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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지원제도 좌담회

“청년예술단 사업은 어디로 가는가/갔는가?”

장윤정

제176호

2020.02.20

일시 :
2020. 2. 4. 화. 오전10시
장소 :
서울문화재단
참석 :
성지수(콜렉티브 뒹굴, 연출가) 임성현(쿵짝프로젝트, 연출가) 김진아(지금 아카이브, 연출가), 김정(사막별의 오로라, 배우), 장윤정(비평집단 시선, 연극평론가)
진행 :
강보름 (본지 편집위원)
정리 :
장윤정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의 현재 방향과 다를 수 있으며, 본 좌담회는 참석자의 주관적인 견해를 존중하여 진행되었음을 밝힙니다. - 편집자주
강보름
연출 강보름입니다. 저는 청년예술지원 사업에 참여했었는데요. 올해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이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었잖아요. 이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임성현
저는 임성현입니다. 지원사업 결과 기다리면서 작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진아
저는 김진아라고 합니다. 최근 공연을 했고 저도 지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요.
성지수
성지수라고 합니다. 작년까지 3년 꽉 채워서 서울청년예술단 지원을 받았고 올해는 아무 지원사업도 넣지 않았습니다.
김정
배우 김정입니다. 저는 청년예술단이 2017년도에 처음 생겼을 때, 사막별의 오로라라는 팀으로 지원금을 받아서 공연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고요. 지금은 이보람 작가와 같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장윤정
저는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연극평론가 장윤정입니다. 저희 팀은 2017년도부터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올해도 문화재단에 지원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강보름
지원사업에 피로도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청년지원사업이 없었다면 연극계에 진입하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청년예술단 사업에 참여하시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성지수
제가 생각하는 청년예술단 사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나 KTS워킹그룹과 같은 연대 단위들이 생성되고, 2~30대 젊은 창작자들이 이런 활동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점, 장기 활동을 하는 데에도 큰 기반이 되었던 점이에요. 청년예술단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건강한 창작환경을 만들 수 있기도 했고요.
김진아
저는 ‘활동비’의 개념에 대해 되짚고 싶어요. 청년예술단 사업을 놓고 보면 제작비 1500만 원 플러스 활동비인데요. 사실 1500만 원으로 공연을 올릴 때, 대관료와 기타 제작비를 제하면 결국 인건비는 최저시급도 안 되거든요. 만약 활동비 없이 1500만 원만 받게 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활동비까지 포함해야 작업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재단 측에서는 활동비를 월급이나 복지의 차원이 아닌 네트워킹을 위한 활동비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서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임성현
청년예술단에서 활동비를 애초에 ‘수당’의 개념으로 설계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와서 재단에서는 네트워킹 비용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고, 양보해서 사업 제작자와 참여자 사이에 활동비에 대한 이해의 간극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사라지는 것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윤정
재단에서는 예술을 특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특수한 활동을 지원해준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참여자가 활동비를 수혜로 여겨선 안 된다’고 표현한 거죠. 그런데 참여자들은 애초에 활동비를 수혜로 여기지 않아요. 노동의 대가로 이해하죠. 예술도 노동이니까요. 활동비에 대한 서로의 이해의 간극이 근본적으로 예술을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아닐까 생각되네요. 저는 활동비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어요. 실제로 활동비는 창작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잖아요. 안정적인 수입이 있을 때 어떤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치를 지난 3년의 결과가 보여줬어요. 저는 이 지점을 다른 지원사업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건비와 창작지원금을 분리하여 제공하거나 매달 정기적으로 지원을 제공하는 형태가 창작자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거든요.
