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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씨의 해피투게더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신안진

김은성

11

2013.12.19

  • 어둑한 무대, 침침한 조명을 뚫고 한 사내가 객석을 향해 걸어 나온다. 긴 독백이 이어진다.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해봅시다.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는 없어져도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서서히 그의 궤변에 빨려 들어가며 급기야 설득당하기 시작한다. 연말 대학로의 화제작 <해피투게더>에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배우가 있었으니, 주인공도 긴 독백도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배우 신안진
배우 신안진
  •  
  • 해피투게더가 준 선물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은 역할을 맡아 한 달간 달려왔다.
    내일이 마지막 공연인데 소감이 어떤가?

    벌써 한 달이 됐다. 온갖 근육통을 안고 있지만 이제는 뭐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있다. 사실 나보다는 다른 배우들이 더 힘들다.

    악역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나쁜 악역과 만나본 적이 있는가?
    악역과 인연이 깊었지만 이런 악역은 처음이다. 그동안 <오셀로>의 악역 이아고를 세 번 했다.

    이아고를 세 번씩이나?
    그렇다. 이상하게 이아고랑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내 안에 악마성이 많은 건지 나도 솔직히 악역을 하는 게 편하다. 악한 인물 안에는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많이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악마에 가까운 악역을 한 달 가까이 하다보면 어떨지 궁금하다.
    심리적으로 힘든 점은 없는가?

    악당? 악마? 나쁜 사람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정당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가능성도 열어두자는 이야기를 이수인 연출과 많이 했었다. 글쎄...... 심적으로 힘든 건 없었지만 공연이 거듭될수록 성격이 인물처럼 변해 가는 느낌이 살짝살짝 날 때가 있었다. 분장실에서 사람 대할 때라든가...... 나도 모르게 내가 변해있는 모습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한 달만 하는 게 다행이다. (웃음)

    연기가 좋아서였을까? 확신에 차있는 인물을 보고 있자니......
    그 궤변에 점점 설득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 당황스럽기도 했다.

    일단 외형적으로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만만하고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실체를 모르고 겉만 보면 충분히 멋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회질서를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그의 논리 역시 나름 설득력이 있다.

    연습은 어땠나?
    연습 초반에 공연 <부르스니까 숲> 공연과 병행하느라 힘들었다. 연습하고 공연하러 다니느라 살이 좀 빠졌다. 그래도 이수인 연출이 연습은 하루 네 시간 이상 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있어서...... 그거 아주 좋은 철학인데 (웃음) 연습을 하루 네 시간 밖에 하지 않지만 대신에 아주 집중해서 한다. 좋았다.

    이수인 연출이랑은 몇 번째 만남이었나?
    아, 벌써 네 번째였다. 2009년에 <그녀가 돌아왔다>로 처음 만나서 그간 <멕베스> <오이디푸스>를 함께 했다.

    호흡이 잘 맞는가?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 이 사람이구나! 했다.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을 쌈빡하게 정리해 온 <그녀가 돌아왔다> 대본을 딱 보는데 그 때부터 내 스타일이다 싶었다. 굉장히 배우를 믿어주는 연출이다. 여러모로 호흡이 잘 맞는다.

    공연 보러 이효리도 오고 호란도 오고 문재인까지 왔었다는 소문을 듣고 부러웠다. 누구 더 온 사람 있나?
    아! 재밌는 경험이었는데... 그게 모두 함께 출연하고 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보컬, 송은지 배우 덕분이다. 이효리는 음반 작업을 함께 했었다고 들었고, 호란은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라고 하더라. 문재인은 제작자와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해피투게더>가 지금 이 시대와 만나는 접점이 어디에 있을까?
    그건 연출이랑 이야기 해야지. 난 잘 모르지. (웃음) 연출이 연습할 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정치적인 것, 시대적인 문제, 그런 것보다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러니까 연습을 네 시간만 하는 거지. (웃음)

    올해를 한번 돌아보자. 어떤 공연에 출연해왔나?
    남산예술센터에서 <농담>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뻘>에 출연하느라 광주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을에 <부르스니까 숲>을 거쳐 <해피투게더>로 마감을 하게 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네 편. 뭔가 올해는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올해 맡은 인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지금 하고 있는 <해피투게더>의 이 인물이다. 신경도 많이 썼고 준비도 많이 했고 하기도 힘들었다. 올해 뿐 아니라 지금까지 연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인물을 만난 거다. 지금껏 배우로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껴온 모든 것을 다 집어넣었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음...... 사실 그동안 주인공을 맡은 적이 없었다. 무대에서 긴 독백을 해본 적도 처음이었다. 기분이 참 좋다.
  • 배우 신안진
  • 공대생, 연극에 빠지다

    연극과는 언제 처음 만났나?
    대학교 입학해서 연극반 활동을 시작으로 처음 만났다.

