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이름
김태현
149호
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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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천장에서 돌이 하나 툭 떨어진다. 예술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예술가, 돌을 본다. 예술가, 천장을 본다. 예술가, 전시장을 나간다. 예술가, 관리인과 같이 전시장에 들어온다.
등장인물
관리인
재벌
부인
예술가
무대
전시장. 천장에서 돌이 하나 툭 떨어진다. 예술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예술가, 돌을 본다. 예술가, 천장 을 본다. 예술가, 전시장을 나간다. 예술가, 관리인과 같이 전시장에 들어온다.
- 관리인
- 이거, 그냥 뒀다 가는 아주 큰일 나겠는데?
- 예술가
- 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빨리 좀 해주세요.
- 관리인
- 제가 얼른 이거 치고 장비 가지고 올게요.
- 예술가
- 이거 제가 칠게요. 다녀오세요.
관리인, 퇴장. 예술가, 위험표시를 치고 있다. 부인, 등장. 부인, 전시장 작품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부인, 붉은 띠를 치고 있는 예술가를 본다. 부인, 돌에게 다가간다.
- 부인
- 돌?
부인, 천장을 본다. 부인, 한참을 서 있다. 부인, 눈물을 흘린다.
- 부인
- 저 돌을 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혹시 저 돌은 어릴 적에 내가 흘린 눈물이 아닐 까? 내가 태어났을 때 흘린 첫 눈물이 땅에 스며들고, 스며든 눈물을 나무가 빨아들이고 나무 는 시간이 지나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세월엔가 굳어서 흙이 됐겠지. 그 흙이 시멘트가 되어 천장에 붙어 있다가 지금 내 눈앞에, 이런 식으로, 툭, 떨어진 게 아닐까? 그래서 내 감정이 이렇게 흔들리는 게 아닐까!
- 예술가
- 저...부인! 안녕하세요!
- 부인
- 작가님! 이 돌은 저로 하여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해줘요!
- 예술가
- 아, 돌이요?
- 부인
- 이 작품의 이름이 어떤 거죠?
- 예술가
- 이 돌은 작품이 아닌데요..?
- 부인
- 에이 작가님, 그래서 작품 이름이 뭔데요?
- 예술가
- 아, 음. 이 돌은,
- 부인
- 아, 제 눈물을 가져간 이 ‘작품’의 이름은?
예술가, 관리인을 부르려고 하다가 부인에게 잡힌다. 예술가, 눈동자를 굴린다.
- 예술가
- 아까 부인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 돌은 모든 고통들이 응축되어있는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어요. 아까 부인께서 이 돌을 가지고 부인 내면의 움직임을 느끼셨죠! 부인께서 생 각하신 모든 게 이름이 될 수 있습니다.
- 부인
- 너무 멋져요! 또?
- 예술가
- 부인께서 이 돌을 통해 희노애락을 느끼신 것처럼 저 또한 그런 상징성을 표현해내고자 했습니다. 음, 압축적인 걸 보여주고자 했죠.
- 부인
- 어떤 압축적인 걸 보여주고자 하셨나요!
- 예술가
- 바로, 그건!
- 부인
- 바로, 그건?
- 예술가
- 그, 뭐랄까, 그, 그러니까, 인, 인간의 죽음!
- 부인
- 어머. 이 돌에 그런 심오한 것들을 담았다는 말씀이세요?
- 예술가
- 네, 인간의 죽음 또한 이 돌에 담겨있습니다. 인간이 죽는다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순환입니다. 이 돌 내부에는 그 옛날 최초의 인류가 죽으면서 남긴 죽음의 메아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진동하고 있는 겁니다.
- 부인
- 메아리...! 또?
- 예술가
- 또! 이 돌로부터 삶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겁니다. 이 돌이 시간에 깎이고, 물방울에 패이고, 흐르고 녹아 언젠가는 아주 작은 먼지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먼지는, 어, 갓 태어난 아이의 입 에 들어가 우렁찬 울음소리로 삶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 부인
- 순환!
- 예술가
- 이 돌에는 죽음과 삶, 그리고 순환의 메아리가 담겨있는 것이죠.
- 부인
- 세상에나, 어쩜 좋아! 내 눈이 틀리지 않은 거죠? 내 안목이 틀리지 않은 거죠!
- 예술가
- 예, 예. 부인께서는 이미 예술가이십니다!
- 부인
- 어머나!
- 예술가
- 이 돌 말고, 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 있는데.
재벌, 등장한다. 재벌, 다른 작품을 보고 있다
- 부인
- 어머, 여보! 이리 좀 와 봐요! 이 작품 좀 봐요!
- 재벌
- 부인, 여기가 어디죠? 전시회장, 조용해야겠죠?
- 예술가
- 안녕하십니까.
- 재벌
- 아, 작가님, 좋은 작품 잘 보고 있습니다.
- 부인
- 이거 좀 보라니까요?
재벌, 돌을 본다.
- 재벌
- 돌이잖아?
- 부인
- 어머나, 무식하긴. 이게 그냥 돌로 보여요?
- 재벌
- 뭐? 무식? 당신! 지금 작가님 앞에서 뭐라고!
- 예술가
- 저기, 부인, 너무, 그게.
- 부인
- 이게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데, 어쩜 그걸 몰라봐요?
- 재벌
- 이건 그냥 돌 아니야? 저기 위, 천장에서 떨어진 거 같은데?
- 부인
- 이 작품에는 죽음과 삶, 순환의 메아리가 담겨있다, 이거에요! 천장에서 떨어진 돌? 작가님 앞에서 그런 몰상식하고 예의 없는 행동을 하다니요! 작가님한테 실례에요!
