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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반짝 서에 반짝, 걸판 오세혁 선생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작가/연출가/배우 오세혁

김은성_극작가

웹진 32호

2013.09.26

이름만 들어서는 꼭 콧수염을 기른 아나키스트일 것 같은 이 연극청년은 아닌 게 아니라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빈다. 안산에 터를 잡고 있는 마당극단 걸판의 창단 주역으로 출발해 이제는 대학로 골목골목 소극장에서 이런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연극벌레를 만났다.

  • 이름만 들어서는 꼭 콧수염을 기른 아나키스트일 것 같은 이 연극청년은 아닌 게 아니라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빈다. 안산에 터를 잡고 있는 마당극단 걸판의 창단 주역으로 출발해 이제는 대학로 골목골목 소극장에서 이런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연극벌레를 만났다.

    배우 오세혁
배우 오세혁
  • 올해만 벌써 여덟 작품

    동분서주, 항상 바쁜 것으로 안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느라 바쁜가?
    <우주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2011년에 극단 작은신화에서 초연됐던 작품인데 이번에 재공연을 하게 됐다. 9월 25일부터 10월 13일까지 소극장 동숭무대에서 올라간다. ‘자전거 날다’ 라는 이름의 연극동인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팀의 창단공연이다.

    <우주인>은 어떤 작품인가?
    민중가요 가수를 하는 형님이 있는데 그 형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된 작품이다. 이 형님이 대리운전으로 밥벌이 할 때인데 하루는 손님을 파주 어디쯤에 모셔다드리고 혼자 남았는데 너무 시골이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암담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서 한명, 저기서 한명, 낯선 남자들이 등장하더라는 거다. 알고 보니 그들도 대리운전 기사. (웃음) “우리 서울까지 한번 걸어가 보자” 해 뜰 때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눴다고 하더라. 느낌이 팍 오더라. 뭔가 좀 소심하게 살다가 밤하늘 들판에서 걷다보니 우주인처럼 큰 야성을 가지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세 남자가 하룻밤 야영을 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는 연극이다.

    오세혁의 작품들은 발상이 참 독특하다. 타고난 장기인가?
    어렸을 적 이모 집에 얹혀살고 있을 때, 엄마는 돈 버느라 먼 곳에 가 계셨고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을 때였다. 그날이 어버이날이었는데 모처럼 엄마가 왔다. 얼마나 좋았겠나?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들고 슈퍼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정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5분 전까지는 정말 기쁜 상황이었는데, 5분 후에 갑자기 너무 슬픈 상황이 된 거다. 엄마, 이모가 막 울면서 장례식 꾸릴 준비를 하시는데 일단 드라이를 하고 립스틱 바르더라. 그래도 좀 꾸며야 하니까. 그때 웃음이 났다. 웃음이 터져서 엄청 맞았다. 이후로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런 상황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작가, 연출가, 배우를 겸하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포지션은?
    극단 걸판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사람이 부족해 다 할 수밖에 없었다. 걸판에 인재가 점점 늘어나면서 나도 이제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쓰는 일인 거 같다. 이야기를 만드는 게 그래도 가장 재미있다.

    올해 작품을 참 많이도 올렸다. <한밤의 천막극장>에서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 거야 친구야> <홀연했던 사나이> <보트피플> <레드채플린> <그와 그녀의 옷장>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까지, 이 작품들의 일관된 성격이 있는가?
    주인공들이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람들이다. 용기를 내면 한 걸음을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한 발짝 정도 용기를 낼까 말까 물음표가 남겨지는 사람이야기가 아닐까?

    우물쭈물 망설이는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그런 사람이니까. (웃음)

    올해 올렸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 거야 친구야>를 꼽고 싶다. 마당극으로 연극을 시작하다 보니, 적합한 단어인지는 모르겠는데, 진영논리? (웃음) 그런 게 좀 강했다. 저쪽은 좀 나쁜 사람들이니 이쪽에서 용기를 내서 세상을 좀 바꿔봅시다, 그런 생각을 해왔었다. 풍자에 치중해 왔었다. 그러니까, 적들을 좀 까고 놀리는 거. (웃음) 그런데 생각이 좀 바뀌더라. 이념을 떠나서 보면 사실 별일 아닌데. 별거 아니고 일단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보면 되는데. 서로 보지도 않으면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 아닌가? 나부터 이것을 극복해야겠다. 그런 자극에서 출발했던 작품이었다.

    배우 오세혁


    좀 놀던 소년, 풍물패를 만나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81년에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이선경 산부인과.

