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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품은 상상력, 연극을 만나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여섯 번째 이야기

전강희_연극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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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여섯 번째 이야기인디아트홀 공(출처_www.gongcraft.net/gong)

올해 상반기에 ‘페스티벌 봄’에서 필리핀 극단을 초청하여 <정부>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참가자들이 조를 이루어 커다란 흰 도화지 위에 자신이 원하는 건물을 그려 넣는 것으로 퍼포먼스가 시작하는데, 내가 속한 조에서는 광장과 극장, 미술관, 도서관이 마을을 가득 채웠다. 주로 예술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였기 때문에 이런 공간이 먼저였던 것 같다. 나중에서야 부랴부랴 병원, 농장, 소방서 등을 그려 넣은 기억이 난다. 아마 예술 활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현실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런 마을이 탄생했을 것이다.
염원과 달리 실제 삶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상 속에서 극장과 미술관을 발견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새로 생기는 계획도시라면 사정이 다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동네에서 예술과 관련된 공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혹시 이런 공간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그 마을의 어떤 주체보다도 능동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작은 실천이 겹겹이 모였을 때, 평범한 공간이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광장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기능을 갖게 되고, 그 공간이 속한 도시의 문화적인 흐름을 새롭게 창조해낼 수 있다.

작은 실천이 모여, 기능을 확장시킨 공간이 몇 개 있다. 새로운 예술적 시도가 미술관이나 극장보다 먼저 시작되는 공간이다. 양평동에 위치한 인디아트홀 공, 연남동의 플레이스 막사, 만리동의 막쿱, 신수동의 숨도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들도 어엿한 갤러리이며 공연장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공간들이 작품의 일부처럼, 혹은 작품의 무대배경처럼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간 밖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해당 공간이 위치하고 있는 건물이나 동네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장지대의 구석에,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시장 한쪽에, 카페의 한 귀퉁이에 이 공간들은 예전부터 그곳이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놓여있다. 예술 공간이기 이전에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풍부한 전시장과 공연장에 들어오는 작품은 공간의 색깔과 맥을 같이 한다. 공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서촌이나 세운상가 등에도 공간 중심의 플랫폼이 몇 군데 있지만, 주로 시각예술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다. 이에 반해 언급한 네 군데는 연극이나 공연이 뿌리내릴 토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완전히 암전이 이루어지는 블랙박스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공연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고 출발하였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여섯 번째 이야기인디아트홀 공(출처_www.gongcraft.net/gong)

인디아트홀 공: 공간을 입는 법

"인디아트홀 공은 재개발계획으로 5년 넘게 사용하지 않던, 공장 건물의 한 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은 모든 창작자가 각자 개성을 품은 1인 공장이라 생각합니다. 노동과 생산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전시나 공연 등 문화 예술 활동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공은 순수한 의미의 ‘공장’을 고집하고, 소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생산자들과 함께합니다."- 인디아트홀 공 홈페이지에서

인디아트홀 공은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있는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 위층에 위치한 이곳은 ‘공장 위의 극장’으로 유명세를 사고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가는 경험 또한 새롭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작은 골목을 지나, 주택가와 공장이 밀집해있는 길을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높이 솟은 굴뚝이 나온다. 굴뚝을 발견했다면 길을 제대로 접어든 것이다.
가까운 문래동의 극장이나 작업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철공소들 사이에 위치한 것과 달리, 인디아트홀 공은 압도적인 크기의 굴뚝이 주위에 있어서인지 기업형 공장지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극장의 크기도 상당하다. 3m가 훨씬 넘는 천장고와 ㄱ자 모양으로 70평가량 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건물 외벽 또한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이고, 주위에서는 끊임없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은 장소가 바로 그대로 극의 무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극단 동’이 코마야시 다키지가 1929년에 쓴 소설을 각색해서 올린 <게공선>이 그랬다. 게 잡이 어선에서 기업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몸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을 하나하나 되살려내듯이 형상화했다. ‘양손프로젝트’는 유진오의 소설 <여직공>을 무대화했다. 공장에서 고된 노동으로 착취당하던 어린 여공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두 작품에서 보여준 노동하는 몸은 예전에는 공장이었던 극장과 궁합이 잘 맞아 떨어졌다. 공간 안 어딘가에는 쌓여있을지 모르는 과거의 시간을 배우의 몸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여섯 번째 이야기플레이스막사(출처_www.facebook.com/placemak)