김정
2017년 청년예술단 사업에 참여했을 땐 청년예술단 사업에 참여하면 다른 국가지원금 사업에 참여할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활동비 70만 원밖에 생활비가 없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돈을 벌 방법은 연극과 무관한 파트타임만 남게 되거든요. 생활을 유지하면서 활동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죠. 그다음 해부터는 그걸 보완했다고 들었어요. 다른 국가지원금을 받으면서도 70만 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건 정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앞서 말씀하셨듯이 1500만 원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들어있지 않은 지원금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장기적으로 70만 원을 지원해주는 것이 새로운 생각이나 가치관, 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지원해준다고 이해했는데, 그것마저도 온당하지 않다고 판단을 한다면,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성지수
청년예술단 사업을 미투운동 이후의 평등을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과 엮어서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원래 배고픈 것이 예술이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하는 게 연극’이라는 말을 들어오곤 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기성의 체제를 거부하고 기존의 연극 미학과는 다른 길을 찾고자 했던 팀들이 청년지원 사업으로 성장했다고 보거든요. 이럴 땐 이 사업을 복지나 시혜로 보긴 어렵죠. 결과적으로 미투운동 이후로 창작자가 어떤 작품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공적자금이 투입돼서 공적인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성장하도록 한 경우인 것 같아요. 다른 생각으로는, 국가가 왜 예술가를, 예술사업을 지원하는가 하는 점인데요.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시민이 그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고, 또 공적인 자리에서 연극이 성장하여 소위 ‘케이팝’처럼 국위선양에 일조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이런 시각과 더불어 예술인복지법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않으면 자멸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라는 시각이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두 가지가 혼재된 것 아닌가. 그래서 저도 ‘이 세금을 왜 받는 거지? 이 세금을 받아서 어떤 작업을 해야 되지?’라고 생각할 때, 두 가지 시각이 분리되지 못하고 있는 지점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김진아
연극 활동 지원이 세금으로 지원되어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예술 활동이 생산하는 가치가 ‘경제적인’ 가치는 결코 아니잖아요. 매우 많은 돈이 제작비로 소요되지만 본질적으로 수익을 남길 수 없는 특성의 작업이니까요. 보통 세금이나 공적자금이 투입됐을 때는 항상 ‘경제적인 가치가 얼마나 환원이 될 수 있느냐’는 기준으로 판단이 되는 것 같아요. 또, ‘상황이 안 됐네, 우리가 시혜해줄게’라는 식으로 이해되기도 하고요. 예술은 애초에 그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 같아요. 경제적 가치 외에, 어떤 담론을 형성하거나 미적인 결과물을 만든다는 점이요.
성지수
대중문화산업 이외의 예술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을뿐더러, 현장에서도 이루기 힘든 합의인 것 같기는 해요. 저도 아직 불명확하거든요. 제가 노동을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제가 하는 노동에 왜 세금이 쓰이는 것인지 아직 판단이 어렵긴 해요.
장윤정
문화재단이나 예술 관련 공공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러한 국가기관들이 존립하는 이유는 담당하는 부문들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함이지 특별히 누가 누구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거든요. 나라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권장했기 때문에 예술 관련 공공기관이 존립할 수 있는 거겠죠. 그렇기에 기관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세금으로 일하시는 것이고 저희도 세금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저희는 어떤 경제체제 속에 귀속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랬을 때, 우리의 노동력은 어디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결국 국가적 체계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청년예술단 사업 이후로 문화가 바뀐 걸 느껴요. 청년 창작자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고, 창작 과정이나 창작환경에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청년예술단 사업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연극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거죠. 청년예술인들이 굳이 기성의 극단에 가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흐름은 기존의 권위적인 체계를 답습하지 않는 형태가 되었어요. 연극계에 만연했던 보수적인 문화체계의 판도를 바꿨다고 봐요. 이것만으로도 대단히 가치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청년예술인들을 성장하도록 도모해야 옳은 것이지 이것을 시혜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건 상황을 잘못 이해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성지수
저는 2020년도 지원사업을 발표하면서 재단 측에서 이야기했었던, ‘새로운 사업은 사각지대를 없애고 보편적으로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굉장히 재밌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예술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청년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나 각자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재단에서는 갑자기 왜 모두의 힘듦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려고 하는지 의문스러워요. 청년예술이 지원받아야 하는 데는 명확한 근거가 따로 있어요. 지금 국가와 예술 간의 관계, 그리고 예술가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걸 다른 방향으로 한번 시도해보려는 주체들에게 기반이 없는 거잖아요. 또 하나는 그런 연극을 시도하는 대부분의 주체들이 뭔가 도전적인 연극을 하고자 하는 팀들이 많아요. 기성의 문화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팀들이 많죠.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에 그 역할들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지원하는 것이 청년예술단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강보름