    유년 시절 어떻게 자랐나?
    아버지가 부동산을 하셨고 어머니가 다방을 하셨다. 나는 외아들. 아버지 복덕방에 오는 할 일없는 아저씨들 (웃음) 고스톱치고, 다방에서 차 시켜먹는 그런 분들 많이 보고 자랐고 다방 레지 누나들도 우리 집에 같이 살았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의 세계를 일찍 본거다. 안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어른들을 많이 보면서 살았다. (웃음)

    사춘기는 어떻게 보냈나?
    초등학교 때 축구부 주장이었다. 지역대회에서 우수선수상도 한번 받았다. 집에서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해서 중학교에는 그냥 갔는데 공부하기는 싫더라. 엄청 놀았다. 술, 담배, 여자들 좀 만나고, 가스랑 본드도 살짝 하고. (웃음) 그러다 잡혀서 보름 정도 구치소에 갇힌 적이 있었다. 중3에서 고1 넘어갈 때였는데 이때 은인을 만났다. 최태규 중3 담임선생님. 이분이 마음을 잡아주셨다. 한참 놀다가 그나마 상태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진 거다.

    연극이랑은 언제 만났나?
    초등학교 때 안성군민회관에서 강태기 선생님 모노드라마 <돈>을 보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었는데…… 그런 경험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 좀 한 건가?
    그렇다. 문학동아리에도 기웃거리면서 뭔가 끄적거려보기도 하면서 보냈다. 영화를 좋아해서 어느 날 밥 먹다가 부모님한테 연극영화과 간다고 하니까 숟가락 내려놓으라고 하시더라. (웃음) 당장 포기하고 어떤 과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우리 때 운이 좋게도 농어촌 특별전형이라는 게 있어서 대학교에는 들어갔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전공이 언론정보였는데 풍물패에서 살았다. 학교 입학한 첫날 잔디밭에 삥 둘러앉아서 술을 먹는데 옆에 앉아있던 선배가 너무 멋있었다. 민요를 어찌나 멋스럽게 부르던지, 그 선배 동아리 풍물패 따라갔다. 그때부터 풍물패 한우리에서 놀았다.

    아, 연극은 거기서 만났겠다.
    선배들이 과천마당극축제에 데리고 가서 공연을 봤다. 박철민 선배 나오는 <대한민국 김철식>이었는데 뭔가 세상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데 푹 빠졌다. 재밌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다. 그때부터 마당극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계속 마당극을 보러 다녔다. 동아리 사람들끼리 한번 만들어보자, 논의를 하다가 군대를 갔고, 제대를 하자마자 바로 만들었다. 그때 ‘걸판’을 만들었다.

    몇 살 때였나?
    2004년. 스물넷이었다.

    배우 오세혁


    스물넷에 만든 극단

    걸판의 초창기 활동을 돌아본다면?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 달랑 마티즈 한 대 있었고 연습실도 선배들 방을 빌려서 쓰고 있었고. 노동절에 공연을 하나 올리게 됐는데 <신자유를 쏘다>라는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목 참…… (웃음) 노동자들이 아닌 사장님들이 데모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 후로 엄청 불려 다녔다.

    이후에는 어떤 작품들을 올렸나?
    초반 3년은, 15분짜리 현장공연을 만들어 전국을 계속 돌아다녔다. 그 다음 3년은, 현장이라는 게 집회 현장만 현장이 아니고 골목길, 경로당, 공원 이런 곳도 현장 아니냐?’ 하는 생각에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마당극들을 만들어 다녔다. 찾아가는 공연을 많이 했다. 최근 3년은, ‘너무 돌아다니지만 말고 극장과 현장을 함께 가자’는 생각으로 1년에 두세 번은 극장에서 하고 나머지는 돌아다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걸판은 지금까지 그렇게 왔다.

    유랑극단처럼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이 많을 텐데?
    한도 끝도 없겠지만, 웃기거나 좋지 않은 일보다는 코끝 찡한 그 순간이 크게 남아있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분이 있다. 충남 당진에서 여성의 날 행사가 있어서 여성 마당극을 올렸는데, 일제강점기 고무공장 노동자로 을밀대 지붕위에서 9시간을 농성했던 우리나라 최초 고공 농성자 강주룡 씨 이야기였다.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더니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시더라. “커피 사먹어요.” 울면서 나가시더라. 왜 우시냐고 여쭈었더니 “저도 노동자거든요.” 요즘에도 그분이 많이 생각난다.

