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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예술실험센터가 문을 닫은 후

[연극인이 만난 사람] 김민수(엠케이) X 김솔지 X 신민준

김솔지

제260호

2024.08.29

일시: 2024년 8월 9일 8시 반-10시 반
장소: 영등포구민회관 1층 회의실
참여자: 김민수(엠케이), 김솔지, 신민준
기록: 김솔지
솔지
안녕하세요. 저는 2014년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2기로 활동했어요. 같은 해 홍대앞 예술인들의 협의체로 창립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홍대앞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뻗어나갈 문화예술 사회적 협동조합)의 이사장을 올해 맡게 되었고, 더블데크웍스를 운영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김솔지라고 합니다.
민준
안녕하세요. 저는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10기, 11기 활동을 했고요, 현재는 문화연대 집행위원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민준입니다.
엠케이
안녕하세요. 저도 공동운영단 10, 11기로 활동했습니다.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들고,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리고 있어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민수민정 등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솔지
서교예술실험센터(이하 서교)가 문을 닫은 지 벌써 반년이 흘렀네요. 연극in에서 서교 폐관 이후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말, 서교의 마무리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몰라서, 그 부분을 듣고 싶어요. 또 오늘 이 자리가 서교가 우리에게 남긴 것과 그 이후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엠케이
저는 오늘 지난 10년 동안 서교에서 보낸 중요한 순간들을 되짚어보며 이야기하고 싶어요. 서교는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 자리가 서교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교는 단순히 예술 작업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실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죠. 그런 곳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아요.
민준
서교가 사라진 지금, 서교를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교는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죠. 서교의 폐관은 우리 모두에게 큰 경고였습니다. 이 경고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야 할 거예요. 서교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교가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점이에요.
솔지
맞아요. 서교의 마무리를 돌아보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디귿 자로 책상을 붙여 각 면에 대화 참여자 김민수(엠케이), 신민준, 김솔지가 각각 앉아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역할과 의미

솔지
우리가 오늘 대화 자리의 장소와 시간을 정할 때, 민수 씨가 서교 앞 치킨집에서 만나는 건 어떻겠냐고 올렸잖아요. 제가 치킨을 안 먹거든요. 그래서 서교 앞 치킨집을 몰라서 찾아봤어요. ‘어느 치킨집 말씀하시는 건가’ 하고 검색을 하는데, 서교가 지도에 없는 거예요. 그때 지도상에서 서교가 사라진 것을 처음 봐서 기분이 매우 이상했어요.
민준
제 지도 어플에는 아직 서교가 즐겨찾기 저장이 돼 있어요. 여기서 장소 저장을 해지하면 ‘장소가 삭제됩니다’라고 뜬대요. 그게 진짜 가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저장 해지를 못 하고 있어요.
솔지
그리고 그런 거 있잖아요. 뭐 하려 할 때, 이때 서교 있었으면 딱 여기서 하면 좋은데 이런 것들이 많아서 서교가 없는 게 많이 아쉽더라고요. 두 분은 공동운영단이었다가 올해는 다른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게 좀 사라졌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어요?
민준
뭔가 공적인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사실 개인적인 것들 밖에 생각이 안 나요. 지금은 받아들이는 단계인 것 같아요. 저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그 앞을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근데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요. 화가 나기도 하고요. 저렇게 쓸 거면 그냥 두지.
엠케이
실제로 서교에서 작업하기 너무 좋잖아요. 작년에 제가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매번 약속 장소로 할 만한 데 없으면 서교 1층 예술다방에서 만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리고 거기 가면 그냥 혼자서 작업하시는 분들도 계셨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도 크고, 축제나 인디씬에서는 더 크게 느꼈을 거예요. 서울라이브 사업도 없어졌고요.
공간도 그렇고 자원도 그렇고, 그러니까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독립예술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러니까 적은 자본이어도 우리가 그냥 DIY 정신이 있잖아요. 그게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흐름이 분명히 있고, 서교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독립예술의 자리가 좁아지는 현상이 더 가속화되는 것 같아요. 지원사업은 더 정교해지는데, 지원사업이랑 상관없이 내 거, 이상한 거, 낯선 거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는 거예요.
이번에 페미니즘 연극제에 참가하는데 전체 프로덕션 구성원이 4명이었어요. 지원금이 별로 없어도 하고 싶으니까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겸하면서 제작한 거죠. 이런 것도 서교가 가지고 있었던 정신이랑 닿아 있다고 보는데요, 이제 그런 정신을 어디서 찾죠?
민준
공공이 해야 하는 일은 누구든 가능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과 같은 민간단체나 조합이 할 역할과는 분명히 다르죠. 공공의 기능은 도전을 지원하고 실험이 가능하게끔 하고 그 시도가 안전하게끔 느껴지게 하는 거잖아요. 서교가 그런 역할을 했었죠. ‘소액多컴’ 100만 원 지원금에 선정된 사람들이 100만 원 그 자체가 중요해서 소액의 실험들을 해본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솔지
그렇죠. 해보면서 한계에도 많이 부딪히고 경험이 쌓이니까 다음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엠케이
그리고 서교는 홍대앞의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와 지역사회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었죠. 서교에서 활동하던 많은 예술가들이 서교를 고향처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고향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에요. 서교가 존재했을 때는 작은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고요. 서교가 없어지면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도 사라진 셈이라, 작업을 이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부분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서교가 예술가들에게 제공했던 자유로운 작업 환경과 서로의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어요. 서교는 예술가들에게 작업을 발표할 수 있는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작업을 통해 영감을 얻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요. 그런 공간이 사라진 것은 예술계 전체에 큰 손실이라고 생각해요.

