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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씨어터 키드, 대학로 루키가 되다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유성주

김은성_극작가

웹진 10호

2012.10.18

배우 유성주
  • 고2때 6개월간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연극반을 창단한 성주는 20대가 되어 시골 쌀 창고를 개조해 극장을 만들어 낮에는 밭을 매고 밤에는 오이디푸스로 열연한다. 공연시간 72시간이라는 전무후무한 연극을 만들어 한국연극사 외전의 한 페이지를 개척한 그는 부산시립극단원으로 30대를 보낸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연극을 하던 성주는 어느 날 자신의 오랜 친구인 연극에게 뜨거운 말을 듣는다. "멈춰있지 말라! 새로워져야 한다!" 올해 마흔이 된 성주는 옷 몇 벌 달랑 들고 대학로를 향해 길을 나선다.
  • 서울에 눌러앉다

    대학로 데뷔작 <그게 아닌데> 마친 소감이 어떤가?
    "서울에서 첫 공연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냥 했던 대로 하자, 너무 부담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작품은 정말 재밌게 했다. 배우 한 명 한 명과 잘 만났고, 너무 잘 맞았다. 선배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낯선 곳에 와서 연극을 한다는 느낌을 크게 못 받았다. <그게 아닌데> 재공연의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나에게 서울에 대한, 첫 공연에 대한 그 어떠한 부담도 없을 때 배우들과 다시 어떻게 만나질 수 있을까, 기대된다.

    공연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가족들과 일주일 동안 시간을 보내고 왔다. 오전에는 <1동 28번지 차숙이네> (이하 <차숙이네>) 연습을 하고 오후에는 <브루스니까 숲> 연습을 하며 지낸다.

    <차숙이네> 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집 짓는 일꾼들 중에서 대장역할을 맡았다. 대전공연 등 10월에 잡혀있는 지방공연을 연습중이다.
    <부르스니까 숲>은 대본을 받은 지가 얼마 안됐다. 아직은 어떤 역할이 정해지지 않았다.

    두 작품 모두 최진아 연출 작품인데,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는가?
    부산시립극단에서 활동하던 때였다. 김광보 예술감독이 성기웅 등 서울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출가들의 초빙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때 최진아 연출을 처음 만났다. 당시 <차숙이네>에서는 둘째아들 역할을 맡았었다. 아주 재밌는 작업이었고, 신선하고 참신한 연출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배우 유성주
  • 다시, 연극이 새롭다!

    서울에는 언제 어떻게 왔는가?
    7월말에 왔다. 부산시립극단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데 일주일 후쯤 김광보 연출에게 전화가 왔다.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 음...... 부산시립극단을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했다. 시립극단 밖에서 작품을 편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외부작업을 하더라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일단 두어 달 정도 쉬면서 앞날을 모색할 작정이었는데 김광보 선배님의 부름이 있었던 거다. 방도 구하지 않고 무작정 가방 하나 들고 올라왔다. 후배 집에 얹혀 지내며 창작팩토리 출품작 낭독공연과 쇼케이스를 준비했다. 처음 서울에 올라올 때는 이렇게 눌러앉을 생각은 못했다.

    어떻게 눌러앉게 됐는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좋은 작업을 하는 게 꿈이었다.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바램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작품을 계속 해야 되는 상황이 왔다. 지금은 그래, 대학로에서 쭉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고 있다. 미아리에 옥탑방도 구했다.

    대학로 분위기는 어떻게 느껴지는가?
    대학로 분위기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두 달 만에 네 작품에 투입되다 보니까 정신이 없다. (웃음) 선배들에게 "너 어쩌려고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였냐?" 등등 별 소리를 다 듣고,
    별 걱정, 별별 생각도 다 들지만, 그냥 너무 행복하고 좋다.

