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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짓는 광대

안무가·연출가 류장현

김정_연출가

제143호

2018.07.05

웹진 편집회의에서 연출님과의 인터뷰가 결정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만큼 연극인들이 많이 궁금해한다는 거겠죠? 연출님에 대해서. (웃음)
장현
큰일 났네.(웃음)
연출님 스스로는 그 경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현
하아... 잘 모르겠...(웃음)
그럼 자신을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세요?
장현
제가 생각해봤는데 이런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몸을 짓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짓다’라는 표현이 남다른 것 같아요. 밥을 짓다. 글을 짓다.... ‘짓다’라는 말을 쓸 때 글짓기, 집짓기라고는 쓰는데 ‘몸짓기’라는 말은 없잖아요. 저에게 연출가냐 안무가냐 뭐냐 물어봤을 때 제가 굳이 정의 하자면 ‘몸을 짓는 사람’ 아닌가. 저라는 사람 자체는 그냥 퍼포머로 아니면 광대로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옛날 광대 같은 경우에는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재담을 하건 연기를 하건 결국에는 어떤 걸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거지 다 같은 ‘광대’잖아요. 저를 광대 혹은 퍼포머라는 느낌으로 보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몸을 짓는 일’로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출님은 시작을 무용으로 하셨어요?
장현
저는 아무래도 춤을 추는 게 좋았고. 전공으로 결정한 거는 고3때였어요. 그전에는 그냥 놀고 춤추고...(웃음)
혹시, 비보이 같은 거 하셨어요? 저 중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만 되면 애들이 뒷문으로 갑자기 들어와서 스텝 밟다 나가고 그랬는데.(웃음)
장현
맞아요. 그런 거였어요. 뭔가를 따라 하는 거? 시작은 따라 하는 거 같아요. 배우건 댄서건 결국엔 자기가 꽂히는 걸 따라 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니까. 이유는 모르잖아요. 그냥 하는 거죠. 따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춤이 좋았다고 해도 ‘무용’이라는 장르는 조금 다르지 않았나요?
장현
좀 다른 거였어요. 가끔 ‘이게 무용이야? 춤이야?’ 하는 게 있거든요. 무용은 뭔가 진지하고 고상한 것 같은데 춤은... ‘무용학과’라는 건 있는데 ‘춤학과’는 없잖아요. 보이지 않게 나귀어 있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무용은 뭔가 진지하고 우아하게 해야 할 것 같고, 춤은 뭔가 멋대로 해도 될 것 같은...(웃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그걸 자연스럽게 섞은 것 같아요.
춤을 좋아해서 전공으로 선택한 후에는 어땠나요?
장현
저는 춤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서서 표현 하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그게 이제 순수예술이라는 것을 만나서 조금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춤이라는 것이 가진 자유로움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근데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건 ‘그 자유로움이라는 건 배우는 게 아닌 것 같다.’라는 거였어요. 그냥, 그건 누가 끄려고 해도 잘 안 꺼지는 본질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다음에 배운 건 테크닉. 테크닉은 기존의 세상에 있는 문법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몸을 잡는 가장 체계적인 방법인 발레를 배우게 됐는데 그때 느낀 건. 말도 안 되는 인내심이었어요. 그 끝이 없는 인내심. 어떤 것이든 끝이 있어야 되는데 끝이 없는...(웃음) ‘인내심만 갖고 있다면 몸은 무조건 변한다.’라는 것. 그런 것들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연출작업 혹은 안무작업을 하시다 보면... 실은 제가 대학로 거리극 축제 때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공연을 봤는데 연출님이 커튼콜 때 춤추시는 걸 봤거든요.(웃음) 저렇게 신나게 춤추는 사람이 연출만 하기에는 뭔가 몸이 근질거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웃음) 연출을 하시면서 어떤 성취감이 있을까 궁금하더라구요.
장현
각자의 도전과제가 있잖아요. 연출가나 안무가로서의 능력은 무대를 조화롭게 만들고 정리하는 능력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디데이 안에 만들어 내는 것.(웃음) 시간과 에너지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서 어떤 것을 보이게 하고 어떤 것을 안 보이게 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게 내 역할 아닌가. ‘그런 것들을 네가 할 수 있겠어?’ 스스로한테 묻기도 하고. ‘춤은 좀 추겠지만 이런 것 까지 할 수 있겠어?’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30~40분짜리 공연이 아니라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네가 할 수 있겠어?’ 스스로 이런 과제를 내리는 거죠. 그런 과제들을 해내다 보니까 연극성이나 영화적인 것들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기존의 작업들이 어떤 충동적인 감각에 의지한 작업이었다면 이번에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감각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심리이고 왜 그렇게 됐는지 하는 이야기. 소설 같은 형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로 직조하다 보니까 남이 봤을 때는 ‘되게 연극적이다.’ 라든지 ‘무용수가 배우 같네.’ 라든지 이런 시선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하다 보니까.

