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옆에서
강신혜
148호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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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있지?누가? 혹은 무엇?무엇이 있지?여기에 한 개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희곡이므로, 당신과 나는 지금 희곡에 관여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 자, 여기에 한 개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개체는 아주 늙었다고 가정하자. 남성 혹은 여성? 그러한 정보는 필요 없다.
누가 있지?
누가? 혹은 무엇?
무엇이 있지?
여기에 한 개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희곡이므로, 당신과 나는 지금 희곡에 관여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 자, 여기에 한 개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개체는 아주 늙었다고 가정하자. 남성 혹은 여성? 그러한 정보는 필요 없다. 늙은이들의 성정체성은, 생물학적으로 보나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나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다. 노인은 세상과 공생하는 사물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성별도 없으며, 나이도 없으며, 본질도 없으며, 자아도 없으며, 의식과 무의식도 없다. 그러나 그들만이 유일하게 최상의 우울함을 즐길 수 있다. 아마 시간의 멜랑꼴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고문이자 최음제일 것이다.
자, 여기에 한 개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개체의 이름을 알기 쉽게 ‘사람’이라고 짓도록 하자.
여기는 사람의 공간이다. 의자가 한 개 놓여 있다.
사람,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이 베고 잤던 베개를 의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것은, 그 베개는, 이제 마치 어린 아이처럼 구부정하게 거기 앉아있게 되었다.
사람, 그것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 사람:
- 여신이여, 나는 지금 당신께 기도하려고 하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네 벌거벗은 몸 앞에서.
단 한 번도 신에게 기도 해본적은 없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러나 당신께 기도 하오.
당신은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베개였지만, 지금도 확실히 베개처럼 있지만,
허나 이름을 하나 새로 가졌으니 된 거요.
이름, 칭호, 혹은 권한. 그렇지, 권한 같은 거지.
모든 것들은 권한을 가지기 마련이오.
무질서하고 분류되고 분류되지 않은 권한들.... ㅅ힘들.
이름을 가지지 않은 것을 생각해내기란 불가능하지.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니!
또한 이름이 없는 것을 생각해내기가 불가능 하단 사실이 얼마나 놀랍소?
결국 모든 것이 언어가 된다는 뜻이지...
세상에 말안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지.
어떠한 것에 이름을,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간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것에게 무덤을 수여하는 것과 다를바 없지.
우리는 모두 자신들의 무덤 곁에서 조잘대며 살다가 조잘대며 그 속에 그대로 빠져 죽는 것이지.
암, 조잘대며, 귀가 따갑도록 엥엥거리다가 그대로 빠져버리는 것이지.
나의 베개이자 나의 여신이여-
나는 계속하겠오, 이 기도를, 기도같지 않은 기도를.
기도라는게 별개 없지-
기도 축에도 들지 않는 기도라도 내가 이것을 기도라고 명명하면 그만이오.
언어행위란 없는 것을 있게만드는 놀이지 않겠소?
게다가 있는 것을 없게 만드는 것도 언어지.
아주 쉬워, 아주...
나 라는 생물이 무생물이 되는 건 금방이지.
단어 몇자만으로 있었던 것이 없었던 것이 된다고.
내가 당신을 베개가 아니라 여신이라고 칭하며 기도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희곡이 끝나는 순간,
이 희곡을 완결하는 단어 몇 자의 존재가 곧 나를 비 존재로 소멸시켜버릴 것이오.
오- 나의 여신이여, 나는 내가 어떤 목적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모른다오.
정말이지 모른다오, 그 저 여백에 글자를 채우듯이, 말을 지껄이고 있을 뿐.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나의 여신이여, 어떤 이들은 큰 시계의 시간을 믿고
어떤 이들은 작은 시계의 시간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시간 자체가 애초에 없는 것이라 말하더이다.
(양 손을 푼다)
결국, 모두 되는대로 지껄이다가 구덩이에 틀어 박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지.
신세 랄 것도 없지, 시체에게 신세나 입장이나, 신분이 어딨겠소?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양 손을 푼다)
이미 확립된 세상에서 새로 태어난 것들은 모두 병적으로 변이될 박테리아나 마찬가지야.
세상은 새로 태어난 모든 것들,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어떻게 해서는 살균시키려 하지.
살균이 사회의 최고 선인양, 멸균을 지향하며, 멸균을...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오, 나의 여신이여, 사실상 우리는 살려고 한다오.
어째서 살고자 하냐고? 그것은 우리의 목적이 죽음이기 때문이오.
지금 죽지 않고 나중에 더 잘 죽기 위해, 그러니깐, 내가 지금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나중에 죽기 위해서란 말이오.
지금 사는 이유는 나중에 진정한 죽음을 위해서란 말이오.
그러니깐, 적당한 죽음의 순간을 위해 불현듯 찾아오는 사고적인, 때이른 죽음은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보존 욕구가 아니겠소?
(양 손을 푼다)
지금 내가 죽지 않는 것은 나중에 죽기 위해서지, 살기 위한 것이 아니오.
생존욕구는 최후의 적당한 죽음을 위한 수단일 뿐.... 수단, 도구.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전혀 그렇지 않아.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나의 여신이여, 우리는 단 한시도 침묵하지 않는다오. 침묵하는 동안에도 침묵하지 않지.
그 모든 지껄임은 결국 마지막, 최후의 침묵을 위한 수단이라오.
마지막 최후의 침묵, 언어의 끝.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물론 소멸.. 소멸 그자체이고.
여신이여, 당신의 벌거벗은 몸뚱아리 곁에서 기도하는 이 것 또한 나의 소멸을 위한 수단이오.
내가 지금껏 한 이 모든 말들은 단지 여백의 소멸을 위한 도구일 뿐. 도구일 뿐...
(양 손을 풀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