2023년, 서교예술실험센터의 마지막 해

솔지
두 분이 서교의 마지막 해 2023년, 그리고 바로 그 전 해인 2022년 2년 동안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하셨지요. 서교의 마지막 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민준
서교가 끝나는 과정은 혼란 그 자체였어요.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정치적 변화와 함께 모든 것이 변동하는 느낌이었죠. 서교의 폐관은 단순히 공간을 잃는 것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예술 생태계 전체에 대한 경고라고 느껴요. 이 경고를 통해 개인의 깊이와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교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엠케이
서교에서 보낸 마지막 1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활동하면서 많은 아쉬움과 무력감을 느꼈거든요. 특히, 서교가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다시금 깨달았죠. 서교 활동이 끝나고 나서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치적인 액션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성북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교가 없어진 후, 저는 더욱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민준
서교의 폐관과 관련된 정치적, 행정적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죠. 서울문화재단은 서교의 운영을 마포구청에 넘기려 했지만, 마포구청은 서교의 의미와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고요. 그러니 예술가들이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생기는 거죠. 서교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정치와 예술 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대화 참여자 신민준. 남색 계열의 체크무늬 반소매 셔츠를 입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고, 왼손을 턱에 괸 채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엠케이
작년 한 해 동안 공동운영단은 서교 폐관을 막기 위해 어떤 활동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싸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하반기에는 서교가 해오던 창작지원사업 ‘링크(LINK)’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공론장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기록하고 이야기를 모았어요. 그리고 이것들을 토대로 마포구청과 만나 서교의 의미와 운영에 대해 얘기하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되지는 않았죠.
특히, 마포구청장과의 미팅에서 큰 온도 차를 느꼈어요. 구의원을 만나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야 한다고 전달했지만, 저희로서는 구의원 측에 전달한 문서가 구청장한테까지 갔는지 사실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구의원은 마포구와 이런 문화 정책 같은 것들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협력 파트너가 되려면 자주 얼굴을 비추고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저희가 마포구청장 행사하는 곳마다 갈 수 있는 그런 조직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그 상태에서 서교 폐관에 대한 대응이 어느 정도는 흐지부지됐다고 느끼기도 했었어요.
민준
예술가들이 서교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정치와 행정의 한계에 부딪혔죠. 일단은 정책적으로 보면, 과거 서울시의 ‘디자인 창의도시’라는 맥락에서 서울시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서교가 시작하게 됐잖아요. 그때 서울시가 마포구 공간을 빌려서 서교를 운영했던 건데, 어느 순간 창작공간이 서울시의 주요 정책에서 빠지게 되면서, 마포구가 운영이냐 폐관이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던 거죠. 서울문화재단도 서교 공간을 10년 이상 위탁 운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책임감 없이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한 거고요. 마포구 같은 경우에는 공간을 10년 동안 대여해 줬으면서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총체적 난국이었죠.
그 사이에서 예술가들에게 서교는 하나의 작은 진지로서, 대안적인 것들이 생성될 수 있는 장이자 가능성이었는데요. 홍대앞 지역의 주체분들도 가타부타 말은 많았는데, 예를 들면 서교가 지역과 호흡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었단 말이에요. 그게 다 서교가 어떤 기능을 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이었지, 없애자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 끝나버렸고, 결국에는 마포구가 주민센터의 주민 다목적실, 스터디 카페 같은 것들을 만든다고 그 공간을 가지고 가서 지금껏 재활용을 못 하고 있죠.
엠케이
지금은 화장실 정도만 쓰고 있더라고요.
민준
열려 있긴 한가요?
엠케이
잠시 사용이 어렵다고 쓰여 있던 적도 있었는데, 최근에 갔을 때는 레드로드 캐릭터랑 같이 공용 화장실로 쓸 수 있다고 붙어 있었어요. 저희 둘 다 마지막 해를 함께한 공동운영단으로서 안에서 본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요, 솔지 씨가 보기에는 어땠나요?
솔지
막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뭔가 되게 순탄하지 않구나, 하고 느꼈죠. 그동안 공동운영단 구성원들이 다수 모여 있는 서교멤버스 단톡방에서 공간 이사나 자료 백업 같은 일들을 지켜보면,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요. 그 노력들로 어느 정도 마무리가 괜찮게 되어가는 느낌보다는 하나하나 다 너무 힘든 상태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도 서교멤버스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 못해서 할 말은 없는데요… 그렇게 마지막 기수 공동운영단 분들이랑 서교 직원분들끼리 이사를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사를 예로 들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마지막 공동운영단이 다 해야 할 범위의 일들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자료 백업도 마지막 공동운영단에서 진행해주셨는데,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 해놓으셨잖아요. 그 과정은 어땠어요?
엠케이
공동운영단 중 두 사람이 맡아서 서교 아카이브를 진행했어요. 드라이브에 디지털 자료를 폴더별로 모아두었는데, 사실 썩 잘되지는 않았죠.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있어서 서교에 참여한 예술가들, 작업들을 다 올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과자료집만 올린다거나 한 경우도 많았고요. 그동안 서교에 참여했던 예술가분들에게 개별적으로 자료를 올려주시라고 연락을 돌렸는데, 그것도 잘 안 되었고요.

