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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해 공작

김은한
148호 2018.09.20
문장을 하나 만들어서 시작할게요. 방금 문장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두 개가 만들어졌네요. 세 개가 만들어졌다고 할 때쯤에는 아마 네 개가 만들어졌겠지요? 저는 이렇게 뜻대로 문장을 만들 수 있고 또 수정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 연출/배우에 의해 대사를 추가/삭제하는 것은 자유이나, 반드시 수정 대본을 작가(bastiontip@naver.com)에게 보낸다.

아승지 신라:
문장을 하나 만들어서 시작할게요. 방금 문장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두 개가 만들어졌네요. 세 개가 만들어졌다고 할 때쯤에는 아마 네 개가 만들어졌겠지요? 저는 이렇게 뜻대로 문장을 만들 수 있고 또 수정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제 안에 있는 어떤 기관이 문장을 감정하죠. 내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는가? 아니면 등장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는가, 등등.
저는 아승지 신라라고 합니다. 잘 알려진 이름은 따로 있지만, 가명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가명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거나 저를 드러내는 부분은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는 건 작가에게는 상당한 유희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글쎄요. 보시다시피 문장을 조금 만들었죠. 제가 수다스럽다면 점점 늘어날 것이고요. 정직하게 쓴 몇 권의 책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에 소박한 생활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이 화려한 장신구들이요? 이건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이건…… 이모님의, 요건 고모님입니다. 어머니와 운을 맞추기 위해 이모니와 고모니로 문장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런 익살을 해설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겠죠. 저는 정도를 아는 사람이랍니다. 바른 사람으로 살아왔어요. 제 장신구는 허영을 위한 치장이 아니라 추도를 위한 간직이랍니다.
예전에는 선택된 사람들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문장을 만드는 일이요. 신의 대리인이 아주 수상쩍은 차림으로 나타나 귀에 끊임없이 신의 문장을 속삭였다고 하지요. 그럼 선택된 사람들이 받아 적죠. 수백 년 뒤 사람들이 발굴해 감히 맞춤법을 고칠 생각은 못 하고 제멋대로 해석할 때까지 적당한 곳에 버려두는 겁니다. 여러분의 어린 시절 작문처럼요. 다시 쳐다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 작문들은 신의 문장일 수도 있겠죠. 고칠 엄두가 조금도 나지 않으니까요. 세상이 신이 쓴 어린 시절 작문이라고 해봐요. 얼마나 구겨버리고 싶겠어요. 이렇게 우리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거죠. 서로 감사하며 살아야 해요. 제 말 아시겠죠?
문장은 오로지 다만 자기 자신 그 내부 안에서 나오는 것만이야말로 아니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아이고. 죄송해요. 쉬운 말을 서툴게 하는 것은 재주 없는 선생의 일인데 주제넘게 침범을 한 것 같네요. 하지만 그분들을 비난할 수는 없어요. 명심해주세요. 사람은 누군가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문단이 아주 엉망이죠? 문장을 제대로 못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누군가가 귀에다 속삭여줘야 할 텐데요. 재주 없는 선생들은 너무나 많은 문장에 노출된 나머지, 나머지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본편을 전달해야 하는데, 자잘하게 남은 나머지가 덕지덕지 붙은 나머지 원래 문장이 흐려진 것입니다. 유감스럽지만 문장을 매끄럽게 만들지 못하는 선생과 지도자는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죠. 문장을 잘 만들기 위해선 많이 읽고 많이 쓰라고 하지만 그래서야 문장에 파묻히게 마련이죠. 공기 중에 문장 농도가 너무 높아서 질식하겠는걸요. 누가 한번 채로 걸러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신의 대리인들은 스스로 문장을 만들지 못한 걸까요. 대필을 요구하다니 신의 허락은 받았을까요? 아니면 신의 음해세력은 아니었던 걸까요. 전달과 번역을 거치면서 문장이 처음 가진 권세는 점점 흐려진다는 걸 몰랐을까요? 누가 속삭인다는 게 되게 무시무시한 일이자 선택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알았을까요? 층간소음은 현대 신의 대리인이 아닐까요? 음해는 소의 울음소리와 비슷하지 않나요?
물론 누가 제게 속삭인 적은 없습니다. 연인을 제외하고요. 속삭임이 제 인생을 조금씩 바꿔나간 건 사실입니다. 문장에는 힘이 있거든요. 덕분에 좋아하던 보라색 옷은 아주 가끔 집에서만 입게 되었고 혼자 하던 취미 몇은 그만두었지만요. 대업을 달성하려는 이들, 학업에 뜻을 둔 이들은 힘을 가진 문장에 매달리죠. 하지만 너무 매달리면 안 되겠죠. 문장은 진리라는 이름의 지독한 얼룩이 되어 삶을 흉지게 할 테니까요. 요즘처럼 생각과 표현이 다양한 시절이 어디 있겠습니까? 받아들이세요. 뭐든 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세요. 마음을 열기를 부탁합니다. 아차, 혹시 잘난 척으로 느껴졌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차, 하고 깜박했다는 듯 추임새를 넣는 것은 깔끔하진 않지만 말하는 듯한 느낌을 살려주죠.
문장은 마치 물고기와 같아요. 사람과 사람의 머리통을 넘나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할게요. 사실 엄밀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의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애쓰는 몹쓸 책략이랍니다. (라고 익살맞은 문장을 하나 덧붙여서 경박하지만, 왠지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지면을 채우기에도 적당하지요. 굉장히 솔직하고 두서없어 보이죠? 저는 제 뜻대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서 동시에 그들이 사실 통제 불가능한 물고기 같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아무렴 어때요. 즐기세요! 다시 엄밀하게 말하자면,
'문장에는 주인이 없어요.'
애완동물에게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진정한 주인이 되는 건 아니죠. 우리는 뭔가 소유할 수 없어요. 책이란 자유로운 문장들을 수조에 담아 예쁘게 꾸며놓은 겁니다. 양식장이에요.
나아가 저는 주장합니다. 작가는! 주장하는 사람이니까요! 느낌표를 몇 개나 늘어놓아도 지나치거나 질리지 않지만 그럼 장난스럽잖아요. 저는 대단히 진지하고 본보기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돌아와서(심지어 저는 이렇게 이야기의 맥조차 단단히 붙들고 있지요.) 주장하건대 문장은 살아있고, 힘을 가진 문장은 나아가 역병처럼 번지려는 습성이 있다는 겁니다. 제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척하면서 슬쩍 글에 섞일 기회를 엿본다는 것이죠.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아아, 무서워라! 제 생각을 넘어 저를 침해하고 나아가 음해하려 하다니! 음해! 음해입니다! 음해! 음해! 저는 병에 걸렸던 거예요! 저를 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아주 작고 사소한 별것 아닌 얘기지만, 저는 표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닮아 보이는 몇 문장은 그저 저를 엄습한 것일 뿐이에요. 재판장님, 모쪼록 현명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