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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리뷰]이야기와 감각의 (짧은) 역사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퍼포먼스-콜로이드 2019>

박종주

제174호

2019.12.19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을 뜻한다. 한국 중앙정보부는 1967년 7월 윤이상과 이응노를 포함한 194명이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과 평양을 왕래하며 간첩활동을 해왔다고 발표하고 강제 송환했다. 활발한 국제 활동을 펼쳐온 음악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를 비롯한 한국 문화인들의 석방을 위해 서독과 프랑스 정부, 해외 예술가들은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대대적인 구명 운동 끝에 이들은 모두 간첩죄가 인정되지 않고 석방되었다. 이 특별코너에는 2연년간의 수감생활 속에서도 창작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두 예술가의 옥중 작품이 선보인다. 윤이상의 〈이마주(Imagine)〉(1968) 육필 악보와 작곡에 영감을 준 〈사신도〉(연도미상), 이응로의 〈사람〉(1967-1968), 〈구성〉(1968) 등은 냉전 체제를 몸소 견디게 한 원동력이자 예술적 결과물이다. 덧붙여 박찬경의 〈비행〉(2005)과 임형진 연출가의 다큐멘터리 연극 〈프로젝트 1917-콜로이드〉(2017)를 함께 구성하여 시간과 공간, 매체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연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문장들이 벽에 새겨져 있는 방이 있다. 뒤가 비치는 커튼으로 가운데쯤에서 나뉜 기다란 방이다. 커튼 앞쪽의 공간에는 벽을 따라 이응로와 윤이상의 작업들이 전시돼 있다. 임형진의 이름으로 제작된, 모래와 잔가지, 스피커와 메트로놈 등으로 구성된 오브제가 공간 중앙에 앉아 이런 저런 소리를 낸다. 위에 열거된 것 중 이곳에 없는 작품들은 커튼 뒤의 공간에 걸려 있다.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퍼포먼스-콜로이드 2019>가 펼쳐지는 것은 바로 여기,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서울·과천, 2019.10.26-2020.03.28)의 2부 ― 1950년에서 2019년까지를 다루는 ― 에 해당하는 과천 전시장의 ‘특별코너’다. 커튼 뒤 공간의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테이블을 둘러싼 약간의 공간, 그리고 (객석이기도 한) 커튼 이쪽의 공간이 무대가 된다.
테이블에는 타자기와 작은 라디오, 사운드 믹서 따위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스탠드 마이크가 보인다. 공지된 시각에 맞추어 커튼이 걷히고, 한 사람이 나와 자신이 『윤이상, 상처 입은 용』의 저자 루이제 린저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보다는 스피커에서 독일어를 쓰는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온 것이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그는 자리에 앉아 문장을 소리 내어 읊으며 타자기를 두드린다. 이따금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돌며 말하거나, 노래하거나, 물건들을 만지거나 할 것이다. 독일어를 쓰는 또 한 명의 퍼포머 ― 극 중에서 그를 윤이상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은 것 같다 ― 역시 자리에 앉아 문장을 읊거나 노래를 하거나 할 것이다. 이응로의 그림 앞에서, 그러니까 그림 속의 작고 많은 사람 형상들을 바라보며, 지휘를 할 것이다. 자리에 앉은 루이제 린저가 그에 맞추어 악기 소리나 타자 소리를 낼 것이다.

