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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면서도 연기하지 않는”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우미화

김은성_극작가

창간준비 1호

2012.04.19

비 내리는 봄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의 배우 우미화를 성북동의 작은 주점 <덴뿌라>에서 만났다. 서른아홉의 나이로 일흔이 넘은 노역을 묵직하게 소화해낸 그녀가 백발과 돋보기 대신 카키색 두건을 쓰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 서른아홉의 우보살, 일흔을 소화해내다.

    - 공연 재밌게 봤다. 특히 마지막 장면, 밥상을 사이에 둔 부부의 50년 사랑이 아름답더라. 서른아홉에 일흔이 넘은 할머니 역을 맡았다. 어떤가?
    아직 할머니 역할을 하기에는 어리다고 생각한다. 아들로 나온 정인겸 선배님의 나이가 나보다 여섯이 많다. 극단 작품이 아닌 외부작업이었다면 누가 나에게 할머니 역할을 맡기겠는가? 내가 몸담고 있는 극단 이루의 작품이기에 손기호 연출가가 믿고 맡긴 부분이 있다.
  •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작년 서울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어떤 과정과 노력이 있었는지?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에서도 60대 노인 역을 맡은 적이 있었지만 그 역할은 캐릭터가 강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상의 담담함을 소화해내야 했다. 노역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인물의 내면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또 작품의 배경이 경주다. 공연에 지방색이 없었더라면 할머니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투리를 쓸 수 있어서 노역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
    - 극중에서 서면댁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이라든가, 우는 남편을 아이 어르듯 달래는 모습에서 풍겨지던 여유로운 호흡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시골내기라서 그런지 극중 할머니의 캐릭터와 맞는 부분이 있었다. 이 할머니는 그저 보고 있고 받아들이고 있고 그런 분인데, 내 성격이 남들 말 잘 들어주고 받아주는 편이다. 물론 나도 속이 썩을 때가 있다. (웃음) 하지만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별명이 우보살이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 커튼콜까지 극의 여운이 짙게 이어졌는데 막이 내릴 때 어떤 감정인가?
    커튼콜 때는 극중 인물로서의 감정을 털어내고 객석을 봐야 맞는 것 같은데 관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커튼콜 바로 전까지 울다가 선다.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라 마음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장면, 밥상에서 남편을 보며 하는 말 "결혼한 지 50년 된 날이시더" 할 때 이상한 감정이 올라온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장면에서 남편을 보고 있을 때 내가 이 사람과 정말로 그 긴 세월을 산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이제 결혼 5년차 밖에 안 됐는데... 신기한 순간이다.

    - 극중 남편의 얼굴이 <짬뽕>으로 유명한 작,연출가인 진짜 남편 윤정환의 얼굴과 겹쳐질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맞다. (웃음) "결혼 50년 된 날이시더" 할 때, 정환오빠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는 결혼 5년차인데 연애를 오래했다. 연애기간까지 합치면 그와 함께 지내온 시간이 벌써 16년이다.



    • 강원도 촌년, 연극이 인생이 되다.

      - 연극은 어떻게 시작했나?
      나는 독문과 출신이다. 연극반도 아니었고 대학로를 아는 것도 아니었다. 과에서 해마다 번역극을 무대에 올렸다. 희곡 독해 수업을 하고 여름방학에 연극을 만든다고 해서 얼떨결에 배우로 참여했다. 신기하다. 무대에 섰는데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
    - 연극의 무엇이 좋았을까?
    고2때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 강원도 함백이라는 곳이다. 태백도 아니고 함백. 영월 근처에 있는 깡촌이다. 남산에 있는 보성여고로 전학을 왔는데 서울생활에 적응이 힘들더라.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연극을 만들면서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편하고 좋으니까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독문과 졸업 후에 연영과에 편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독문과 친구들은 지금 내가 배우로 산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정말 숫기 없는 여학생이었는데 나도 놀랍다.

    - 데뷔작은 어떤 작품이었나?
    1998년에 서울시극단 연수단원이 되자마자 그해 시극단 정기공연 <민중의 적>의 페트라를 맡았다. 김석만 연출가의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그때가 스물다섯이었는데 의외로 큰 역할을 맡아서 대선배들과 함께 공연했었다.