재단에서는 설계자와 수행자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설계하는 위치에 왜 청년들은 없는가, 그건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정치조차도 청년이 해야 된다고 청년 정치인들이 직접 등장하는데 항상 지원사업에는 왜 청년설계자들이 없는 건지. 결과를 분석하는 분들도 평가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지표가 예전과 동일한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했던 활동들이 제대로 분석되고 평가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임성현
재작년과 작년에 재단에서 사업에 참가했던 분들을 모아 피드백 형태로 질문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긴 했었는데요. 청년예술단 지원사업 참여자뿐만 아니라 여러 그룹이 함께 모여서 진행됐었고, 당시 청년예술인 그룹보다 다른 그룹의 영향력이 훨씬 강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성지수
저도 재작년에 참여했었는데요. 제가 기억하는 것은 질문에 이미 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예를 들어 매달 70만 원을 받으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묻거나 달라진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하게 되었는가 등을 묻는 거죠.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결국 아르바이트를 안 하게 되었다든가 창작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의 답변밖에 할 수가 없었죠. 거기서 자발적 창작과 연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소화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의견 청취를 했다고 해도 무슨 의견을 왜 들어야 되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기본적으로 젊은 창작자 내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 설계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다른 의견이 더 잘 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서울시의 청년예술단 사업 소개 (2017)
김정
다들 예술가라는 자부심이 있으세요? 저는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한번 저희 극단에서 루마니아로 공연을 하러 갔어요. 그 나라 사람들은 공연을 보면 기본적으로 다 기립박수를 치고 꽃을 줘요. 당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해줬는지에 대해 몸으로 보여주는 거였어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럴만한 일을 하는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구나, 박수를 받는 일을 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거든요. 예술가로서 자부심이 별로 없는 게 내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사회가 예술가에 대한 존중이 없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는 보호받아야 되니까 시혜를 해줘야 된다는 시선으로 보니까 이런 시각이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시(詩)라는 것도 아주 비효율적이고 아주 쓸데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 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언어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니까. 연극도 비슷하죠. 다양한 목소리가 없을 때 이 세상은 너무나 경직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것 같은 것들을 계속 무대에 노출시키고 이것이 받아들여질 때, 그때야 겨우 이 사회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 연극도 다양한 목소리가 유입되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지수
전 자부심이 없는 상태예요. 그동안 예술인들, 특히 연극인들이 예술지상주의의 이름으로 굉장히 많은 폭력을 자행해왔다 생각을 하는데요.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 인력과 금전을 바짝 끌어모을 수 있는 방식은 열정을 강요하는 것이고, 돈이 안 되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죠. 그것이 마치 숭고한 일인 것처럼 만드는 그 기제가 지금까지 작동해왔기 때문에, 연극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청년예술단의 활동비는 우리의 활동이 노동임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함께 하는 작업자 사이에는 도제 형태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동료라는 인식을 만들어주었고요. 그래서 권위적이고 인력을 착취하는 구조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 같아요.
장윤정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야 이 사업의 가치를 찾는 상황이 되었네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면, 우선 대거 등장한 청년예술인들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어요. 사실 올해 우리가 고민해야 했던 지점은 3년의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으로 성장을 끝낸 이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이다음 단계의 체계였어요. 그런데 이번 결과는 기존의 파이를 새로 조립한 형태거든요. 사각지대와 보편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에 따른 새로운 파이가 등장해야 했어요. 결국 기존의 파이를 해체하고 조립하니 아귀가 맞지 않아 틈이 생기고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겼죠.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의 가치는 연극계의 문화 판도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해요. 권위적인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예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어요. 만일 지속해서 탄탄하게 이 사업이 이어졌다면 충분히 더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겠죠.
성지수
미학적 변화도 분명히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윤정
네, 그동안 ‘1월’에 연극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해왔는데 최근 들어 1월에도 참 많은 공연들이 있었어요. 그건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원을 통해 결과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다량의 연극들이 풍성하게 탄생한 효과가 나타난 거죠. 그렇다면, 이 풍성한 연극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원 과정의 평가뿐만 아니라, 결과물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연극계 내부에서 청년예술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평가할 것인지 그 구체적인 기준을 재고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 새로운 시도를 실험하는 단계의 예술인들에게 적합한 평가 기준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봐요. 청년예술인들이 현재에 멈춰 있지 않잖아요. 단계를 거쳐 가면서 분명히 성장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걸 한순간으로 판단해서 함량 미달이라고 정의해버리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요.
