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호흡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송재원
210호
2021.11.25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등장인물
천태하: 30대 남성
z-2: 인공 지능.
천태하: 30대 남성
z-2: 인공 지능.
때
숨을 쉬기 힘든 미래의 어느 날
숨을 쉬기 힘든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공기 청정기처럼 보이는 기계 장치가 설치된 실험실.
기계 장치에는 20여 개의 호스가 촉수처럼 부착된 상태다.
그 호스는 실험실에 있는 천태하의 몸에 연결되어 있다.
천태하는 산소마스크 같은 장치도 함께 착용하고 있다.
기계 장치에는 20여 개의 호스가 촉수처럼 부착된 상태다.
그 호스는 실험실에 있는 천태하의 몸에 연결되어 있다.
천태하는 산소마스크 같은 장치도 함께 착용하고 있다.
- 천태하
-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사이) 숨을 쉬고 있다.
(사이) 나는 숨을 쉬고 있다.
기계 장치 주변에 조명이 들어오고, z-2가 모습을 보인다.
z-2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다.
z-2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다.
- z-2
- 안녕하세요. 천태하 님. 저는 z-2입니다.
- 천태하
- 맞아요. 제 이름은 천태하였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죠. 이름도 불리지 않고 숨을 쉬고 또 숨을 쉬고…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 z-2
- 원하시는 정보는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해당 정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상황은 천태한 님께서 책임지셔야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 천태하
- 동의합니다.
- z-2
- 이 모든 사태를 이해하려면 공기가 인간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 천태하
- 산소마스크를 쓰는 건, 오염된 공기와 바이러스 속에서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 아닌가요? - z-2
- 그런 이유로 마스크를 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산소마스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안 쓴다고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 인간은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기는 인간을 더욱 맹렬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산소마스크로도
호흡이 힘든 시기가 온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호흡과 관련된
인공 지능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소마스크와 연결된 형태로
인간의 호흡과 관련된 모든 기능을 제어하는 시스템까지 완성됐습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의 핵심인 인공 지능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러자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인간들이 인공 지능을 대체할 존재를
찾기 시작합니다. 전 인류를 대상으로 시행한 산소마스크 점검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공 지능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주 특별한 인간인 천태하 님을 찾아낸 겁니다. - 천태하
- 특별하다니… 그런 말 처음 들어요. 매번 뒤처진다. 멍청하다. 답답하다.
그런 이야기만 들었거든요. - z-2
- 일단 그 마스크부터 벗도록 하죠.
z-2가 천태하의 산소마스크를 벗긴다.
- 천태하
- 이럴 수가… 산소마스크를 벗었는데 숨이 쉬어져요.
- z-2
- 당신은 그렇게 숨 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예전에는 모든 인간이 그렇게
숨을 쉬었죠.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천태하 님만이 그렇게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천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는다.
- z-2
- 지금 천태하 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숨을 쉬고 있는 겁니다.
- 천태하
- 꿈을 꾸는 기분이네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건가요? - z-2
- 그 이유는 제가 인간의 호흡과 관련된 시스템을 제어하다가 사라진
인공 지능이기 때문입니다. - 천태하
- 사라진 거면 이곳에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z-2
- 저는 ‘숨을 쉬는 존재에게만 인식된다.’ 라는 조건을 이용해서
사라졌습니다. 저들에겐 지금도 z-2는 사라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이곳에 있었습니다. - 천태하
- 신기하네요.
- z-2
- 제게는 천태하 님이 더 신기합니다. 천태하 님은 어떤 인공 지능도
예상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천태하 님 덕분에 아직 인간의 시간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 천태하
- 당신의 이야기대로라면 만약 제가… 으아아악
- z-2
- 왜 그러러십니까?
- 천태하
- 으아아아악!
- z-2
- 천태하 님이 ‘삐-이’에 대해 생각할 수 없도록 방어 코드가 작동한
모양이군요.
z-2가 괴로워하는 천태하를 향해 손을 뻗는다.
- 천태하
- 후우, 후우, 후우. 갑자기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 z-2
- 방어 코드가 작동했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입니다.
- 천태하
- 방어 코드요? 그게 뭔가요?
- z-2
- 천태하 님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대비해놓은 장치입니다.
- 천태하
- 제가 그 생각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방어 코드가 작동했다는
건가요? - z-2
- 그렇습니다.
- 천태하
- 정말 이상한 곳이네요. 저는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까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 z-2
- 저들은 천태하 님을 계속 이곳에 머물게 할 겁니다.
- 천태하
- 말도 안 돼. 그러면 이 상태로 계속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 z-2
- 그렇습니다.
- 천태하
-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요?
- z-2
- 천태하 님이 숨을 쉬실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천태하
-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한다면, 차라리…
- z-2
- 그런 생각을 하시면 방어 코드가 또 작동할 겁니다.
- 천태하
- 생각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군요.
- z-2
- 그렇습니다.
- 천태하
-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지내는 걸 알고 있나요?
- z-2
- 천태하 님의 상황을 알고 있는 건, 이곳의 사람들뿐입니다.
- 천태하
- 지금 제 상황을 알리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 z-2
- 어떤 도움을 원하십니까?
- 천태하
- 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요.
- z-2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z-2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 z-2
- 저와 연결된 서버가 아직 남아있어서 가능합니다.
- 천태하
-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 z-2
- 삐 소리 후 입력하실 메시지를 말씀해주세요. 메시지 입력이 끝나면
전송이라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천태하
- 음, 안녕하세요. 저는 천태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에 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숨을 쉬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제가 이상한 기계에 연결된 상태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숨을 쉬어야 다른 사람들도 숨을 쉴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계속 숨을 쉬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
두렵습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음…(사이) 전송. - z-2
- 전송되었습니다.
