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공감능력은 뛰어났으나
양혜림
152호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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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밝아진다.학생 3명이 강의실 책상을 끌어다가 모여 앉아있다.자리는 4개, 한 자리가 비어있다. 배우 등장.
등장인물
배우
학생1
학생2
학생3
무대
강의실
암전 상태의 무대.
시를 낭독하는 배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 배우
-
(목소리)
너는 알까.
내가 실은 아주 많이 간절하다는 것을.
무대가 밝아진다.
학생 3명이 강의실 책상을 끌어다가 모여 앉아있다.
자리는 4개, 한 자리가 비어있다.
배우 등장.
- 배우
- (조금 숨이 차서 헥헥 거리며) 안녕하세요.
- 학생들
-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녕하세요.
- 학생2
- (빈자리 가리키며) 여기 앉으세요.
- 배우
- (앉으며) 이 학교 처음 와보는데 인문대가 굉장히 꼭대기에 있네요.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앉는다.
- 학생1
- (웃으며) 그렇죠? (음료수를 하나 내밀며) 이거 드세요.
- 배우
- 감사합니다.
배우, 음료수를 마시며 숨을 고른다.
학생2, 배우 앞으로 종이뭉치를 내민다.
- 학생2
- 배우님께서 시 녹음해서 보내주신 거 들어봤는데, 목소리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 배우
- 감사합니다.
- 학생2
- 줄거리는 읽어보셨죠? 이건 저희 영화 대본이고요, 이건 콘티예요. 한번 읽어보세요.
- 배우
- 네.
학생들, 배우가 대본과 콘티를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린다.
배우, 다 읽고 종이를 덮는다.
- 학생1
- 짧게 저희 작업에 대해서 소개를 드리면, 저희 학교 국문과 내에서 우리 문학 작품을 문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제작하는 사업을 기획했는데, 저희는 이 시를 바탕으로 단편영화를 찍게 되었어요. 영화 전반적으로 시가 내레이션으로 삽입될 예정이라 아무래도 목소리가 중요해서 시를 녹음해서 보내 주십사 부탁을 드린 거고요. 저희는 국문과이긴 한데 영화동아리도 하고 있고 영화과 수업도 많이 듣고 있어요. (학생 3 가리키며) 이 친구는 부전공도 하고 있고요.
- 배우
- 아아. 네.
- 학생1
- 등장인물은 읽어보셨다시피 한 명이에요. 이미 수없이 취업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인물이고요. 우리, 우리 주변, 그리고 우리 또래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 학생3
- 대본이랑 콘티 읽어보니까 어떠세요?
- 배우
- 아…. 마음이 아프네요. 제가 보통의 젊은 친구들처럼 회사에 취직하려고 준비해본 적은 없지만 오디션을 보고 떨어지다 보면 여기 주인공처럼 좌절을 할 때가 많거든요. 오디션에 떨어져도 이런 식으로 문자가 와요. (콘티를 가리키며) 여기 “귀하의 역량은 뛰어났으나”처럼요. 그래서 공감도 되고, 주변에 보면 다들 참 열심히 사는데 그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학생들, 고개 끄덕인다.
- 학생3
- 대본이랑 콘티 보시면서 이해하셨겠지만, 주인공이 마지막 불합격 문자를 받고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 바로 앞에 삼계탕을 먹는 장면이 나오고요. 왜 하필 삼계탕인 거 같으세요?
- 배우
- (살짝 당황) 어…. 음…. 혼자 자취하는 것 같은데, 오랜 시간동안 합격을 하지 못했다면 여유롭게 식사를 챙겨 먹은 지 오래 됐겠죠. 삼계탕은 자취생들이 먹기 힘든 음식이고 몸에 좋은 음식이니까 마지막으로 평소에 먹지 못했던 귀한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을까요?
학생들, 고개 끄덕인다.
- 학생1
- 혹시 2페이지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하는 대사 한번 해보시겠어요?
배우와 학생들 모두 종이를 넘겨 2페이지를 본다.
