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와 사랑스러움 사이의 미정씨
배우 남미정
부새롬
제126호
2017.10.26

- 뿌
- 연희단거리패 (이하 연희단)에 오래 계셨죠?
- 남
- 88년,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부산 가마골 (연희단거리패는 부산에서 창단된 이후 자체 소극장인 가마골소극장에서 주로 활동했었다.) 워크숍에 참여를 했었어요.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고, 대학 졸업한다고 잠깐 쉬었죠. 그러고 10주년 됐을 때 <햄릿>을 하다가 발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공연을 못하게 되면서 2,3년 쉬었다가 이윤택 선생님이 부르셔서 다시 돌아갔죠. <자장가>를 몇 년도에 했는지 모르겠는데, 5, 6년 됐나? 가물가물하네, 그거 하고 독립했어요. 선생님도 “이제 독립해라, 독립해도 되겠다.” 하시고 저도 “감사합니다”, 하면서 서로 쿨하게. (웃음)
- 뿌
- 정말 오래 계셨네요.
- 남
- 그러게요. 어릴 때부터 해가지고 내 또래들은 내가 나이가 되게 많은 줄 알아요.
- 뿌
- 그럼 부산 가마골에서 했던 <오구>도 하셨던 거예요?
- 남
- 89년 겨울? 90년 초에 시작했을 때부터 했죠.
- 뿌
- 제가 부산 출신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많이 봤어요. 어떻게 알고 보러갔는지 모르겠는데, <오구>를 봤거든요. 당시엔 정보도 없고 잘 모르니까 맨날 서울에서 내려오는 뮤지컬이나 번역극 같은 것만 보다가,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 이런 연극이 있구나, 너무 신기했어요. 그때 무대에 계셨겠네요.
- 남
- 그랬죠. 와, 중앙동 가마골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났네요.
- 뿌
- 껌껌한 계단이랑 쪼끄만 극장이 기억나요. 무당하셨던 배우 분 눈이 막 번쩍거렸던 것도 기억나고. 그때 무대에 계셨던 분을 이렇게 뵈니까 신기하네요. 대학교 2학년 때 어떻게 그 워크샵을 찾아가신 거예요?
- 남
- 극예술연구회 출신이에요. 지금은 연영과가 많지만 그때는 극회 출신이 활동을 많이 했던 때였어요. 극회 선배가 이윤택 선생님이 하는 가마골을 가보자, 그래가지고 선배 옷자락 붙잡고 구경을 했죠. 연습 중이었는데 배우들은 츄리닝 입고 구르고 뛰고 선생님은 뭔가를 막 디렉션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생 날 것의 무언가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막 하던 참이었는데, 연극을 안 하더라도 뭔가를 좀 알고 그만두자, 워크숍까지는 해보고 그만두자, 그랬던 거죠. 근데 그만두긴 뭘. (웃음)
- 뿌
- 좀더 거슬러 가서 처음에 연극반은 어떻게 들어가시게 된 거예요?
- 남
- 연극에 대한 관심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갔던 학생이었어요. 당시가 87년이니까 민주화 운동이 피크일 때잖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데모하는 학생들 빨갱이라고 니는 절대로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가, 대학에 들어갔더니 내가 기존에 살았던 세계는 엄청나게 잘못된 세계인 거예요.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어느 정도 살만한 중산층이 된 건데, 학교에 가면 ‘쁘띠 부르조아’라고 비판을 하는 거죠. 20년 동안 살아온 내 삶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은, 혼란이 엄청 컸던 거 같아요.
- 뿌
- 그 시절에 그랬던 대학생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 같아요.
- 남
- 그런 혼란 속에서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고민으로 연극을 만나게 된 거죠. 지금은 남들이 물어보면 농담으로 난 처음부터 잘 했지 (웃음) 그러지만, 재능이 있고 끼가 있어서 연극을 시작한 게 아니라 살아남으려고 했던 몸부림이었어요.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겠다는 파, 돌 던지는 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붙잡았던 게 연극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도피처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한테는 연극이 도피처가 되면 안되는 거였고, 그러니까 함부로 포기할 수가 없었죠. 연극을 포기하면 도피처였던 게 되니까. 그리고 연극이라는 세계가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빠져들게 된 거죠. 연극을 통해서 세상도 배웠고요.
