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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선지, 정승길 매소드를 향하여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정승길

김은성_극작가

웹진 15호

2013.01.03

배우 정승길
  • 후발선지後發先至, '늦게 움직여서 먼저 닿게 한다.'는 깊은 의미가 배우에게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던 <전명출 평전>의 정승길은 인터뷰 보름 뒤였던 12월 24일에 열린 ‘대한민국연극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연기상을 수상했다. 초등학교 5학년 산수경시대회 이후 처음으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정승길의 지난 40년 삶과 연극을 돌아봤다.
  • 타이틀 롤을 만나다
배우 정승길
연극[전명출 평전]
  •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마지막 작품 <로맨티스트 죽이기> 공연을 끝내고 쉬고 있다. 계속 연극 보러 다녔다. <리어외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빨간버스>

    뭐가 가장 재밌었나?
    다 재밌게 봤다. 립서비스 아니다. (웃음) 다 재밌더라.

    <로맨티스트 죽이기>는 잘 마쳤는가?
    양정웅 연출가와의 작업이 처음이었는데 좋은 시간이었다. 남자만 15명 나오는 연극을 해봤다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것 같다. 내가 팀에서 둘째 형이었는데, 젊은 후배들에게 좋은 기운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연습량도 많고, 무술도 많고, 다치기도 많이들 다쳤는데 큰 사고 없이 잘 끝났다. 불평이 많을 수 있는 상황인데 후배들이 잘 이겨줘서 고맙다. 관객이 많아서 힘을 낼 수 있었다.

    올해 출연작이 많았는데?
    다섯 편 했으니까 많이도 했다. 1월에는 일본에 가서 도쿄연극앙상블 극단의 <짐>에 출연했었다. 정복근 작가님과 사카테 요지 연출의 작품이었다. 봄에는 <푸르른 날에>에 출연했고, 여름에는 <전명출 평전>, 이어서 오경택 연출의 <벚꽃동산> 그리고 <로맨티스트 죽이기>까지 온 거다.

    그중 대표작을 꼽자면?
    대표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전명출로 타이틀 롤title role, 제목과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을 처음 맡아봤다. 박근형 선배님이랑 작업으로는 처음 만났다. 좋았다. 그렇게 무대 위에 오래 있어본 공연은 처음이었다. 퇴장이 거의 없었다. 1시간 45분 공연인데 1시간 30분 이상을 무대 위에 있었다. 철골에 매달려 있는 장면처럼 몸을 쓰는 장면도 많았다. 알아서 몸을 사리게 되더라. 공연 내내 술을 조금만 마시고 꼬박꼬박 지하철 타고 귀가를 했었다.

    아내가 좋아했겠다.
    연습기간에 워낙 많이 마셔서…. (웃음) 내 생에 낮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본 경험은 없었다.

    뭔 술을 누구와 그리 마셨는가?
    근형이 형이 마시면 배우들도 같이 마시는 거지 뭐. 어렸을 때부터 근형이 형 연극을 보면서 컸다. 언젠가는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오디션 볼 때도 떨렸다. 사실 떨어질 줄 알았다. "나, 사투리도 잘 못하고, 근데 언제 한번 같이 해요." 그 말하러 오디션 보러갔었던 거다. 마음속에 담아 왔었던 사람을 만났다는 것… 마냥 좋았던 거다.

    막둥이의 은좌극장

    어디서 자랐는가?
    울산에서 태어나 서너 살 때부터 서울 북가좌동에서 자랐다.

    유년시절은 어땠는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4남매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막내로 컸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집밖에서는 엄청난 개구쟁이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삼류극장에 드나들었다. 모래내 시장 부근에 은좌극장이라고 있었다.

    전설의 동시상영관 은좌극장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500원 내고 들어가면 두 편을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땐가 영화에 정신이 팔려 종일 극장에 있다가 밖에 나가니 깜깜한 밤이 된 거다. 집안 어른들이 얼마나 놀라셨겠나?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난다.
배우 정승길
  • <시네마 천국>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영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싹텄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돌아봐도 영화 밖에는 다른 이야기를 할 게 별로 없다. 개봉관에서만 100편을 넘게 봤을 거다. 독서실 간다고 나와서 극장으로 골인. (웃음) 영화 보러 다니는 거 말고는 잘 놀지도 못한 애였고, 공부도 어정쩡하게 했다. 밴드하고 놀던 친구들이도 어울렸는데 어중간한 아이들 무리에서도 어정쩡하게 있는 애였다. 그러다가 재수생이 됐지 뭐. (웃음)

    재수를 경험한 청년이 일찍 성숙해진다는 설이 있는데, 맞는 말인가?
    나는 지금도 경기도 구리 부근을 잘 안 간다. 간혹 MT를 가기 위해 근처를 지날 때가 있는데 가슴이 서늘해진다. 구리시 교문사거리에 있는 스파르타 기숙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했다. 영재학원이라고 3주에 한번만 외출이 허용되는 그야말로 군대 같은 곳이었다.

