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寄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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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
태아
무대
4인용 식탁과 커다란 냉장고, 왼편은 출구다.
남자, 식탁에 앉아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리를 떤다. 여자, 냉장고 안을 정리하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남자 앞에 마주 앉아 눈치를 살피다 침착하게 자세를 고쳐 잡는다.
- 여자
- 내가 다 설명할게.
남자, 여자를 쳐다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다.
- 여자
- 자기야… 응?
여자, 남자 곁에 바싹 다가가 앉는다. 남자의 팔을 잡자 남자, 그 손을 뿌리친다.
- 여자
-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일단 꺼내 놓을까?
확, 여자를 노려보는 남자. 여자는 그 시선을 피하며 안절부절못한다.
- 남자
- …열어 보지도 마. 아니, 잠궈.
- 여자
- 냉장고를?
- 남자
- 버려! 통째로. 열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아니… 아니
남자 괴로워하면 여자, 남자를 슬그머니 끌어안는다. 남자, 냉정하게 여자의 손을 풀어낸다.
- 남자
- …나야? 나는 맞는 거야?
여자, 남자를 빤히 본다. 입을 벙긋거리며 할 말을 찾다가.
- 여자
- 무슨, 그런 소리를 해? 난 자기밖에 없어.
남자,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 여자
- 나 무서웠단 말이야. 경황이 없었어. 자기 오기 전에 해결은 해야겠고. 그냥 둘 순 없으니까… 원래 뭐든 죽으면 금방 썩어들어 가잖아. 그래서 잠깐 넣어두자 했는데, 잠깐만 했는데 그새 꽁꽁 얼어버린 거야. 얼른 치우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도 일반 쓰레기인지 음식물 쓰레기인지 모르겠어서… 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 남자
- (어이가 없어서)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거야?
- 여자
- 몰라 그냥 갑자기 화장실에서 툭…
- 남자
- 툭?
- 여자
- 응 툭하고 떨어졌어.
- 남자
-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남자, 자리에서 일어선다. 여자, 남자를 붙들어 잡는다.
- 여자
- 왜 날 이해 못 해? 너랑 나 당장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애를 어떻게 키워? 당장 애 생겼다고 들이밀면? 그래서 숨겼어.
- 남자
- 숨길 게 따로 있지. 이게 숨겨서 될 일이야!
- 여자
- 넌 도망갈 거잖아.
- 남자
- 내가 어딜 도망을 가…
- 여자
- 책임지라고 하면 넌 나한테서 도망갈 거잖아. 너, (사이) 솔직히 나랑 헤어지고 싶었지?
- 남자
- 이 판국에 그게 중요해?
- 여자
- 이왕 헤어지고 싶었는데 트집 잡는 거잖아. 지금이다 싶어?
- 남자
- 생명을 죽여 놓고. 그것도 냉장고에… 그런데, 뭐라고?
- 여자
- 여자 생겼잖아. 그래서 그렇게 밤마다 소리 죽여서 문자했잖아!
- 남자
- …미쳤구나.
- 여자
- 네가 이러니까 그랬어. 언제든 넌 날 떠날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난 너랑 죽어도 헤어지기 싫어. 겨우 저딴 거 때문에 헤어지기 싫었단 말이야.
- 남자
- 저딴 거, 아아 이거?
남자, 결심하고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여자, 빽- 소리를 지른다. 남자를 향해 식탁에 있는 물건을 던진다. 남자, 맞은 머리를 부여잡고 뒤를 돌아본다.
- 여자
- 나쁜 새끼야. 다 네가 시킨 거야. 네가 시켰어. 네가 시켰잖아.
여자, 계속해서 물건을 던지다 냉장고 문을 막고 선다.
- 여자
- 아니야. 내가 죽인 거야. 내가 다했어. 그러니까!
(애원하며) 안 갈 거지? 나 안 버릴 거잖아. 그렇지? 우리를 위해서 그랬어. 자기는 내 맘 알아.
남자,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그 얼굴을 빤히 본다.
- 남자
- 아니, 잘 모르겠어.
- 여자
- 어차피 아무도 몰라. 저 문만 열지 않으면, 우리 둘만 알고 있으면. 영원히 비밀로 하자. 그냥 없었던 걸로 생각하면 되잖아. 없었어. 진짜로 없었을 수도 있고! 그래, 거짓말이었어. 음식물 쓰레기 냉동실에 넣어둔 거, 자기 보여 주기 부끄러워서 그래서 거짓말 한 거야. 남자들 깔끔하지 못한 여자 싫어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여자, 울먹인다. 남자, 힘으로 여자를 밀쳐낸다. 그때, 냉장고에서 무언가 기어 나온다. 사람의 형상이다. 여자, 그 광경을 목격하고 비명을 지른다. 남자, 굳어있다. 그 형상은 태아다, 다리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갓 태어난 노루 새끼처럼 바들거리며 힘겹게 일어선다. 태아는 남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겨우 작은 조각으로 맨몸을 가리고 있다.
- 태아
- 저…
여자,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남자, 여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경계하는 태세로 태아를 본다.
- 태아
-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사이)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얼어붙어 있는 남자와 여자.
- 태아
- (무심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며) 좀 앉으세요.
태아, 식탁에 앉아 자리로 손짓한다. 남자와 여자, 무언가에 끌리듯 앉는다.
- 태아
- 여긴 너무 추워요. 상상도 못하실 걸요. 온 몸의 뼛속까지 얼어붙는 기분을 말이에요.
- 여자
- 누구…?
- 태아
- (여자를 똑바로 보며) 당신 아들이요.
여자, 공포에 질려서 주저앉는다.
- 태아
- 수많은 날을 어두운 바닥에서 헤맸어요. 뭉글거리는 덩어리들 속에서 굴러다니고. 비닐봉지 속에서 숨을 참고 웅크렸어요. 긴 시간이었어요. 오래도록 색이 없는 꿈을 꿨어요. 그런데 절 보세요, 저를 좀 봐요. 당신이 준 이 손가락, 팔과 다리, 눈동자… 제 얼굴을 보세요. (사이) 가까이 와서 보세요. 닮았죠?
여자, 태아의 목소리에 고통스러워한다. 태아는 계속 그의 목소리를 낸다. 쇳소리가 난다. 점점 위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남자와 여자, 점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 태아
- 이제 제 차례에요. 선택은 제가 할게요. 이제 영원히 당신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이 얼어붙은 덩어리로 평생을.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아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끈끈하게 붙어서 살 거예요. (사이) 우리 가족이잖아요. 우리끼리만 비밀로 하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태아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와 여자. 태아는 더 큰 존재로 그들 사이에 들어선다. 서서히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입시생처럼 글을 쓰겠습니다.
매일 공부를 하고 결과를 내고 평가를 받으며
내가 만드는 이야기들을 통해 당신의 마음속을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고 싶어요.
꾸준하게 성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