텍스트를 붙여 보는 것 혹은 좀 더 큰 의미에서 연극 작업은 어떤 재미를 주던가요?
장현
사실 그런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무식한 방법 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냥 감각을 믿고 가는 것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내 감각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그게 별로면 ‘네 감각이 딸린다고’ 생각하고 무너지면 되는 거고, 그게 좋으면 ‘네 감각이 지금 되게 앞서가고 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건 되게 위험한 거잖아요. 프로덕션의 기회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 마다 뭔가 장치적으로 그럴싸하게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충동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했다고. 나 시작 이렇게 안 했잖아. 그냥 가자!’ 이런 생각들이 왔다갔다 할 때가 있어요. 특히나 큰 프로덕션 작품에 참여하다 보면 보는 눈들도 많아지기도 하고. 근데 그걸 그나마 해소시켜 줬던 것은 캐스팅이었던 것 같아요. 기존의 작업자들과 다른 바운더리에 있는 배우들이 함께 작업에 들어와 있다는 게 큰 차이더라구요. 배우들은 why가 많기 때문에 그 why가 해결되지 않으면 못 움직이는 배우들이 많거든요. 그랬을 때 내가 배우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죠. 그런 면에서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모르는 것 천지잖아요. 그 씬에 대해 나도 몰라요.’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충동과 다 얘기해놓고 ‘아, 내가 너무 싸가지 없게 얘기했나.’ 이런 후회들을 하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그런 순간들이 되게 많았어요. 연습과정이 힘들다 보니까 자기들끼리 배우는 것들도 있더라구요. 배우들은 why를 찾는데 댄서들은 그냥 해 이런 식이거든요. 근데 배우들이 봤을 땐 ‘저 무용수는 이유를 모르고 했는데, 나는 그게 느껴지네. 이게 뭐지.’ 이러면서 스스로 자괴감도 들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기도 하고. 이 작업은 그런 침식과정들이 쌓인 것의 결과물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가끔 우리 공연을 축구에 비교하거든요 공연이 90분짜리면. 45분, 45분 휴식 없는 축구경기.(웃음) 얼마 전 독일 경기 끝나고도 ‘우리나라 축구가 뭘로 이겼냐. 몸값, 시스템, 드리블 실력? 아니 그냥 가는 거라고! 지면 끝이다. 그냥 가는 거다.’ 이런 얘기를 했던 생각도 나네요.(웃음) 근데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과 또 반대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연출이라고 하면 텍스트의 직조나 이런 것들을 더 논리적으로 파악해서 설득해야 될 것 같은. 거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저도 연출이다 보니 그 위험하다는 말이 재밌고 궁금해요. 연출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장현
저한테 있어서 늘 ‘한계’나 ‘위험’이 중요한 테마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위험이란 경계로 내가 끌고 간다고 해서 다 따라와지는 건 아니구나.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그런 즉흥성이나 경계에 대해 두려워하는구나. 엄청나게.’ 그런 걸 느꼈어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이거를 계속 넘어서는 게 예술일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도박 같은 거죠. ‘그럼 그걸 경험하게 해줘야지. 우린 15회 공연이니까. 첫 번째 공연 좀 아쉬우면 어때.’ 이렇게 간 거죠. 근데 공연을 하면서 알게 되는 거죠. 소위 말하는 ‘먹힌다.’ 