    그럼 고등학생 때는 주로 뭐하고 놀았나?
    집이 시골이었다. 어릴 때부터 소 키우고, 염소 키우며 자랐다. 내 유년기는 몽땅 소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어 어떻게든 부모님 편히 잘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수의학과 같은 곳에 들어가서 졸업 후에 고향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정색을 하시더라. “넌 이 시골을 떠나서 도회지에 가서 살아야 한다.” 농대 말고 공대에 들어가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공대에 들어갔는데... 그러다가 결국 이런 사단이 난 거지 뭐. (웃음)

    연극반은 어떻게 하다 들어갔나?
    그냥 심심해서. 친구들도 없지. 공대 신입생이 120명인데 전부 남자고...... 나는 고등학교 3년을 남녀 합반을 나온 사람인데 대학이라고 들어갔는데 콩나물시루에 남자들만 가득하더라. 하루는 뭐, 재밌는 일 없나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캠퍼스 구석에 큰 테이블을 갖다놓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기웃기웃 거렸지. 왜? 나도 항상 가방에 소주 한 병 넣어 다닐 때니까. (웃음) 옆에 가서 슬쩍 보니까 문화토론을 하면서 소주를 걸치고 있더라. 낮술을 마시고 있는 선배 한명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리 오시게. 같이 한잔 하시게.” 한 잔 얻어 마셨는데 “자네 동아리 든 거 있나? 뭐 하고 싶나?” “공부해야지요.” “그런 소리 말게. 여기 도장 찍게.” 입회원서에 그래서 도장 찍었어. (웃음) 나중에 보니까 연극반이더라고.

    아들이 공대 가서 연극을 한다는 사실은 부모님이 언제 아셨는가?
    2학년 여름방학 때 신입생 후배들이랑 연습을 하고 있을 땐데 방학 때 애가 집에도 안 내려오니까 제대하고 집에 와 있던 형이 잡으러 학교까지 찾아온 거다. 누가 분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야, 신안진 말이야!” (웃음) 형이 쫑파티까지 따라와 끝까지 놀다가 갔다. 어쨌든 부모님도 다 아시게 됐는데 “군대 가기 전에 잠깐 이러는 겁니다.” 그렇게 안심을 시켜드리긴 했는데......

    군대 다녀와서도 계속 한 건가?
    그렇다. 말년 휴가를 나와서 학교에 가니까 후배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더라. 연출하는 선배가 나를 보자마자 붙잡고 늘어지더라. “야, 잘됐다 안진아. 너 이거 해야 된다. 배우 한명이 빵꾸났다. 너를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그냥 니가 해.” 어떻게 해? 그냥 “알았어요” 했지. 제대 하자마자 바로 연습에 투입됐지. 연습도 며칠 못하고 무대에 올라가게 됐는데 와, 이거 되게 재밌다. 연극? 이걸 한 번 제대로 해볼까? 그래서 친구들, 후배들 모아서 이런 저런 작당이 시작 된 거지.

    어떤 작당이 이어졌나?
    연출도 하고, 배우도 하고, 일인극도 하고, 잔디밭에서 연습도 하고. 연습 구경하는 학생들이랑 막걸리 사와서 같이 나눠 마시기도 하고. 그렇게 정말 재밌게 놀았다.

    졸업 후에도 계속 연극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건가?
    그건 아니었다. 전공이 조선공학이었다. 당시에는 잘나가던 학과라 졸업하면 곧바로 조선소에 취직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공부 안하고 연극하면서 놀았던 건데...... 어떻게든 되겠지...... 했었는데, 갑자기 아이엠에프가 터진 거다. 상황이 급변하면서 갑자기 겁이 팍 나는 거지. 성적이 엉망이라 취직하기 위해서는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원하던 자격증은 못 땄지만 어쨌든 졸업 후에 취직은 했다.

    어디에 취직을 했나?
    그건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는 않다. 인턴생활을 한 6개월 했었는데 회사에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 하던 중에 아는 선배 소개로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됐다. 될까? 싶은 마음으로 봤는데 덜컥 붙어버린 거다.

    배우 신안진
  • 배 타기 전에 삐삐가 오다

    어떤 작품이었나?
    <못 다한 사랑>이라고 백범 김구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김구 선생이 아끼는 독립운동가 역할로 출연했다. 극 전반부의 주요 역할이었다. 내 사진이 대형 내리막으로 백스테이지에 쫙 펼쳐지는 장면도 있었고. 그때 부모님이 그 걸 보신 거다. 시골에서 올라오셔가지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올라가는 공연을 보신 거다. “우리아들, 성공 했네” (웃음) 이후로 연극하는 거 봐 주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건가?
    아직 아니었다. 아, 그 시기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나?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돈벌이를 하다가...... 서울생활이 너무 힘들더라. 고향에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 뒀다. 마지막으로 여행이나 한번 가자고 마음먹고 전국일주를 시작했다. 부산, 동해안, 서해안...... 뒤죽박죽 아무 곳이나 막 다니다가 춘천에 있는 청평사에 들어가려고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삐삐가 오더라.