    <싸우는 여자>
    <싸우는 여자>
    - 데뷔 이후 맡았던 역할들 중에서 베스트3를 꼽자면?
    역시 데뷔작을 가장 먼저 꼽고 싶다. 그 설렘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여성연출가전을 통해 공연됐던 모노드라마 <싸우는 여자>는 정말 큰 공부가 된 작업이었다. 생애 처음 모노드라마를 준비하면서 분장실에서 바들바들 떨던 기억이 난다. 과연 무대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관객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한편의 연극을 오직 나 하나의 힘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너무 외롭고 두렵고 긴장된 순간이었다.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간 후에 오던 벅찬 감동을 기억한다. 공연 후에 얻은 큰 결실이 있다면 그것은 용기다. 용기. 나 스스로에게 배우의 자격을 부여하게 된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를 통해서는 노역을 처음 경험했다. 공연 내내 앉아서 연기했다. 앉은뱅이 역할이었기 때문에 블로킹이 없었다. 두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 보고 그러면서 극을 지탱해 가는 캐릭터였는데 그게 또 큰 공부가 됐다. 더불어 극단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느끼게 해준 작업이었다. 연습 초반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단원들이 믿어주고 의지해주면서 고비를 함께 넘어가는 경험을 했다. 아마 그 작품의 경험이 있었기에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의 노역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우미화가 속해 있는 <이루>는 어떤 극단인가?
    극단 대표인 손기호 작,연출가를 중심으로 배우 염혜란, 조주현 등이 함께 가고 있다.
    그동안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 <우리동네 굿뉴스> 등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선돌극장을 근거지로 하는 젊은 극단이다.

    - 손기호 대표를 소개해 달라.
    변두리 어딘가에 있을 법한 독특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연극을 추구한다.
    극적인 인물들. 그러니까 우리들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한번쯤 지나치면서 봤던 것 같은 인물들, 일반적이지 않지만 모든 동네에 한명쯤 있을 법한 그런 인물들을 잘 그려낸다. 사실 그런 인물들이 강한 연극성을 띄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은 지방색이 강했는데 이제 경주 3부작은 끝났고 앞으로 어떤 작품을 뽑아낼지 궁금하다. 극단 배우들은 우리도 가끔 번역극하고 싶다는 말도 농담 삼아 한다. (웃음)



    • 이제 니나가 보인다.

      -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30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갈매기>의 마샤를 해보고 싶었다. 해보고 싶었는데 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한 2년 전부터는 니나를 해보고 싶더라. 전에는 니나에게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니나라는 역할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니나는 여배우로서 한참 살아본 후에야 잘해낼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 벌써 아르까지나를 할 나이와 가까워지고 있다. (웃음)

      - 작업해 보고 싶은 작가, 연출가는?
      김동현 연출가와는 공동창작 작품은 해봤는데 아직 텍스트를 가진 드라마로는 만나지 못했다. 함께 작업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있다. 다시 만나고 싶다.
      고선웅 작,연출가의 작품은 내가 출연해왔던 연극의 스타일과는 다른데 그래서 해보고 싶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저분과 작업을 하면 나는 어떤 변화를 가지게 될까 궁금증이 생긴다.

      - 좋아하는 배우는?
      너무 많다. 길해연, 서이숙 선배님을 좋아하고 예수정 선생님을 존경한다. 그냥 바라보게 된다. 그분들이 좋다.
      장민호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다. <삼월의 눈>을 보면서 그분의 존재에 새삼 놀랐다. 무대에서 뭔가 하고 계신데 하나도 하고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배우는 궁극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면서도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 라이벌은 누구인가?
      극단 동생 염혜란이다. 정말 대단한 친구다. 보면서 많이 배운다. 큰 자극이 된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 배우로서 고민이 있다면?
      이번에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든 지점이 있었다. 작년에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게 좀 갑작스럽고 당황스럽다.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데 내가 과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불안하고 초조하더라.
      아직은 부담스럽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애쓴다.
    • 배우 우미화와의 인터뷰
      배우 우미화와의 인터뷰
      - 연극계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한다.
      대학로의 좁은 연극판에도 패가 있고, 누구누구 파로 나뉘는 것이 아쉽다.
      서울연극제를 비롯한 연극제, 연말 연극상 시상식 등이 연극인 모두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들, 너희들만의 잔치여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가?
      6,7월에 김광보 연출가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를 준비하고 있다.
      김광보 선배는 전부터 궁금했던 연출가다. 자기 스타일이 강한 연출가인데 만약 함께 공연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적응을 할까, 약간의 도전의식이 있었다. 기대된다.

      - 혹시 또 노역인가?
      아니다. 당분간 노역은 하고 싶지 않다. (웃음) 사실 나는 노역을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어떤 역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앞으로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 공연 포스터
      • 연극배우 우미화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과,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
        서울시극단 1기 연수단원, 극단연우무대를 거쳐 現 극단이루 소속
        수상 l 제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연기상, 2011 서울연극제 연기상
        출연작 l <민중의 적><저 사람 무당 같다><한 여름밤의 꿈>
        <날 보러와요>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사는 분이 덕이 열수>
        <찌질이 신파극>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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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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