- 뿌
- 87년은 어릴 때였지만 저도 기억이 나요. 나중에 알게 된 것도 있고요. 엄청났죠.
- 남
- 온 세상이 들썩거렸죠. 그러고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는 줄 알았죠. 내가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서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세대는 정말…
- 뿌
- 그러게요. 나라를 두 번이나 구한 세대네요. 최루탄 맞고 돌 던지던 87년이랑은 달랐지만 작년, 재작년 나라 전체도 그랬고 연극판도 검열 문제 때문에 정말 시끄러웠잖아요. 어떠셨어요?
- 남
- 전 연극인 블랙리스트가 아니에요. 영화는 딱 한 편 했는데 그 쪽으로 이름이 올라갔더라고요.(웃음) 연극이라는 게 세상이랑 떨어질 수 없는 거니까 해야 될 일을 하는 게 맞는 거죠. 외부의 개입에 대한 건 정권이랑 관련돼있는 거고 바뀌어가겠죠. 난 연극계 내부적으로 연극을 만드는 시스템이 바뀌면 좋겠어요. 젊은 연출, 연극인들이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부터 바꿔야 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 어떤 팀을 본 적이 있는데, 연출이랑 무용가, 배우? 정확하지는 않은데 3명이 한 팀인데 무언가를 바꾸려면 다 동의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당시에 저는 일을 진행해야 했고 바쁘니까 아, 그냥 연출이 이렇게 정하면 되지, 했는데 그 사람들은 계속 얘기를 나누는 거예요. 그게 참 생경하면서도 좋아보였어요.

- 뿌
- 차이는 좀 있겠지만 예전의 제왕적 연출 시스템에서 바뀌어져 가고 있긴 한 것 같아요.
- 남
- 나는 그냥 배운데 왜 이런 얘길 하지? (웃음)
- 뿌
- 연출도 많이 하셨잖아요? 얘기 나온 김에, 연출은 어떻게 하시게 됐어요?
- 남
-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고요.
- 뿌
- 정말요? 근데 막 상도 받고 그러셨잖아요.
- 남
- 그러니까요. (웃음) 연희단 단원들은 많은데 이윤택 선생님 공연에 다 참여할 수가 없고 계속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후배들을 데리고 연출을 한 거예요. 연출을 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깨우치면서 하고 싶은 얘기도 생기고 애들한테도 관심을 더 갖게 되고, 그랬어요. 나한테는 같이 하는 사람들이 텍스트였어요. 배우들이 텍스트를 만나서 어떻게 빚어지느냐, 이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연출의 몫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다보니 항상 니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아, 안보였나요? 전 충분히 한 것 같은데, 그랬죠. (웃음) 깊이의 면에서는 부족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치열하게 해야 될 때는 이빨 빠져가며 했어요.
- 뿌
- 배우로 작업하다보면 연출이 막 답답할 때 있지 않으세요? 특히 후배 연출이랑 작업할 때는 더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남
- 처음에 나와서 작업할 때는 좀 그러기도 했어요. 근데 하면서 점점 그들의 영역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어요. 서울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 거예요. 굳이 이 방법이 좋다고 강요할 필요가 없는 거죠. 서울을 가는 여러 가지 방법에서 저 연출이 저 길을 원한다면, 제가 좀더 즐겁게 그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맞지, 이 길이 더 빠른데, 이 길이 더 좋은데, 그런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게 무엇이든 그 연출이 찾아가는 길인 거죠. 너무 힘들 때는 본인이 SOS를 하겠죠, 그럴 땐 나 같으면 이렇게 할 껀데 너랑 나랑은 다르다, 그래요. 얘기 들어주고 내 생각 얘기하고 끝이에요.
- 뿌
- 그래도 속으론 답답하시죠? (웃음)
- 남
- 그건 정말 아니에요. 처음 연출하고 배우하고 왔다갔다하면서 헷갈렸어요. 무대에 서서 내 대사는 그냥 구력으로 진행시키고, 저 조명 좀 더 빨리 들어와야 될 거 같은데, 쟤가 지금 저기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 머리속으로 계속 딴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땐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나서는, 나는 지금 내 할 도리를 다 하는 게 연출을 가장 도와주는 거야, 분리를 하려고 하죠. 연출을 할 때는 또 배우의 속이, 안 봐도 되는 면까지 너무 보이는 거예요. 그것도 안 보려고 하죠. 지금은 필요한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해요. 혹시나 연출이 의식을 할까봐 나는 연출라인에 끼어들지 않는다, 라는 걸 빨리 더 보여주기도 해요.