<프로젝트 1917-콜로이드>를 가져오되 일부를 생략했다.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제재로 삼으면서도 구체적인 서사를 재현하지는 않는 틀은 유지했고, 현재의 시점에서 그 극을 올리는 배우들의 (역시 단편적인) 이야기가 드러났던 부분, 혹은 영상이나 코러스 등을 활용한 표현 등은 빠졌다. 윤이상이라는 한국 출신 음악가가 있었고 그가 독일에서 활동했으며 동백림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는 - 루이제 린저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 정보들, 혹은 통영 어느 학교의 교가를 비롯해 그가 만든 몇 개의 곡들 정도가 제시되는 ‘내용’의 전부다. 이것이 흠은 아니다. 언젠가 연출 스스로 말했던 대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루이제 린저의 것이든 혹은 다른 것이든 책을 찾아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방식들의 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오히려 감각이다. 객석으로 넘어오는 배우들의 음성과 몸짓, 무대소품들에서 나오는 소리와 진동, 벽에 걸린 그림들이나 그 앞의 조각상,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재생되고 있는 전시 영상들, 여전히 흔들리는 메트로놈. “매체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연대”와 줄 맞추어, 이를테면, 매체와 기관을 넘나드는 감각들의 동시적 현전.
애초에 전시장에도 위에 적은 것 이상의 정보나 해석이 걸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은 기묘해진다. 동백림사건, 윤이상과 이응노, 냉전 같은 커다란 이름들이 울리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활발한 국제 활동을 펼쳐온”, “2년여 간의 수감생활 속에서도 창작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예술가라는 호명에서 이 공간의 태도를 조금은 짐작한다고 해도, 이 퍼포먼스가 그것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퍼포머는 사건에 연루된 (여전히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내려졌던 형량을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외친다. 그림 앞에서 아무리 열정적으로 지휘한들 그림 속의 군상은 반응이 없고, 저 건너 공간의 퍼포머만이 곁눈질로 바쁘다. 독일어 문장들의 낯선 음소들이 퍼진다. 다만 낯설게. 동시적으로 제공되는 시청각적 자극들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서사를 부여받지 않은 채 떠돈다. 감정 변화를 정당화할 서사가 부재하는 동시에, 이를테면 감각 자체에 집중하게 할 감각 자체의 서사라고 할 만한 것 또한 없다는 뜻이다. 감각의 향연 같은 시쳇말조차 어울리지 않을 형태로 - 일정한 규모로 뭉친 감각의 덩어리가 아니라 - 수많은 가닥의 감각들이 막힘없이 흐른다.

공연을 촬영하는, 직접 보고 듣기보다는 렌즈와 액정을 거친 상과 마이크와 이어폰을 거친 소리를 듣는 관객들을 탓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시간 번역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허공에 퍼지는 독일어 문장들을 - 몇 개의 단어나마 - 붙들어보려 하는 이들도 있다. 감각을 직접적으로 여는 대신 기계와 의미라는 매개를 기어이 거치게 만들고야 마는 이들 앞에, 그러나, 홀로도 꽤나 무거운 어떤 이야기, 또 몇 가지 기법들, 보다 많은 것들을 보다 여러 층위에서 엮으며 제시했던 원작, 그리고 미술관이라는 공간 등을 거쳐 그 감각들을 펼쳐놓는 한 공연이 있다. 감각들이 중심이 된다고는 해도, 감각이 실제로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거나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은 아니다. 최소한이나마 서사를 ― 실은 화려하고 격정적인 최대한의 서사를 ― 기대하게 되는 소재를 앞세우고도 그 기대를 저버리는 구성을 통해 감각은 여기서 문제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동백림 사건, 윤이상, 이런 몇 개의 말들을 보고서 특정한 서사를 기대하는 것이 관습적인 반응인 만큼이나,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감각을 들먹이는 것 역시 이제 와서는 관습적인 반응일 것이다. 이것을 여러 겹의 역사화로 이해해야 할까. 브레히트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을 비판하며 말했던 “사건과 인물들을 역사적이고 덧없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으로서의 역사화 이야기다. 감동적인 영웅의 서사를 구성함으로써 윤이상에게의, 혹은 그를 존경하는 누군가에게의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대신 이 공연은 분해된 감각들을 흩뿌림으로써 지난 시대의 한 인물이, 혹은 그의 예술이 관객들 각자에게서 재조립되게 만든다 ― 이런 말은 어딘가 부적절해 보인다. 브레히트는 과거의 사건과 인물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 역시 역사화 되어야 하리라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 글을 쓰다 갑자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형량을 외치고는 또 밝은 목소리로 어느 교가를 부르던 루이제 린저가 ‘설득’력을 갖지 못한 만큼이나, 감각을 운운하며 여기서 분명한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 또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서사가, 감정이, 그리고 감각이, 동시에 역사화 된다고 - 덧없는 것이 된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테다.

[사진 제공: Theaterraum : der philosophierende Koerper]

퍼포먼스–콜로이드 2019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1950-2019 연계 퍼포먼스

일자
2019.11.30.(토), 12.14.(토) / 2020.01.11.(토), 02.29.(토), 03.14.(토), 03.28.(토)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전시실
연출
임형진
퍼포머
오다애(배우), 김성일(성악가)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관련정보
ttps://www.mmca.go.kr/pr/cultureDetail.do?edId=2019102300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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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주

박종주
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같은 기간 동안 몇몇 사회단체와 진보정당 등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몇 개의 창작집단과 사회단체를 통해 창작자나 연구자,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주로 예술과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slowlyaspossib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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