    어디서 온 삐삐였나?
    회사를 그만두면서 오디션 서류를 냈던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서류심사 됐다고 면접 보러오라는 연락이 온 거다. 제1회 2인극 페스티벌 오디션이었고 합격을 했다.

    어떤 작품에 출연하게 됐나?
    김낙형 연출의 <화가들>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과의 인연으로 계속 연극을 하게 된 건가?
    그렇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정말 너무 연습을 힘들게 했다. 연습기간이 굉장히 길었고...... 맨날 술만 먹지, 돈도 없지, 그동안 벌어 놓은 돈 다 까먹고. 대학로에 와서 연극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된 건데......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그냥 어쩌다보니 그들과 어울리고 있더라.

    당시 어울려 지내던 그들은 누구인가?
    <화가들>에 함께 출연했던 백진철. 연출가들로는 박정석, 김낙형, 김진만. 하일호 형이랑은 작품을 많이 했다. <스카팽, 어쩌면 좋으냐?> <대머리여가수> <새벽부인> 등에 출연했다. 그렇게 연극하면서, 놀면서 지내다가 2003년에는 돈이 너무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게 됐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들의 폭이 조금 더 넓어졌고 점점 연극동네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 같다.

    배우 신안진
배우 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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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은 인생의 축소판

    연극동네의 삶은 어땠나?
    재밌기도 했지만 어떤 허전함도 있었다. 2005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된 <아가멤논>에 출연하게 됐던 것은 연극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연출가 미하엘 마르마리노스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다.

    뭘 그렇게 많이 배웠나?
    배우가 어떻게 집중해야 하고 집중이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되었다. 연출가가 나를 믿고 “과감하게 더해라. 더해라.” 하는 주문을 많이 했다.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내 안에 숨어있던 것들이 막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던 과정을 겪었다. 처음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순간 이었다. (웃음)

    그 이후에는 어떤 작품들과 만났나?
    이전에는 주로 극단76의 식구들과 친하게 어울리다가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일월> <심판> <죽기살기>에 출연하면서 김재엽, 구태환, 송선호 연출과 함께했고 그 즈음 이수인 연출도 처음 만났다. 박해성 연출과는 <믿음의 기원> <타이터스> <영원한 너>를 함께 했다.

    작년, 2012년에는 활동이 조금 뜸하지 않았나?
    맞다. 알바를 많이 하느라......공연은 잘 못했다. 마트에서 짐 넣어주고 정리해주는 일을 6개월 정도 했다. 그거 하면서 이제 당분간 연극은 좀 덜 하려고 생각도 했었다. 글쎄, 먹고 사는 거야 고등학교 때부터 집 떠나와서 자취 경험이 많아서 어떻게든 먹고 산다는 생각은 있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그 것만으로 사람답게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벌어서 메꾸고 벌어서 메꾸고 이제 이렇게는 좀...... 그게 걱정이지 뭐...... 어떻게든 돈벌이 되는 작업에 좀 출연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된다. 내 나름대로는 한다고 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다. (웃음)

    존경하는 선배는 누구인가?
    이수인? (웃음) 진짜다. 배우들에 대한 믿음! 배우들 챙기는 건 역대 최고다. 어떤 권위나 힘 앞에 빼지 않고, 자기 이득을 위해서 자기 것 챙기려고 싹 빠지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작업으로 만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정승길. 승길형을 되게 좋아하는데 아직 작품에서는 못 만났다.
    그리고 조니뎁? (웃음)

    만나보고 싶은 연출가는?
    누구든 다 만나고 싶다. 새로운 연출가. 요즘 누가 잘 나가지? (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그냥 살아온 대로 사는 거지. 이제 와서 어떻게 뭐가 되겠어? 어떤 배우는 어떤 배우? 그냥 후배들한테 괜한 고집 부리지 않는 배우만 됐으면 좋겠다, 그거지 뭐. 새롭게 만나는 작업자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배우.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신안진에게 연극이란 뭔가?
    (한숨) 연극은 진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 흔하디흔한 그 말. 하지만 그거 하나만 알아도 많은 게 해결 된다고 생각한다. 연출이든 연기든, 뭐든 다.
  • 배우 신안진
  • 신안진 (배우)

    주요작품 <부르스니까 숲><농담 ><영원한 너>
    <오이디푸스><장석조네 사람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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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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