잠깐 쉬는 시간.
- 뿌
- 제가 선배님을 처음 기억했을 때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했어요.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배우를 시작할 때나, 비슷하게 자꾸 캐스팅 될 때나, 고민 없으셨어요?
- 남
- 전혀 없었어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스타트 자체가 그랬기 때문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최근에 젊은 연출들이 날 캐스팅하면서 다른 모습들을 보고 끌어내 주니까, 오히려 요즘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 뿌
- 좀 전에 쉬는 시간에 카리스마 있다는 얘기는 지겹게 들었다, 그러셨잖아요.
- 남
- 30대 중반 넘어가면서 그런 얘길 듣기 시작했을 땐, 그런가보다 하다가, 이제는 너무 많이 듣다보니까. (웃음)
- 뿌
- 저는 <당신의 손> 보고 놀랐거든요. 되게 세보이는 분인데 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 남
- 그런 말랑말랑한 걸 안하진 않았는데, 강한 역할을 더 많이 기억하는 거 같아요. 나로서는 <오구>의 할머니도 하고, <햄릿>의 거트루드도 했으니까 전혀 다른 역할들을 한 거죠. 강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하는데 연출이 요구하니까 하는 거죠, 젊은 연출들이 다른 모습들을 봐줘서 고마워요.
- 뿌
- 또 해보고 싶은 역할 없으세요?
- 남
-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기보다는, 팔십이 돼서도 젊은 애들이랑 실험극, 신체극 하고 싶어요. 이게 말뿐이 아니려면 몸 관리를 잘 해야 되고 게을러지지 말아야 되는데, 잘 안돼요. 그때 같이 하는 후배들이 너무 어른이다, 이러면서 어려워하지 않게 그들과 같이 호흡을 하면 좋겠다, 라는 목표가 있어요.
- 뿌
- 오, 멋있는데요.
- 남
- 그게 살 길이라서 그래요. (웃음)

- 뿌
- 모두가 선배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됐을 때 실험극 하시는 거, 저도 보고 싶네요.
- 남
- 무대를 촤악 가로질러가는, 그냥 뒷모습으로 서있는데도 아름다운 그런 거…
- 뿌
- 그 연세쯤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 남
- 아니, 구력이 아니라 몸이 미학적으로 움직여지고 정신이 아름다울 수 있는… 목표는 그래요. 그렇게 살 수 있을진 모르겠고. (웃음)
- 뿌
- 지금 <말뫼의 눈물> 연습 막바지시죠?
- 남
- 다음 주가 공연이에요. 거제도에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삶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예요. 억울한 것과 불합리한 것들을 겪으면서 그럼에도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출이 올곧이 고민하고 있던 것들이 작품에 묻어나서 좋아요. 재밌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 뿌
- 이번에 하는 역할은 어때요? <당신의 손>에서처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나요?
- 남
- 아뇨. 이번엔 김수희 연출이 하던 거 해달라고. (웃음) 비슷한 역할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죠. 연기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내 생각이 변해왔고, 그런 걸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죠. 예전에는 이해를 하면 그만큼 표현을 하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대사만 잘 치고 무대 위에 잘 서 있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은 안다, 그런 생각을 해요. 대사 템포가 빠른데다가 사투리라서 말만 툭툭 해요.
- 뿌
- 수희 고향이 거제도고 선배님도 부산 출신이시니까 사투리가 되게 매력적이겠어요.
- 남
- 욕을 구성지게 해요. (웃음) 내가 가고 싶은 연기의 길을 적용해보고 있는데, 연기를 30년 했는데도 이제 와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웃기죠.
- 뿌
- 저는 선배님들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배우로서의 고민,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여쭤보는데요. 저렇게 잘 하시는데도 고민이 있으시구나, 싶었다가, 당연히 있으시겠지, 해요. 실은 그 고민의 정체가 다 가늠은 안되죠. 경험치가 너무 다르니까요.
