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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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워진 시간 래빗홀씨어터 <마른대지>

박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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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대지>는 주로 플로리다의 어느 고등학교 수영장에 딸린 라커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수영 선수들, 여학생들, 청소년 여성들, 미성년 여성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인물들은 수영에 관한 대화 혹은 학교생활에 관한 대화로 극을 시작하지 않는다. “다시 쳐.”, “배에 멍들 텐데.”, “그걸 누가 몰라?” 망설임과 주먹질, 짜증이 몇 번씩 엇갈리며 지나간다. 자신을 치라고 말하는 에이미는 현재 임신한 상태다. 임신한 상태인 에이미는 안전한-부상이나 부작용의 위험이 없거나 적은 동시에 주위에 알려져 곤란에 처할 위험이 없거나 적은-방식으로 임신 중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의 에이미를 위해 주먹을 내지르기는 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에스터는 에이미의 친구다. 그러나 절친한 사이는 아니다. 에이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힘껏 때리지 못하는 것이 다만 에이미를 걱정해서는 아니다.
2018년 겨울에 처음 본 <마른 대지>를 나는, “낙태 장면은 있는 그대로 보여져야 한다”라는 작가의 말로써 이해했다.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자원, 그러니까 친구의 카드와 가짜 신분증 같은 것들, 혹은 인터넷으로 검색한 믿을 수 없는 지식들을 쥐고서 전전긍긍하는 과정부터 다름 아닌 그 라커룸에서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고 피와 ‘레몬’ 만한 ‘그것’을 몸에서 밀어내는 장면까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극이었다. 그러나 이 “있는 그대로”라는 것은 무대 밖의 현실을 복제한다는 말도, 정말로 아플 만큼 세게 배를 맞는다는 말도, 혹은 무대에 핏빛의 액체를 흘린다는 말도 아닐 것이었다. 어떤 (올바르지 않은) 행위를 통해 임신하게 되어 어떤 (징벌 혹은 천벌로서의) 고생을 겪는 어떤 (불량하거나 불쌍한) 여성의 서사를 짜내는 대신 여성이자 청소년인 인물들이 처해 있는 복잡한 상황들과 그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들을 늘어놓는다. 몇 가지 불만이나 의구심과 함께, 당시엔 “무엇을 보여줄지 취사선택할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함부로 생략하지 않을 의무”를 지는 창작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의무”를 지는 관객을 생각했다. “피하지 않을 것. 피하기 위해 생략하지 않을 것”을 생각했다.1)