    스무 살, 그 좋은 시기에 힘들고 답답했겠다.
    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돌아보면 좋은 경험도 한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별의별 애들을 다 만나봤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공부도 열심히 했다. 당연히 성적이 많이 오르더라.

    결과는 어땠나?
    우리 때 경쟁률이 좀 심했나? 전기도 떨어지고 후기도 떨어지고. 삼수는 진짜 못하겠고…. 다행히 가고 싶었던 서울예대 영화과에 합격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했겠다.

    좋았다.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진 8밀리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8밀리 현상소도 없었다. 우리가 찍은 걸 보려면 일본으로 보냈다가 받아봐야 했다. 녹음하는 방식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원시적인 방법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장차 영화인이 되고 싶었고 동시녹음 전문가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당시에는 동시녹음 장비와 기술이 흔치 않을 때였다. 흥미도 있었고 장래성도 있다고 봤던 거다.
  • 배우 정승길
  • 배우가 되고 싶다

    아직까지 연극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음… 사실 나는 서울예대를 다니면서도 연극을 한편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졸업할 때가 되어서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봤다. 영화 스태프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인가? 나는 영화를 왜 좋아했을까? 근본적으로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하지?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까 나의 꿈을 보게 되더라.

    그 꿈은 무엇이던가?
    작가도 아니고 연출도 아니고 스태프도 아니고… 배우였던 거야! 배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에 늘 있었던 거지. 근데 뭐 내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안하고 있었던 거지.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어떤 도전을 시작했는가?
    학교에서 연예인들 많이 보고 다녔는데… 근데 그런 친구들이 내게는 배우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니, 다 연극을 했었더라. 아, 연극을 해야 되나 보다, 연기를 하려면 배우를 하려면 연극을 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 섰다. 근데 막상 연극을 하려고 하니까 그동안 연극을 본적도 없고, 당연히 어떤 극단이 있는지, 어떤 배우가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영화과 선배 중에 연극을 경험해 본 형에게 물으니 일단 극단에 들어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극단에 들어갔는가?
    96년이었다. 단원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간 극단 실험극장의 워크숍 공연에 참여하게 됐다. 그런데 함께 참여한 동료에게 ‘공연예술아카데미’라는 연극학교가 있다는 소개를 받았다. 운 좋게 합격을 해서 입학할 수 있었다. 연기반 학생으로 2년 과정을 마쳤다.

    연극공부는 재미있던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다. 연출로 윤영선과 이병훈, 연기는 예수정과 강신일, 평론은 안치운과 한상철, 극작 이강백, 움직임 수업의 임도완, 화술 수업의 오현경 선생님까지, 정말로 화려한 강사진이었다.

    정말 연극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
    공연 준비도 열심히 했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하일호 형이 연출한 세르비아 작품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에서 필립 역할 했었다. 국내초연으로 올린 작품이라서 더욱 애착이 남는 작품이다.

    나의 사랑 나의 아내
배우 정승길
  • 대학로 데뷔작은 어떤 작품인가?
    99년에 극단 연우무대에서 올린 장성희 작가의 <AD2031 제3의 날들>이라는 작품이다. 그 작품 하면서 이런저런 망설임이 있어서 단원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연우무대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아내인 배우 이지현과도 이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장쥬네 작, 정한룡 연출의 <엄중한 감시> 연습을 할 땐데, 연우무대 단원인 이지현이 연습실에 몇 번 놀러왔다. 그런데 집에 갈 때 보니 방향이 같더라. 그녀는 대치동, 나는 분당.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다.

    이지현은 어떤 배우인가?
    지현이라는 사람은 정이 정말 많다. 연극으로 오랜 시간 단련된 감성이 풍부한 배우다. 사실 연극 경력으로만 치면 나보다 한참 선배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반, 대학교 때도 연극반, 졸업하자마자 연우무대, 그리고 계속해서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견고함이 있다. 따뜻하면서 강한 배우다.

    아내로서 어떤가?
    음… 내가 원래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한숨) 나이 들어 늦게 술에 눈을 떠서…. 술 취하면 잠드는 버릇이 있는데 아내가 그 모습을 참 싫어해서 일찍 들어오라고 독촉전화하고 잔소리 살짝 하는 거 말고는 다 좋다. 다 사랑스럽다.

    공연을 함께 해볼 생각은?
    아직 없다.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서의 고민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을 연습실, 극장에서까지 아내와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다. 괴롭고 힘든 순간이 있는데, 아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상황이 되면 싫을 것 같다. 한 팀의 동료가 아니라 한 집의 동료로서 아내를 만나고 싶다.

