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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길을 찾아서

10분희곡은 빼주세요

김상민_서울연극센터 연극in 담당자
185호 2020.08.20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는 게 익숙해졌다. 이젠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자료들을 살피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는 것까지는 적응했을 쯤 ‘아직 홈페이지 사업내용이 현행화되지 않은 부서는 오후 3시까지 자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출자료 ...
‘10분희곡릴레이’는 공연 10분 분량의 신작 단막 희곡을 소개하는 연극in의 코너로, 웹진에 게재된 희곡들 중 일부는 해마다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을 통해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2014년부터 2019년 4월까지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중단한 상태입니다. 연극in은 2020년 9월부터 새로운 형태로 창작 희곡을 선보일 코너를 기획 중입니다. 이를 위한 논의 과정을 독자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 연극in 편집부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는 게 익숙해졌다. 이젠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자료들을 살피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는 것까지는 적응했을 쯤 ‘아직 홈페이지 사업내용이 현행화되지 않은 부서는 오후 3시까지 자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출자료 요청이 있었다.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희곡 플랫폼 소개 속에 웹진 연극in의 ‘10분희곡릴레이(이하 10분희곡)’와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이 남아있었다. “‘10분희곡’과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은 빼주세요.” 답장을 보냈다.
2014년 첫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 포스터
김은한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트위터를 살펴보니 좀 더 마음이 복잡해지는 게, 2015년 정도에 올라온 트위터리언이나 사람들의 반응, ‘10분희곡’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이 엄청난 거예요. 올라온 사진들, 포스터 디자인들 이런 게 너무 반짝반짝하고, 근데 그 불길들이 잡혀버렸는데,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가 저한테는 놀라웠어요.
윤미희
저는 솔직히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에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10분 연극 코너가 아니라, 10분 ‘희곡’ 코너니까 작가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낭독공연에서 페스티벌로 확장되고, 연출가의 선택에 따라 작품이 올라가면서, 희곡이 웹진에 게재되느냐보다 페스티벌에서 공연이 되느냐가 중요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처음 ‘10분희곡’의 의도나 방향성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유혜영
동의합니다. 하지만 페스티벌만의 문제였다면 그 부분만 우선 수정하고자 했을 거예요. 그런데 ‘10분희곡’ 코너 자체에도 한계가 왔다고 판단했어요. 응모된 희곡들이 점차 비슷한 경향으로 수렴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 기준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진 작가들의 참여가 많았고, 비슷한 세대의 비슷한 자기 이야기가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인물들의 냉소적이거나 체념적인 태도도 주를 이루는 특징이었고요. 또 한 가지는 희곡을 응모하는 작가가 점차 중복되면서 더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도 한계가 오고 있었어요.
‘10분희곡릴레이’에 응모했던 적이 있다. 사무실 출근 보다, 어떻게 하면 들어가고 싶은 극단에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마침 직접 글을 써 보는 방식으로 진행된 희곡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의 목표는 자신이 쓴 글을 연극in ‘10분희곡릴레이’에 올리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글이 실렸고, 내가 쓴 글이 공연되는 경험을 처음 해볼 수도 있었다.
김연재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10분희곡페스티벌에 참여했어요. 지원이나 공모를 통해 데뷔하기 전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것 같아요. 저는 당시 희곡을 처음 써 보았고, 10분희곡을 통해 다양한 분위기와 질감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이후에 극작가로 활동을 하면서 10분희곡페스티벌에 계속 참여했는데, 장막극도 발표한 작가가 왜 계속 10분희곡을 쓰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10분희곡이 단막극이나 장막극을 쓰기 위한 예비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10분 동안 말했을 때 더 완결성이 있는 이야기를 찾고 싶었고 그에 맞는 형식을 찾고 싶었어요.
웹진 공식 메일함에는 정말 많은 희곡 응모와 선정 안내 메일들이 있다. 최근에도 ’10분희곡’ 문의 메일이 왔었다. 뭐라 답장할까 고민하던 중 이전의 메일 답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10분’을 검색해 2018년까지의 굉장히 많은 메일들을 지나니, 그중 내가 찾던 잠정중단 및 오픈에 관한 메일도 있었다.
작년에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10분희곡'과 관련하여 여러 극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당장은 어렵지만 서울연극센터가 재개관할 쯤 돌아올 거 같다는 대답이었다. 나의 답변도 그리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올해 '10분희곡릴레이' 같은 형식이나 단편집 발행에 대한 계획은 없으나, 어떻게 희곡 코너를 운영해나갈지 논의 중입니다, 계속 관심과 애정을 부탁합니다”라고. 지금 묻는다고 해도 계속 관심과 애정을 부탁한다는 끝말은 동일하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새로운 [희곡] 코너를 위해 무언가를 해왔다.
(왼쪽부터) 극작가 김연재, 김은한, 윤미희
2019년 8월에 서울연극센터의 희곡사업(10분희곡 포함)과 관련하여 4차례의 자문회의가 있었다. 10분희곡 기획자, 페스티벌 전임 실무자, 게재를 했던 작가, 페스티벌 수행 연출가, 4개의 그룹과 진행한 회의였다. 그 이후로 내부논의를 거쳐 극작가들이 중심이 되는 희곡운영단을 꾸리기로 했다. 그리고 2020년 올해 유혜영 연극in 에디터와 김연재, 김은한, 윤미희 세 명의 극작가로 구성되어, 서울연극센터와 같이 앞으로의 희곡사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혜영
왜 세 분이었냐고 물으신다면... 다른 극작가분들도 실제로 리서치 했었고, ‘10분희곡’을 잘 모르고, 다른 트랙에서 극작하고 계신 분들로 팀을 짜보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진행한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 관련 자문회의 녹취를 제가 뒤늦게 듣게 되었어요. 듣고 나서 간단해졌죠. 나중에 다른 작가님들이랑 얘기를 하더라도, 우선 이 세 분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극작하는 게 본업인 분들인데, 지금은 그 외의 일을 저희가 부탁드리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애정도 있고, 그러니까 분노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이런 감정이 있으니까 서로 즐겁게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6월 2일, 희곡운영단의 첫 회의가 있었고 지금까지 네 차례의 회의가 더 진행되었다. [희곡] 코너가 극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했고, ‘10분희곡’과는 다른 형태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점도 좋았지만, 모두가 고민할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작가에게 작품을 청탁하기로 했다. A4 2-3장 분량에서 원고지 50매로 분량이 늘어난다는 점도 달라진 것 중 하나다. 다음 호부터 ‘다른 손(hand/ guest)’을 주제로 한 희곡들이, 김연재, 김은한, 윤미희 세 작가의 글을 시작으로 찾아갈 예정이다.
유혜영
청탁하실 때 우리 작품의 주제를 어떻게 설명하실 것 같아요?
윤미희
인류세, 탈인간 등등 우리가 주제를 정하면서 한 이야기들, 특히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의 희곡 쓰기가 굉장히 인간 중심적인 게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고에서 벗어난 희곡 쓰기를 해보자고요.
김은한
좀 다른 거에 대한 이야기 좀 들어보자. 그래서 ‘다른 손이 쓰는 희곡’ 이런 식으로 설명할 것 같아요.
김연재
인수공통감염병이 도는 일회용품의 시대에 문학과 연극이 갈 길을 모색해 보자. 인류세를 살고 있는 극작가들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남근적 서사가 해체된 이후의 자리에서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가. 해봐주십시오...
김은한
아카데믹 담당이네요.(웃음)