위험한 시도이지만 배우는 무대에서 불안함을 넘어서는 순간 쾌감을 느끼고, 관객은 그들이 그런 위험한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아마 경직된 사회일수록 그 쾌감이 더 크지 않을까... 또 저는 관객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이 공연은 관객들이 완성시켜주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됐어요. 저희 작품도 어떨 땐 70퍼센트 밖에 안 만들어진 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거든요. ‘이게 뭐야. 이해를 못하겠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뭐지.(웃음)’ 근데 관객을 만남으로 인해서 30퍼센트 정도가 확 채워지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한계와 위험, 참 공감 가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아까 말씀하셨던 ‘내가 이걸 놓치고 가면 큰일난다.’ 했던 건 무엇일까요?
장현
작업할 때도 내가 위험성을 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이게 참 힘들어요. 내가 어떤 위험한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일들이 생겨요. 어떻게 보면 피곤한 일이죠. 근데 ‘그 위험성이 재미가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 재미가 생기거든요. ‘우리의 일상이 재미가 없다면. 이게 유일한 것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기존에 있던 질서를 넘어서는 것. 무식한 얘기로 하면 프레임을 바꾸는 것. 예를 들어. 이 나이에 계단에서 잠을 자는 건 이상하잖아요. 근데 어릴 때는 식탁 밑에 기어 들어가서 잠을 자기도 했잖아요. 그런 아이 같은 모습. 우리는 우리도 모른 채 남의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아기가 태어날 때 남들 시끄러울까봐 울음소리를 줄인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잖아요.(웃음) 막 태어난 아이는 ‘끄앙’ 하고 울어버리잖아요.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늑대로 태어났는데 학과, 권력, 선후배 사이의 군대식 위계를 거치면 애견이 돼버리는 것 아닐까. 그래서 ‘간식 줄까?’ 하면 침이 나오는... 그 간식이 예고 강사 자리 일 수 있고, 중요한 작업 기회일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결국 짖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거 아닐까. 탁 건들면 송곳니 확 보이면서 으르렁거리는 그런 본능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그래서 저도 가끔 ‘연출이 이런 선택을 함에 있어서 관객들이 힘들어하는 것보다 표현의 자유가 먼저 아니에요?!’ 하면서 으르렁 댔다가 지나고 보면 ‘내가 너무 잘난 척 했나...’ 이런 게 있거든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잊어버리지 말자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본능이요. 차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데 굳이 올라가서 뛰어논다거나 핸드폰으로 전화는 안 받고 탁구를 친다던가... 지 맘대로 하는 행동들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춤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웃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풍자, 해학. 웃음이라는 것은 엄숙주의자들이나 권력자들 앞에서는 자유롭지 않죠. 그런 그들을 가지고 노는 거예요. 웃음이 터져 나오면 누군가는 찔릴 것이고 누군가는 박수를 치죠. 누군가는 즐거워하고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그런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요. ‘풍자의 검을 잃어버리는 순간 하산이다. 이게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다. 풍자라는 검. 이거 없으면 끝난다. 그걸 놓치는 순간 끝난다.’(웃음)

