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티셔츠
김도연
154호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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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조명 단숨에 밝아지면 무대 중앙으로 ‘나’ 보이고 웅성대는 소리 사라진다. 얼룩 하나 없는 새하얀 상하의에 맨발 차림의 ‘나’.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다. 잠시 후, A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인물
나, A, B, C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조명 단숨에 밝아지면 무대 중앙으로 ‘나’ 보이고 웅성대는 소리 사라진다. 얼룩 하나 없는 새하얀 상하의에 맨발 차림의 ‘나’.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다. 잠시 후, A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눈에 띄는 유채색 옷을 입되 색이 겹쳐서는 안 된다.)
- A
- (‘나’ 어루만지며) 아휴. 우리 아가. 예쁜 우리 아가.
B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 B
- (‘나’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운 아기. 어쩜 이렇게 조그맣고 귀여울까.
A 퇴장.
- B
- 이 앙증맞은 손발 좀 봐. 언젠간 나만큼이나 자라나겠지? (사이) 소중한 우리의 아가야.
C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 C
- 네 힘으로 몸을 뒤집고, 땅을 디디고, 성큼성큼 계단도 오를 수 있게 되겠지.
B 퇴장.
- C
- (‘나’ 안으며) 너의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니. 내겐 너무나도 큰 행운이야.
‘나’를 빤히 바라보는 C. 입술 들썩이는 ‘나’.
- C
- 어쩜. 웃는 모습이 이리도 맑을 수 있을까요. 어린 생명은 여리디 여릴지라도 그 무엇보다 순수하고 깨끗하죠. 때 묻지 않은, 맑은 하늘 위의 구름 같다고나 할까요.
C 퇴장. 잠시 뒤, 한 손에 사진 들고 A 등장.
- A
- (‘나’에게 사진 보여주며) 아가. 여기 봐. 누굴까? 할아버지 해봐. 할아버지.
사진 응시하는 ‘나’. ‘나’가 입술 들썩이는 와중에 A, 사진 보고 흐뭇해하며 뒤로 돈다. B 등장해 ‘나’에게 다가감과 함께 A 퇴장. B의 한 손에는 딸기 쥐어 있다.
- B
- 아가. 이게 뭘까. 딸기야. 딸기 해봐. 딸기.
‘나’, 딸기 쳐다보곤 정면 바라보며 입 벌린다.
- B
- 냄새가 달콤하지? 자, 아. 이제 이런 것도 먹어봐야지. (사이) 내가 갓난아기였을 적에는 이런 건 상상도 못했단다. 네에겐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야.
B, 들고 있던 딸기를 ‘나’의 옷에 문지른다. 그 순간 ‘나’는 입을 우물거리며 딸기를 먹은 행동을 취한다. ‘나’의 옷에 빨간 얼룩이 진다.
- B
- 새콤달콤하지? 절대 못 잊을 맛이지? (‘나’를 토닥이며) 아이구, 예뻐라.
B 퇴장. C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 C
- (주머니에서 막대사탕 꺼내 ‘나’에게 보이며) 짜잔. 이것 보렴. 널 위해 준비한 거란다. 이게 몇 개일까?
막대사탕 응시하는 ‘나’.
- C
- 세어볼까? 하나. 둘. 셋. 넷! 네 개네. 많다. 그렇지? 숫자를 익히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이 세상은 알고보면 모두 숫자로 이루어져 있단 걸 너도 크면서 알게 될 거야. (웃으며) 아유, 예쁘기도 하지.
C, 손에 들고 있던 사탕을 ‘나’의 옷에 붙인다. 그 모습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듯하다. 사탕을 다 붙이기 전에 A가 빠른 걸음으로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A의 손엔 물감과 붓이 쥐어져 있다.
- A
- 아가. 이것 좀 보렴.
물감 보여주는 A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 A
- 이게 무슨 색인지 알겠니? 나무. 그래. 나무가 이 색깔이지. 이건 초록이라고 하는 거야. 초록색. 너도 마음에 드니? 참 싱그러운 색이지? 네 방도 초록색으로 꾸미는 게 좋겠어.
A, 붓에 물감을 묻힌 뒤 그것을 ‘나’의 옷에 칠한다. B, 한 손에 스티커를 갖고 등장해 ‘나’에게 다가간다.
- B
- (스티커 하나 떼어 ‘나’의 손에 붙였다 떼며) 이런 걸 스티커라고 한단다. 예쁘지?
B가 자신의 손에서 스티커 떼어내자 손가락 꼼지락거리는 ‘나’.
- B
- 끈적끈적거리지? 이런 감각은 또 처음이지? 찜찜한 느낌이 나지? (‘나’의 눈 앞에 스티커 바짝 대며) 근데 이것 좀 보렴. 앞에는 이렇게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단다. 마음에 드니?
‘나’의 옷 이곳저곳에 스티커를 붙이는 B. A는 잠시 뒤 물감 칠을 마친다.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자신이 칠한 것을 바라보는 A와 등장하는 C.
- C
- 아가야. 이것 봐. 네가 분명 좋아할 거야. 하나만 먹고는 못 배길걸? (주머니에서 초콜릿 꺼낸다) 이게 뭔지 알려나?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모양을 그리는 ‘나’.
- C
- 아니야. 이건 딸기가 아니지. 딸기는 붉은색이잖니. 이전에 가르쳐줬잖아. 아, 잠시만.
C, 무대 밖으로 나간 뒤 곧장 손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쓰는 빨간 끈을 갖고 등장한다. 그리곤 그것을 ‘나’의 목에 두른다.
- C
- 이게 빨간색이야. 딸기는 빨간색. 이제 기억이 나니? (끈을 모두 두른 뒤 주머니에서 다시 초콜릿 꺼내서는) 이건 초콜릿. 딸기보다 달콤할 거야. 너무 달콤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어서 이건 착하고 예쁜 아이만이 특별히 먹을 수 있는 거란다. 어때? 먹어볼까?
초콜릿을 ‘나’의 옷에 문지르는 C. B는 계속해서 스티커를 ‘나’의 옷에 붙이고, A는 몇 번 물감 칠을 더 하더니 무대 밖으로 나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가져와 ‘나’에게 장식한다.
- A
- 도토리. 팝콘. 숨바꼭질. 발음해봐. 입모양이 참 재미있지 않니? 몇 번 소리 내 말하다보면 너도 분명 좋아하게 될걸? 입술을 동글게 모아서. 도토리. 팝콘…….
만족스런 표정의 A, B, C와 무표정의 ‘나’. ‘나’를 중심으로 둘러 서 있는 A, B, C는 고개 돌려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사이.
- A
- (정면 보며) 소중한 나의 아이야. 내가 이미 검증한 것들이니 넌 따라오기만 하면 돼.
- B
- (정면 보며) 아름다운 우리 아기. 걱정할 것 없단다.
- C
- (정면 보며) 한없이 맑고, 티 없이 아름다운, 여린 것. 너에게 해로운 것은 절대 주지 않을 거야.
사이.
- A
- 함부로 만질 수도 없어. 맑은 하늘 위의 구름 같은 너.
- B
- 너의 앞에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 설렌단다.
- C
- 그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단 건 내게 과분한 축복이야.
- A
- 어서 말해주렴. 기다리고 있단다.
- B
- 너의 그 깨끗한 입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 C
- 나의 순수한 아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주목하는 A, B, C.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나’,
- 나
- (더럽혀진 옷 훑어보며) 옷이 (사이) 많이 더러워졌어요.
암전. 끝.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