    후발선지를 향하여

    데뷔이후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
    연우무대에서 김학선 작, 안경모 연출의 <숭아 숭아 원숭아>에 출연했다. 학선이 형을 통해서 김낙형 연출을 만나게 되고, 낙형이 형이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으로 활동할 때 <지상의 모든 밤들>을 비롯한 형의 작품들 서너 편에 참여했다. 데이비드 헤어 작, 박정희 연출의 <유다의 키스>도 기억에 남는다. 3, 4년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김광보, 이성열 등 여러 연출가들과 만나게 될 기회가 찾아오더라. 운이 정말 좋았던 거지. 좋은 작업자들을 계속 해서 만나게 된 거다.
에이미
기간: 2013.02.15~2013.03.10
장소: 명동예술극장
작: David Hare
연출: 최용훈
지난 10여 년간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작품을 꼽아보자면?
2003년에 김학선 작,연출의 <저 사람 무우당 같다>가 생각난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럴까? 했던 작품 중에 꼭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조금만 더 보완이 된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배우로서는 그 작품을 통해서 성장한 것을 느꼈던 작품이다. 주변의 선배들에게도 약간의 인정을 받아 격려와 힘을 받았던 작품으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은 작품이라 애정이 간다.

2006년의 김광림 작, 변정주 연출의 <날 보러 와요>도 꼽고 싶다. 김형사 역할 하면서 이래저래 배우로서의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지나고 나니 생각이 많이 난다. 손기호 작,연출의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 할 때는 전화기랑 연기해야 했다. (웃음) 통화로 아들이랑 연기하는 노역을 맡았는데 역할의 무게가 만만치 않더라. 동료들에게 힘을 많이 받았었는데 참 따뜻한 경험이었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어떤 연출가와 가장 많이 만났나?
김광보 연출가와 작품을 참 많이 했다. 고연옥 작 <발자국 안에서>와 <내 심장을 쏴라> 배봉기 작 <인간의 시간>, 사카테 요지 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차근호 작 <루시드 드림>까지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지난 10년을 돌아봤는데 이제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자. 당장 2013년 계획은?
2월에 명동예술극장에서 배우 윤소정, 이호재 선생님과 함께 <철로>의 작가 데이비드 헤어의 작품 <에이미>를 공연한다. 연출은 최용훈 선배가 맡았다. 봄에는 남산예술센터에서 <푸르른 날에> 재공연에 출연할 것 같다. 결정된 일정은 지금은 일단 거기까지다.
  • 앞으로 만나고 싶은 작업자가 있다면?
    김동현 연출가랑 해보고 싶다. 이유는… 작업을 해본 배우들이 다들 너무 좋아라한다. 김동현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배우를 본 적이 없다. 어떤 배우가 그 연출이랑 한다고 했을 때 그를 경험해 본 배우들은 다들 “꼭 해라.”고 한다. 대부분 “좋은 연출인데 너랑은 잘 맞을지는 고민해 봐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보통인데 신기하다. 대체 어떤 연출이기에 배우들이 그리 좋아하나 궁금하다.

    존경하는 배우는 누구인가?
    이대연 선배님이다.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풍채만큼 넓고 되게 따뜻한 사람이다. 후배들한테 힘을 실어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늘 진심이 느껴진다. 나도 그처럼 후배 배우들에게 긍정적이고 따뜻한 힘을 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연기는 뭐 더 말 할 것도 없이 잘 하시고!

    앞으로 10년, 목표가 무엇인가?

    10년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웃음) 의식적으로 길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작품, 다음 작품, 잘 해내도록 하자.' 그런 마음으로 산다.

  • 좌우명이 뭔가?
    좌우명까지는 아니고 얼마 전에 들었는데 자꾸 음미하게 되는 말이 있다. 후발선지後發先至. '늦게 움직여서 먼저 닿게 한다.'는 뜻의 검도용어다. 칼을 늦게 빼는데 상대방보다 먼저 벤다는 의미다. 오랜 수련을 쌓아 몸이 마음을 따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경지라고 한다. 이보다 한수 위가 칼을 빼지도 않고 이기는 것 아니겠는가? 단수가 높아질수록 칼이 짧아진다는 말이 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이 말을 발견했는데 연극에서는 배우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좋은 고민을 주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이게 어떤 경지인지 알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 보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노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것! 정말 연기 하지 않으면서 연기 잘 하는 것! 40년 후쯤에도 내가 아직 연기를 하고 있다면 그때는 후발선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정승길에게 연극은 무엇인가?
    매직이다. 매직. 연극 속에는 놀라운 마법의 순간이 항상 있다. 뭔가 확! 초월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마법을 열고, 즐길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다.


  • 배우 정승길
  • 정승길 (배우)

    주요 작품
    - 연극 <로맨티스트 죽이기><벚꽃동산><전명출 평전>
    - 연극 <푸르른 날에> <디너><돐날><갈매기><루시드 드림>
    - 연극 <내 심장을 쏴라><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길삼봉뎐>
    - 연극 <오늘, 손님 오신다><감포사는 분이,덕이,열수>
    - 연극 <지상의 모든 밤들><날 보러 와요>
    - 영화 <거미숲><후회하지 않아><은하해방전선><원나잇 스탠드>
    - 드라마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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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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