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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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최 현 (여) 35세 이혼 2주차
김태우 (남) 35세 이혼 2주차
멀티맨 (우체부, 트레이너, 비데 기사, 아파트 관리소장)
무대는 상수 현의 집, 하수 태우의 집으로 분리되어있다.
현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고 박스 몇 개와 휴지통이 놓여있다.
태우의 집엔 소파와 협탁이 있다. 소파 위에 이불이 있고 협탁에는 먹다 남은 술병이 있다.
조명 켜지면 태우가 술이 덜 깬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있다. 신문지로 포장된 커다란 액자를 쓸쓸히 보다가 결심한 듯 그것을 들고 퇴장한다. 태우 퇴장과 동시에 현이 이삿짐 박스를 들고 등장한다. 현이 박스를 뜯기 시작할 때 태우 다시 등장해 소파에 눕는다. 협탁 위의 술을 들이켜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몇 번 흐느끼다 코를 골며 잔다.
현이 박스에서 잡동사니를 꺼낸다. 태우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다.
- 현
- (잡동사니 틈에서 성혼선언문을 발견하고 읽는다.) 성혼 선언문. 신랑 김태우 군은 카페인 성애자인 신부 최현 양을 위해 아침마다 신선한 커피를 내려 줄 것을 약속합니까? 신부 최현 양은 게임 매니아인 신랑 김태우 군을 위해 기꺼이 게임패드를 함께 잡아줄 것을 약속합니까? 이제 둘은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 현
- 버려야겠지. (사이) 어떻게 버려 이걸.
현의 휴대폰 울린다.
- 현
- 여보세요?
우체부가 하수 뒤에서 전화기를 들고 등장
- 우체부
- 지금 거기 사람 있습니까?
- 현
- 사람은 여기 있는데 누구세요?
- 우체부
- 우체국인데요, 김태우씨 앞으로 등기가 왔는데 40분 안으로 도착합니다.
- 현
- 아아- 본인한테 연락 하시지 않구요.
- 우체부
- 그건 잘 모르겠고요. 여기 적힌 대로 연락했습니다. 사모님이시죠? 지난번에도 사장님 앞으로 온 등기우편 드렸었는데. 아무튼 이거 꼭 본인 수령 사인이 있어야 되니까 집에 계셔야 합니다.
- 현
- 하기사 집에 있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우체부 퇴장. 현은 전화를 건다. 태우의 휴대폰 울린다.
- 태우
- (간신히 이불에서 기어 나와 받으며) 응. 이사 잘 했어?
- 현
- 짐 정리하는 중이야. 또 술 먹었어?
- 태우
- 돌싱 2주차잖아. 술 좀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
- 현
- 그래. 뭐 이제 내가 상관할 일 아니지. 그보다 여보. 아, 이제 이렇게 부르면 안 되지. 김태우씨. 40분 내로 등기 우편이 도착해. 본인이 수령 사인이 있어야 하니까 꼭 받으래.
- 태우
- 응.
- 현
- 근데 다음부턴 당신, 아니 김태우씨 번호를 써야 할 거 같아. 나한테 연락이 오네.
- 태우
- 알았어.
- 현
- (망설이다.) 잘 지내?
- 태우
- (대답이 없다.)
- 현
- 그래도 내가 김태우씨한테 전치 2주짜리는 되는 모양이네. 내일부터 3주차니까 이제 술 좀 마시지 말고. (무언가 더 말하려다) 끊을게.
태우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현 다시 정리를 시작한다.
- 현
- 버려야지. (성혼선언문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계속 정리하다 결혼사진이 툭 떨어진다.)
- 현
- 분명히 다 버렸는데 이게 왜 남았지? (뒷면에 편지를 발견하고 읽는다.) “본의 아니게 돼지가 되어서 미안해. 마누라가 너무 잘 먹여서 그래. 이때로 돌아가기 위해 헬스장 등록했음. 2017년 결혼기념일. 너의 태우.”
- 현
- (울컥하여) 이걸 어떻게 버려.
현 휴대폰 울린다. 헬스장 트레이너 전화기를 들고 등장.
- 현
- 여보세요.