아까 말씀하셨던 광대랑 같은 말처럼 느껴지네요. 아까 광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도 뭔가 이런 세련된 공연과 거리가 있는 구수한 말처럼 느껴졌는데(웃음) 어쨌든 풍자, 해학 좋네요.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광대가 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설명하거나 눈치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장현
나같이 이렇게 내 멋대로 하는 애들도 흔들리는데 정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흔들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요즘에는 이상하게 조금 다르거나 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강하게 반감을 표하는 세상인 거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격렬한 찬사를 보내지만 자기가 생각해 놓은 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무섭게 잡아끌어 내린 달까... 그런 게 굉장히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예술가라는 것이 금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그것을 굳이 깨부순다기보다 소재화하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혹은 그걸로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인해 새롭게 해석되게 해야 하는 게 우리 역할인데. 요즘은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어떨 때 이 모든 것들을 다 피해 가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그런 것들과 싸우지 않으면서 내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구요.
장현
예전에는 ‘어렸을 때 잘나가는 것들’을 위에서 까는 경향이 되게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럴 때는 무서운 것보다 ‘그래? 받아줄게.’(웃음) 저는 센 상대한테는 엄청나게 세게 하는 편이거든요. 화도 좋게 쓰면 좋고 나쁘게 쓰면 나쁘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어떨 때는 저한테 엄청난 에너지를 주기도 하구요. 근데 요즘은 스스로 나도 권력자의 자리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나도 이제 아저씨, 꼰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바라 볼수도 있겠구나... 근데 모두가 똑같이 옳은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움받더라도 내 길을 가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고요. 2년 전 했던 공연의 한 장면에서 한 명이 솔로 춤을 춰요. 그 사람을 향해서 단 한 사람이 박수를 쳐주거든요. ‘내 길을 응원해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갈 수 있다.’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는데. 이번 공연 버전에서는 요즘 제가 느끼는 게 투영되더라구요. 박수 쳐 줬던 그 한 사람까지 들여보내 버려요. ‘너를 응원해 주는 사람? 없어! 너를 이해해주는 사람 없다고. 미안한데, 그건 니가 약해질 때 기대고 싶은 환상 아닐까. 니가 진짜 니 말을 하고 싶고 끝까지 니 말을 할 거라면 너 혼자가.’ 이렇게 바뀌었어요. 저의 현재가 반영된 것 같아요. 지금의 제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홀로 되더라도 끝까지 갈만한 일인가. 끝까지 혼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각자가 이런 고민을 치열하게 한 다음에 제대로 서 있으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느껴지지 않을까. 그게 제 바람이에요. 근데 우리는 아직도 그 ‘우리’라는 게 너무 중요하잖아요. 같이 작업했던 팀들, 우리학교 동문들 등등. 쉽게 기댈 수 있는 수많은 것들. 그것을 못 넘어서면 소위 말하는 실존은 없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다짐 같은 것이기도 하네요. 홀로 되더라도 미친 듯이 추겠다. (웃음) 그래도 지금 현재 연출님의 작업들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잖아요. 어떨 땐 똘끼가 확 생기거나 호불호에 있어서 불호에 가깝더라도 꼭 해보고 싶은 주제나 형식 같은 게 있으세요?
장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고 싶긴 해요. 배우가 되어보고 싶기도 하고 영화도 한 편 찍어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어떤 판타지들이 있긴 한데. 모르겠어요. 어려운 게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 갇히는 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기획하시는 분이 ‘연출님 제목이 뭐예요.’ 물어보시잖아요. 그럼 ‘언제까지가 맥시멈인가요.’ 이렇게 물어봐요. 그래놓고 끝까지 안 정하고 기다려요.(웃음) 왜냐하면 그 순간 컨템포러리함이 사라지잖아요. 내가 정해 버리는 순간 이미 세월이 지나버리니까. 그래서 ‘어떤 걸 해야겠다.’ 이런 것보다는. 그때 확 오는 것에 뛰어들고 싶어요.
재밌네요. 언젠가 그런 접근 방식도 바뀌게 될까요?
장현
음... 저는 항상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같아요. 하나는 현대 무용처럼 형식을 뒤집어 버림으로써 지금 여기에 충격을 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도서관을 다 불태워도 한 권은 남겨둔다는 그 고전이라는 것. 그 두 가지에서 고민하는 지점이 있어요. 고전을 만들고 싶은 욕심과 ‘고전을 왜 만들어야 돼?’ 하면서 엎어버리는 것.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요. 그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싶어요.(웃음) 그렇게 평생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재밌고 내 심장이 뛰는 일을 좇다 보면... 뭐 한 100살 때까지 살면 신이 우연으로... 저는 신이 있다면 우연의 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하다가 자빠졌는데 제대로 자빠져서 우연히 ‘야! 이거 대박이야. 이 작품!’ 이렇게 되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웃음)
그쵸.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 도 있고.
장현
맞아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그런 마음이면 참 즐겁게 작업할 수 있을 텐데.(웃음) 아니면 제가 아니더라도 동시대에 내 주변에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중에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내가 이걸 곁에서 보고 가는구나.’
장현
그랬으면 좋겠어요. 예술 천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 멋대로 살고 싶어요.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저희 인터뷰에 마지막 질문이 있는데요. 이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류장현에게 연극이란? 근데 이게 맞는 질문일까요?
장현
음... 예술이라는 걸로 생각해도 되는 거죠?
그럼요.
장현
저는 메모를 해둔 게 있는데. 내가 예술작업을 하는 이유를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의 창조적인 욕망에 영감 한 방울 떨어뜨리는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건 본인만 아는 거잖아요. 나중에 ‘이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하든 말든 그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미칠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의 영혼에 두 방울, 세 방울이면 더 좋고. 한 방울 똑.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가 또 다른 곳에서 그런 에너지를 건네주고 그 한 방울 때문에 어쨌든 화학작용이 생길 수 있다면 설사 그가 모른다고 해도 나만의 기도를 갖고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생각해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류장현(안무가, 연출가)
주요작품
<죽고 싶지 않아> <갓 잡아 올린 춤> <농담>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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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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