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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다 바쳐도 모자라는 그것, 연극

배우 정동환

김지현_연극칼럼니스트

제40호

2014.03.20

웹진을 개편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연극 마니아뿐 아니라 연극을 아직 관람한 적 없는 분들에게도 친밀한 연극人과 데이트를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많은 분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무엇보다 이 코너의 마지막 질문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건넸을 때 왠지 멋진 답을 들려줄 것만 같은 연극人을 만나고 싶었다.



  • 또 한 번 극기하는 중

    정동환

    <단테의 신곡>이 막을 내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계셔서 놀랐다. <메피스토>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단테의 신곡>은 작업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대본도 배역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당분간 쉬려고 했는데, 서재형 씨가 <파우스트>를 <메피스토>로 바꿔서 한다기에 같이하게 됐다. <파우스트>는 언젠간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고, 서재형이란 연출가와도 한번 만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기회인가보다 하고 참여하게 됐다.


    원래 서재형 연출 작품에 관심을 갖고 계셨
    나?


    한태숙 씨의 조연출로 출발하지 않았나. 한태숙 씨와 <레이디 멕베스>를 15년 동안 해왔다. 그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서재형 씨가 조연출을 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였다. 죽도록 달린다로 독립해서 <왕세자 실종사건>부터 좋은 작품들을 해오는 걸 인상 깊게 보고 있었다. 언젠간 저런 팀하고 같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이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돼버려서 저런 사람들 작업에 끼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 때문에 배우 생활을 못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작업은 나와 거리가 있으니 참여할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였다. 그런데 마침 이 작품을 같이하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다.
단테의 신곡
<단테의 신곡> 2013.11.02-09

메피스토
<메피스토> 2014.04.04~19

  • <단테의 신곡>과 비교했을 때 <메피스토>는 어떤 작업인가?

  • 작품마다 나름의 어려움과 고통이 있는데, 둘 다 음악극적 정서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에는 많이 참여하지 않아서 작품의 맥을 따라가는 데 음악이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늘 이런 작업을 하던 사람은 괜찮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래서 쉽지가 않다. 어느 한 작품을 생각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이어져야 하는데 음악으로 인해 끊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쉬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많이 해본 친구들은 그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들을 안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메피스토> 팀에서 제일 나이 많은 배우도 아직 마흔이 안 됐을 거다. 20대, 30대 팀 속에 나이가 더러 차 있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정서의 차이나 속도의 차이, 접근의 차이 같은 것들이 생긴다. 나한테는 그게 또 다른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거다. 그래도 어차피 극복해야 하는 일이니까 극기를 하는 중이다.

  • <파우스트>가 <메피스토>라는 작품으로 재창작되면서 파우스트라는 역할에 차이가 생기진 않았나?

  •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보통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와 다른 인물로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파우스트 내부에 있는 또 다른 나로 설정했다. 그래서 내 안의 정서 속을 왔다 갔다 하는 인물이다. 그게 원작과 달리 특별한 점인데, 음악극적 특성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만들고 있다.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좀 어렵지 않나. 다들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겠고, 복잡하기만 하고, 난해하기만 한데, 이 작품은 그런 점이 설득력 있게 함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겠나 싶다. 결정이 난 건 아니라서 꼭 그렇다고 이야기하기엔 이르지만, 지금 작업 내용으로 보면 그렇게 될 것 같다.

  • 예술의전당에선 파우스트가 내면의 악을 만나는 과정을 현대인의 삶에 빗대어 표현했던데, 동의하시는지?

  • 그렇다. 우리 안에 떠돌고 있는 많은 것들, 선의 요소, 악의 요소, 긍정적인 요소, 부정적인 요소,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것들, 무엇이라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파우스트를 통해서, 메피스토를 통해서 형상화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 작품에선 정령들이 20~30명 왔다 갔다 하면서 방해도 하고 유혹도 하는데, 결국 우리 삶, 인생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그래서 정도를 걷기가 참 힘들고, 옳은 길이라고 가보면 잘못된 길일 수도 있고. 고전이 가진 가치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지금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 연극 연습은 작품의 비밀을 찾아내는 것

    정동환

    고전의 가치를 언급하셔서 말인데, <오이디
    푸스>나 <단테의 신곡>, <메피스토> 처럼 고전이나 고전을 재창작한 작품에 자주 출연하고 계신 것 같다.