김진아
질적 완성도로 결과물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청년예술인들은 다른 기준으로 창작활동을 해가고 있기 때문에 평가하는 이들이 그것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두 관점 다 개선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결과물의 완성도나, 관객 점유율과 별개로 실제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해낸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잘 얘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어요.
장윤정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의 목적은 애초에 좋은 결과물을 탄생시키기 위한 지원사업이 아니었어요. 청년예술인들이 현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게 ‘최초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응원해주겠다’는 개념이었어요. 인큐베이팅 사업에 가깝죠. 그렇다면 평가도 그 목적에 맞게 설정되어야겠죠. 청년예술인들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 작품에서 어떤 지점을 발견하면 좋을지, 어떤 지점을 주목하면 좋을지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청년예술을 지원하는 건데 정작 청년들은 소외된 상태로 지원사업이 진행된 면이 있어요. 사업 설계도 심사도 피드백도 어디에도 정작 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청년예술인들은 없었으니, 자연히 기성의 시각에서 사업이나 평가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임성현
평론지를 살펴보면 요즘 청년지원 사업들을 통해 새로운 팀들이 많아졌지만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됐던 작품들은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에서 나온 작품들이었거든요. 혹시 그런 작품들을 다 보지 못한 건 아닌가. 그러니까 청년예술인들의 작품도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다고 생각해요. 하향평준화라는 평가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고요.
장윤정
저희 팀이 느꼈던 이 사업의 의의는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창작자 이외에도 평론가를 지원한다는 것이었어요. 평론도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으면서 평론가도 창작자라는 개념을 형성했는데요. 안타까운 건 신진 평론가에 대한 지원이 많지 않고 지원이 지속되기도 쉽지가 않아서, 더 많은 청년 평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결국 저희뿐 아니라 젊은 평론가들이 독립적으로 자신들만의 평론 활동을 시작하기에 더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강보름
또 다른 연극비평집단 시선 같은 팀이 나오려면 오히려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이 없어져선 안 됐던 것 같아요. 동료 평론가로서의 위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성의 평가방식으로는 청년예술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우니까요. 사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을 통해서 평론가와 창작자가 서로 동료라는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했던 경험이 크게 다가왔었는데요. 그런 개념이 각자 개별지원으로 가면서, 같은 그룹이고 팀이라는 개념이 불명확해진 것 같아요.
장윤정
사실 젊은 평론가라고 하기에도 이제 저희도 나이가 만만치 않게 많은데, 저희 외에도 젊은 평론가들이 많이 등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청년예술인들의 작품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그만큼 그 작품들을 평론할 사람들도 늘어나야 마땅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 공연들을 다 주목할 수 있을 만큼으로는 평론가의 수가 현저히 적은 편이에요. 그러니 평론가들도 지원을 받고 더 다양한 형태로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작자들과 평론가들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연극계를 더 풍성하고 건실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청년예술단 활동공유워크숍 포스터 (2018)
성지수
작년까지는 팀 유지가 가능했어요. 근데 올해 가장 큰 변화는 팀에 묶여 있으면서 생계유지가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니 저의 생각을 지지하지만 이번에는 작업을 함께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돼요. 그렇다고 제가 그 팀원을 잡을 수 없거든요. 제가 그분들의 삶을 책임질 수 없으니까요. 팀으로 작업한다는 것이 저에겐 굉장히 큰 정체성이었는데, 요즘엔 세 명이서 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고 있어요.
장윤정
그래서 지금 시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이 지원사업이 평등한 연극계 환경을 만드는 데에 기반이 됐잖아요. 예컨대 미투운동 이후로 권위적인 집단체제에서 벗어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이것이 무너지는 순간 다시 우리는 권위적인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험이 생기는 거예요. 사실 지금 시대는 집단체제가 마냥 미덕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시대잖아요. 근데 이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이 사라짐으로써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죠.
성지수
동의해요. 제가 저희 팀이 흩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 같은 의미에서 위기를 맞았다는 의미였어요. 그중에서도 사실 가장 취약한 상황의 분들은 여성 배우들이고요. 평등한 작업환경을 만들어가는 것도 이제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생기겠죠. 그렇다고 다시 기성의 극단 체제로 귀속된다는 것도 이제는 상상이 잘 안 가기도 해요.
김진아
이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건 사실 시간인 것 같거든요. 오롯이 연극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 활동비의 의의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지원이 된다면 단순히 제작비를 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만큼을 지원하는 것은 너가 그만큼 너의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태도로 지원체계에 접근하면 좋을 거 같아요.