- 배우
- 이거 한 줄이요?
- 학생1
- 네,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 배우
- (잠시 콘티 보고는, 유리창을 보듯 연기하며) 왜 사니. 왜 사니, 인간아.
- 학생들
- 네, 감사합니다.
잠시 침묵.
- 학생2
- 혹시 자유연기 하나 볼 수 있을까요?
- 배우
- 자유연기요. (주변을 둘러보는데, 공간이 좁은 강의실이라 연기하기 딱히 편한 장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지만) 하겠습니다. (연기를 시작하며) “달라서 그래요, 너무 달라서.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외모, 학력, 통장 잔고까지 다 달라서…. 뭐, 방구 냄새도 다르고. (웃음) 냄새 진짜 독하다니까요. 예전에는 이해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이해 안 되는 게 당연한 건가 싶더라고요.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 그래서 생각했죠. 그냥 사랑하자. 많이 사랑하자. 그랬더니 덜 싸우게 되더라고요. 조금 맞지 않아도 배려하게 되고, 내가 배려해주니까 그 사람도 날 생각해주고요. 예전에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네? 겉보기엔 달라보였는데 사실 비슷하잖아?’ 생각하게 되고. 그래도 아쉽긴 하죠. 너무 달라서 내가 이 사람을 덜 이해하나? 내가 쌍둥이 동생이라도 됐으면 더 이해해줄 수 있었을까. (웃음) 아닌가? 더 싸웠을라나? 방구 좀 그만 뀌라고?” (연기 끝내며) 여기까지입니다.
- 학생들
- 감사합니다.
또 다시 잠시 침묵.
- 학생3
- 혹시요, 삼계탕 먹는 연기 해주실 수 있나요?
- 배우
- 삼계탕이요?
- 학생3
- 네.
- 배우
- 아…. (잠시 당황하지만) 네.
배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책상 위에 삼계탕이 있다고 가정한 채 연기를 한다.
- 학생들
- (연기가 끝나자) 감사합니다.
학생들, 종이를 뒤적거리거나 뭔가를 고민 중이다.
- 학생1
-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 배우
-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공고에서 시를 낭독해서 녹음해서 보내면 연락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녹음한 거 보내 드리고 나서 “함께하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오게 된 건데 (어색하게 웃으며) 막상 여기 와보니까 이게 오디션 같아서요. 제가 착각했나봐요. 죄송합니다. 혹시 합격 통보는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 학생들
- 아….
- 학생2
- 저희가 녹음해서 보내주신 거 다 들어보고 몇 분한테만 그렇게 문자를 보냈거든요. 결과는 아마 내일 중으로 연락이 갈 거예요.
- 배우
- 아….
- 학생1
- 그리고 저희가 공고에도 썼듯이 학생 작품이다 보니까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서요. 교통비나 식비 정도만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 배우
- 네, 알겠습니다.
- 학생1
- 네, 그럼 오디션은 마무리 되셨고요. 저희가 내일 중으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배우
- 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 학생2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 강의실을 나간다.
학생들, 기지개를 펴며 자리를 정돈한다.
- 학생2
- (대본과 콘티를 정리하다 시 구절을 발견하고) 근데 이 마지막 구절은 몇 번을 읽어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 학생1
-
(책상을 정리하며 툭 뱉는)
죽은 벌레를 한참 보았다
그렇게 내 시체를 보고 싶었다
- 학생2
- 읽고 울컥했다니까.
학생들, 정리가 끝나자 짐을 챙겨 시끄럽게 떠들면서 나간다.
학생들 퇴장.
빈 무대에 목소리만 들린다.
- 배우
-
(목소리)
너를 기다리는 게 피곤하다
무대 서서히 암전된다.
목소리만 울린다.
- 배우
-
(목소리)
죽은 벌레를 한참 보았다
그렇게 내 시체를 보고 싶었다
잠깐의 침묵 후 목소리 이어진다.
- 학생2
- (목소리, 밝은 목소리로) 배우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배우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만나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막.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