    고전은 언제 누구한테나 어느 계층이나 어느 시대를 초월한 것을 일컬어서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고전으로 남는 것이고, 고전이란 말을 붙이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고전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 안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것이고, 고전은 옛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곧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전에 참여한다는 건, 내가 옛날을 이야기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을 이야기하는 것이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가진 인간 본성의, 인간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고전이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의 이야기로 얼마든지 환치해서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의 나를 써놓은 것보다 더 정확히 나를 써놓은 것이라 판단되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대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대본은 일종의 코드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내면의 비밀이고, 해석하는 사람의 해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쓰여 있는 글자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본다. 그 안에 숨어있는 그 무엇은, 어쩌면 기호일 수도, 부호일 수도, 암호일 수도 있는 것이고, 해석하는 사람 나름의 것이다. 고전에는 그 모든 게 다 같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깊이를 하염없이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고, 깊이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은 무서운 것이다.


    연극계에선 창작극이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연극인들에겐 항상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전을 만들어야 한다. 고전은 만드는 것이다. 이 문제는 창작극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창작극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작가가 쓴 내용은 그 안에 숨은 비밀이 있다는 걸 얘기하는데, 그 비밀을 얼마나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다. 많은 작품을 너무 평이하다고 넘기지 않았나. 그래서 우리가 고전으로 남길 수 있는 걸 고전으로 남기지 못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뭔가를 해야 하는 거다. 그냥 연습해서 익숙하게 되니 그만두는 게 연극 연습은 아니다. 그 안에서 뭔가 찾아내지 못했으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다.

    극장이 의미 있으려면, 그 안에서 뭔가를 찾아내 보여줘야 한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너무 단언해서 심하게 잘난 척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떠나서 우리는 진짜 목숨 걸고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들은 다 열심히 썼을 거다. 그럼 그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편의 창작극에 참여해봤는데, 어떤 사람들이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만도 못한 걸 무대에 올려야 하느냐.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엔 그 안에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얼마든지 찾아내야 하는 거다 그랬는데, 시스템의 한계라는 게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는 걸로 끝났다. 하지만 만약 더 찾아낸다면 더 깊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작품을 대할 때도 같은 생각이다. 창작극이 부재다, 부실하다, 깊이가 없다 말할 게 아니라 깊이를 찾아내려 애를 써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더 노력할 것이고, 그런 노력이 상충해서 뭔가를 이룰 수 있지 않겠나.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연극같이 살고 사는 것같이 연극하라

    정동환

    어떤 인터뷰에서 연극을 “섬긴다”고 표현
    하셨던데,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누구나 그렇듯 좋아서 시작한 것에 불과했을 거다. 그런데 다른 사람보다 일찍 한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 시절인 1965년부터니까 햇수로 하면 많이 됐다. 그런데 시간이 그렇게 되어서가 아니라 연극을 쭉 하다 보니까 연극에 인생을 바칠만한 가치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됐다.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점점 나한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건 진짜 일생을 바치고 해도 부족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드는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지만, 이제 기계에 많은 걸 뺏기는 인간들이 돼버렸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나 기계만 쳐다보는 시대가 됐는데, 이런 상황이 좀 더 갈 거다. 한참 더 갈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건 ‘인간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을 어디서 회복할 수 있는가, 회복할 가능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생각하면 연극밖에 없다. 그래서 연극은 귀한 것이다. 지금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시대는 연극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 좋은 문화의 홍수 속에서 연극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연극은 죽여 버려야 한다, 연극을 없애야 한다, 연극은 스스로 죽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럴수록 연극이 꼭 살아있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난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이게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걸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가 사색해봐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맞대고 뭔가를 이야기도 하고,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 게 중요한데, 이제 그걸 자꾸 잃어버리는 시대다. 어떻게 그걸 찾게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자꾸 그 불길이 꺼지는 것 같은데, 그 불길을 살리는 사람이 누군가는 남아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진짜 소중하고 선구자적인 사람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후배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귀한 생각이란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보다 연극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런 고귀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서울연극학교를 나오신 걸로 안다. 걸출한 연극인을 많이 배출한 곳인데, 재학 시절 함께 공부하신 분들이나 스승은 어떤 분들이셨나?