놓쳤던 것들, 그리고 변화할 수 있다면

엠케이
저는 서교에서의 결정적 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먼저 공동운영단이 만든 리포트가 『서교예술실험센터 운영모델 개발 연구
1)
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공동운영단의 역할과 권한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한편으로는 지역성에 대한 상상력 부족으로 인해 공동운영단이 개인적인 관심사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서교가 홍대앞에서 시작됐지만, 점점 그 지역성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서교의 한계였다고도 생각합니다. 홍대앞 지역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협력이 줄어들면서, 서교의 본래 목적과 역할이 희미해지기도 했거든요.
솔지
초기에는 서교가 홍대앞 지역과 밀접하게 연결된 프로젝트를 많이 했었지만, 후반에는 예술 담론 중심의 활동으로 옮겨갔지요. 서교의 공동운영단이 매번 바뀌면서, 같은 색깔을 유지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대화 참여자 김솔지. 회갈색과 흰색 가로 줄무늬의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에 얇은 은빛의 반테 안경을 썼으며,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쳐두고 있다.
민준
거버넌스 관련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공동운영단으로서 거버넌스의 주체성과 예술가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문화예술계 거버넌스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주로 기획사업으로 풀려버리는 문제점과 거버넌스가 담지하고 있는 윤리에 대한 부분인데요. 그 ‘윤리적’이라는 것이 정말 윤리적인 문제들일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뭔가 여지를 주고 싶지 않다는 느낌에 가까울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모두 윤리성, 포용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도, 평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 가치가 실제 국면에서는 안 좋게 작용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예술청 폐관 이슈가 있을 때 서울청년예술인회의가 보인 반응이 있었죠. 그때 폐관에 관한 연대 입장문을 내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구성원 모두가 다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입장문을 낼 수 없다고 결론을 지었어요. 그때 제가, 모두가 동의하지 않아서 입장문을 낼 수 없다면 우린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모두를 위한다는 것을 지향하는 것과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과 범주의 이야기에요. 실제로 모두가 다 동의한다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불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야기니까요. 중요한 건 불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회가 그 가치에 동의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데, 거버넌스에서 그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다음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행정의 거버넌스 사업화에 대한 비판인데요. 하나의 사업을 정리하듯 거버넌스를 평가하고, 마무리해버리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서울문화재단에서 낸 인사발령으로 서교의 매니저, 즉 당연직 공동운영단 중 한 사람이 바뀌는 일이 종종 있었죠. 구성원 한 명이 바뀌는 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사실 너무 변동이 많았어요.
솔지
거버넌스에 대한 서로의 책임감 같은 것들을 유지하려면 사실 서울문화재단이 전적으로 운영하면 안 됐었던 것 같아요. 마포구에서도 공간만 내어주는 게 아니라 일부 예산을 배정하는 식으로 운영했어야 하지 않나 싶고요. 그래야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인사권을 더 신중하게 행사할 수 있을 테고, 공동운영단이 꾸리는 사업, 즉 서교의 사업 전반과, ‘서울라이브’ 같은 서울문화재단 자체 운영 사업, 2개 트랙으로 운영할 때도 훨씬 더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거예요.
민준
실제로 거버넌스를 사업 정리하듯이, 공간들을 사업 정리하듯이 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이 간단치가 않아요. 결국에는 그 거버넌스나 공간이 쌓아왔던 유산이 말끔하게 사라졌잖아요. 적어도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변화, 즉 폐관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요. 일방적으로 정리한다고 했을 때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까지 고려가 되어야죠.