- 재벌
- 몰상식? 예의? 얼마나 대단한지, 들어나 봅시다! 그렇게 대단하면 내가 사버리게!
- 예술가
- 제 작품을, 돈을 주고 사신다구요?
- 재벌
-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지겠죠?
부인 재벌, 예술가를 본다. 예술가, 헛기침을 한다. 예술가, 생각을 잠깐 정리한다.
- 예술가
- 천장으로부터, 자신의 본질로부터 이 돌은 던져진 겁니다. 피투성, 하이데거가 글자와 문자로 형성하고자 했던 이론들이 시각적인 정보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 재벌
- 하이데거?
- 예술가
- 천장의 고유한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나와 이토록 외롭고 이토록 매력적인 자태로 저를 무력한, 아니, 오히려 무력하다고 하기 보다는, 자기주장을 펼치며 저를 매혹하고 있습니다. 마치 천장으로 비유되어지는 안정화된 어머니의 뱃속, 하이데거가 말하는 ‘대지’에서부터 여기! 홀로 세상이라는 곳으로 던져진 존재, 존재자의 존재로서 그 고유성을 발하고 있습니다!
- 부인
- 이 붉은 띠가 뜻하는 건...?
- 예술가
- 붉은 띠는, 어, 대지에서의 경계와 소외, 동떨어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경계와 소외, 동떨어짐 속에서 이 돌은, 이 존재자의 존재는 하이데거의 입을 빌려서 저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 재벌
- 뭐라고 말하고 있죠?
- 예술가
- 나는 너다. 너 또한 던져진 존재,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었느냐 하며 저를 꾸짖고 있는 겁니다.
- 재벌
- 나는 너다. 너 또한 던져진 존재다? 이, 돌이?
- 부인
- 이 사람 또 무식한 소리하네! 돌이라니, 작품, 예술 작품!
- 재벌
- 팜플릿에는 아무것도 적혀져 있지 않은데?
- 예술가
- 이 작품만큼은 팜플릿에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술적 소양을 지니신 분이라면 당연히 알아보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가이시고 안목이 높으신 두 분께서 지나치지 않으시고, 제 작품 을 알아봐주시고 가치를 부여해주신 덕분에 현재 제 작품은 더 좋은 작품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재벌
- 이 돌에, 너무 거창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데...
- 예술가
- 예술작품은 의미부여와 가치부여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 부인
- 마치, 맞아요! 그, 뭐지? 변기! 뒤샹! 뒤샹이에요, 작가님은 한국의 뒤샹이에요!
- 재벌
- 이게, 그 정도라고?
- 부인
- 이 돌은 엄청나게 소중하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유일한 거라고요!
- 예술가
- 역시, 여사님의 안목은 어느 평론가들 보다 날카로우십니다. 하이데거의 피투성 개념, 우리 역시 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 라는 걸 시각적인 메타포로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한 바넷 뉴먼의 작품처럼 단순하며 어떻게 보면 천장에서 떨어진 돌처럼도 보이지만 관람자들로 하여금 가까이 다가가서 보기를 원했습니다. 천장에서 떨어진 돌의 위치를 이 붉은 띠로 경계를 만듦으로서 언어로 번역되지도, 연상을 통해 지시하지도, 암시를 통해 상징하지도 않는 장소를 만들 었습니다. 그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예술적 진술, 그리하여 “현전”, 눈앞의 것으로서 포착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스러운 장소로 바뀐 것이죠.
- 재벌
- 하이데거의 철학과 바넷 뉴먼의 예술적 이념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거로군!
재벌 부인 예술가, 천장에서 떨어진 돌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다. 사다리 들고 관리인 등장.
- 관리인
- 다들 뭐하시는
- 재벌
- 조용.
- 예술가
- 돌이 내는 소리를 들어봐요.
천장에서 돌이 하나 더 떨어진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 예술가
- 존재자의 존재! 고유성의 소리!
- 부인
- 혹시 이것도 계산하신건가요, 작가님?
- 예술가
- 네, 그렇죠.
- 관리인
- 잠시만, 지나갈게요.
관리인, 재벌 부인 예술가를 뚫고 지나가려 한다. 재벌 부인 예술가, 관리인을 막는다.
- 부인
- 예의 없이, 지금 뭐하는 겁니까!
- 재벌
- 당신이 평생 일해서는 벌 수 없는, 그런 액수의 작품을 만진 거라고!
- 관리인
- 이건 그냥, 돌인데요? 천장에서 떨어진?
- 예술가
- 이 돌이, 여기, 있는, 그 심오한, 뜻을 모르겠어?
- 관리인
- 이대로 두면 위험해요! 작가님도 아시잖아요?
- 부인
- 작품 좀 감상하게 저 사다리 좀 치워 봐요!
벽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 관리인
- 벽이 흔들리고 있어요!
관리인, 도망친다.
- 예술가
- 떨어지고 있는 돌들은, 언뜻 보면 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아니, 완전히 같다고도 할 수 있죠. 지금 떨어지고 있는 돌들과 우리의 처지는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 버려진 존재이기 때문이죠. 어딘가에서 우리는 떨어져 나와 여기 서있습니다. 이 돌들도 천장으로부터 떨어지고 있어요. 이제 생각해보죠.
재벌, 부인,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도망치려고 한다. 예술가, 그들을 붙잡는다.
- 당신, 생각해보라고! 지금 돌이 떨어지고 있어, 돌은 곧 우리의 무덤이 되겠지, 이 무덤에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부여한다고 할 때, 우리의 무덤은 곧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겠지, 너무 멋있지 않아?
예술가, 큰 소리로 웃는다. 재벌, 부인, 예술가, 돌에 깔려 죽는다.
암전.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