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노인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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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아들
아버지
배경
집안
테레비 화면이 무대의 한쪽을 차지한다.
이 연극은 항상 그 영상과 함께한다.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테레비를 본다.
리모컨을 잡은 손에는 힘이 없다. 눈은 반쯤 감겨있다.
아들이 집에 들어온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내 마신다. 아버지를 본다.
- 아들
- 아버지
대답이 없다.
- 아들
- 아버지?
- 아버지
- 으?
- 아들
- 주무세요?
- 아버지
- 안 잔다.
- 아들
- 들어가서 주무세요.
- 아버지
- 보고 있어.
- 아들
- (짧은 사이) 그러면 테레비 꼭 끄고 주무세요.
아들은 아버지를 보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테레비는 계속 켜져 있다.
암전
아침이다.
아버지가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다. 한동안 하고 있었다. 팔이 떨린다.
아들이 방에서 나온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내 마신다. 아버지를 본다.
- 아들
- 손 똑바로 들어요.
아버지는 손을 바짝 든다.
아들은 물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힘들다. 바짝 든 두 손의 엄지를 고리 형태로 잡는다.
고리는 풀어지고, 팔은 점점 내려간다. 팔이 내려가는 것을 막으려고 표정은 구겨진다.
아들이 방에서 나와서 아버지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 아들
- 손 내려요.
아버지는 손을 내린다.
- 아들
- 뭐 잘못했는지 생각해 봤어요?
- 아버지
- 밤새 테레비 켜놓은 거?
- 아들
- 그게 왜 잘못한 건데요?
- 아버지
- 소파에서 자서.
- 아들
- 그리구요?
- 아버지
- 그리고... 너가 잠을 설쳐서.
- 아들
- 아니에요.
- 아버지
- 아니라고?
- 아들
- 예. 아니에요
- 아버지
- (짧은 사이) 전기세 나가니까.
- 아들
- 그리구요?
- 아버지
- 근데 전기세가 그렇게 많이 나와?
- 아들
- 네. (짧은 사이) 헛소리하지 말고, 그게 왜 잘못한 거냐구요?
- 아버지
- (사이) 모르겠어.
- 아들
- 손 다시 들어요.
- 아버지
- (다급하게)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 아들
- 그러려고 하는 거예요.
- 아버지
- 손을 왜 들어야 하는 거야?
- 아들
- 요령피우지 마세요.
- 아버지
- 진짜 왜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래.
- 아들
- 내가 뭘 잘못했나, 그게 왜 문제인가 스스로 고민해봐야 하니까요.
- 아버지
- 아니, 왜 너가 날 벌 세우냔 말이야.
- 아들
- 사랑하니까요.
- 아버지
- 에? 뭔 소리야.
- 아들
- 아버지가 더 나은 노인이 될 수 있게 도와드려야죠.
- 아버지
- 니 도움 필요 없어.
- 아들
- 아뇨. 필요해요. 이거 봐요.
아버지는 리모컨으로 테레비를 끈다.
- 아들
- 뭐하세요? 다시 켜세요. 뭘 잘못했는지 똑바로 알아야죠. (짧은 사이) 손 들어요.
아들은 아버지가 손을 드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팔이 아파서 도저히 더 들고 있을 수 없자 손을 내린다.
- 아버지
- 이제 알겠어.
아들이 방에서 나온다.
- 아들
- 누가 손 내리래요.
- 아버지
- 뭐가 문제인지 알겠어.
- 아들
- 말해봐요.
- 아버지
- 네 기분을 나쁘게 해서야.
- 아들
- (짧은 사이) 회초리 가져와요.
- 아버지
- 에... 에? 왜?
- 아들
- 이유를 생각해보라니까 요령이나 피우고,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장난이나 치고.
- 아버지
- 아니, 나는 장난친 게 아닌데.
- 아들
- 회초리 가져와요!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고 온다.
- 아들
- 바지 걷어요.
아버지는 바지를 걷는다.
- 아들
- 몇 대 맞을래요?
- 아버지
- (짧은 사이) 한 대.
- 아들
- 한 대 가지고 되겠어요?
- 아버지
- (짧은 사이) 두 대?
- 아들
- 아뇨. 알 때까지 맞아야 되겠어요.
- 아버지
-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회초리를 치고 말한다.
- 아들
- (회초리를 치고) 지금도 장난치고 있잖아요!
- 아버지
- 아! 말은 하고 때려야지.
- 아들
- 제가 말하면 따라 말하세요.
- 아버지
- 알겠어.
- 아들
- 하나. (회초리를 치고) 장난치지 않는다.
- 아버지
- 읏. 장난치지 않는다.
- 아들
- 둘. (회초리를 치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 아버지
- 읏.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 아들
- 테레비를 틀고 자는 건 하면 안 되는 일이에요. 이제 왜 혼나는지 알겠어요?
- 아버지
- 하면 안 되는 일을 해서.
- 아들
- 그래요.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어요.
- 아버지
- 하면 안 되는 일은 누가 정하는 거야?
- 아들
- 셋. (회초리를 치고)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 아버지
- 읏. 이게 왜
- 아들
- 넷. (회초리를 치고) 말대꾸하지 않는다.
- 아버지
- 읏. 말대꾸하지 않는다.
- 아들
- 다섯. (회초리를 치고) 이 사랑의 매는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에 때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오늘이, 아버지의 내일이 염려되어 때리는 것이다.
- 아버지
- (심호흡하고) 이 사랑의 매는... 너가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거잖아.
- 아들
- 뭐라구요?
- 아버지
- 들었잖아.
- 아들
- 안 되겠네요. 들어가세요.
- 아버지
- 여길 어떻게
- 아버지
- 야! 경렬야!
아버지는 그 비명을 마지막으로 테레비 속에 들어간다.
무대 한쪽의 테레비 화면이 잠깐 지지직거리더니, 아버지가 나온다.
아들은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빠르게 돌리며 아버지를 가둘 프로그램을 찾는다.
아버지는 화면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마치 버스터 키튼처럼.
아들은 한 채널에 매력을 느낀다.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한다.
테레비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무대는 처음으로 조용해진다.
끝.
- 호들갑 작가소개
- 사람을 사랑하고,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 재재. ‘조금 수다스럽게 재잘거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꾸준히 수다스럽게 재잘거릴 것이니, 어여삐 여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