그런데 사실 고민으로 끝나면 안 될 문제고, 이제 어떻게 제도화하고 시스템화할 수 있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거버넌스를 구성한다고 했을 때 기존의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또한 예술가들이 단순히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정치, 행정 주체들과 동등해지기 위해 대안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고요.
솔지
저는 앞으로 다른 거버넌스, 비슷한 공동운영단 모델을 만들게 된다면 그 임기를 2년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동운영단을 선출하기 전부터 참여를 하거나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 합을 맞추고 확인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민준
그래야 책임에 대한 부분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내가 공동운영단으로서 적합한 사람인지도 알게 될 테니까요.
솔지
서교의 거버넌스 활동 범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그러니까 공동운영단의 ‘운영’ 범위가 서교예술실험센터 전 영역이 아니었잖아요. 아예 전 영역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단위이거나 그게 안 된다면 더 명확하게 구체화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공동운영단이 서교 전체 구조를 같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형태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경우 서울문화재단의 위탁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마포구의 재원이라든지 다른 조직이 같이 들어와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민준
저는 사실 거버넌스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간을 꼭 운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요. 그보다는 예술가들이 참여해서 예술계에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냥 자문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주체적으로 뭔가 실행할 수 있는 그런 구조나 문화들이 남아 있어야 하는 거죠.
적어도 서울에서는, 그런 것들이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작동하고 있는 게 보여야 내가 거기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내가, 우리가, 이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요. 엘리트 정치 집단이나 행정 관료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걸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솔지
네, 그 말씀에도 동의해요. 저는 무엇보다 마무리되는 과정이 거버넌스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거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잖아요. 아직은 조금 더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민준
앞으로 거버넌스의 지향점은 모두가 동의하거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안’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얼터너티브라는 게 새로운 가치를 또 하나의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그런 것들을 고민할 기회가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작게라도 실험도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서교는 사라지긴 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서교가 남긴 가치들이 앞으로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니까요. 최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네요.
솔지
네, 오늘 두 분 깊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자리에서 또 뵙게 되길 기대하며 오늘 자리는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진: 김민수(엠케이)]

  1. 이 연구 자료는 다음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다. https://www.sfac.or.kr/upload/board/982/c4cacddb-38a1-4f22-ae99-c5be783a26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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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지

김솔지
1980년대 후반 광주에서 태어났다. 예술이 사회에서 작동하면서 만드는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위계 없는 자율 협업 플랫폼 더블데크웍스를 운영하고 있다. 콜렉티브 분단이미지센터 멤버로서 남북 분단이 시각 이미지와 관계 맺는 방식을 리서치하며, 사회정치적 가능성을 지닌 미적 실천으로 잇기 위한 기획을 시도 중이다. 2024년부터 홍대앞 문화예술 공동체이자 사업체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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