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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시민이 아니야

송명주
151호 2018.11.08
경찰서 내부. 책상 하나와 의자 세 개. 책상 위에는 서류와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다.불이 켜지면 경찰이 서류에 스탬프를 찍고 옆으로 밀어두는 동작을 반복한다.

경찰서 내부. 책상 하나와 의자 세 개. 책상 위에는 서류와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다.

불이 켜지면 경찰이 서류에 스탬프를 찍고 옆으로 밀어두는 동작을 반복한다.

경찰
다음.
호랑이와 아우가 떠밀려 들어온다. 둘이 떠밀린 쪽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자 경찰이 부른다.
경찰
다음!
아우
억울해요!
경찰
다들 그렇게 말합니다. 앉으시죠.
호랑이
어흥!
호랑이가 말하자 경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본다. 아우가 서둘러서 호랑이를 끌어당겨 앉힌다.
아우
(머쓱하게 웃으며) 죄송해요. 오라버니가 아직 적응을 못해서.
경찰
오라버니?
아우
경찰관님. 우리 오빠 정말 억울하거든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아, 조금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정당방위예요. 맞아요! 정당방위.
경찰
그건 제가 정할 문제입니다. 성함이?
아우
아우요.
경찰
말고.
아우
호랑이...요.
경찰
오빠라며? 성이 다른데.
아우
그게 말씀드리자면 좀 긴데요.
경찰
(키보드를 꺼내 두드리며) 짧게.
아우
원래는 같은 집안 식구였는데 형님이 호랑이 탈을 쓰고 태어나셔서 산으로 가버리셨거든요.
경찰
얼씨구.
아우
진짜예요!
경찰
(무시하며) 호랑이 씨, 상서대로에서 한 청년을 폭행하셨다고요.
호랑이
(위협적으로) 크르르.
경찰
협박죄.
아우
아니에요. 오라버니, 그치? 위협하는 게 아니라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라... 우리 오빠가 아직 말이 서툴러서요. 오빠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먼저 저를 위협했어요.
경찰
호랑이 씨는 이곳 시민이 아닙니까?
아우
네?
경찰
주소지가 어떻게 되시죠.
아우
백두시 남서대로 27구요.
경찰
신분증 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호랑이와 아우, 망설이자 경찰이 다그친다.
경찰
지금 두 분은 죄를 짓고 오신 겁니다. 제대로 협조하셔야 할 거예요.
호랑이가 아우에게 손을 내민다. 아우가 호랑이의 신분증을 경찰에게 건넨다.
경찰
(신분증을 보며) 시베리아 호랑이. 연해주 태생. 이곳에서 태어난 게 아니네요?
아우
그렇지만...
경찰
시민증도 얼마 전에 취득했고. 이건 정식 시민이라고 보긴 그렇지.
아우
그런데...
경찰
요즘 바깥사람들 사납다고 다들 난린데. 멀쩡한 시민을 쥐어패고 다니면 되겠어요?
아우
 
아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경찰은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탬프를 찍으며 이야기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 것 같은 기색을 보인다.
아우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요. 먼저 욕을 하고 때렸어요. 손도 크고 줄무늬도 있는 게 무슨 시민이냐면서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게 진짜 잘못이고요.
경찰
날조죄.
아우
경찰이시잖아요. 정말로 죄 지은 사람을 잡아가는 게 경찰 아니에요?
경찰
(작성한 조서를 읽는 것처럼) 상관없는 질문으로 논점을 흐렸다. 이건 공무집행 방해.
호랑이
크르르. 어흥. 어흥. 크르르.
호랑이가 경찰의 팔을 잡아 끌어 아우의 손과 마주잡게 한다. 말을 들어달라는 듯한 동작을 한다. 경찰, 호랑이를 잠깐 보더니 손을 뿌리친다.
경찰
나 참. 이보세요. 경찰 업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이 서류가 전부 다 사람 한 명이랑 똑같다고. 그 소리를 얌전히 다 듣고만 있을 순 없어요.
아우
그래도 경찰은 시민의 지팡이라고 하잖아요.
경찰
맞아요. 시민의 지팡이. 근데 당신들은 시민이 아니잖아.
아우
시민이에요. 오빠도 저도. 시민증도 있는데.
경찰
증만 있으면 되나? 그 손은? 줄무늬는? 이곳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호랑이
무으...
경찰
호랑이 씨. 다시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그 ‘시민’이 먼저 욕을 하고, 때리고. 그랬다 쳐요. 그래서 호랑이 씨가 반격을 했단 말이죠. (대답도 듣기 전에 둘의 목소리를 눌러 지우듯이) 폭행죄! 초범이니까 하룻밤만 여기 계세요. 그래도 많이 봐드리는 겁니다. 다음!
호랑이와 아우, 앉아 있다. 경찰이 다음을 외치며 서류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퇴장한다.
아우
오빠. 퀴즈 하나 맞춰볼래?
호랑이
…….
아우
시민인데 시민이 아닌 건 뭐게? (사이) 꽃? 나무? 아니면... 호랑이?
호랑이, 대답하지 않는다. 아우가 허탈하게 웃는 소리와 함께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