    뭐가 그리 행복한가?
    고등학생 때 연극을 처음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연극만 했다. 지난 몇 해, 배우로서 위기감을 느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기회를 갖지 못한 채로 매너리즘에 빠져 단지 가진 것만 소모하고 있구나 하는 위기의식이었다. 일단 대학로라는 넓은 세계로 와서 좋다. 솔직히 부산과 대학로 배우의 수준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좋은 점이 있다.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연극을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배우들의 호흡을 만날 수 있다. 예상된 호흡이 아닌, 새로운 호흡! 고등학생 때 6개월 동안 선생님 쫓아다니며 조르고 졸라서 만든 연극반의 첫 연극처럼 신이 난다. 재미가 난다.
  • 배우 유성주 배우 유성주
  • 씨어터 키드의 탄생

    고향이 부산인가?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적이 신설동이다. 서울에서 다섯 살 때 까지 살았다. 유년은 충청도에서 보냈다. 제천과 충주 사이 박달재 아래에 백운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중학생 때부터는 부산에서 줄곧 살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연극반을 만들었다고?
    그렇다. 입학해서 방송반에 들어갔는데 3학년 선배를 따라 연극을 보러갔다. 연극을 봤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더라. 프로들의 연극이 아니었다. 근로자 극단의 공연이었는데... 나에게는 그분들이 아직도 최고의 배우들이다. 그분들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극장을 나와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연극반 담당교사였다는 정보를 입수해 멤버들을 모아서 6개월을 쫓아다닌 결과, 2학년 때 연극반을 창단할 수 있었다. 부산동고 연극반. 이름은 오감도! (웃음)

    어떤 작품을 공연했는가?
    두 편을 했는데 고등학생들이 할 만한 연극이었다. <탑과 그림자>와 <새똥골 장승> 이었다. 두 작품 모두 연출과 배우를 겸했다.

    직접 해보니까 어땠나?
    친구들과 너무나 즐겁게 놀았다. 힘들었던 기억이 전혀 없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친구들 같았다. 축제 첫날엔 방송제, 다음날 밴드공연, 마지막 날에 연극까지 친구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다.

    방송제와 밴드공연은 또 뭔가?
    연극반을 만들 무렵 밴드부도 생겼다. 연극반 활동에 방송반 아나운서, 밴드부 보컬까지 동아리 활동을 세 개나 했다.

    성적표가 보이는 거 같다.
    아니다. 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고1때는 꽤 기대주였다. 고2때 조금씩 떨어지더니, 고3때는 십 등 밖으로 쭉 내려가더라. (웃음)

    집에서는 뭐라고 안하시던가?
    동아리활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셨다. 그냥 믿어주셨던 거 같다. 부모님은 "이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했을 때 늘 들어주시는 편이다. 연극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한번만 더 생각해볼래?" 하셨을 뿐이다. 연극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가족반대 스토리가 나에게는 없다. (웃음)
배우 유성주
배우 유성주
  • 갤러리씨어터를 아는가?

    대학전공도 연극을 택했는가?
    물론이다.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학교 다니면서 벌여 놓은 일이 많았다. 그냥 학교에서 짜주는 공연 뿐 아니라, 스터디 공연이라든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도 후배들이 명맥을 이어서 가고 있어 흐뭇하다. 학교 다니면서 기성 극단의 외부작업도 많이 했다. 운이 좋게도 계속 연극하면서 놀았다. 지금 돌아보니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여행 한 번 다녀본 적이 없다. 어린마음에 여기저기서 불러주니까 한 편이라도 더 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학교 졸업 후에는 어떤 작업들을 했는가?
    졸업할 무렵에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는데 당시에 '아시안 네트워크'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중,일 공연교류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중국공연도 다녀오고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제대로 해보자는 욕심이 들어 <갤러리씨어터> 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그때 해볼 수 있는 미친 짓은 다해봤다. (웃음) 공연형식이나 작업방식이나 굉장히 독특했다. 시골, 그러니까 부산외곽 양산 쪽에 정관면 두명마을 이라는 곳에 집 한 채 지어놓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습하면서 연극을 했다. 빈 쌀 창고를 극장으로 개조해서 공연을 했다. <앙띠 외디푸스> 라는 작품을 한겨울에 공연했다.

    관객은 있었는가?
    관객이 없는 날이 딱 하루 밖에 없었다. 공연기간 이십일 동안 그 하루 빼고는 모두 공연을 올렸다. 지하철 종점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도 꽤 걸리고, 버스에 내려서도 캄캄한 시골길을 한참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어떻게 알려졌는지 나중에 프린지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별오름극장 무대에 서기도 했었다.

    다른 미친 짓도 궁금하다.
    세상에 전혀 없었던 공연을 해보자 해서 72시간 연속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막연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아시안 네트워크'에 지원했는데 덜컥 선정이 되어버린 거다. 어떻게 시작은 했는데 정말 답이 안 나오더라. 엎고 다시 시작하고 엎고 다시 시작하기를 삼 개월. 부산 경성대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다. 갤러리 씨어터 3번째 작품.