(왼쪽부터) 김상민, 유혜영
그리고 아직 웹진의 [희곡] 코너를 통해, 그리고 서울연극센터의 희곡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김은한
희곡페스티벌의 경우, 아예 핫한 신진 연출 카탈로그를 만들어서 작가들에게 주는 거죠. 1인극을 잘한다거나, 떼로 움직이는 걸 잘 만들어, 그런 특징들을 하나씩 파악해서 작가들이 보고, 내 작품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연출로 극작가가 고르게 하는 거죠. 선택지가 주어지면 더 낫지 않을까요? 자기가 연출하고 싶으면 자기가 연출하고.
김연재
희곡에 대한 웹진의 시선은 제작극장이나 극단, 재단과 차별점이 있어야 해요. 희곡이 어떤 단체의 성격과 맞는지, 현실적으로 어떻게 공연화될지, 같은 문제들이 사라진 자리에 어디까지 ‘희곡’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텍스트 실험의 장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래서 희미해져 가는 극작가들의 존재감이 드러나기를 바라요. 이 코너를 통해서 극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서 다수의 작품을 뽑았지만, 개편 이후에는 청탁을 통해서 한 호에 한두 편의 작품이 실릴 예정인데요, 앞서 언급된 10분희곡릴레이의 한계에 대한 다소 보수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주제를 기획할 즈음에는 작품 게재 시 청탁 외의 다른 방법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요.
윤미희
2015년 10분희곡 낭독공연이 저한테 왜 큰 의미였냐면, 그땐 일주일에 딱 한 작품만 했거든요. 3월 25일, 날짜도 기억해요. 6시 반 즈음에 딱 한 작품만 10분 정도 낭독하고, 작가 인사하고, 간단한 인터뷰 하고. 그게 너무 좋았던 기억이에요. 30분 만에 끝난 간단한 행사였지만 온전히 작가를 위한 시간이었어요. 다른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대학로를 찾은 관객분들이 지나가는 길에 많이 보러 와주셨고 희곡집도 같이 판매하니 좋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해보면 어떨까 해요.
김은한
TTS(Text to Speech) 같은 거 가능한지. 파파고에서 기계가 읽어주는 것처럼 웹소설 같은 거는 요새 읽지도 않아요. TTS 틀어놓고 딴 일하면서 듣는 거예요. 희곡이 중점이 된다고 했을 때 더 빼는 거죠. 배우나 연출의 의도 같은 것들을 제거하고 희곡만 즐길 수 있는 감각 같은 것들.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길들을 찾고 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 ‘10분희곡’부터 인간을 빼놓고 쓸 수 없는 희곡 쓰기, 그리고 연출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연극 공연들에 대해서도. 그 길에서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많지만,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해볼 것이다. 그리고 희곡 코너에 계속 관심과 애정을 부탁한다는 말로 또 끝을 맺어야겠다.

(아직 익숙지 않은 게 더 많아, 제출 자료를 낼 때는 필요한 부분 있으면 더 이야기해달라는 말을, 메일 답장에서는 웹진이나 [희곡] 코너와 관련해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또 말해달라고 적어놓습니다. 웹진이나 [희곡] 관련해서 의견이 있으면 댓글이나 메일 등을 통해 많은 이야기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