- 트레이너
- 우리 회원님! 울끈불끈 피티 트레이너 에뤽입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우리 회원님이 예전에 볼일 볼 때 마다 허벅지 살이 변기 시트 밖으로 흐른다고 하셨잖아. 하하하하. 요즘도 가끔 화장실에서 우리 회원님 생각이 나는데요. 하하하.
- 현
- 에뤽 선생님 안녕하세요. 근데 저 피티 수업도 다 끝난데 어쩐 일로.
- 트레이너
- 다름이 아니라 남편분께서 요즘 도통 센터에 나오질 않으셔서 말입니다. 사용기한이 있는 회원권이라 빨리 나오셔야 하는데요, 아, 그보다 남편분처럼 사무실에만 앉아있는 30대 남성분들, 바빠도 꼭 운동 하셔야 합니다. 남성의 성기능을 담당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부족으로 80대 노인 수준인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죠. 꾸준한 운동으로 충분히….
- 현
- 그 사람한테 직접 연락하세요.
- 트레이너
- 아, 여긴 사모님 전화번호 밖에 없네요. 두 분이 같이 등록하셔서 제가 사모님 번호만 적었나 봅니다. 하하하하. 부부는 일심동체니까요. 하하하하.
- 현
- 아니 운동을 제가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저는 이제 그 사람이랑 (말하려다 그만둔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현, 태우에게 전화를 건다. 태우 휴대폰 소리.
- 태우
- (다시 이불에서 기어 나오며) 응.
- 현
- 헬스장 왜 안가. 아주 돈이 남아 돌지?
- 태우
- 너랑 같이 가던 데를 어떻게 가. 너 기쁘게 해주려고 끊은 거잖아.
- 현
- 아무튼 당신, 아니 김태우씨 번호로 등록 해놔. 나한테 연락 오게 하지 말고.
- 태우
- 미안해.
- 현
- 그리고 자꾸 안가면 성기능이 80대 할아버지가 된대.
- 태우
- 응?
- 현
- 끊는다.
태우 머리를 긁적이고 다시 이불로 기어들어간다. 현 다시 물건을 정리한다.
- 현
- 버리자. (사진을 구겨서 휴지통에 버린다.)
현 계속 정리하다 오르골을 발견한다. 태엽을 감자 캐롤이 흐른다. 다시 울컥한다.
- 현
- 이게 왜 아직 (참지 못하고 운다)
- 현
- 이걸 어떻게 버려.
현의 휴대폰이 울린다. 비데 설치기사 등장.
- 현
- 여보세요?
- 비데기사
- 유진 아파트 708호죠? 요청하신 새 비데로 지금 교체하러 가고 있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요. 정말 죄송하지만 20분정도 늦을 거 같습니다.
- 현
- (아직 울고는 있지만 깊은 짜증이 밀려온다.) 그거 제 비대 아니에요!!!!
- 비데기사
- 아닙니다. 이건 틀림없이 최현님의 비데입니다.
- 현
- 아니에요. 제 비데가 아니에요. 저는 비데 안 써요.
- 비데기사
- (억울하여)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 최현님의 비데입니다. 용변 볼 때 들리는 부끄러운 소리를 가리기 위해 변좌에 앉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신혼부부용 모델로 2014년 6월에 구입하셨습니다. 제가 직접 추천하고 설치하고 시연도 해드렸는데요. 이거 참 섭섭합니다.
- 현
- 같이 안 살아요. 비데는 쓰는 사람이 임자 아닌가요? 저는 이제 안 써요. 앞으로도 안 쓸 예정이구요. 그러니까 저 말고 비대 주인인 김태우씨에게 연락하세요.
- 비데기사
- 아시다시피 가정용 비데는 매우 사적인 물품입니다. 정 그러시면 소유권 이전을 위해 신분증 사본과 그 댁에 더 이상 거주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는 전입 전출 신고서, 또는 주민등록 등본을 저희 본사로………. 여보세요? 고객님!!
현, 전화를 끊고 태우에게 전화를 건다. 태우의 휴대폰 울린다.
- 현
- 야.
- 태우
- 응?
- 현
- 비데 바꾸냐?
- 태우
- 전 부인과 같이 앉던 비데에 앉을 자신이 없어.
- 현
- 난 전 남편이 쓰던 전화번호를 쓰고 있을 이유가 없다.
