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어웨이
이정우
157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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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카드형 단어장을 암기하고, 그 뒤에 앉은 준석은 모바일게임을 하고 있다. 시간이 밤 10시를 넘긴다. 서울에 있는 학원은 ‘학원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모든 빛과 소리를 죽여야만 한다. 교실의 불이 일제히 꺼진다. 하지만 둘 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가방에서 헤드라이트를 꺼내 쓴다.
때와 장소
현대, 12시를 넘긴 새벽 시각. 어느 학원가 보습학원의 교실
나오는 사람들
김희연, 박준석, 최유정, 선생님
희연은 카드형 단어장을 암기하고, 그 뒤에 앉은 준석은 모바일게임을 하고 있다. 시간이 밤 10시를 넘긴다. 서울에 있는 학원은 ‘학원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모든 빛과 소리를 죽여야만 한다. 교실의 불이 일제히 꺼진다. 하지만 둘 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가방에서 헤드라이트를 꺼내 쓴다.
- 희연
- Conform 순응하다, 따르다... Consistent 모순이 없는, 일관된
- 준석
- 어차피 시험 시간도 한참 남았는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 희연
- 맨날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지 말고 얼른 단어나 외워라.
- 준석
- 단어는 시험 10분 남았을 때 보는 거 아닌가요?
유정이 들어온다.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쓰고 있다.
- 유정
- 얘들아! 나 해냈어...
- 준석
- 쾌변을?
- 유정
- 그런 거 아냐! 알려줄까?
- 준석
- 됐어.
- 유정
- 희연찡은?
- 희연
- 자리에나 앉아,
유정은 희연의 옆 책상에 앉는다. 물론 유정의 자리는 거기가 아니다.
- 유정
- 잘 들어. 사실... 나 방금 여기 경찰에 신고했다?
- 희연
- 뭐?!
- 준석
- 최유정 너 미쳤냐?!
- 유정
- 쉬이잇! (실실 웃는다) 쌤 오겠다.
- 준석
- (속삭이며) 너 미쳤어?!
- 유정
- 아니, 화장실을 갈라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커다랗게 떠 있는 거야. 나는 여 기 비좁아 터진 곳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데. 그래서 신고했어.
- 준석
- 겨우 그것 때문에 학원을 짭새한테 꼰지른다고?
- 유정
- 그러면 안 돼?
- 희연
- 됐다. 말을 말자.
- 유정
- 둘 다 반응이 왜 그래? 다들 쉬는 시간만 되면 수업 듣기 싫다, 학원 터트리고 싶다 하더니.
- 준석
- 그걸 진짜로 하는 새끼가 어딨냐?
- 유정
- 내가 너네들이라면 좀 더 기뻐했을 거야. 이딴 문제집은 버리고, 책상들은 다 쓰러뜨리고! 복도에 서 소리도 지를 거라고. (잠시 말 멈추고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교실 문이 매섭게 열린다. 선생님이다. 세 사람은 헤드라이트를 끄고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 유정
- (문이 다시 닫히는 걸 확인하고) 언제까지 눈치만 보면서 살아야 되냐구... (헤드라이트를 켠다) 그래도 괜찮아! 경찰이 와서 다 해결해줄 거야.
- 준석
- 부질없다 부질없어.
- 유정
- 왜?
- 준석
-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창가로 간다) 여기 와서 봐봐.
- 유정
- 가려져서 안 보여.
- 준석
- 보인다고 상상하고. 이 거리에 학원이 몇 개 있냐?
- 유정
- 음... 겁나 많지?
- 준석
- 그럼 우리 학원 망한다고 학원가가 통째로 망하겠니?
- 유정
- (창틀에 기댄다) 그래도 적어도 며칠은 쉴 수 있잖아.
- 준석
- 아니. 여기가 망하잖아? 그럼 우린 바로 옆 학원으로 옮겨질 거고, 옆 학원이 망하잖아? 그럼 또 옆옆 학원으로 옮겨질 거야. 그리고 그거 알아? 거기서도 우린 밤에 불 다 끄고 이렇게 남아 있어야 돼!
- 유정
- 저기 꺼진 창문 안에도 애들이 숨어 있겠지?
- 준석
- 글쎄.
- 희연
-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해. 그래서 학원을 다니는 거고.
- 준석
- 맞아. 쟨 단소도 학원 가서 배우잖아.
- 유정
- 단소도 학원 같은 게 있어?
- 준석
- 그러니까. 도라지 타령이 뭐가 어렵다고.
- 희연
- 아 소리가 안 나는 걸 어쩌라고!!
갑자기 교실에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다.
- 희연
- (눈 찌푸린다) 이게 지금 왜 켜져?