    웃긴 에피소드도 하나만 들려줄 수 없나?
    진주 탈춤한마당에 갔을 땐데 ‘4대강이 좀 그렇지 않냐?’ 그런 내용이었는데 술 취한 남자관객이 욕을 막 하시면서 드시던 아이스크림을 무대 위로 던지시더라. 당황하고 있는데 관객들이 그분을 끌고 나가시면서 “더 해! 더!” 기립해서 박수를 쳐주시더라. 다행히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서울역에서 공연을 많이 하는데 경찰 관객들도 많다. (웃음) 하루는 공연 끝났는데 악수를 청하시더니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하셔서 “나라 비판하는 건데 괜찮습니까?”하며 같이 웃었다.

    걸판 단원들을 소개해 달라.
    총 열 명이다. 나의 페르소나 김태현 배우, 현재 극단 대표 최현미 배우, 입단 3년차 강동효, 극단의 온갖 잡일을 다 맡아서 하시는 박정길 형님 등이 활약하고 있다.

    오세혁에게 극단의 의미는?
    집이다. 궁극적인 목표도 공동의 주택을 만들어 작은 공동체로 살아가는 거다.

    배우 오세혁
배우 오세혁
  • 일단은 끊임없이 계속 쓴다

    존경하는 연극인이 있다면?
    작가로는 오태영 선생님. 20대부터 지금까지 작품에 대해서 타협을 안 하고 계신 것 같다. 연극인 전체로는 이윤택 선생님. 처음 뵀을 때 두 시간 동안 연극이야기만 하시더라. 놀랬다. 연극계의 큰 스승으로 여러 역할을 품 넓게 안으시는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세 명이 생각난다. 오해가 안 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연기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나랑 기운이 맞는 배우가 좋다. 그래서 일단 극단의 김태현과 최현미. 그리고 평생 같이 연극을 하고 싶은 이승구. 음…… 그리고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은데, 정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배우는 연희단거리패의 김미숙이다. 2005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개관기념공연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어멈으로 출연했던 미숙 누나를 보고 정말 소름이 끼쳤다. 특히 남도 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서도 소리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 진짜 오줌 쌀 뻔 했다. 배우가 아니구나. 접신했구나. 그때 생각했다. 내가 만약 좋은 작가가 되면 저 배우를 꼭 모시겠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정말 6년 뒤에 꿈이 현실이 됐다. 신춘문예당선작 공연에 출연하신 거다. 그때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작품이 있다면?
    일단 당장 닥친 일은 연희단거리패에서 이윤주 연출로 <레드채플린> 재공연을 하는데, 배우로 출연하게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배우로 집중하고 싶은 게 있다. 내년 1월에 산울림소극장에서 올라갈 <분노의 포도>를 각색, 연출하는 작업도 곧 시작한다.

    작품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내가 속해있는 걸판은 그때그때 시대, 상황, 공기에 맞는 작품을 즉각 만들어 발표하는 집단이기에 속도가 중요한 게 있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빨리빨리 해버리고 싶은 취향도 있다. 일단 서른다섯까지는 이렇게 가보고 싶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진득하니 작품을 써보고 싶은 욕심도 있을 텐데?
    얼마 전에 이윤택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는데 “작가는 두부류가 있다. 긴 사색을 통해서 보편적인 작품을 탄생시키는 작가가 있고 살면서 발견한 거를 끊임없이 계속 꺼내놓는 작가가 있다.”고 하시더라. “세혁이 너는 일단은 끊임없이 계속 해라.” 그 말씀이 어떤 힘도 됐다. 일단 서른다섯까지는 이대로 간다.

    10년 뒤에 어떤 연극인이 되어있길 바라는가?
    두 가지다. 공연이 많이 올라가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어있었으면 좋겠고, 주변에 사람들을 모여들게 해서 어떤 울타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들과 모여 살고 싶다.

    오세혁에게 연극은 뭔가?
    직업을 넘어선 업. 그냥 좋다.
  • 배우 오세혁
  • 오세혁 (작가/연출가/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 중
    남산예술센터 상주극작가 2기, 창작스튜디오 자전거날다 동인

    수상경력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11 밀양연극제 젊은 연출가전 대상 및 연출상
    2011 극단 작은신화 우리연극 만들기 당선
    2013 서울연극제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공동수상

    주요작품
    <그와 그녀의 옷장><홀연했던 사나이> <우주인><김사장의 전투><한밤의 천막극장><레드 채플린>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꺼야 친구야>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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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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