- 태우
- 미안. 내가 바꿔 놨어야 했는데.
조명이 바뀌면서 현과 태우의 공간이 경계가 사라진다. 현이 태우를 보며 말한다.
- 현
- 김태우. 잘 들어. 넌 나랑 결혼 승낙 받으려고 엄청 노력했지? 난 너랑 부부가 되려고 한없이 노력했어. 넌 이혼서류에 도장 찍기 까지 힘들었지? 난 지금 네가 없는 생활이 너무 이상하고 힘들어. 그런데 이제 비켜주기로 했잖아. 우리는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을 거니까, 서로의 인생에서 빠지기로 한 거잖아. 있잖아 태우야, 우리 추억이 10년이야. 네가 이러지 않아도 앞으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수도 없이 튀어 나올 거야. 우린 그걸 고스란히 겪어내야 한다고. 공간을 좀 줘. 네가 없는 나한테 적응하게 공간을 좀 달란 말야. (사이) 그러니까 네 우편물, 네 헬스장, 네 비데에서 나 빼. 부탁이야. (끊는다.)
태우,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다 남은 술을 마신다.
현, 오르골을 미련 없이 휴지통에 버린다. 정리를 마친 현, 박스를 들고 나가려는데 전화가 온다. 받지 않는다. 전화는 계속 울리고 현이 박스를 들고 퇴장하면 전화 소리가 멈춘다.
아파트 관리소장이 씩씩거리며 태우의 집으로 들어온다.
- 관리소장
- 계십니까? 관리사무실인데 좀 들어가겠습니다.
- 태우
- 무슨 일로…
- 관리소장
- 아니 이렇게 큰 액자를 재활용 통에 던져두시면 어떡합니까. 구청에 신고하고 버려야 하는 거 모르세요? 하필 CCTV가 고장 나서 범인도 못 찾을 뻔 했네. 잘못하면 저희가 벌금 물 수도 있었다고요! 알만하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
- 태우
- 신고요? 물건 버리는 데 신고까지 해야 하나요?
- 관리소장
- 이 양반 무식한 거야 무식한척 하는 거야? 요즘은 버리는 게 더 일이예요. 그리고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습니까? 여기 사진에 사모님 얼굴 보고 간신히 동 호수 생각나서 찾아왔네. 정말 막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트 측에서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 태우
- (생각하다) 그러네요. 버리는 게 더 일이네요.
- 관리소장
- 그걸 이제 알았어요? 저기 마침 노트북 있네. 저걸로 영등포구청 홈페이지에 빨리 들어가세요.
태우 눈만 꿈뻑거리다 무언가 결심이 선 듯 노트북을 열고 지시에 따른다.
- 관리소장
- 자, 대형생활폐기물 배출 신고를 클릭하고, 품목은 액자를 넣으시고. 옳지 잘하시네. 이제 결재만 하면 돼요.
- 태우
- (잠자코 하라는 대로 한다.) 결재 했어요. 3000원.
- 관리소장
- 이래야 진짜 버리는 거지. 그럼 확인증 출력해서 이따 가져다 주세요. 이건 내가 밑에 내려다 놓을게요. 이만 갑니다.
- 태우
- 소장님 잠깐만요! (명함을 건네며) 연락망에 번호 좀 여기 이걸로 바꿔주세요.
- 관리소장
- 음? 그래요. 그럼 도시가스 점검, 주민대표회의, 정기소독, 관리비 결산 보고 전부 다 여기로 연락드릴게요. 그럼 진짜 갑니다.
관리소장 퇴장. 혼자 남은 태우는 집안을 둘러본다. 아직 약지에 끼워져 있는 결혼 반지를 바라본다. 반지를 빼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마음을 정리한듯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돌린다.
- 태우
- 헬스장이죠? 예 오랜만입니다. 아뇨, 아뇨 나가야죠. 다름이 아니라 연락처가 바뀌어서요. 메모 가능하세요? ……….
태우 목소리에 음향 오버랩. 조명 아웃. 끝
- 호들갑 작가소개
- 83년생. 여자 사람.
극단 ESKAPE 단원이며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많은 직업을 거쳤고 지금도 많이 가지고다.
많은 사랑을 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모두 글감이라 생각하니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