스무 달 가량을 보내고, 2020년 여름의 <마른 대지>를 보았다. 그간의 일들 중 이 극과 관련해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물론 형법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일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유예기간이 남아 있고 개정도 아직이므로 현실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한편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므로 미국에서는 외려 현실적인 제약이 커지고 있고 부당하게 처벌받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음을 덧붙여도 좋겠다. 안전한 임신 중지가 불가능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해 우편으로 유산유도약물을 제공해 오던 단체들의 활동 역시 코로나 확산에 따른 운송 차질로 위축되고 있으므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에이미와 에스터의 이야기”는2) 스무 달 전에 비해 조금도 덜하지 않은 무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뜻하지 않은 임신에서 안전한 임신 중지까지의 과정이 험난하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임신/중지라는 사건의 위험도나 난이도만이 아니라 그 복잡도 역시 여전하며 이것은 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얼마가 되었건 그 위험과 어려움이 곧 덜해질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 복잡성을 이해하는 과제의 무게는 오히려 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난 스무 달 사이의 일로, <벌새>(김보라 감독, 2019)나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보니 코헨·존 셍크 감독, 2020) 등을 본 일을 조금 더 생각하기로 했다. 청소년기의 소위 질곡이나 흔들림들, 화려한 엘리트 체육의 이면에서 선수들의 몸과 삶에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 많은 이들이 모르거나 잊은 것을 보여주는 영화들이기도 하지만 매끈하게 완성된 서사로 수렴되는-그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조작되거나 격하되는-것들을 잊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임신/중지라는 급박한 상황을, 세제나 표백제 같은 것까지를 찾아야 하는 무력한 상황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마른 대지>는 잊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는 듯 한 치어리더를, 멎은 지 오래이기에 월경 중에 풀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수영선수를,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숨기거나 가짜로 만들어 내야 하는 자신을, 성적인 곤욕과 긴장과 즐거움을, 지금 좇고 누리는 즐거움을, 속에 간직한 꿈을, 간척 당했지만 지지 않은 에버글레이즈 습지를, 빼곡히 이야기한다. 에이미와 에스터는, 레바와 빅터는, 그리고 배우들은, 종종 웃거나 울거나 화내거나 말하거나 멈춘다. 고마워하고 화내고 궁금해 한다. 숙제를 한다.
이 극이 인물들을 “미화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내어 보일 수 있는 것은 아마 그토록 산만한 대화 덕분일 것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관객의 시선이 있다. 저 모든 이야기의 결절점으로서의 임신/중지라는 사건은 극 중에서 오직 에이미와 에스터 사이에서만 공유된다. 비난이건 조력이건, 힘없는 저들 이상의 힘을 갖고 사태를 재단하거나 그에 개입하는 작중 인물도, 화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그에 대해 알고 판단하는 유일한 존재는 관객이다. 관객은 그 사건의 경과를-기록이 아니라 그 현재를-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심지어는 작중 인물들은 모르지만 실은 트여 있는 라커룸 바로 건너편에서, 비밀스런 공간에서 펼쳐지는 비밀스런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다. ‘관음증적인 시선’을 만들어 낼 만한 이 구도 속에서 관음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매끈하지 않은 이야기가 펼쳐지므로 관객은 힘들다. 무대 위의 사건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무대 위의 사건이 다만 보고 듣고 기억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닌 탓이다. 그리하여 사건(들)은 미화하기도 동정하기도 힘들어하는 시선 앞에 펼쳐진다.
에스터와 잠시 멀어진 사이, 에이미는 어떻게 인지 약을 구했다고 했다. 오랜만에 연락한 에스터를 만나러 오는 길에 두 번째 약, 임신 산물의 배출을 유도하는 약을 먹었다고 했다. 통증과 출혈을 겪을 테지만 에이미와 에스터는 이번에도 라커룸에서 만난다. 곧 “낙태 장면”이다. 둘이 자리를 뜨면 건물 관리인이 들어온다. 중년 혹은 노년기의 남성인 그는 묵묵히 바닥에 고인 피를 닦고 라커룸을 청소한다. 이윽고 그 또한 자리를 뜬다. 묵묵한 지지로 읽어도 혹은 무관심한 방관으로 읽어도, 어느 쪽이든 크게 이상하지도 크게 맞아떨어지지도 않는, 그리하여 나로서는 (이번에도) 요령부득으로 다만 바라본 그의 청소는 대사 없이 꽤 긴 시간을 이어진다. 아마도, 우리에게 지워진-사라졌다는 의미에서, 또한 짊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에서-시간이다.

[사진 제공: 래빗홀씨어터 ⓒ이지수]

마른대지
일자
2020.08.08. ~ 2020.08.23
장소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루비 래 슈피겔
번역
함유선
연출
윤혜숙
출연
김정, 황은후, 조의진, 강혜련, 정대진 연출부 김태령, 신지원
무대
정영
조명
성미림
의상
김미나
음향
임서진
음악
박소연
분장
장경숙
오퍼레이터
이현석
그래픽
황가림
기록영상
태휘원
기록사진
이지수
기획
나희경
Theatre Right
Joseph cho (Infiniss Korea)
관련정보
https://www.doosanartcenter.com/ko/performance/1440
  1. https://slowlyaspossible.net/1028/
  2. 여기와 이후의 직접 인용은 공연 홍보물에서 가져온 것이다.
래빗홀씨어터 , 마른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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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주

박종주
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같은 기간 동안 몇몇 사회단체와 진보정당 등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몇 개의 창작집단과 사회단체를 통해 창작자나 연구자,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주로 예술과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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