성지수
제가 생각했을 때, 청년예술단 사업에서는 활동비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요즘 이슈인 기본소득제도를 실현했던 유일한 체계가 아니었나 싶어요. 기본소득이 현금으로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모두에게 제공되었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여력이 생겼는데. 당연히 이것은 소외된 여러 예술가들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죠. 내가 가 있고 싶은 곳에 가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해도 내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 같은 거요.
임성현
기존의 활동비를 통한 기본소득에 대한 경험은 상당히 유의미한 경험이었어요. 그런 활동비를 통해 책임감을 갖게 만들어서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 활동비가 팀 내에 어느 정도의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하거든요. 작년에 발표된 지원사업의 내용을 보니까 그게 다시 대표자한테 집중이 되게 만드는 구조로 변경된 건데, 그럼 다시 대표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태계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정
돈을 어떻게 정당하게 제공하고 받을 수 있느냐의 기준 자체가 다른 것이, 연극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들어요. 김진아 연출님 말씀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거든요. 근데 시간이 잘 주어지지 않는단 말이죠. 작업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관련 없는 일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안 주어지는 거죠. 그런데 공연을 하려면 온종일 작업에 몰두하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데, 지원사업을 설계하고 제공하시는 분들은 다른 기준인 것 같아요. 하루에 연습하는 몇 시간만 작업시간으로 이해하고 이외의 시간은 여유로운 개인 시간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좀 이해하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진아
저는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이 폐지된 거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이 결정과 발표의 시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몇 달 전도 아니고 사업 발표와 동시에 ‘(그 사업은 없어졌고) 이번엔 이 사업이야’라고 하는 방식은 예술가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돼요. 지원체제에 의존해서 1년 계획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그 사업이 변경될 것이라는 걸 최소 6개월 전에는 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변경에 나름의 논리가 있다면, 어떠한 이유와 근거로 변경된 것인지 좀 더 설명이 있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설명도 없었던 것 같고요.
김정
더 좋은 체제 개편과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지원사업이 변경된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어야 되는데 그냥 통보하는 식이면, 우리를 존중하지 않으니 우리도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 같아요.
임성현
저는 청년예술단 사업의 설계는 애초에 짜임새 있거나 훌륭했던 게 아니었는데, 그걸 참여자가 완성해나갔다고 느꼈거든요. 매년 할 때마다 행정적인 절차가 개선됐고 활동 평가 관련해서는 이의도 수렴되고 하면서, 시스템이 참여자들의 역할에 따라 잘 완성되고 있었는데, 어떻게 더 나아가야 될 것인지를 얘기해야 할 시점에 완성단계로 성장하던 사업이 소멸된 게 안타까워요.
장윤정
맞아요. 모두가 느끼는 것이 지난 3년 동안 연극계가 정말 활기가 넘쳤다는 점일 거예요.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의 역할이 정말 컸던 거죠.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연극계, 다양한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현상, 이것만 해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연극계 전체에 좋은 결과였던 것 같아요. 관객에게도 정말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요. 이전의 지인 관객에서 벗어나서 더 다양한 층위의 관객들도 많이 유입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동시대 젊은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화두를 제공했던 청년예술인들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하고, 그 바탕에는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이 있었던 거죠.
성지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일을 노동으로 생각하고 싶고 그랬을 때 우리 안에서 착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합의까지 도달을 했고, 그것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대한 그 다음을 꿈꾸고 싶은데, 예술 행정을 하는 분들에게 예술은 특별하고 멋진 것으로 이해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예술가를 서포트하는 역할로서 자긍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는 예술 행정을 하시는 분들까지도 예술계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제는 그분들도 예술지상주의에서 벗어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 행정을 하시는 분들과도 동료로서의 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더 나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윤정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지난 3년간 지원을 받았던 팀들이 연극계 문화를 변화해나가는 선발대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마 이들은 3년의 지원이 끝난 후에도 지속해서 각자 자신의 활동 방법을 찾아가며 길을 찾아 나가겠죠. 그럼 그 방법들을 통해 이후 세대는 앞 세대가 간 길을 따라 더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서 활동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연극 활동 전반에 걸친 새로운 지원 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게 무너진 건데, 이 근본에는 단기적인 성과가 중요한 행정과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보는 현장 작업자들 간의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강보름
정리를 좀 해보자면 청년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원사업기관과 당사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고요. 시혜적인 대상 혹은 약자의 시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청년예술가들을 좀 더 동반자적인 존재로 인정했더라면, 그래서 청년예술가가 지원사업 설계부터 평가까지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으로 수렴이 되는 것 같아요.
