녀님 귀를 더럽히면, 가식을 떨면 저를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 수녀
- 뭐라고요.
- 사형수
- 매주 수녀님이 오실 때마다,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고해성사하고 싶었지만 협박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습니다. 제압봉으로 저를 구타했습니다. 정수리, 어깨, 옆구리, 무릎, 손목. 매일 밤 울며 잠들어, 눈이 부르트고 얼굴이 부었습니다. 여기 터진 입술이 보이세요? 죄인 을 괴롭히는 저 사람이 바로 사탄입니다!
- 수녀
- 사실입니까?
- 간수
- (몹시 덤덤하게) 아뇨.
- 사형수
- 수녀님도 저를 믿어주세요. 믿어주실 거죠?.
- 수녀
- 아, 그래요. 하지만….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데. (웃다가 표정을 가다듬는다) 살로메, 믿어줘서 고마워요. 내가 잘…. 그래요. 해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 사형수
- 그분께 맹세해주세요.
- 수녀
- 하늘에 계신 그분께?
- 사형수
- 맹세하실 수 있어요?
대면 종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 수녀
-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자, 살로메. 다음 주에 또 만납시다. 그 다음 주에도. 다가올 다음 다음 주에도. 기다릴 수 있지요 살로메? 아, 그래! 담배를 가져오지요.
간수가 나간다.
수녀가 나간다.
암전.
- 호들갑 작가소개
- 해야 할 이유가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할 수 있기를
좋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조심성 있는 마음이, 절망보다 더 견고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