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기억여행>
웃음으로 서로를 구하는 사람들
하은빈
203호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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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해, 세월호를 다뤘던 연극 <명왕성에서>를 보다가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극장을 나와버렸다. 아이들을 그리는 어른들의 상상력이 진부하고 빈곤하다고 느꼈다.
지지난해, 세월호를 다뤘던 연극 <명왕성에서>를 보다가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극장을 나와버렸다. 아이들을 그리는 어른들의 상상력이 진부하고 빈곤하다고 느꼈다. 지난해, [2020 세월호:극장들] 기획의 첫 작품이었던 <내 아이에게> 역시 다소간 괴로워하면서 관람하였다. 본 지면에 실은 리뷰에는 고민 끝에 이렇게 적었다. “이 극은 (…) 자칫 어떤 종류의 ‘피해자다움’에 관한 관념을 설파하거나 고착시킬 위험을 안고 있”으며, “재난의 희생자들에 대한 상투적 전형으로부터 일정 정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1)
공연을 짓고 올린 이들의 노력과 진심을 깎아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추모를 목적하는 재현이 오히려 특정한 몇몇 비극적 이미지들로만 수렴한다고 느낄 때 거부감이 일었다. 우리가 극장에 모이는 이유가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 혹은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함이라고 - 한다면, 분명 그 ‘기억’을 위해 시도되는 모종의 재현에서 오히려 잊혀지는 잔여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못내 신경 쓰인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세월호 가족으로부터 그것을 보고 배우길 바라며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 <기억여행>을 보았다. 의외로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농담과 웃음이다.
공연은 ‘노란리본’이라는 사물을 화자로 앞세워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역순으로 되짚는다. 공연 이후 밝힌 소회에서,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수진아빠’ 김종기님은 극단 노란리본이 에둘러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연극의 소재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어렵지 않을까?” 공연 전 그는 이렇게 염려했다고 한다. “감정들이 북받칠 텐데, 그 분노, 슬픔, 억울함, 미안함… 그런 감정들을 절제하고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우려와 걱정을 불식하기라도 하듯 <기억여행>은 대체로 밝고 쾌활한 톤을 유지한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줄곧 힘차고 명랑했으며, 유머와 위트를 적재적소에 구사해내 객석에서는 자주 웃음이 터졌다. 이를테면 샛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이고는 “노란 리본? 어휴, 꼴 보기 싫어. 내가 노란색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하며 너스레를 떨거나, 광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담요 뒤에서 볼일을 처리하는 모습 뒤로는 우아한 피아노 선율이 능청스럽게 흐르는 식이다.
그러나 농이 짙을수록 이들이 감내해온 고통스러운 시간의 그늘도 함께 드러나는 듯하다. 마주하는 모든 국면에서, 그들은 매번 새롭게 다치고 손상된다. 세월호 반대 집회에서 마주친 단골 식당 주인에게 커피를 내밀던 한 엄마는 “얼마나 떨리던지…”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침착한 태도로 세월호 기사에서 ‘베댓(베스트 댓글)’을 살피는 또 다른 엄마는 결국 “안 괜찮아. 속에서 천불이 나.”하고 털어놓는다. 2014년 4월 이후로 이들의 몸과 마음은 매일매일 다른 모양으로 깨지고 바스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긍정과 능청은, 초연과 해탈의 경지라기보다는 참담하게 부서지고 쪼개지는 마음을 매번 필사적으로 붙이며 버텨낸 결과이다.
그래서 감히 그러지 못할 상황에서도 기어이 농을 치고 서로를 웃게 하는 이들의 뱃심은 순간접착제처럼 기지를 발휘하는 그 이상한 종류의 긍정이자 절박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또한, 잃어버린 아이들과의 눈부신 순간들을 생생하고 기쁘게 기억하는 힘으로도 연결된다. 세상에서 가장 치과를 무서워하던 딸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사랑니를 빼러 갔던 일, 냉전 중이었던 아들이 쭈뼛쭈뼛 다가와 피시방 마일리지 카드를 내밀며 사과하던 일 등이 배우들의 눈물 섞인 웃음과 함께 활기찬 회상으로 무대 위에 오른다.
이러한 기억들이 피부에 한 올 한 올 닿는 경험으로서 관객의 눈앞에 전해질 때, 세월호의 기억은 닳고 무뎌진 말들을 넘어서서 낯선 감각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그때 비로소 희생자들의 죽음은 하나하나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부재와 상실이 되어 걸린 빗장을 풀고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돌린다. 극 중에서, 생명안전공원 반대집회에 참가했던 단골식당 주인 내외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도, ‘자식 팔아 보상금 노린다’는 악성댓글을 달았던 악플러 ‘미소천사’가 사죄하면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까지 도보행진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촉각적 감각의 힘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생한 감각은 한편으로 대사를 발화하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 자신을 깊이 상처 입히기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억이 장면으로 되살아나는 동안, <기억여행>은 벌어지는 상처의 틈과 그 사이로 튀어나오는 솔기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어떤 대사들은 이따금 목멘 소리로 어렵게 흘러나왔고 공연 중에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울거나 흐느끼기도 했다. 이들은 아픈 기억의 조각들을 또다시 깁고 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찔렸을 것이다.
마침내 무대의 시각은 4월 15일 아침이 된다. 이는 공연이 다루는 기억 중 유일하게 참사 이전의 기억이다. 엄마들은 양말과 수건을 여분까지 넉넉히 챙겼는지 확인하고, 언제든 전화하라고 당부하고, 맛있는 것 많이 사먹으라고 용돈을 쥐어준다. 그리고는 객석을 마주보고, 떠나는 아이들의 등을 향해 아주 먼 곳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잘 다녀와. 엄마는 잘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신나게 놀다 와. 다녀와, 내 새끼.” 배우들은 배웅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한다.
아직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시점이지만, 2021년에서 온 엄마들은 앞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배는 돌연 가라앉고, 믿을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태어나서 평생 흘려온 눈물, 그 몇 갑절 되는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들은 그 모든 것을 알고도 기꺼이 손을 들어 웃으며 흔든다.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을 향해,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아는 것을 향해. 찬란하고 고단한 슬픔을 향해, 깨지고 으스러지는 삶을 향해, 그 모든 시간을 건너와 지금 이 무대에 서 있을 자신을 향해.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생각했고, 그 마음을 영영 모르리라는 것이 슬펐다. 그러나 공연의 맨 첫 부분에서 건네받은 노란리본의 말, “무대와 객석의 시간은 결코 다른 시간이 아니”며, 당신과 나의 시간은 언제나 같은 시간”이라는 다정한 말을 믿고 싶기도 했다. 서로를 방에서 꺼내기 위해서 자신부터 방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을 이들의 어떤 시간을 생각했다. 광장과 거리와 연습실과 극장에서 매일매일 서로를 구했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객석에서 낮게 손을 들어 마주 보고 흔들었다.
[사진제공 : 극단 노란리본]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기억여행>
- 일자
- 2021.06.10.~06.13.
-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출연
- 김명임(2-7 곽수인 엄마)_김도현(2-7 정동수 엄마)_김순덕(2-1 장애진 엄마)_박유신(2-3 정예진 엄마)_박혜영(2-3 최윤민 엄마)_이미경(2-6 이영만 엄마)_최지영(2-6 권순범엄마)
- 작
- 김규남
- 연출
- 김태현
- 조연출
- 김지우
- 조명
- 류성국
- 무대
- 동네풍경
- 의상소품
- 변효진
- 운영PD
- 조수연
- 후원
- 4.16재단_서울시
- 제작
- 4.16가족극단 노란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