성지수
저는 그래서 사실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봐요. 깔끔하게 단칼에 없애버리니까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에 대해 다시 재고를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의 가치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바가 있는가. 예술가라는 것과 예술이 노동이란 것에 대해 합의된 바가 있는가. 또, 왜 공공기관이 왜 세금으로 예술가에게 지원하는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 전반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요. 여기서도 이야기를 하고 여기저기서 공론화가 되다 보면 재고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설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아마 예술을 사랑하니까 예술재단에서 일을 하시는 걸 텐데 예술에 대한 그 사랑과 예술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그 기여도에 대해서는 전 굉장히 존중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동료, 동반자로서의 관점이 서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현장에서 요청하는 시대라는 것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기도 해요.
강보름
그렇게 되면 청년의 의미라든지, 예술가라는 말에 담기는 맥락이 더 확장되는 느낌인 것 같네요.
김진아
청년예술단 사업에 지원하려고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가 하는 공연에서 장애인 접근성 지원을 위해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을지 연구하고 실행해보려 했던 거예요. 이미 다른 극단들에서 많이 해온 부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경험들과 정보들을 수합해서 일단은 우리 공연에 적용하면서 무엇이 가능한지 시도를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어요. 사실 이 부분은 공공에서 공적으로 신경 써서 진행해야 될 부분인데 개인이 사업을 통해서 시도해야 되는 형태가 주객전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거예요. 만약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을 포함해서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이유가 좀 더 명확하게 있다면 예술 활동 외의 공적 자금이 지원되는 분야에 대한 기반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에 대해서도 재단에서 생각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임성현
《연극in》이 개편되면서 객원편집위원이었던 김방옥 연극평론가께서 청년예술인들의 여러 작품들을 리뷰하셨는데 ‘요즘 되게 활기가 있고 연극 보러 가는 재미가 오랜만에 있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요. 청년예술인들의 작품 속에서 이런 부분들을 읽어주셨던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건 이제 단순히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예술계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문제로 인식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에 따라 청년예술인들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 거죠. 김방옥 평론가의 말들은 되게 힘이 되었었는데, 그처럼 어떻게 다 같이 변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장윤정
저는 역설적으로 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을 설계하셨던 분들께서 상당히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이 지원제도는 연극계에 엄청난 역할을 했어요. 문화는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걸 한 번에 바꾸는 역할을 이 지원제도가 해줬어요. 그 지점을 한번 꼭 염두에 두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번에 없어졌듯이 나중에 다시 재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없어진 걸 한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이 점들을 보완해서 새로운 지원제도가 제발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마련된 것 아닐까 생각해요. 부디 이 지점들을 참고해서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지원제도가 탄생하는 발판이 되면 좋겠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세심하게 접근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정
이런 문화의 물결을 따라서 같이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아서 청년예술단이라는 지원체계를 만났고 계속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청년예술단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제 연극계의 공기가 바뀌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는 것 같아요. 문화가 바뀌는 일은 쉽지 않고, 변화하는 문화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계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면 계속 흔들어야 하는데, 그 흔드는 역할을 청년 예술가들이 분명히 했어요. 엄청나게 큰 가능성과 가치가 있는 사업이었다는 게 사실이고요.
김진아
저는 예술가가 약자고 그중에서도 청년예술가가 약자여서 지원하는 게 맞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중요한 건 청년예술가들이 ‘약자성’만 가지고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약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외의 가치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재단의 입장에서는 약자를 지원하는 것은 복지고,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은 다른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서로 다른 논리와 시각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성지수
사실 우리가 이렇게 날카로운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문화의 변화 덕분이고 그 성과이기도 하죠.
강보름
네, 오늘 꼭 필요한 말씀들을 나눈 자리인 것 같아요. 이 얘기들이 현장과 공공에 잘 공유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시 홈페이지,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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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연극비평집단시선 소속
연극평론 및 드라마투르그 활동을 한다.
yjlife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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