플레이스막사: 일상을 살찌게 하는 장소

"플레이스막과 막사는 그대로 막장이다. 지금 바로(막) 무엇인가 마구(막) 펼쳐질, 막(幕)을 올릴 수 있는 장(場), 막상(막) 전시를 보러 가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어떤 막(膜)에 현기증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해 플레이스막과 막사는 순수하고 거침없는 막(幕)을 올릴 것이다. (...) 거칠지만 대중이 자진해 걷어치울 수 있는 막이 되고자 한다. (...) 앞으로도 플레이스막과 막사가 지역사회와 함께 생산된 예술적 담론으로 지속될 수 있길 바란다."- 플레이스막 홈페이지에서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플레이스막과 플레이스막사는 2010년에 생긴 공간이다. 막은 전시공간으로, 막사는 공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공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기억해야할 주변 공간이 있다. 바로 동진시장인데, 플레이스막은 시장의 맞은편에 플레이스막사는 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1974년에 처음 문을 연 동진시장은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손님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희동,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 등에 살고 있는 수공예 예술가들이 협동조합 ‘모자란’을 조직하여 자신의 작품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 동진시장은 프리마켓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주변에 독립잡지를 판매하는 서점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자주 들르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플레이스막과 막사가 연남동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 시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막사는 무대로 쓰일 공간을 제외하면 30석 정도의 객석이 나온다. 이곳도 블랙박스 형태의 극장 공간은 아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봄에는 9명의 아티스트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2015막쇼>라는 제목으로 쇼를 진행했다. 최근 다원예술 퍼포먼스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이다. 작년에는 연극 <눈덩이지구이론>과 <한 이불 덮고 만져줄게>도 무대에 올랐다. 공연 규모상 대학로의 소극장 보다는 작은 공간이 더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여섯 번째 이야기막쿱(제공_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막쿱: 집과 동네, 그 사이에 존재하기

중구 만리동에 자리 잡은 막쿱(M.A.Coop)은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Mallidong Artists Cooperative, M.A.Coop)의 줄임말이다. 29세대가 입주하였다. 미술, 건축, 영화, 영상, 문학,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2015년 3월 입주하기까지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삶과 작업을 어떻게 병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공간은 총 5층의 건물로 두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이면서 동네이기도 한 이 건물은 골목길이 연상되는 통로들로 곳곳이 연결되어 있다. 공용 공간인 1층은 전시나 공연이 열린다. 1층 두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야외 공간도 공연을 올리기에 충분하다. 5월에는 개관기념으로 극단 동의 토론 연극 <쉬또 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가 공연되기도 했다. 공연 후 뒤이어지는 토론에 다양한 예술 분야의 주민들이 참여했다.
막쿱의 예술가들이 입주 후에도 끝나지 않은 고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이다. 29세대가 함께 하는 이곳도 집이면서 동네이기도 하지만, 이 공간이 위치한 더 큰 동네 만리동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우선 동네 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예술 강좌, 벼룩시장, 공방 등을 열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우기 쉽지 않은 것들을 아이들과 나눴다. 최근에는 동네 패션쇼도 열었다. 누구나 참여해서 관람할 수 있는 연극도 올렸다. 막쿱에서 올라가는 공연들은 열린 구조의 건물처럼, 또 그 사이사이를 잇는 통로들처럼, 동네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여섯 번째 이야기숨도 ‘극장 소우주’(출처_soomdo.org/microcosm_is)

숨도: 젊음과 공존하기

문화공간 숨도는 서강대학교 근처 신수동에 위치한 공간으로 카페인 ‘숨도’, 노트북이나 수험서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진짜 종이책을 조용히 볼 수 있는 ‘책극장’, 전시 공간인 ‘작은 전시관’, 공연 공간인 ‘극장 소우주’로 이루어져 있다.
극장 소우주는 이름처럼 작은 창작공간이다. 가로 5m, 세로 5m, 높이 4m의 작은 방 모양을 한 초소형 극장이다. 이곳에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젊은 창작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관객 3인 이상’과 ‘못자리’가 있다.

‘관객 3인이상’은,

“‘작은 티끌 안에도 우주를 담을 수 있다’라는 극장 소우주의 운영철학을 반영한 공간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무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작은 공연을 만들 기회를 제공합니다. 오직 학업과 직업에만 힘을 쏟으라고 재촉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공연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경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공연을 직접 만들고 선보이는 즐거움이, 경험자인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자신의 공연을 테스트하고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관객 ‘3인’ 이상만 데려오면 주어집니다.”

‘못자리(seed bed)’는,

“배우, 무용가, 극작가, 연출가, 무대미술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싹틔우는 ‘못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 창작의 씨앗을 키울 수 있는 ‘못자리’를 숨도에서 지원해 드립니다. 창작공간을 찾는 공연예술가들이 작품으로 자신만의 예술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독립공연예술가 지원프로그램인 <못자리>를 통해 격려하고자 합니다.”- 문화공간 숨도 홈페이지에서

이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관객은 많아봐야 20명 정도이다. 일상 속 곳곳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들은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하루를 풍요롭게 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지점이 한 가지 더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 못지않게 젊은 예술가의 심정은 어떠할까? 젊은 시절 예술에 어떤 식으로 첫발을 내딛었는가는 그 사람이 예술을 오랫동안 향유할 수 있을 것인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본 사람이 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젊은이의 거리 신촌 가까이에 위치한 공간다운 선택이다.

[사진: 각 공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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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희

전강희 연극칼럼리스트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했고, 공연관련 글을 쓰면서, 드라마터그로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kanghee.jeon.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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