- 유정
- (문을 빼꼼 연다.) 경찰이 쌤 잡으러 왔다!
- 준석
- 진짜?
- 유정
- 나 저 쌤이 저렇게 쩔쩔매는 거 처음 봐.
- 준석
- 야, 같이 보자.
- 유정
- (훔쳐본다) 쌤이 경찰한테 고개 숙인다.
- 준석
- (같이 훔쳐본다) 진짜 설설 기네.
- 유정
- 어...? 왜 경찰이랑 쌤이 악수하지? 왜 안 잡아가는 거냐고!
- 준석
- 애초에 잡을 생각이 없는 거야.
- 유정
- 그래서 그냥 이렇게 간다고? 우리가 여기 있는데?
- 희연
- 같은 어른이니까, 그냥 넘어가 주는 거지. 한두 번 당해봐?
- 유정
- 저기요? 저 여기 있어요!! (문을 연다) 씨발 나 여기 갇혀 있다고요!!!
어른들의 시선이 유정에게 꽂힌다. 희연이 유정을 뒤로 감싸고돈다.
- 희연
- 아, 어... 저...... 얘가 스트레스!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이렇게 관종짓을 해요, 하... 하하... (90도로 인사한다) 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 유정
- (희연을 보고) 죄송합니다.
- 희연
- (문을 닫는다) 얼른 돌아가 앉자. (준석에게) 너도 거기 서 있지만 말고.
- 준석
- 어... 응.
세 사람은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간다. 이윽고 문이 열린다.
- 선생님
- (목소리) 최유정. 나와.
유정은 복도로 나간다. 선생님이 벽을 치거나 고함치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 희연
- (고개를 숙이고) Desire 원하다, 욕구, 욕망 Desire 원하다, 욕구, 욕망... Despite 그럼에도 불구 하고, Despite 그럼에도 불구하고...
- 준석
- (단어장을 넘기며) 너무 밝으니까 오히려 눈에 안 들어온다.
- 희연
- 계속 보다 보면 익숙해져.
잠시 뒤 문이 열린다. 표정이 어두워진 유정이 돌아온다.
- 준석
- 야 최유정 괜찮냐?
- 유정
- 그냥 조금 혼났어. 너무 신경 쓰지마.
유정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단어장을 꺼낸다.
- 유정
- Admire 존경하다, 칭찬하다, 감탄하며 바라보다
Adolescent 청소년, Adolescently 청소년에 걸맞게, 미숙하게 - 준석
- 야... 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 희연
- 몰라! 나도 모른다고!! (사이) 아이씨...
희연은 일어나서 유정의 단어장을 뺏는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린다.
- 유정
- 나 단어 외워야 해.
- 희연
- 그거 시험 범위도 아냐.
- 유정
- 나 진짜 괜찮,
- 희연
- (말끊는다) 안 괜찮잖아, 내가 지금 니 생각하는 거 맞춰볼까? 난 잘못한 거 없는데 존나 기분 거지같네. 내 말 틀려? 한 명은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지랄하고, 또 한 명은 걔 때문에 쩔절매고 있고. 내가 씨발 왜 남에 눈치 봐가면서 공부해야 하는데!!!
희연은 숨을 고른다.
- 희연
- 그러니까 나. 지금부터 학원 쨀 거야.
- 유정
- 뭐?
- 준석
- 밖에 선생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어떻게 나가게.
- 희연
- 두꺼비집을 내릴 거야. 학원 불이 다 꺼지잖아? 그럼 뒷문으로 달려나가.
- 준석
- 온통 깜깜한데 무슨 수로?
- 희연
- 네 머리에 쓴 건 장식이냐? (문을 연다)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희연은 복도에 나가려다가 뒤를 돌아 유정을 바라본다.
- 희연
- 야, 최유정. 난 네가 존나 싫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네 잘못 아냐. 그딴 일로 풀 죽지 마 짜증 나니까.
희연은 대답을 듣기 전에 문을 닫고 나간다.
- 준석
- 쑥스러워서 그래.
두 사람은 가방을 챙기고, 헤드라이트를 쓴다. 유정은 희연의 가방까지 같이 챙긴다.
- 유정
-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지?
- 준석
- 넌 어디가 가고 싶은데
- 유정
- 글쎄... 잘 모르겠어.
- 준석
- 그럼 그냥 걸으면서 셋이서 생각해보지 뭐.
- 유정
- 그래, 셋이서.
긴장되는 가운데, 학원이 소등된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헤드라이트를 켠다. 그리고 달려나간다. 학원 밖으로, 학원 밖의 밖으로 온힘을 다해 달려나간다. 막이 내린다.
- 호들갑 작가소개
- 물 위를 떠다니는 나뭇조각, 뿌리를 내리려고 바동대고 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