- 남
- 연기에 대해서 뒤통수를 맞았던 적이 있어요. <오구>에서 할머니 역할은 내가 살아온 것만큼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대 때는 뭘 알겠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죽음에 대한 것이 또 하나 얹어지고, 내 삶의 성장이랑 같이 아직도 그 할머니가 만들어져가고 있는 거거든요.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진짜 팔십이 돼야 될 거예요. 그 역할이 대부분의 장면은 다른 배우들이 잘 놀 수 있게 뒤에서 받쳐주면 되는데 후반부에 중요한 대사가 있어요. 한 번은 부산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 장면이 돼서 ‘관객들 눈물 좀 짜내야지’ (웃음) 그러면서 대사를 막 시작했어요. 앞줄에 할머니 네 분이 앉아계셨는데 팔짱을 끼고 그냥 멀멀하게 보고 계신 거예요. 그때 어떻게 했는 줄 알아요? 너무 부끄러워서 대사 빨리 치고 확 죽어버렸어요. 그 할머니가 “니가 인생을 더 살아봐야 된다, 아직 모르네.” 이렇게 말하시는 것처럼 귀에 막 들리는 거예요.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했던 게 어떤 관객한테는 너무 철없어 보이겠다, 덜 여물었으면서 척 한 걸로 보일 수 있겠다, 그때 깨달은 거죠. 그 다음부터는 모르는 건 모르는 상태로 해요. 다 아는 척 안하고 아는 만큼만. 나머지는 연출이 하겠지, 그러면서. (웃음)
지난번에 <위대한 놀이> 라는 작품을 할 때 대극장을 채우는 것에 대해서 배우들이 너무 고민을 하니까 서상권 선생님이 “공간을 채운다는 건 관객의 상상력과 마음을 채우는 거지, 소리나 이미지가 채우는 게 아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너무 편해지더라고요. 맞어, 나는 관객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이후로 연기가 좀 더 편해진 게 있어요. 뭔가 내가 다 해야 될 거 같잖아, 근데 다 할 수 없을 뿐더러 다 한 거 같다고 하면 잘난 척하는 거니까. 배우든 연출이든, 관객의 상상력을 건드리는 것 까지가 역할인 거죠. 연기하면서 내가 얼마만큼 관객의 상상력 속에서 노닐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 뿌
- 아직 그 내공까지는 안 되지만 너무 와 닿는 얘기네요. 얼마 전에 제가 어떤 공연을 보고 지인한테 배우가 ‘열연’ 안했으면 좋겠어, 그런 얘길 했어요. 배우가 열연을 하려고 열연을 하는 게 보이니까 마음이 멀어지더라고요.
- 남
- 세상이 그렇게 변해온 거 같아요. 요즘 관객들은 스스로 찾고 채우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즐길 줄 아는데, 내가 의도한 대로 즐겨줘, 라는 걸 굳이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 뿌
- 너무 ‘정답’ 을 알려주는 거 재미없죠.
- 남
- 관객들 똑똑한 걸 모르는 건 배우들이에요. 관객들 너보다 똑똑해, 너 뭐하는 줄 다 알아, 왜 하나 더 하니? 연출할 땐 배우들한테 그런 얘길 해요. 뭔가를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 이런 것들이랑 배우들은 싸우는 거죠. 안하면 또 연기 못하는 거 같고. 아직도 나도 무대 위에서 막 했다가 집에 와서 이불킥 하고 그래요. 너무 해서 이불이 남아나질 않아. (웃음)
- 뿌
- 아, 이 인터뷰는 정말 동영상으로 내보내고 싶어요. 글로는 도저히 전달이 안 될 거같아요.
- 남
- 그럼 글로는 재미없지. 내가 같이 있어야 재밌지.

선배님의 독특한 말투와 농담, 온갖 의성어와 제스처를 글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어 너무 아쉽고, 독자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뿌
-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남미정한테 연극이란?
- 남
- 연극이 전부였던 삶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연극이 내 인생의 전부였을 때는 너무 기쁘고 슬프고, 일희일비가 너무 심하니까. 그래서 어느 날 알았어요. 그건 불행한 거더라고요. 연극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 정도로, 옆에 두려고 해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 남미정(배우)
- 주요작품
<위대한 놀이> <오구> <당신의 손> <황금용> 외
동아연극상 제1회 새개념연극상 <잠들 수 없다>
제40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옥단어!>
2006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아름다운 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