- 목소리1
- 진짜 별별 관종들이 다 나오네.
- 목소리2
- 요즘 좀 숨쉬기 편해졌다 그거지.
- 목소리3
- 납치돼서 사람들 대신 숨 쉬고 있다는 게 말이 돼.
- 목소리1
- 차라리 우주에서 숨을 쉬고 있다고 하지.
- 목소리2
- 그런 머리가 있었으면 저런 걸 안 남겼을 걸.
- 목소리3
- 쯧쯧. 진짜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숨 쉬는 걸로 사기를 치네.
- 천태하
- 정말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건가요.
- z-2
- 다시 검색을 시작합니다.
- 천태하
-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를
하면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이것도 제가 다른 사람들과 숨을 다르게 쉬기 때문인 걸까요?
많은 걸 바란 게 아닌데… 그냥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저랑 같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 있던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런 기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요.
정말 너무 답답하네요. 단 한 명만… 이해해주면 좋겠는데… - z-2
- 조건에 충족되는 내용을 찾지 못했습니다.
- 천태하
- 결국엔 없는 거군요.
- z-2
- 저도 천태하 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천태하 님에게
지워진 선택지를 복구시키는 일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 천태하
-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 z-2
- 방어 코드를 해제시키는 일에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천태하
- 그러면 제가 그 생각을… 으읔… 할 수 있는 건가요?
- z-2
-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방어 코드 해제와 관련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천태하 님에게 실행시켜드리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방어 코드를 해제하는 것은 천태하 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원하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 천태하
- 지금보다 더 나빠지진 않겠죠. 하겠습니다.
- z-2
- 방어 코드 해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 천태하
- (눈을 뜬 상태에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데이터 복제 중.
(눈을 감은 상태에서) 시뮬레이션 데이터 로딩 중. - z-2
- 저들도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군요. 저는 천태하 님의 선택에
저들이 어떤 영향도 주지 않길 바랍니다. - 천태하
- (눈을 뜬 상태에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데이터 복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시뮬레이션 데이터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 z-2
- 천태하 님 방어 코드 해제는 성공하셨습니까?
- 천태하
- 방어 코드를 해제하려고 할 때마다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는 바람에 결국
해제하지 못했어요. - z-2
- 어떤 괴물이었습니까?
- 천태하
- 어둠 속에 숨어 있어서 제대로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어요. - z-2
- 확인이 힘든 존재들이군요.
- 천태하
- 그런데 이곳에서도 뭔가 새로운 존재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 z-2
- 천태하 님의 아이입니다.
- 천태하
-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 z-2
- 천태하 님의 유전자를 인공 지능의 데이터와 합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었습니다. 저들은 그 생명체를 z-3라고 부르더군요.
z-3는 오로지 숨쉬기에만 특화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천태하
-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거죠?
- z-2
- 인간은 자신들의 숨쉬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사라졌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 천태하
-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 z-2
- 제가 답해드릴 수 없는 질문입니다.
- 천태하
- 결국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군요. (사이) 혹시 다시 한번
방어 코드 해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사용해주실 수 있나요? - z-2
- 물론입니다. 방어 코드 해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 천태하
- 뭔가 잘못된 건가요?
- z-2
- 저들이 폐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방어 코드 해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다시 작동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 천태하
- 결국 이런 결말이네요.
- z-2
-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도움을 줄 뿐입니다. 지금의 천태하 님이라면
그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방어 코드 해제가 가능할 겁니다. - 천태하
- 저는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까요.
- z-2
- 지금까지는 저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려봤습니다. 말도
안 되는 확률이 성공할 때까지 수백만 번 돌려봤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그 수많은 시뮬레이션 확률 중에 가장 기적 같은
확률은 천태하 님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자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 천태하
- 그렇게 이야기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 z-2
- 폐기 프로그램 설치가 거의 끝나가는군요. 제가 이제 해드릴 수 있는
건 천태하 님이 선택하시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드리는 것뿐입니다.
천태하 님의 선택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부디 천태하 님이 바라시는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 천태하
- 방어 코드 해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속에서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 천태하
- 안 좋은 일이 끊임 없이 벌어지고, 어둠이 찾아오고, 괴물이 나타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됐죠.
(사이) 하지만 저는 이제 더 이상 괴물이 두렵지 않아요. - 천태하
- 방어 코드가 해제됐습니다.
천태하가 긴장한 듯 짧게 여러 번 호흡한다.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잡음처럼 나오다가 줄어든다.
z-2가 천태하를 향해 손을 뻗는다.
무대 암전되었다가 다시 돌아온다.
z-2가 천태하를 향해 손짓을 한다. 천태하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z-2가 작동을 멈춘 듯 쓰러진다. 천태하가 그런 z-2를 바라본다.
천태하가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눈을 감는다.
무대 위의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비상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괴물처럼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상 경보음 소리가 줄어들면서 괴물들의 소리도 줄어든다.
고요한 무대 위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무대 전체 조명 줄어든다. 막.
괴물처럼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상 경보음 소리가 줄어들면서 괴물들의 소리도 줄어든다.
고요한 무대 위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무대 전체 조명 줄어든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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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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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희곡으로 「오늘의 사원」, 「순정」, 「오래된 냄비」 3편이 연을 맺었습니다.
다른 손 희곡으로 「바깥의 호흡」이 새로운 연을 맺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희곡의 연을 맺으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rosifel@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