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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리뷰] 시작하지 않은 것을 끝내는 방법

매머드머메이드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박종주_평론가

제161호

2019.06.13

친절하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안내한다. 자리가 차고 시간이 되면 객석 뒤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끈다. (이 공연의 무대조명은 작업용 형광등, 바닥에 세워둔 스탠드, 휴대전화에 꽂아 쓰는 LED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로 돌아온 그는 죽음이니 삶이니 하는 단어가 반복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일장연설, 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렸지만 ― 익숙한 연극 조의 말투를 구사하고 있음에도 ― 그는 관객 혹은 청중 대신 손에 든 작은 책을 바라보고 있다. 책에 적힌 문장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마치 주석 같은 문장을 읊을 때는 책 대신 객석 쪽에 시선을 두었다. 글쓴이가 단 문장인지, 독자로서의 그가 글을 읽다 말고 떠올린 말인지는 불분명하다. 무대 위의 인물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도 좋다면, 그 글은 이제는 폐간된 어느 독립잡지에 김은한이 실은 것이다. 바닥에 놓인 채 비스듬하게 위를 향하고 있는 조명은 그의 얼굴에 오히려 그림자를 지운다. 붉은색을 띤 책의 표지, 그리고 무대 뒤 벽에 비친 인물의 그림자. 관객들에게는 무대에 홀로 앉은 인물 대신 그런 것들이 보인다.
책을 읽는다. 어쩌다 이 공연을 하게 되었는지, 무대에 선 자신의 심경이 어떠한지, 관객들에게 어떤 행동이 요구되거나 허락되는지 따위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 ―그는 이것을 “공연 안내”라고 불렀다 ― 을 늘어놓는다. 극 중 극, 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어떨지 불분명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시종 재주 없고 당황한 배우를 연기하며 그는 뻔뻔스레 말한다. “여러분들만 조용히 해주시면 요 공연은 없었던 걸로 하고, 제가 내년부터 활동을 하면은, 최초예술지원이라든가 다른 지원사업에도 조금 유리하겠죠?” 공연 소개에는 “보고 기쁘게 돌아가신다면 그것만이 제 기쁨입니다”라고 적어두었지만, 이것은 의례적인 말이다. 돌아갔다 돌아오기를 바라는, 관객이 돌아올 다음 공연이 가능하기를 바라는 한 인물이, 작중 인물인 동시에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한 인물이 여기 서 있다. 어쩌면 이것은 한 인간의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사진제공: 매머드머메이드)
이 공연이 ‘리믹스’하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알마의 즉흥극 혹은 목동의 카멜레온』은 ‘목동의 카멜레온’을 집필 중인 이오네스코와 그의 작업실을 찾아 “과학적”이고 “사실적”이며 “대중적”인 연극을 요구하는 동명(同名)의 세 박사 바르톨로메우스 1, 2, 3,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로부터 이오네스코를 구해내고 한편으로는 제 할 일 - 청소 - 을 해내기 위해 분투하는 마리의 대화로 구성된다. 고압적이며 종종 우스꽝스런 태도로 이오네스코에게 자신의 연극관을 늘어놓는 이 박사들의 모습은 당대 평단에 대한 이오네스코의 비판을 패러디의 형식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에 저 박사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놉시스에 따르면 “객석에 숨어있던 비평가가 무대로” 나서는 대목이 있어야 하지만 이 무대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신 무대 위의 인물은 오기로 한 비평가가 오지 않았다며, 비평가가 하기로 되어 있던 말과 모습을 보면서 마리가 하기로 되어 있던 행동을, 제 스스로 읊는다. 바르톨로메우스들도 마리도 없이 홀로 이끌어 가는 무대. ‘목동의 카멜레온’의 도입부라며 공연이 상연되는 무대의 상황을 그대로 읊음으로써 두 작품을 하나로 만들고, 마리에게 끌려 나간 박사들에게 연극이 끝났다며 다시 들어오라고 외침으로써 그 모든 것을 연극 속의 연극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오네스코 역시 이 자리에는 없다. 무대 위에 홀로 서성이는 인물은 ‘알마의 즉흥극’과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를 오가며 아마도 김은한을, 그의 1인 극단 매머드머메이드를, 그리고 그(들)의 연극을 그린다.
나타나지 않는 비평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쩌면, 혹은) 그간 만났던 관객들을 이야기한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것, 혼자서는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을 말하고 싶은 마음을, 관객에게서 뜨뜻미지근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말 대신 구체적인 평을 듣고 싶은 마음을. 그리고 (어쩌면, 혹은) 아무래도 좋으니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자리를 갖고 싶은 마음을. 그런 뒤에 이어지는 것이 『알마의 즉흥극 혹은 목동의 카멜레온』에서 따다 고친 장면들, 등장하지조차 않는 비평가 같은 것들이라니. 이쯤 되면 노스탤지어를 느껴도 좋을 것이다. 굳이 새 극을 써서까지 반박하고 또한 스스로를 보듬어야 했을지언정, 이오네스코를 공격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었던 어떤 시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 말이다.
관객과의 대화를 하겠다더니 질문은 하지 말라고 덧붙이고, “저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라고 말했다가 “이야기? 제 이야기를 좀 듣고”라고 고친다. 공연을 선보이고 평을 되돌려 받는 일들에 대한 환상들이 모두 부정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다시, 장광설이다. 조악한 LED 조명으로 얼굴만을 비춘 채 또 글을 읽기 시작한다. 『알마의 즉흥극 혹은 목동의 카멜레온』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위의 이오네스코가 관객을 향해 비장하게 늘어놓는 대사다. 그러나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의 무대에는 바르톨로메우스의 옷을 벗겨 이오네스코에게 걸쳐 줄, 그 비장함을 멈추어 줄 마리가 없으므로 그대로 읊을 수는 없다. 시작만을 반복할 뿐 도무지 이어나가지 못하는 청년예술가 혹은 신진예술가의 말이 이어진다. (언제까지 청년이고 언제까지 신진일까?) 그러나 무대 위의 인물에게 자기도취가 아닌 무엇이 허락되랴. 그는 금세 격앙된다. 그리곤 이내, 부재하는 마리를 대신해, 스스로를 멈춘다.
이오네스코가 돌고 도는 겹겹의 극을 통해 자신의 연극을 역설했던 바로 그 무대에서, 김은한은 파편들을 읽고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참인 (김은한의 것도 이오네스코의 것도 아닌) 희곡을 소개하고 이런저런 변명과 푸념을 주워섬기며 도무지 시작되지 않는 극을 끝내지 조차 못한 채 이어나간다. 형광등과 스탠드 모두가 꺼진 무대. 얼굴만을 겨우 밝히던 작은 조명까지 끄고 낭독인지 연기인지를 마치면 어둠과 적막만이 남는다.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시작한 적이 없으므로, 관객들은 끝을 기뻐하지 않았다. 이제 끝났습니다, 라고 멋쩍게 말하며 어둠 속을 걸어가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켠다.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 사이 박수는 쳤지만, 관객들은 쉽게 일어서지 않았다.
(사진제공: 매머드머메이드 ⓒ보통사진관 박태양)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일자
2019.05.24(금) ~ 06.01(토)
장소
신촌극장
출연
김은한
제작
매머드머메이드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theatresinchon/posts/269438234392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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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주

박종주
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같은 기간 동안 몇몇 사회단체와 진보정당 등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몇 개의 창작집단과 사회단체를 통해 창작자나 연구자,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주로 예술과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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