    72시간 공연이 가능한가?
    인간이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계선이 72시간 이라고 하더라. 안 먹고, 안자고 했다. 공연 제목이 <육체의 힘>이니까. (웃음) 배우와 미술이 어우러진 연극이었다. 극장 전체가 하나의 설치미술로 완성 되어가는 공연이었다.

    72시간을 다 본 관객이 있던가?
    딱 한 분 계셨다. 물론, 중간에 식당과 화장실은 다녀오시더라. 서울에서 온 분이었다. 미술 전공하는 여학생이었다. 학교수업을 접고 부산으로 왔다고 하더라. 감동이었다.

    갤러리씨어터, 놀라운 극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활동을 하는가?
    계속되는 창작극의 압박이 조금씩 힘들어질 무렵 조금 쉬자고 합의가 됐다. 지금은 잠정휴업 상태다. 멤버가 세 명인데 언젠가는 다시 만나서 또 다른 미친 짓을 벌일 것이다. (웃음)
  • 배우 유성주 배우 유성주
  • 가장 오래된 친구, 연극

    부산시립극단에는 언제 입단했는가?
    공연은 계속 하고 싶은데, 꾸준히 연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오디션을 보고 입단하게 됐다. 그때가 2003년이다.

    시립극단에서 기억나는 작품을 꼽자면?
    제일 신나게 작업했던 작품이 초빙연출가로 온 박근형 연출의 <선착장에서>였다. 그 작품에서 규회 역할을 했었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연출을 만난다는 게 일단 좋았다. 김광보 연출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만든 <헨리4세>와 부산의 젊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지용의 <페드르>도 좋았다. 객원연출로 왔던 구현철의 <변신> 이 기억에 남는다. 이전까지 해왔던 시립극단의 공연양식에 비해 새로웠다. 몸을 많이 다뤄야 하는 연극이어서 새로운 도전이 많았고 그만큼 좋은 발견들이 이루어지더라. 재밌었다.

    <선착장에서>를 했을 때, 박근형 연출에게 서울 올라와서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사랑 때문에 포기 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아니다.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웃음)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대타로 긴급투입 되어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극단 골목길 선배들이 너무 좋더라.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갈까 잠깐 고민은 했었지만. 그때가 연애가 시작 되던 때였고,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연인을 두고 떠나기가 싫었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무조건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성공했는가?
    그렇다. 아내는 무용가다. 시립예술단의 합동공연에서 상대역으로 처음 만났다. 나는 그녀에게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해줬고, 그녀는 나에게 춤을 가르쳐 줬다. 그렇게 눈이 맞은 거다.

    아이도 있는가?
    딸이다. 다섯 살이다. 다시 서울에 가기 위해 아이를 떼어 놓고 집을 나설 때가 정말 힘들다. 누굴 위해서 이러는 거지? 나 좋다고 못 할 짓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서울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픈 꿈이 생겼다. 나도 미아리 옥탑방에 살면서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게 막 살고 있는데,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런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하는 지금도 좋다, 나쁘지 않다고 결론이 나다가도 아니다, 빨리 같이 살자, 그런 고민들이 수도 없이 오간다.

    옥탑방에서 대학로로 향하는 유성주의 얼굴에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감이 돌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터로 나간다는 생각? 안한다. 그런 마음을 먹으면 욕심을 너무 부릴 것 같다. 전쟁한번 치러보자, 그런 마음으로는 그렇게 연극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연극은 아주 오랜 시간, 고등학생 때부터 나와 함께 가고 있는 친구다. 어떤 다른 일에 단 한 번도 한눈을 판적이 없다. 연극이라는 이 오랜 친구가 요즘 새롭게 보인다. 그게 너무 좋다. 새로운 연출가들,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면서 아, 재밌구나,
    아, 새롭구나, 느끼고 있다. 연극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나의 연극은 다시 새로워졌다. 행복하다.
  • 유성주 (배우)
  • 유성주 (배우)

    주요작품
    <그게아닌데><동토유케><1동28번지차숙이네>
    <나쁜연극-실내극, 어머니><페드르><조선형사 홍윤식>
    <변신><정의의 사람들><선착장에서><앙띠 외디푸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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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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