    고등학교 때 연극경연대회에서 상을 타서 혜택을 받고 들어간 경우다. 당시 유치진 선생은 연극계 최고의 어른이셨고, 그 선생의 이런저런 말씀을 듣고 입학했다. 또 다행스러운 건 내가 들어가자마자 유덕형 선생, 안민수 선생, 유민영 선생 등 당시 젊은 엘리트 연극인들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분들을 만나서 새로운 연극 문화를 접하게 된 게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렇다고 그전까지 연극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연극은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연극은 그게 아니야. 연극 안에 들어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어. 문화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한. 그걸 보는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깨우치게 할 수 있고,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연극이야”라고 최초로 가르침을 주셨고 보여주셨다. 그래서 아 연극은 이런 거로구나, 인생을 걸고 할 만한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그 어린 시절에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 분들 밑에서 같이 공부하고 작업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극을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 나이가 되면 먹고 살기 바쁘고, 다른 걸로도 바쁘기 때문에 자꾸 연극 얘기 안 해도 되고, 피곤하지 않게 살 수 있다. 그게 대우도 훨씬 많이 받는다. 지금 연극 때문에 미칠 정도로 고민하고 있는데, 이렇게 고민 안 하고 살 수 있는데도,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건 다 그분들의 좋은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 정동환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많이 하셨는데, 유독 애착이 가는 역할이 있으신
    지 궁금하다.


    미안하지만 내가 해온 작품 중에 어느 작품이 좋았고, 어느 작품을 사랑하는지 가려서 말을 할 수 없다. 물론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준 작품은 있다. “그 작품에서 너 많이 보였고, 그 작품에서 정말 훌륭하고 멋있었어.” “사람도 많았고 대단했어.” 이런 말을 들은 작품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릴 수 없다. 나한테는 다 똑같다. 다만 아쉬운 것들은 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었는데, 나한테 주어진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 인물에 대해 더 이상의 빛을 못 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어떤 인물이 더 우월하고, 어떤 작품이 내 대표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주변에 있는 독자의 질문을 하나 받아왔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와 무대에 올랐을 때, 언제가 더 설레시는지?

    자칫 내가 이런 말을 잘못하면 다른 매체에 있는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저래?” 그럴 수 있어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쉽게 말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편집이 가능하고 사후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보다는 현재 부딪히고 있는, 진행하는 이건 일종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역사라는 거다. 같은 작품을 한다고 해도 늘 같을 수가 없고 무엇이 달라도 다른 그 어떤 것인데, 그것을 위한 집중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똑같은 걸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노력이 들어있는 것이 아무래도 또 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연극데이트」 고정 질문이 있다. 배우 정동환에게 연극은 무엇인가?

    연극은 나의 삶이다. 늘 하는 말이 그런 말이다. 연극같이 살고 사는 것같이 연극하라. 이 생각처럼 연극하며 살면 되는 것 같다. 연극은 나의 삶이다.

  • 배우 정동환
  • 정동환 (배우)

    수상경력
    2008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 1997 제21회 서울연극제 연기상.
    1993 백상예술대상 연극연기상, 제2회 김동훈 연극상.

    주요작품
    <단테의 신곡>, <레이디 맥베스>, <벚꽃동산>, <오이디푸스>,
    <나무>, <뱃사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고곤의 선물>,
    <침향>, <시련>, <갈매기>, <에쿠우스>, <사람의 아들>, <햄릿>,
    <마의 태자>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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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김지현 연극칼럼니스트
연극학을 전공하고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활동했다.
diario204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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